알렉산더라는 이름을 들으면, 보통은 옛시대 유명한 왕이 떠오르겠지만 나에겐 사람이 아닌 고양이가 떠오른다.
알렉산더는 이제 11살 먹은 고양이의 이름이다.
옛시대의 그 왕의 그것과 같이 용맹하고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램으로 지어준 이름.
알렉산더와의 첫 만남은 2006년 중국에서 였다.
당시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유학생들 카페에서 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고양이 두마리 분양합니다. 한국에 급히 가게 되어 오늘까지 분양이 안되면 버리고 가야 되요."
고양이를 한번도 키워본 적 없던 나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살 먹은 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작은 박스에 두 녀석을 담고 택시를 타고 오던 중 한녀석은 얌전히 있는데 다른 한 녀석은 호기심이 가득한 것인지 호기롭게 박스에서 나오려고 애를 썼고 이내 택시 뒷자석을 활보했다.
그렇게 나는 그 녀석을 알렉산더로 부르기 시작했다.
2008년.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 우리는 사람 하나와 고양이 세마리가 되었고 충격적이게도 비행기를 통해 고양이를 데려오는 것에는 마리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비행기 대신 배를 선택하게 되었다. 배 역시 특실을 잡아야 데려올 수 있었고, 나는 고양이 세마리가 뱃멀미를 하는 진기한 모습을 본 몇 안되는 사람이 되었다.
한국으로 들어와서도 세관에서 한달가량을 보내고 난 뒤에야 내 품에 돌아왔다.
가난한 유학생이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돈이 들어갔었다.
당시 두달가량을 거진 라면으로 살아갈 정도.
그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알렉산더와 함께 온 케르베로스는 두번째 아이를 임신했고 그 아이는 언챙이로 태어나 일주일만에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케르베로스는 자궁축농증 후유증으로 2주간 입원할 정도로 죽다 살아나기도 했다.
나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오랫동안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찾아왔다. 고마운 사람.
알렉산더와 케르베로스의 첫 아이던 꼬맹이는 작년에 갑자기 hcm으로 하지마비가 와서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알렉산더가 10살 되던 때의 일이고 꼬맹이가 9살이던 때의 일이다.
여자친구를 특별하게 더 따르던 꼬맹이는 여자친구 품에서 주사를 맞고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제.
어제는 사실 여자친구의 생일이다.
알렉산더는 저번주 일요일부터 갑자기 식욕이 없어졌고 췌장염 진단을 받고 수액처치를 시작했다.
지금 잠시 쉬고 있는 여자친구가 하루 12시간씩 병원에서 간호를 했다. 그러다 상태가 더 안좋아져서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 뒤로도 간호는 계속 되었다. 어제도 마찬가지.
나는 퇴근 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축 늘어진 알렉산더와 긴 시간 같이 보내 힘들어 하는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3일만에 본 알렉산더는 내 생각보다 훨씬 초췌했다. 한쪽 코는 강제 급여를 위해 막혀있었고, 한쪽 팔엔 수액을 놓기 위한 링거바늘이 있었다.
한시간 가량 수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이틀이 고비고 기운만 차리면 문제없다는 말에 잘부탁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여자친구와 병원 문을 나섰다.
알렉산더는 알렉산더 대왕이니까 그깟 췌장염쯤은 이겨줄거야. 그래야 알렉산더 답잖아. 이름 값은 해야지. 지금은 힘들어 해도 이겨낼거야. 알렉산더는 안죽을거야. 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친구 생일이라 둘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왔는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 지금 바로 와주세요. 위급합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알렉산더는 꼬맹이를 만나러 고양이 별로의 여행을 떠난 뒤였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쁜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다. 그래도 잔병치레 한번 없이 건강하던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그렇게 21일 22시 48분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그렇게 케르베로스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차가워진 알렉산더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꼬맹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 케르베로스는 나랑 좀 더 놀다가 갈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나중에, 나도 거기 가면 꼭 꼬맹이랑 케르베로스랑 같이 마중 나와야 한다? 응?"
....
나는 이 말이 정말 좋다. 먼저 떠나간 반려동물은, 내가 긴 여행을 떠났을 때 날 마중 나온다는 그 말을.
고마웠어. 알렉산더.
내가 사랑했던 나의 알렉산더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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