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쓰 홍당무>를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도대체 어디로 튈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팽팽한 기싸움에 코메디보다 충격의 농도가 더 짙은 헛웃음을 계속 터트리며 봤었다. 그런 이경미가 정말 오래간만에 내놓은 작품이 극호와 극불호사이를 널뛰었다. 주연배우는 손예진이고 장르는 스릴러, 여러모로 "또" 소리를 듣기에 안성맞춤인 한국형 상업영화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오간다면 이경미가 뭘 해도 한건 터트렸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 소재는 익숙하지만 그 결이 굉장히 요상망측한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사람들이 혹평을 가했는지 이해가 갔다. 딸이 실종되었고 엄마는 딸을 찾으러 다닌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미션을 독하게 쫓아다니면서도 일부러 빙빙 돈다. 하나하나 증거를 수집하고 길이 아닌 곳을 소거법으로 지우는 게 아니라, 길인 것 같으면 일단 몸을 사리지 않고 들어가 헤매다가 막힌 벽을 짚어보고 나온다. 아니었네? 그럼 다시. 이 영화는 정합성보다 혼란을 추구한다. 그러니 방탈출처럼 정합적으로 풀리는 스릴러 논법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맥락상의 멀미를 유발할 것이다. 연홍의 딸민진은 어디있는가, 죽었는가, 를 찾아야 하는데 영화는 민진이 누구이고 그런 민진에게 연홍은 어떤 엄마였는지, 이들이 사는 세계는 어떠하며 거기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정신없이 떠벌린다. 전혀 상관없는 수다를 떠는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비밀은 없다>의 혼란은 교과서대로의 작법을 거부한 의도이기도 하겠지만, 의외로 사실적인 양상을 띄고 있기도 한다. 주인공인 연홍은 보통 여자, 어쩌면 보통 이하의 여자다. 그런 여자가 갑자기 셜록 홈즈가 되어 불철주야 구르는 경찰을 능가해 사건을 조립해나갈 수 있을까? 자식새끼를 잃은 어미의 본능은 방향성을 잃고 분출할 것이다. 저게 혹시 내 자식은 아닌지, 내 자식과 친한 아이들은 누가 있었는지, 대체 언놈이 해코지한 건 아닌지, 사방군데를 찌르고 정보를 긁어모으며 헤맬 것이다. 새끼를 되찾으려는 것은 어미의 이성이 아닌 마음이다. 영화가 갈팡질팡하는 것은 어미의 심리를 정직하게 반영한 결과다. 그러니 폼을 잡으며 출발했던 스릴러 영화치고는 어이없게도 최면술을 쓰는가 하면 무당에게 점괘를 묻고 급기야는 남편의 사무국장을 위협하며 경찰에게 정보를 빼올 것을 명령한다. 단서는 다음 단서를 착실히 이어주는 그 동안의 영화들에 익숙하다면 이 영화의 진실게임은 마구잡이 방문탐사에 더 가깝다.
- 추리의 방법론도 혼란스러운데 그 톤까지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영화는 더 어지러워진다. 조까조까라는 아이디를 크게 읽으며 아이디를 타이핑하는 것도 웃긴데 영화는 친절하게 자막까지 넣어주며 이질적인 싼티를 끼워넣는다. 이런 식으로 이 영화는 긴장의 이완과 수축에서 제 멋대로 박자를 탄다. 엄마는 사라진 딸을 찾아 비통하게 헤맨다. 그런데 전라도 출신의 아이덴티티가 밝혀지고 영화는 이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이죽거리기 시작한다. 지극히 개인적 인륜의 문제는 갑자기 사회 전체를 둘러싼 풍자로 널뛰기를 하고 청초하던 엄마 연홍은 갑자기 무식한 여자가 되는가 하면 전라도 사투리로 친구인 무당에게 놀림당한다. 영화는 스스로 스릴러의 본분을 망각한다. 딸이 사라져서 애가 타지만 목구멍으로는 밥이 넘어가고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픽픽거리는 것이 내내 진지할 수 없는 리얼이라는 듯이 말이다.
- 그러다보니 "비밀"이라는 단 하나의 점을 도면위에서 찾는 2차원적 이야기가 들쭉날쭉한 입체성을 갖추게 된다. 딸이 걸린 스산한 스릴러는 고등학생의 말랑말랑한 사춘기 드라마가 되는가 하면 찐득거리는 현실을 집어올리는 사회고발극이 되기도 한다. 한 여자가 모든 이를 맞서 싸우는 열혈 투쟁기이면서도 애타는 엄마의 휴먼드라마도 된다.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가 이렇게까지 불균질할 수 있다는 것은 이경미만의 성취다. 영화는 각 장르에 걸맞는 감정을 있는 대로 끌어올린다. 그렇게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가운데 중구난방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러닝타임 한가운데 딸 미진의 죽음을 공표한다. 여기서 영화는 가장 중요한 게임을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인상마저 풍긴다.
- 이 지점부터 영화가 내뿜는 에너지는 괴기스러워진다. 추리물은 복수물로 선회하고 딸을 잃은 어미는 진상을 밝히는 게 아니라 사냥하는 것처럼 뒤쫓는다. 캐릭터의 변화 역시 이 영화 전체의 불균형한 입체성을 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연홍은 절망하고 분노한다. 국회의원 후보인 남편에게는 침을 뱉고, 분노한 남편에게 목을 졸리면서도 악바리처럼 대든다. 연홍은 흐느끼며 울지 않는다. 그는 찢어질 듯이 절규한다. 이 영화처럼 주인공을 험하게 다루기도 어려울 것이다. 여태 헤매게 해놓고서는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더니 거기서 아예 머리끄댕이를 질질 끌고 간다. 여기서 손예진이 뿜는 에너지는 내가 그 동안 이 배우를 얼마나 과소평가해왔는지, 이 배우가 얼마나 욕심나는 시나리오를 못 만나고 있었는지를 되짚게 할 정도였다.
- 이 영화가 끌어올리는 감정 역시도 격해진다. 모든 부분에서 이렇게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영화는 그 수위를 끌어올린다. 왕따들의 서글픈 청춘드라마는 이상할 정도로 퀴어해지고, 연홍의 남편을 둘러싼 선거전쟁은 연홍의 뒤통수를 까고 정으로 신장을 찍으려는 묘사가 동원된다. (이 부분만큼은 작위적으로만 보였다) 안그래도 손을 칼로 찍어버리며 자해하던 연홍의 광기는 담임선생님을 만날 때는 새까만 드레스를 차려입으며 정말 정신병적인 모습을 보인다. 미진의 사물함에는 칼날을 가득 넣어 야유에 그치던 왕따에 피비린내가 배인다. 미진의 죽음은 차로 치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후진까지 하면서 시체를 으깬다. 그게 다가 아니야, 라며 영화는 정말 끝간데 없이 때려댄다.
- 마침내 드러난 진상은 더욱 더 뒤죽박죽 얽혀있다. 미진은 왕따였다. 미옥은 미진의 아버지, 종찬이 담임선생님과 불륜에 빠진 걸 발견하고 둘은 이 비밀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둘은 담임선생님을 협박하며 시험지를 미리 받아내고 자신들의 성적을 올린다. 미진은 가난한 미옥을 챙겨주고 싶어 담임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한다. 종찬은 딸이 협박범인줄 모르고 사람을 처리해 죽여버렸다. 피해자인 미진은 한편으로는 추악한 가해자였고, 철없는 만큼 가혹한 인간이었다. 그는 공주님이었지만 밖에서는 멸시당했고 하나뿐인 친구를 위해준답시고 타인을 희생시키려는 아이이기도 했다. 연홍은 미진을 지키고 싶었던 엄마였지만 오히려 미진이야말로 바람피는 아빠로부터 엄마를 지키고 싶어했던 딸이었다. 불쌍한 딸내미는 악마이기도 했고 여태 딸자식을 챙기던 연홍은 아무것도 모른 채 놀아나던 멍청이였다.
- 영화는 최후의 심판을 거행한다. 잔학한 딸을 더 극악무도하게 죽인 아비는 숨쉴 기회를 박탈당한채 죽어간다. 그러나 연홍은 자비 아닌 자비를 베푼다. 죽여버리는 대신 고통스러운 삶을 선사하며 영화는 복수의 점을 찍는다. 심지어 그 방법은 남편의 정적에게 섹스스캔들 영상을 유출하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의 추문을, 남편이 성공한 순간 라이벌에게 흘리며 역전의 포문을 열어젖힌다. 영화는 심판의 방법과 결말에서도 추접하고 애매하게 굴면서 그 누구도 멀쩡한 인간으로 남겨놓지 않는다.
- 영화는 울분과 절망이 뒤범벅된 가운데 피를 토하며 비웃는다. 손예진과 이경미는 곱게 미쳤다. 이렇게나 굿을 닮은 영화가 있었을까. 신명내며 위로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을 받아들인다. 도전을 권하고 싶다. 쉽지 않을 것이다.
@ 미진과 미옥이 밀가루를 뒤집어쓴채 북치고 기타치면서 노래하는 장면은 미쓰 홍당무의 또라이 정신 그대로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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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무키가 곡을 쓰기도 했지만, 그 노래하는 비주얼은 무키무키만만수 노래를 영화적으로 제대로 시각화했다고 생각합니다 크크크크크
저야 미쓰홍당무를 미치도록 재밌게 본 입장에서 이 영화를 지지할 수밖에 없지만, 아닌 분들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뭌만에 대한 반응과 거의 비슷해요.
<갈증>의 하위호환이죠.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나 표현방법들도 엄청나게 많이 가져다 쓴 영화더군요.
대신 테츠야가 가진 연출력과 촬영/미술은 이경미가 못가졌죠. 그게 이 영화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들의 시발점이라 봅니다.
테츠야는 연출력으로 개연성 뭉개는 능력이 있거든요. 이경미는 (없다기보다는) 부족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