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야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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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날이 다가왔고 우리는 중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만났다.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한 10명에서 12명이 모였던 것 같다. 물론 나와 그 친구를 포함해서.
“오랜만이다”
“니는 내가 문자하라카이 연락없다가 이런거 하니까 하나”
“그럼 니가 먼저 하면 되지”
“내가 왜?”
“카면 나는 왜?”
우린 별것도 아닌 일로 투닥거렸지만 그게 또 싫지만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분식집에서 마무리를 하고 노래방으로 갔었다.
반장이었던 친구는 사람이 많으니 방을 두 개로 나누고 왔다 갔다 하면서 놀자고 제안했다. 물론(?) 그 친구와는 다른 방에 들어갔다.
한 30분쯤 지났나? 그 친구와 가장 친했던 친구(그 당시 여자 부반장이었다.)가 슬며시 내 옆에 와 밖에서 잠깐 할 얘기가 있다며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화장실을 갔다 온다며 밖으로 나갔고 몇 분 뒤 부반장도 따라 나왔다.
“야 니 여친 있는거 맞나?”
“어”
“어?”
“어”
“와?”
“아... 그게....”
“와 뭔일인데?”
“걔가 니 좋아한다고. 오늘.... 카니깐 오늘 걔가 니한테 고백할려고 했다고”
“?”
“진짜 몰랐나? 니 좋아하는지?”
“어 몰랐지. 내가 그걸 우에 아노. 캄 가는?”
“노래방에 얼마 안 있다가 바로 집에 갔다.”
“어?”
“암튼 아... 니는 진짜... 니가 연락해보든지 알아서 해라.”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멍하니 서있었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사도 없이 그냥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그녀를 만났던 건 고등학교를 진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음, 그러니깐 첫사랑이었다.
집근처 학원에 그 사람이 처음 상담 받으러 온 날 학원을 들어가는 길에 언뜻 상담실에 봤던 그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흰 피부를 가졌었다. 지금도 내 이상형이 피부가 흰 사람인 건 그 사람 때문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눈이 정말 컸었다.
사람 눈이 이렇게 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컸다. 굳이 연예인으로 비교하자면 임성언을 좀 닮았었던 것 같다.
더욱 궁금해진 나는 창문 틈으로 몰래 훔쳐보는 순간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쪽팔림은 나의 몫이겠구나 생각했지만 놀라거나 경멸의 표정을 지을 것 같은 반응과는 다르게 옅게 미소를 띄웠다.
이 후, 나는 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주위를 맴돌았고 나름 전략을 세운답시고 그 사람의 친구들도 하나 둘 포섭하기 시작했었다.
다행히 내 친구의 동생이 그 사람과 친했기 때문에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하던 4월 봄날,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빠야, 어딘데?”
“네? 집에 가는 길이지”
“맞나? 오빠야 카면 집에 가지 말고 빨리 가한테 고백해라. 지금 학원 앞에 있다”
“갑자기 뭔 소리고?”
“아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 줄테니까 일단 고백해라. 알았제?”
“그게 뭔 말이고 일단 알았다 끊어 바라”
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고 타박했지만, 이미 손발은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가는 길이 왜 그렇게 가깝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학원 앞으로 왔을 때 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이 서있었다.
“늦었는데 집에 안가고 여서 뭐하노?”
“그러는 오빠는요?”
“네? 그게......”
“?????”
뭔가 자기는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쳐다 보는게 왜 그렇게 얄미웠는지 모르겠다.
속으론 이미 ‘그래 웃지마라 가시나야!’를 외치고 있지만 내 대답은 정말 엉뚱하게 튀어나와버렸다.
“카니깐...음... 니 친구가 지금 고백해라 카든데?”
“네?”
“가가 니한테 지금 고백하면 된다 카드라”
“그게 뭔 소리에요. 크크크크크”
“아, 그니깐 그게 아니고, 니 좋다고”
정말 지금 생각해도 이불킥 할 만큼 이상한 고백이었지만 그 사람은 별다른 말없이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그 미소를 다시 보여주며
내 손을 잡았다. 심장이 터져 죽는다는 게 어떤 말인지 그 때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 사람과 ‘첫’이성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
“야 니 여자친구 생겼나?”
“어, 근데 니가 그걸 우에 알았노?”
“싸이월드 일촌평에 누가 하트 붙어져 있길래 설마해가 물어본거지”
반창회에 나온 한 친구가 입에 떡볶이도 다 씹지 않은 채 불쑥 던진 그 말은 일순간의 공기의 흐름을 나에게 집중시켰다.
‘예쁘냐, 어디 학교냐, 어디 사느냐, 니가 여자친구를 사귀다니 신기하다'느니 여러 반응을 쏟아내는 와중에,
유달리 다른 온도차를 가진 두 사람이 보였다. 내 짝꿍과 부반장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대충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왜 그 친구가 그런 표정이었는지, 왜 부반장이 날 노려봤는지.
머릿속은 복잡했다. 진짜 내가 눈치가 없던 거였는지, 말을 안하는데 어떻게 아냐고 하며 자기합리화도 해봤다.
한편으론 차라리 끝까지 몰랐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고, 그 사실을 말해준 부반장을 원망하기도 해봤다.
그런 잡념들이 떠돌던 와중에 버스는 점점 그 친구가 내리던 정류장에 다달었었다.
[야, 할 얘기 있으니깐 정류장으로 나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