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세 좀도둑은 자신들이 들어온 잡화점의 시공간이 뒤틀려 있으며 과거의 인물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꺼림칙한 기분에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고 하다가 이런 신기한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느냐는 한 멤버의 제안에 과거에서 날아온 편지에 답장을 써주기 시작한다.
첫 번째 편지는 여자 펜싱 선수의 고민이었다.
나름 실력이 뛰어나 내년에 있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갈 예정이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암에 걸려 훈련에 집중을 못하겠단다.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고 6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자친구 곁에서 간호를 하고 싶단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찾아오지 못하게 한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는 상담.
좀도둑 일행의 답장은 별거 없었다.
당신이 훈련하는 곳에 남친도 데려가면 되겠네요.
하지만 남자친구는 병원을 나서면 병세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어 그럴 수 없었다.
몇 번 더 편지를 주고받다가, 좀도둑 일행은 펜싱선수가 출전하려는 올림픽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직 동서 냉전 시대였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국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고 다른 나라에도 동참을 요구했었다.
일본은 마지막까지 결정을 못하다가 결국 미국을 따라 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었다.
문제는 간단해졌다.
어차피 올림픽은 못나가니까 남자친구 간호해주면 되겠네.
우리가 그 선수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건 말해줘도 안믿을테니 그 얘기는 빼고 쓰자,
해서 보낸 답장은 <사랑한다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는게 좋다.>
하지만 펜싱선수는 쉽사리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꿈에 대한 남자친구의 믿음과 성원이 너무나 간절해서 그를 실망시키는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좀도둑 일행은 슬슬 짜증이 난다.
아놔 어차피 당신 올림픽 못나간다고 !
조언을 해줘도 듣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편지는 보내는거야? 이거 완전 답정너잖아!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매몰차게 답장을 한다.
너 바보지?
사람이 죽어가는데 올림픽 그까짓게 뭐야?
그딴거 그냥 큰 운동회일 뿐이야.
그런 거 때문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연인과의 시간을 낭비한다고?
넌 절대 올림픽 못나가, 잊어버리라고 !
이렇게 망설일 시간 있으면 당장 그 사람한테 가봐 !
세상에는 올림픽이고 뭐고 따질 겨를이 없는 나라도 아주 많아.
당신이 올림픽 못 나가는 것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아 됐다. 니 맘대로 해. 그러다 실컷 후회해라.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넌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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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은 이전과 비교해서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왔다.
잡화점 내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흘러가는 비율을 고려했을 때 펜싱선수 쪽은 이미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었을 시점이었다.
편지에는 뜻밖에도 감사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펜싱선수는 일본이 올림픽 출전을 거부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보다는 애초에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남자친구는 투병 끝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펜싱선수의 선택은 간병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다행히 남자친구의 임종시에는 자리를 함께할 수 있었는데 그는 꿈을 이루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펜싱선수가 맨 처음 편지를 보냈을 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올림픽을 단념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고 능력의 한계, 막다른 벽을 느끼고 있었다.
라이벌과의 끝없는 경쟁에 지쳐 갔고 올림픽에 대한 압박감에 짓눌려 도망치고 싶었다.
남자친구가 암에 걸렸을 때 간병이 좋은 핑계가 되어줄것 같았다.
좀도둑의 답장 <사랑한다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는게 좋다> 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진심은 그만큼 순수하지 않고 교활한 면이 있다는걸 느꼈다.
좀도둑이 올림픽 따위는 단순히 큰 운동회라고 했을 때 좀 의아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자신만만할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답장이 자신을 떠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을 잊으라는 조언을 덮썩 따랐다면 내가 펜싱 선수로서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꿈이 딱 그 정도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이 환해졌다.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꿈을 향해 달리는 나를 당신이 사랑해 주었던걸 안다.
당신 덕분에 나는 나답게 살 수 있었다.
나는 올림픽에 나가겠다. 하고 전했다.
남자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네가 나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너무 괴로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건 죽음보다 더 두려웠다.
우리는 멀리 있어도 함께 있는 것이다. 하고 말해 주었다.
펜싱선수는 망설임 없이 훈련에 뛰어들었다. 곁을 지키는 것만이 간병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날 속에 남자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숨을 거뒀다.
마지막까지 힘껏 노력했지만 대표선수로 뽑히지 못했고 올림픽에 쏟은 노력 자체가 물거품이 되어버렸는데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장에 씌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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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일행은 얼떨떨했다.
답답하고 화가 나서 대충 써 보낸 편지 덕분에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며 고마워하다니.
진짜로 올림픽 나가지 말라고 한건데 지멋대로 해석해서 정반대로 행동해놓고 망한 다음에 통찰력에 경의를 표한다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역시 기분이 좋다.
시시하게 살아온 그들의 인생에 이런 일은 별로 없었다.
잡화점에는 연이어 편지가 들어오고 좀도둑 일행은 계속 답장을 썼다.
뒤틀린 시공간은 사연의 주인공들과 좀도둑 일행의 운명을 점차 하나로 묶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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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입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야행, 악의, 용의자 X의 헌신 등등에 비해 비교적 최신 작품인데,
마치 소설 쓰는 기계처럼 너무나 많은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보니 작품간의 편차가 크고
기존에 인정받은 대표작들에 비해 후속작들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이 있는듯 합니다.
그런데 저는 겨우 그의 소설 딱 하나 읽어놓고는 감히 이렇게 말할수 있을거 같은 기분입니다.
나, 히가시노 게이고 읽어봤어.
한때 이른바 '힐링 도서'가 유행했었고 난립하는 힐링류 책에 대한 반발과 비판도 심했었는데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 같은게 진짜 힐링 도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이딴거 없습니다.
각계 각층의 등장인물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심하게는 목숨도 잃고 가정도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읽으며 이상하게 힘이 났습니다.
그래 한번 버텨 보자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 한번 돌아보자.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 소설은 2012년 일본에서 '중앙 공론 문예상'을 받았는데 시상식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책 읽기를 싫어했다. 국어 성적이 너무 나빠서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불러 만화책만 읽지 말고 책도 읽히라고 충고했다. 어머니는 우리 애는 만화책도 안 읽는다고 했다. 선생님은 별수없이 그러면 만화책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나는 소설을 쓸때 어린 시절 책읽기를 싫어했던 나 자신을 독자로 상정하고 그런 내가 중간에 내던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지인에게 빌린 소설이었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인 그에게 일단은 몇권 더 추천받아 볼 예정이긴 한데 pgr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분들이 계시면 추천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이번에 조금 반한거 같거든요... 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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