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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08/28 02:26:02 |
Name |
보들보들해요 |
Subject |
[일반] [8월] 전여친 |
그녀는 뭔가 달랐습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어도 자꾸 눈이 갔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녀가 특별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소수의 매니아층이 있을 법한 그런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는 않지만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배려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느낀건 관심이라기 보다는 신기함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그건 또 좋았습니다 눈이 좀 길게 마주쳤던 날은 다들 아시잖아요 '혹시?'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어느날 때를 놓쳐 교내에 먹을만한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쪽문 밖에 있는 일식돈까스집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가츠동이냐 규동이냐를 고민하며 문을 열었는데 기적처럼 그녀가 앉아 있었어요
흥얼거리고 있던 노래가 버스에서 흘러나올때 보다 훨씬 아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식당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어?' '어어 안녕하세요'
저와 그녀와 사장님 셋 뿐인 공간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균형감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녀의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겨우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였고 덥석 합석을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그녀와 저의 접점은 비틀즈 ELO 핑크플로이드 즈음의 노래를 듣는 모임에 가끔 얼굴을 비춘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저는 가츠동을 시켰고 그녀는 새우튀김 우동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겉 핥는 이야기들을 의외로 진솔하게 밤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자들처럼 나누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옛날 노래를 듣는 그 모임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나가게 되었고 그녀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자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맘속에 있다는걸
초코파이는 인생과자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술 한잔 하다가 사귀었습니다
'얼레리 꼴레리 누구누구랑 누구누구는 사귄데요 사귄데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왜 놀림을 받을만큼 창피한 일이었을까요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도 창피한 일이었을까요
길을 가다가 정말 예쁜 어린 한쌍이 빨려 들어갈듯한 검은 눈동자로 서로를 온전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다가 또 한구석이 짠해집니다
살다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누군가의 전남친 또는 누군가의 전여친이 되곤 하니까요
창피했던 옛 기억입니다
이후 만났던 분들과는 다르게 왜 좋아했었는지 왜 헤어졌는지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었던 그녀가
미숙했던 저와 아마도 미숙했던 그녀가 하지만 아름다웠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이 글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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