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
2016/02/27 23:37:58 |
Name |
aura |
Subject |
[일반] 캐치 유 타임 슬립! - 1 (본격 공략연애물) |
1.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깊은 회한을 담아.
후우. 담배 한 모금, 뭉게뭉게.
- 내가 베란다에서 담배 피지 말라고 그랬지!
[미.. 미안!]
하지만 이대로 이미 타기 시작한 담배를 매몰차게 버릴 순 없다.
후우. 쌉쌀하다. 고독하다.
이것이 하드보일드.
- 안 꺼? 꺼!
[어어. 알았어, 끌 게! 끈다 꺼!]
크흑. 내 집에서 내 맘대로 담배하나 못피다니, 눈물이 찔끔났다.
아아, 찬란한 내 인생의 황금기여.
찬란하고, 눈부신 지성의 요람기여.
뻐끔뻐끔.
아내의 바가지에도 채 버리지 못한 미련를 담아 담배의 필터까지 내달린다.
화이어 버스트! 두 모금 빤 담배에서 필터까지 저스트 텐 세컨즈.
- 나가!
방년 33세의 유부남 차현민.
쫓겨나다.
2.
처량한 내 인생아. 처량한 내 발가락아.
눈물이 날만큼 한국의 겨울은 차갑고 시리다.
슥슥.
왜 하필 나는 그 수 많은 신발들을 다 놔두고 삼색 슬리퍼를 골라버린 걸까.
그래,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계속해서 부는 을씨년스런 겨울 바람은 조롱인가 비참한인가.
어느 쪽이 되었건 비극적인 사실은 정말 더럽게 춥고, 징그럽게 춥다는 것이다.
덜덜. 이대로 있으면 얼어죽겠군.
너덜너덜, 그 속을 얼마 남기지 않은 담배곽을 뒤져 담배 한 개비를 꺼낸다.
탁.
후우.
이것이 성냥팔이 소녀의 마음이었을까.
담배는 훈훈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그 길이가 줄어들때마다
깊은 절망이 조금씩 드리운다.
크흑. 담배야... 죽지마... 사라지지마. 나만 두고 가지마.
문득 이 불공평하고 비참한 처사에 마음이 울컥한다.
담배야. 이런 지지리 궁상 아저씨에게도 인생기의 황금기가 있었단다. 믿어줄래?
- ...
[...]
믿어. 정말이야. 저 여편네를 만난 것도 그 때 그 시절이란다.
- ...
대학생 시절.
이 아저씨 제법 잘 생기고 멀끔했거든. 그래, 인기 있었다고.
- 근데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라고 담배가 말하는 듯 하다.
그러니까 닥치고 들어봐.
물론 내 아내가 가끔 지랄맞아서 그렇지 정말 사랑스럽고 예쁜... 예뻤어. 어.
- 그럼 됐잖아요? 라고 담배가 말하는 것 같다.
아니, 그래도 너무 아쉬워. 아쉽다고.
대학생 새내기 시절의 나는 숫기가 없어도 너무 없었어. 심지어 찌질하기 까지했다고.
- 키득키득. 지금은 안 찌질한가요?
아오 좀, 내 말 좀 마저 들어봐라.
지금의 내 아내가 불만이라는 건... 아냐! 아니 조금 불만이긴 하지만 괜찮아. 좋아.
그래도 역시 아쉬워. 내 인생에서 주변에 가장 예쁜 여자들이 넘쳐나던 그 시기를
어영부영 넘어가버렸다는 게!
세상에 100명의 여자에게는 100가지의 매력이 있다고.
- 자신 있어요?
[응?]
- 다시 돌아가면 꼬실 자신 있냐구요.
[당연하지. 보내만 준다면 악마와 거래라도 할걸?]
지지리 궁상 모노 드라마를 찍긴 했어도 이제 내가 정말 미쳐버린 건가?
어디서 '진짜' 목소리가 들린다. 설마.. 진짜 담배가?
- 키득키득. 아저씨 재밌네요.
그렇게 담배를 뚫어지게 쳐다보실 필요는 없어요.
전 세상 어디에든 있고, 어디에도 없거든요.
으음. 지금 내가 너무 지나친 추위에 오래 노출되었나 보다.
환청인가.
- 키득키득.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전 아저씨가 꽤 마음에 들었거든요!
같이 놀아보죠.
[뭐?]
- 키득키득.
순간 귀엽게 생긴 아이의 섬찟한 미소가 시야를 채운다.
그리고 곧 검은 기류 같은 것들이 날 감쌌고, 난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3.
- 현민아 일어나!
[으음.]
뭘까 이 더러운 두통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다.
그러면서도 그립고 그리운 엄마의 잔소리가... 뭐?
[엄마?]
- 읭? 얘가 또 뭘 잘못 처먹었나. 빨리 세수하고 밥 먹어!
오늘 입학식 가는 날이잖어!
이럴 수가. 내가 추워서 정신 나간 게 아니었어? 꿈인가?
- 어어? 뭐해 빨리 일어나라니까!
[으어어어.]
괴.. 굉장한 등짝 스메싱! 씨익. 역시 내 엄마야. 가차 없지.
어쨌든 정말 믿을 수 없지만, 엄마의 이 묵직한 빅장이 야기한 짜릿한 통증은 내가 꿈을 꾸는 것도 아니요,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젊어진(?) 엄마의 말을 들어보면 대충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그 때로 돌아온 것 같다.
[크크크.]
만화같고 동화같은 일이군.
그 섬찟한 웃음에 검은 기류. 달콤한 제안.
아마 내가 이렇게 타임 슬립을 한 것은 어쩌면 프렌치까페(아니, 악마의 유혹)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크크크크크.]
입학식의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아니 꼬셔볼 수 있다니!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어리버리 20세 차현민이 아니다. 단 맛 쓴 맛 다보고 말빨 조질줄 아는 33세의 차현민 인 것이다.
- 얘가 왜 일어나서 실실 쪼개고 있어? 언능 안 일어나?!
퍽!
[아 쫌! 엄마!]
엄마에게는 영원한 차현민 어린이.
어쨌든 지금 출격합니다.
1 끝.
요즘 토익하느라 고생이네요.
스트레스해소겸 글 찍 싸질러봅니다. 흑흑.
공부하느라 바빠서 언제 또 쓸지 모르겠지만,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써서 올리겠습니다.
어차피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달린 댓글을 보면 공부 스트레스가 좀 날아갈 것 같거든요(이러고 무플이면 비참햇... 이거시 하드보일드)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