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2/28 15:02:45
Name aura
Subject [일반] 캐치 유 타임 슬립! - 2 튜토리얼 (본격 공략연애물)


1.


에휴.
거울에 비친 과거의 내 모습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 꼬라지 좀 보라지. 도대체 무슨 멋으로 머리는 이렇게 길렀던 걸까.


정말 징글징글하다.
어울리지도 않는 파마에 한껏 기른 구레나루. 거기에 덮수룩한 뒷머리는 덤이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아마 두발 규제에 억눌렸던 갈망이 수능이 끝나자마자 폭발했고,
지금 이 모양이 이 꼴이 된 것 같다. 오오, 두발이여! 레미제라블!


아쉬운대로, 입학식이 끝나자 마자 머리부터 정리해야겠다.
일단 당장은 입학식에 나가봐야하니 옷부터 차려 입어야한다.


[에휴.]


옷장을 열자마자 참지못하고 한숨이 터져나온다.
오 주여, 신이시여. 정녕 이것이 내가 입고다녔던 옷들이란 말입니까?
어떻게 쥐눈꼽만큼도 패션 센스가 없었는지 궁금하다.


내 옷장, 그것은 컬러풀란 레인보우의 향연.
도대체 이딴 옷들을 사는데 그렇게 돈은 왜 썼던 걸까.


고심끝에 나는 무난하게 청바지에 흰색 맨투맨을 집어들었다.
이 기본적인 조합을 뛰어넘는, 입을만한 옷의 조합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으아 바지통은 또 왜이렇게 커?]


츄리닝 못지 않게 아주 넉넉하고 편하다.
갑자기 십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버리니 과거의 패션에 적응을 못하겠다.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거울에 모습을 비춰 꼼꼼히 스스로를 점검한다.


[키득키득]


한 없이 우스꽝스러운 차림이었지만, 왠지 싫지 않다.
뭔가 조금은 그리웠고, 직접 다시 보니 유쾌했다.
후우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번드르르한 겉차림이 아니다.
내가 오늘 다시 만날 그녀에겐 이런 촌스럽고, 우스꽝스런 모습은 중요하지 않을테니까.



2.


[후우우웁. 하]


다시금 이 공기를 맡게 될 줄이야.
물론 타임슬립하게 된 것 자체가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분위기, 공기를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감동적이다.


마치 마음까지 20살로 돌아간 것 처럼 두근거리고 기대로 가슴이 벅처오른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역동적인 젊음이 이 캠퍼스 안에 느껴지고 있다.


신입생들은 각 자의 부푼 기대를 안고,
또 어떤 선배는 새로 들어올 신입생들을 기대하며.
물론 아직 정식 개강이 아닌 입학식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건 신입생들 쪽이 압도적이다.


한껏 다시금 캠퍼스의 낭만(뭐 쥐뿔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을 느끼며 브리딩!


[후우우웁. 하!]
- 저... 저기


응? 이 목소리는 설마?
맑고 고운 목소리.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그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윽고 그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올망졸망 크지만 쌍꺼풀없는 눈을 가진 그녀가 시야에 들어온다.
진짜 저 크지만, 쌍꺼풀 없는 눈은 다시봐도 치명적이다. 심쿵.



<<< >>>  튜토리얼 스테이지 실행
타깃 감지
이름 : 현은하
타입 : 순수함, 사랑스러움
감정 상태 : 기대, 걱정
좋아하는 남성 타입 : ???
호감도 : ???


뭐? 이, 이게 뭐야?
은하. 내 과거의 기억 한 켠에 단단히 자리잡은 그녀와 다시 마주하자마자
요란한 홀로그램 같은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 저어.. 죄송합니다. 기분 나쁘셨으면 사과드릴게요!
[아... 네?]


순간 당황해버려서 굳어버린 내 모습을 오해했는지 은하는 울듯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푹 숙였다.
고대하던 첫만남의 순간이 이래서야. (야레야


[아니에요. 기분 하나도 안 나빴어요.]


이렇게 예쁜 사람이 말걸길래 다단곈줄 알았잖아요. 라는 말도 안 되는 드립을 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20살이라는 걸 명심하자.
게다가 내 기억을 되짚어보면 분명 은하는 그런 시시껄렁한 농담에 웃기보다는 굉장히 당황할 것이다.  
사실 그 당황해서 정신 없어진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라서, 일부러 놀려보고도 싶었지만 일단은 꾹 참는다.


[그리고 저도 신입생이거든요? 아마... 신입생 맞죠?]
- 아... 예. 근데 제가 신입생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은하야. 티나 임마.
설령 내가 은하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은하의 어리벙벙한 분위기라던가 차림새를 보면
누구라도 그녀가 신입생인 것을 눈치챌 것이다.


[음.. 글쎄요. 그냥 느낌이랄까? 느낌이 딱! 왔어요. 키득키득]
- 우와. 대단해요.


뭘 대단한 걸 했다고 저렇게 눈을 반짝반짝 빛낼까.
순수하고 순진했던 20살의 은하.
본인만 빼고 남들이 다 아는 걸, 이런 식으로 툭 던져주면 저렇게 귀여운 표정을 짓는단 말이지.


[그런데 왜요?]
- 아앗. 맞아. 그게 저 입학식 가려는데, 길을 몰라서요.


은하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아 은하야! 이렇게 넓은 대학에서, 입학식 장소 쯤은 몰라도 된다고.
사실은 나도 잘 몰라서 헤맸었다.
뭔 놈의 대학교가 쓸데 없이 크기만 한지. 신입생땐 대학이 크다고 좋아했던 내가 아주 철없는 바보였다.


[음. 같은 신입생인데 말 편하게해도 될까요?]


은하같이 은근히 예의를 차리고 중요시하는 타입에게는 지나치게 친한 척 하며 서스럼 없이 다가가기 보다는
정중한 권유로 말을 놓고 서서히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게 중요하다.


- 아. 그래도... 돼요?


[응.]


같은 신입생이라는 동질감이 알게 모르게 그녀와 나의 거리를 좁힌다.
사실 후배에게도 말을 편하게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렸던 그녀로서는 만나자마자 말을 편하게 하는
사람이 어쩌면 내가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같이 가자. 이 학교 내가 꽤 잘 알거든.] 씨익.



3.


곧 봄을 앞둔 시점이지만, 날씨는 쌀쌀한, 그렇지만 또 햇볕은 나름 쨍쨍한 2월의 끝 날.
내 파릇한 청춘기의 시작점에 추억으로 남았던 그녀와 다시금 나란히 학교를 거닐고 있다.


그녀와 함께 학교 거리를 누비니 새록새록 과거의 기억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사실 어쩌면 은하에게 '원래의 나'는 기억될만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서만 유독 그녀를 기억하고, 마음 한 켠에 담아뒀을 가능성이 꽤 높을지도 모른다.


사실 원래의 내가 은하를 처음 만났던 건, 이렇게 학교 앞이 아니라 입학식이 진행중인 학교 실내 체육관 안에서였다.
그녀는 바로 내 앞. 나는 바로 그녀 뒤.
앞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했었지만, 얼핏 느껴지는 샴푸냄새와 잘 정돈되어 말끔한 머릿결이 아주 조금 날 콩닥이게 했었다.


그때부터 꽤 눈여겨 봤는데, 숫기도 용기도 자신감도 모두 없던 나는 그냥 은하를 지켜보기만 했다.
새터(2박3일 짜리OT)에서 같은 조가 되었어도, 함께 전공과목 팀과제를 했어도.
뭐 한 번 나서서 제대로 말을 걸어보고, 밥 한 번 먹어보자고 말도 해본적 없었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은하는 복학생 선배 중 한 명이 낚아채 가버렸고, 그러면서 점차 은하는 내 기억에서
잊혀져 갔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선명한 그녀의 모습이 한 가지 남아있다.


- 아! 저기...
[차현민! 현민이라고 불러 그냥.]
- 아 응. 현민아 저기...


그녀는 날 불러놓고는 둘러맨 백팩을 낑낑거리며 앞으로 가져와 앞주머니를 뒤적였다.
이거다. 조금은 유치하지만, 한 때의 내 기억 속에 천사같던 모습.


- 초콜릿... 먹을래?


은하는 초콜릿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다.
언제는 그녀는 초콜릿을 가지고 다녔다. 물론 자기가 먹는 것보다 나눠주는 게 더 많았었지만.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한, 친해게 어울려 본 적조차 없는 내게 은하는 항상 웃으며
작은 초콜릿을 몇 개씩 주곤 했다.
은하가 주던 초콜릿은 살면서 먹었던 그 어떤 초콜릿보다 달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응. 줘. 나 초콜릿 꽤 좋아하거든]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기는 싫어서 어느 정도 표정을 감추고 싶었는데,
그녀에게 초콜릿을 건네받는 내 표정은 거울을 안 봐도 보이는 것만 같다.


아, 초콜릿 진짜 달다. 진짜 맛있어.





3에 계속...



6편 안에 은하편을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 방끗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유스티스
16/02/28 15:40
수정 아이콘
레진코믹스에서 연재중인 웹툰과 구성이 거의 유사하네요.
16/02/28 15:41
수정 아이콘
으어 나름 어젯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쓰는 중인데 비슷한 소재가 있나보네요 ㅠ

궁금하지만 무슨 웹툰인지는 찾아보면 안될 것 같아요. 보면 분명히 영향받고 앞으로 전개가 더 비슷해질 수 있으니..
유스티스
16/02/28 15:42
수정 아이콘
타임슬립물은 꽤나 많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질이 문제겠지요.
16/02/28 15:44
수정 아이콘
사실 저는 반 타임슬립물이라는..
더 이상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숨기겠습니다? 크크
유스티스
16/02/28 15:47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초반 구성만 보고 괜히 힘빠질만한 댓글을 단거같네요.
고맙게 읽겠습니다.
16/02/28 15:53
수정 아이콘
크크 아니에요. 오히려 악플도 관심이라고 무플보다 감사하고 좋죠 저는!
어찌하리까
16/02/28 16:43
수정 아이콘
오그라들어요.ㅜㅜ 근데 재밌어요 크크크크
16/02/28 16:51
수정 아이콘
많이 오그라드나요? ㅠㅠ
해원맥
16/02/28 17:33
수정 아이콘
배드앤딩은 입대인거 아니죠?
다음편을 요구합니다 !
16/02/28 17:45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보시면 아시겠지맘..입대는 아닙니다 크크.
미카엘
16/03/06 11:54
수정 아이콘
배드 엔딩은 역시 와이프랑 다시 결혼하는거겠지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3789 [일반] 캐치 유 타임 슬립! - 2 튜토리얼 (본격 공략연애물) [11] aura4150 16/02/28 4150 7
63788 [일반] [야구] 검찰, 박기량 '명예훼손' 장성우 항소..'2심 간다' [31] 이홍기7126 16/02/28 7126 0
63787 [일반] 쇼생크 탈출 재개봉 보고왔습니다.!!(스포랄게...없구나..) [28] 파쿠만사5104 16/02/28 5104 1
63786 [일반] 타코야끼 (2) [7] 잉여잉여열매3631 16/02/28 3631 2
63785 [일반] 독일 언론에서 본 우리나라 필리버스터(2) [17] 표절작곡가8884 16/02/28 8884 13
63784 [일반] [프로듀스101] 네이버/공식후원/현재 순위 비교 [4] Leeka5556 16/02/28 5556 1
63783 [일반] 독일 언론에서 본 우리나라 필리버스터(1) [23] 표절작곡가10659 16/02/28 10659 6
63782 [일반]  대출을 거절 당하다 [13] ZolaChobo8350 16/02/28 8350 24
63780 [일반] 캐치 유 타임 슬립! - 1 (본격 공략연애물) [3] aura4703 16/02/27 4703 10
63779 [일반] 의외로 쓸모있는 국회 인터넷 사이트 안내 [32] 데오늬11391 16/02/27 11391 63
63778 [일반] 포켓몬스터 극장판 XY 후파 광륜의 초마신 감상문(스포X) [2] 좋아요4253 16/02/27 4253 0
63776 [일반] 타코야끼 (1) [11] 잉여잉여열매3967 16/02/27 3967 3
63775 [일반] 정말 정동영이 희대의 역적입니다. [55] 삭제됨8415 16/02/27 8415 4
63774 [일반] 언제부턴가 민주화운동 전력이 훈장이 아니라 주홍글씨가 되는 느낌입니다. [287] 에버그린15136 16/02/27 15136 51
63773 [일반] 나는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6] 자루스4072 16/02/27 4072 3
63772 [일반] [20대 총선]역대 선거관련 간략한자료 [19] 아우구스투스5090 16/02/27 5090 5
63771 [일반] 드디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20] 세가지의색깔2755 16/02/27 2755 3
63770 [일반] [스포] 데드풀 보고 왔습니다. [13] 王天君7303 16/02/27 7303 2
63769 [일반] 봉주가 태어났습니다! [80] Be[Esin]8864 16/02/27 8864 22
63768 [일반] 컷오프에 대한 더민주 내부의 반응입니다. [174] Igor.G.Ne13875 16/02/27 13875 0
63767 [일반] 로저스 선수가 인스타그램에 김성근 감독과의 마찰(?)을 이야기했습니다. [99] 대치동박선생13584 16/02/27 13584 0
63766 [일반] (팝송)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여러 버전. [13] OrBef4671 16/02/27 4671 1
63765 [일반] 테러방지법에 찬동하는 우리의 립장 [34] 숲 해영 9623 16/02/27 9623 5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