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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9/19 18:00:44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무게
최근 이런 상황이 있었다. 나를 조금은 힘들게 하는 사건이 생겼는데, 그 사건을 매듭짓는 방법은 곰곰히 따져보면 두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냥 내가 밝히지 않고 조용히 시간이 지나면 없던 일이 되는 방법, 아니면 이 사건을 연관된 이들에게 알리고 모든 책임있는 자들에게 그 무게를 분담시키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후자를 택하면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길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고, 개개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 또한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할 때의 그것보다 더 커질수도 있다. 그럼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내가 살신성인하는 성인군자 타입은 아니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전자를 택하는게 정답 같아 보였다. 다만,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으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은 걸리는 상황이였다. 어렸을 적, 동네 아이들과 다투었을 때 어머님께서 하신 "네가 더 형이니까 참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 첫사랑에 실패했을 적, "나 말고도 더 좋은 사람 많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 정도가 그런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에 속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의 마음을 보살펴 준답시고 나보고 모든 것들을 솔직히 털어 놓으라고 한다. 이분들은 자신이 나눠 지겠다는 짐의 무게를 과연 알고 있을까? 어디까지나 타인의 입장에서 조언을 주겠다는 그 마음은 고맙게 받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나에게 나눠주는 호의가 오히려 나에게는 더욱 힘들게 다가왔다. 내가 솔직히 밝히지 못하는 것은 그분들의 현재 상황을 유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지만 알려 줄 수가 없었다.

[때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도 있는 것이다.]

알게 되는 것에는, 보통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알려고만 하고, 책임을 지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다. 한낯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 비밀도 있지만, 내 주변 환경의 판도를 뒤집을만한 사실을 담고 있는 비밀도 있다. 우리는 그냥 알게 되는 것에 과연 얼마나 큰 파급력이 있을까 싶어하지만, 한번 의식되기 시작한 사실을 없던 일로 돌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냥 모두가 알지 못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 것인데, 어째 주변 사람들은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자꾸만 모든 것을 밝히라고 한다. 애초에 무언가를 밝히지 않고있는 뉘앙스를 사람들이 느끼도록 해버린 내 잘못일지도 모르겠지만, 잊을만 하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 공세는 점점 나로써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게 만든다.

["Sometimes, we don't know what we're trying to do."]
우리는 과연,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우리는 과연,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의 진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그 실체와 진상을 미리 알아도, 하고 싶다고 알고 싶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왜 내 자신부터가 이런 사실들을 먼저 알게 되어 이런 고뇌에 빠지게 되었을까. 때로는 아무것도 몰랐다면, 더 편하게 지낼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마냥 기뻤던 것 같고, 크면서 아는게 늘며 오히려 생각만 복잡해진 것 같다.

물론, 난 알아버린 사실을 그냥 몰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과연 정말로 모르는게 더 나았을까? 아무것도 모르며 즐겁게 보낼 현재를 위해, 미래를 난감하게 만드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까. 눈을 닫고 귀를 닫는다고, 이미 존재하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우리가 무언가를 알기 꺼려하는 이유는 아는 것과 함께 따라오는 책임의 무게 때문이고, 오히려 모르는게 나을 뻔 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제멋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성장의 과정은 당연하게도 책임을 키워가는 과정이며, 당장 주머니 속에 늘어나는 열쇠 수만 세어봐도 늘어가는 책임감의 무게를 실감할수 있다.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조금씩 더 조심하게 되고 행동도 번거로워 지지만, 그만큼 내가 열수 있는 문도 많아진다.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책임이란 그런 것이다.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는게 편한 것이 아니고, 몰라도 누군가가 대신 감당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결해 주기 때문에 편하다고 느껴왔던 것이다.

...

오늘도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뻔한 고비를 한번 넘겼다. 자꾸만 아득바득 무언가를 알아내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을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생각해 보면 이 광경이 참 익숙한데, 어렸을 적 아버님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로 잠시 무직 상태가 되셨을때, 집안 돈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나에게 비슷한 입장을 취하셨던것 같다. 과연 난 그때 집안 사정을 알고 있는게 더 나았을까? 아니면 그때처럼 그냥 모르고 공부에 집중하는게 좋았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얼마 뒤 아버님이 중병으로 누우셨고,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비로소 난 집안의 상황을 깨닫고, 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자립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때 아버지가 조금 더 일찍 솔직해 지셨으면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럼 조금 더 어깨의 부담을 덜고 지내시지 않았을까.

그리고 문득,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입다물고 있는 사실이 그 사람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임팩트를 몰고 올 것이 확실하지만, 그래도 나를 믿는 사람들을 나도 믿고 한번쯤은 솔직하게 내 마음에 충실해져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방법만이, 늘 정답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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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군
16/09/19 18:24
수정 아이콘
그렇죠. 사람들은 알 권리가 뭔지 잘 모르면서 그 말을 좋아해요. 자신이 물으면 대답이 나와야만한다고 생각하죠. 아무런 책임감없이..
스타슈터
16/09/19 18:52
수정 아이콘
원래 알 권리라는 것에는 듣고 책임을 지겠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정보를 얻는게 쉬운 세상에 살다보니 많이들 그 점을 간과하게 되는게 아닌가 싶어요...흐흐;

호기심이 죄는 아니지만, 진짜 알고 싶다기보단 그냥 재미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사실은 그런 정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더군요 ㅠㅠ
Paper, please
16/09/19 18:43
수정 아이콘
사회생활을 해보니, 알아야 할 것에는 알아야할 때가 있더라고요. 너무 일러도 늦어도 안되더라고요.

알면 안될 것을 알게 되는 건... 힘든 일이더군요.
스타슈터
16/09/19 18:57
수정 아이콘
말씀처럼 알아야할 때를 놓쳐버리면 참 난감해 지더군요... 그 타이밍이 지금쯤인것 같아서 나름 고민되어 적어본 글이기도 합니다.. 흐흐;;
돌고래씨
16/09/19 18:50
수정 아이콘
어렵네요... 자주 발생하는 문제지만 그때마다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본인의 가치관에 맞는 결정을 하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관여할 일이 아니죠. 글쓴이분 말처럼 책임을 나눠가져 주지도 않을거고 나눠 가질수도 없는일이 많으니...

밝혔을때의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설령 알수 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밝히지 않았을 때보다 좋을지는 본인만이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어떤일은 모르는게 더 낫다는게 참 와닿습니다. 내가 관여될 일이라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거나, 듣고 마음속의 짐을 가지고 살아야한다면 차라리 몰랐으면 하거든요

어떤 고민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 사람이 도와줄 수 있다고 믿으시면 고민이 될거 같습니다. 믿는 만큼 혹시나 모를 아픔도 클것이기에...
스타슈터
16/09/19 19:03
수정 아이콘
사실 지금 저같은 경우는 고민이 될만한게, 분명 저는 이야기를 하면 조금 짐이 덜어질것도 같아요.. 그로 인해서 듣는 사람이 지금 내가 지는 짐보다 더 큰 짐을 지게 될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망설여지고는 있지만요.

대의를 생각하면 침묵이 맞고, 자신을 생각하면 밝히는게 맞는데, 하필이면 가장 큰 타격을 맞을 사람이 저에게 계속 밝히라고 정중하게 다가오니까 상황이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크크...

판도라의 상자가 이런 기분이구나 싶더군요. 허허...
Jon Snow
16/09/19 19:04
수정 아이콘
"People often claim to hunger for truth, but seldom like the taste when it's served up."
-티리온 라니스터
人在江湖
16/09/19 20:06
수정 아이콘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 아니셨나요...?!
스타슈터
16/09/19 23:05
수정 아이콘
이 사상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긴 합니다. 흐흐...
웨인루구니
16/09/19 20:34
수정 아이콘
지진!!
웨인루구니
16/09/19 20:35
수정 아이콘
어익후..ㅜㅠ 무셔
오렌지밭에서
16/09/19 23:44
수정 아이콘
전 말할 권리보다 들을 권리가 우선시된다고 생각해서 아무리 잔혹한 진실이라도 말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네요
스타슈터
16/09/20 01:11
수정 아이콘
저도 굳이 한쪽을 선택하라면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막상 당사자로써 어느 하나를 택하자니 그게 쉽지는 않네요...
위에분들도 말씀해 주셨지만 말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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