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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27 22:19:39
Name 50b
Subject [일반] [8월] 겨울의 속초,


1.

나이가 들어 갈수록 생각은 조금씩 깊어 진다.

생각이 깊어 진다고 해서 항상 바른 선택을 하는건 아닌데

정신적인 늙음과 육체 적인 늙음이 항상 함께 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2009년도의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사실 말그대로 혼자 있었던건 아니고

혼자 무엇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시절의 나는 "혼자" 하는 것에 꽤 능숙 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런 재미없음에 지칠 무렵에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이친구와 나는 지금 말로 "썸"을 조금 탔었는데,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라 이사를 가면서  관계가 흐지부지 해져 버렸다.

남자와 여자 라는 이성적인 관계는 흐지부지 해졌지만 , 가끔 안부 전화를 서로 하곤 했다.




"잘지내?"

"뭐 . 나야 똑같지. 넌 어떤데?"

"아 난 부여에 있다가 속초로 이사왔어"

"속초? 꽤 멀리도 갔네"

"응. 속초 와봤어?"

"아니 그냥 대충 알지 한번도 안가봤지"

"금욜날 집 비는데 놀러 올래? 잠은 집에서 자면 되거든"


바로 대답을 하기엔 나의 불순함이 너무 적나라하게 들어 나는것 같아서


"음. 시간을 한번 봐야 되겠는데, 내일 다시 전화해서 말해줄께"

"응 그래"


당연하게도 다음날 전화해서 간다고 했다.


2.

대구에서 속초까지 4~5시간 걸리지 않을까 하고  동부정류장에서 표를 끊고

기사에게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봤더니 7~8시간 걸린다고 했다.

차 안에서 거의 죽은 채로 한참을 자고 깨도 차는 달리고 있었다.


시끄럽던 차안도 강릉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내려서 조금은 조용해졌다.

아무것도 안하고 차를 타고 가는것도  힘들었는데 운전을 하는 기사분의 심정은 어떨까


내릴때 진심으로 수고 하셨다고 말하고 내렸다.



터미널에 내려서 전화를 했더니  준비한다고 늦어서 어느 아파트 입구로 오라고 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전화했더니 그제서야 나온다.

그리고 나를 보고 한마디를 했다.




"미안한데 아빠 집에 오셔서. 모텔에서 자야 할것 같아. 방은 내가 잡아줄께.

아 그리고 나 잠은 집에서 자야 돼.아빠 때문에 "




온몸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정말 아빠 집에 오신거 맞어?

라고 묻고 싶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맥주를 한잔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지만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는데 대구에서 속초 까지 온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였다. 한편으론 이런 나의 음흉한 모습이 싫기도 했다.


새벽 1시까지 같이 놀다가 나와서 친구가 방을 잡아 준다고 모텔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빨리 이곳 속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사실 아까 말할려고 했는데 나도 오늘 대구 내려가야돼. 터미널 멀어?"

"택시타고 좀 가야 될껄? 왜 자고 내일 오후에 가. 점심때 밥도 같이 먹고"

"아냐 . 나도 내일 볼일있어서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럼 택시 잡아 줄께"



3.

그렇게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갔다.

택시 기사분이 내 억양을 듣고 경상도에서 왔나봐요. 바다보러 이 멀리 까지 왔어요?

라고 묻길래 겨울의 속초 바다가 갑자기 보고 싶어서 왔다고 개 뻥을 쳤다.




12월 말쯤의 속초는 너무나 추웠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터미널로 뛰어 가서 문을 열었는데 잠겨져 있었다.

터미널 앞쪽에 불빛이 보이길래 가서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니 누군가가 잠에서 깨서

지금시간에는 차가 없다고 했다.

너무나 추워서

터미널 안에 들어 가있을려고 문을 열어 달라고 했더니

노숙자들 때문에 새벽 6시 부터 문을 연다고 갔다가 다시 오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이였다.


택시도 나니지 않는다. 주위엔 칠흙같은 어둠 뿐이였다.


2009년에 스마트 폰이 있었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어도 됐을테지만,


터미널 문을 열때까지 추위속에서 버틸수 밖에 없었다.


7시간넘게 차를 타고, 돈을 쓰고 , 나와의 예상과 전혀 다름 전개에서 오는 분함 보다


너무 추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만큼 새벽 6시를 기다려 본적도 없다.


온몸을 웅크려서 앉아 있기도 하고, 앉았던 일어 났다를 반복하며

열을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추웠다.


시간의 흐름이 초단위로 느껴질만큼 천천히 흘러 갔다.




새벽 5시 30분 터미널 건너편에 밥집에 불이 켜지길래 빨리 들어가서

몸을 녹이며 정말 감사다하고 했다.

식당 아주머니는 뭔가 감사 한지 어리둥절한 모습이였다.


찌게를 하나 먹고, 첫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왔다.







속초 하면 여자친구의 봤던 일출 이라던가


손잡고 거닐던 낭만적인 바닷가가 아니라


어둠속의 고독과 나를 죽일것 같았던 추위가 떠오르게 되었다.

뭐 당연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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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7 22:57
수정 아이콘
50b 님 예전 글 잘 읽었었는데 다시 뵈서 반갑습니다 :)
16/08/27 23:05
수정 아이콘
앗.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운영진 아니신가요? 감사 합니다(꾸벅)
놀라운 본능
16/08/28 00:17
수정 아이콘
맘에드는 결말입니다만..
16/08/28 03:01
수정 아이콘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하핫;;
김재경
16/08/28 02:11
수정 아이콘
이동네 겨울에 많이 춥습니다
사실 바람보다 더 추웠던 이유를 전 알거같네욯
16/08/28 03:01
수정 아이콘
저도 알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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