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곤한 하루의 시작.
오늘도 다른날과 다르지 않게 어김없이 태양이 떴다.
별로 달라질 것 없는 일상,
'지금이 몇시지.'
재빨리 탁상시계에 손을 뻗어본다.
8시 28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난 것이 얼마만이었지.
알람이라는 경보문구에 의지해 아침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 정신을 조금이나마 맑게 했다.
`정신차리자`
어제 꾸물꾸물 올라오는 뭔지 모를 기분 나쁜 감정에 독서실을 예정보다 일찍 박차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오늘 할일이 많다.
빨랫대 위에 널어놓은 빨래 걷듯이 옷들을 몸에서 떼어내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차가운 물줄기,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후 다시 나를 적시는 미지근한 물줄기.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오늘의 스케쥴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별 다를 거 있나, 몇시까지 독서실을 들어가고 몇시부터 몇시는 A과목 몇 파트에서 몇 파트까지,
점심먹고 오후에는 인터넷강의 몇 강부터 몇 강, 한 강의에 두어시간 강의 들으면 저녁이겠네.
저녁먹곤 강의들은거 정리 해야지. 후. 다 할수 있을까. 어제 왜 일찍 나왔지.
복잡한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샴푸로 머리를 풀고 깨끗하게 몸을 정돈 한 후 거울 속 나를 바라본다.
'많이 늙었네.'
집에 손 벌리기 싫어서 서울 노량진 고시원을 떠나 집에서 독학하고 있는 동안 어두워진 내 신세를 드러내듯
초라한 몰골이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탓일까,
감출것 하나 없이 그대로 드러내어지는 나의 치부들을 더는 볼수가 없어 거울에서 이내 시선을 돌린다.
바닥에 널부러진 '떼어낸' 옷들을 의무감으로나마 다시 장착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아침식사는 거른지 오래, 애초에 하루 세끼를 꼭 먹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업적인 면이 아닌가 자위해보지만
허한 속을 감출길이 없다.
독서실 앞 편의점을 들러 천원짜리 김밥을 산다.
여느때와는 다르게 빽빽한 주차장과 조용한 도로가 오늘이 주말임을 알려준다.
'나에게 주말은 언제 올까.'
괜한 생각이라고 고개 저으며 익숙한 독서실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해본다.
오전 공부는 나름 집중력있게 끝마쳤다.
하지만 역시 어제 밀린 진도 때문에 목표했던 공부량을 다하지 못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지만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내 처지를 생각해본다.
독서실 앞 김밥천국, 조금 늦은 점심을 먹으며 오전에 세운 계획들을 조정해본다.
미지근한 물줄기가 그리워지게 어느새 몸도 마음도 얼어붙는 것을 느낀다.
오후 공부, 강의를 포기한 덕에 예정한 공부 진도까지 따라왔다.
지금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애들은 어디까지 했을까.
학원을 떠난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뒤쳐진것은 아닌가 싶어 매일매일 시간에 쫓겨사는 것이 너무 괴로운 요즘이다.
`정신 차리자`
쉼호흡한번 하고 시계를 들여다 본다.
오후 다섯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엔 밥시간이 애매하다.
자리를 떠나 담배 한 대 태워본다.
누가 그랬던가, 담배 태우는 것이 곧 시간을 태우는 것이라고.
하지만 유일하게 남은 나의 유흥이기에 쉽게 끊질 못하고 있다.
담배를 태우며 여유를 부리니 조금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여유가 생긴다.
건너편에 앉은 남녀한쌍, 독서실에 같이 온 걸 보니 아마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커플 같아 내심 부러움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내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그들의 이야기.
`오늘 토요일이지? 로또데이네!`
로또..
벼락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그 로또.
하늘에 운을 맡기기엔 이미 내 처지가 하늘이 날 버린것 같아 체념한다.
주머니속 오천원, 육천원짜리 돈까스를 먹고 싶지만 아침에 사먹은 천원짜리 김밥이 사치였다.
딱 오천원인 제육덮밥을 사먹으면 되겠다 생각하며 김밥천국으로 발을 옮긴다.
그 와중에 로또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일등되면 얼마더라. 십억쯤 되려나.
'후.. 십억..'
어차피 이렇게 공부 하는 것도 다 돈벌려고 하는 짓인걸 생각하면 로또에 대한 생각으로 정신이 아찔해진다.
십억, 십억, 십억..
길 건너편에 김밥천국집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전엔 보이지 않던 현수막이 하나 더 눈에 들어온다.
로또 가맹점.
주머니속 오천원과 제육덮밥, 그리고 십억.
김밥천국의 문을 열며 오늘만큼은 다른 주문을 낸다.
`자동다섯개요.`
뱃속의 허함은 잊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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