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컨디션 - (1) 토위에 토를 끼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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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컨디션 - (2) 고슴도치같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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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미워해."
"..거짓말."
"그래 밉다."
"나빴어.."
"야 지금 나는 전지현이 이랬어도 미워할 거거든?"
"...내가 전지현보다 더 영계잖아요."
"얼굴 몸매 다 빼면 그렇지."
"....XX."
"너 지금 욕했지?"
별 의미없는 대화가 짤막하게 이어지는 동안 긴장이 풀렸는지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좀 자도 되겠지? 아..지친다. 머리가 욱신거리는게 슬슬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이 애의 이름은 민희였다. 민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나 졸립다. 너도 좀 자. 아무 짓도 안할테니까."
나는 그리고는 방 구석으로 이불을 끌어매고 걸어갔다. 맨바닥이 등에 배기는 듯 했지만 지금은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지 싶었다.
"자지마요."
"왜.. 졸려."
"난 안졸려요."
"그거야 완전 꼴아서 내가 들쳐매고 왔으니 그렇겠지."
"...아 씨..진짜."
"너 점점 말이 막나온다?"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후배랑 한 방에 있는데 잠이 와요?"
"그렇게 예쁘고 섹시하신분 볼거 다 봤더니 잠이 옵니다~. 야 그만해 나 진짜 자야겠어."
"....."
갑자기 민희의 말이 끊기자, 약간은 말이 심했나 싶었다. 에라이. 만사가 귀찮았다. 눈을 딱 감고 셋만 세면 잠이 들 것 같았다. 하나. 두울.. 세....
딱!
"아!!!"
뒤통수에 강렬하게 꽂힌 것은 여관방의 리모컨이었다. 아. 화가났다. 대체 얘는 왜이러는거지? 토론할때 드세게 나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그러는건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지금 이 상황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울컥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해 팬티바람으로 이불을 확 젖히고 성큼성큼 민희에게 다가갔다. 약간은 노려보는 듯, 약간은 애처로운 듯한 눈과 마주쳤다. 아랑곳없이, 나는 민희의 어깨죽지를 콱 잡았다. 아니, 잡으려했다.
"꺄악!"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민희는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온 몸을 웅크린채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때리거나 할 심산은 없었다. 그냥 어깨나 팔 정도를 잡고 내가 진짜 힘들다는걸 이야기 하려고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면 이해할 만한 애였으니까. 그런데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 가까이 다가가 팔을 올린 정도로 이렇게 무서워하다니. 겁이났다.
"야, 왜..왜그래?"
슬그머니 손을 내려 팔을 살짝 건들자, 민희는 더 붙을 곳도 없는 서랍장에 깊숙히 몸을 밀며 고개를 숙이고 바들바들 떨었다.
"야, 놀..놀리지마. 왜그러는데?"
대답없이 떨기만 하는 민희를 두고,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미안해. 난 그냥.. 너무 피곤했어. 니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널 때리기라도 했겠니? ....진짜 잘게. 너도 좀 쉬어.
돌아서서 자리에 누웠지만 기분이 어수선했다. 하긴, 나는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나머지 이 공간과 상황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건들지 말아야 할 선을 비겁하게 이용한 느낌이었다. 눈을 감아도 이런 저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머리속을 헤집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민희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할 거 없어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민희는 이 쪽은 보지도 않고 고개를 파묻은 채 독백하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안해요. 나때문에.."
"알아요. 나도 내 성격 개차반인거. 나도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어요..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남한테 아쉬운 말 한 마디 못해서 끙끙 앓고.. 언제나 손해보고 살아도 다 괜찮다고 하고.. 나 진짜 착했어요. 못 믿겠죠?"
말이 멈추고, 민희의 고개가 슬쩍 올라간다. 나는 왠지 깨어있다는 걸 들키면 안될 것 같아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자요?"
".........."
숨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약간 긴장되기도 했다. 민희는 잠깐의 침묵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그 때 처음 남자친구가 생겼죠. 왜, 그 학교에서 잘 논다는 일진애들.. 그 중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애. 그런 애의 여자친구가 되었어요. 그 때는 그게 뭐라도 된 줄 알았죠. 맨날 착하게만 살았었는데 갑자기 애들이 대하는게 달라지고.."
"........."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고요. 나는 그 애를 진짜로 좋아했었나.. 기억이 잘 안나요. 기억나는건... 반쯤 강제로 했던 첫 섹스?"
"..............."
"내가 별 얘길 다한다 진짜. 사실 그건 별 일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 뒤가 문제였지. 하루는 걔랑 친한 선배를 데려왔어요. 왜 있잖아요. 고등학교도 안다니는 무서운..."
"그 뒤로는 뭐.. 뻔하죠. 일진 여자친구라는게.. 하하."
훨씬 더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자고 있지 않았던게 들킬까 일부러 이까지 갈았다. 빨리 잠들어야겠다는 생각과, 민희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함께 소용돌이쳤다. 민희는 냉장고를 또 여는 듯 했다. 딸깍, 캔 맥주 뚜껑을 따는 소리였다. 꿀꺽이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저 고등학교 중퇴에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검정고시 보고.. 수능보고.. 애들 고등학교 다닐때는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학원도 제대로 못다녀보고. 무섭더라고요. 그 선배랑도 자고, 또 다른 선배랑도 자야하고. 싫다고 하면 맞고. 그리고 또 좋아한다고 비는 걔 앞에서, 니 덕분에 나도 잘나간다고 신나하는 걔 옆에서. 몇 달 그랬더니 소문이 다 나더라구요. 그리고 걔 옆에는 또 그럴싸한 여자애들이 생기고. 다 그런식이죠 뭐. 나중에는 엄마아빠한테까지 말이 들어갔는데..."
"..............."
"아........말하기 힘들다. 나 이거 진짜 살면서 처음 입밖에 내보는거에요. 쉼터 선생님한테도 말한 적 없었는데. 우리 엄마아빠랑은 벌써 안 본지 몇 년 넘었어요."
가슴이 꽉 막혔다. 얼굴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듯 했다. 이게 화인지, 슬픔인지 잘 알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는 날 도와주려고 했어요. 알아요. 근데 우리는 다 서툴렀어요. 엄마 아빠는 화가 많이 났을거에요. 나는..그냥. 모든게 싫었어요. 살기도 싫었고.. 바보같이 착하게 살았던게 너무..너무 화가나는거에요. 맨날 솔직해라, 친절해라. 나 그렇게 살았는데."
목이 메인다. 민희의 목소리에 물기가 맺힌다.
"이런 성격이 된게 꼭 그 탓이라고 하면.. 아. 무슨 전형적인 비참한 여학생.. 소설같은데 나오는.. 그렇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긴 싫어요."
한 숨이 깊게 여관 방 바닥으로 퍼진다.
"그냥.. 돈도 벌어야 했구요. 공부도 해야했고. 쉼터에서 계속 살기도 싫었고.. 부모님이랑도 멀어지고 싶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뭐. 친구도 없고, 세상엔 온통 적이고. 더 이상 당하고는 못살겠어서. 그렇게 됐어요."
"진짜.. 선배한테 말하는게 처음이니까..."
훌쩍임이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진다.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내 성격 끝까지 포기 안하고 있어준 사람은 선배가 처음이었는데.."
".......선배가 만든 모임을 망치고 싶었던건 아니에요. 잘 해볼려고 했어요. 근데 자꾸, 자꾸....."
서글픈 웃음소리가 짧게 흐트러진다.
"후훗..나 못생긴 사람 안좋아하는데. 내가 진짜 오늘 정신 놨나봐요. 자는 사람 앞에두고 별 소릴 다해보네. 아, 나 왜 이러지?"
그냥
아..모르겠다.
둑이 터져버린 듯이 남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싫었어요. 애들이 전부 선배를 좋게 생각하고, 선배는 애들한테 좋은 사람이고. 나는 그 분위기가 싫었어요. 나한테는 없단 말이에요. 나한테는 그런 친구도, 후배도, 선배도.. 그거 알아요? 애들이 내 욕 엄청해요. 나는 특별히 나쁜짓을 한것도 아니고 남자애들한테 꼬리친 적도 없는데. 서울로 대학에 오면, 그러면 나도 평범하게 즐겁게.. 어디에나 있는 여대생처럼 그렇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내가 문제였죠. 난 가시돋힌 사람이었으니까. 알아요. 근데 내가 어떻게 고쳐보려고 하기 전에 이미 다들 여러번 찔렸나봐요. 미움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더라구요.
그래서 이 모임이 더 욕심이 났나봐요. 애들 다 너무 착하잖아요. 나 그런애인거 알면서 구김없이 받아주고. 진짜 몇 달 동안 내치지 않고 노력해주고. 근데 내가.. 내가 못 그랬어요. 그래서 더 화가나고. 선배한테 미안하고. 아. 나 진짜 더럽게 못났다.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술 먹자고 한거에요.
이제 나랑은 술 안마시겠죠?
그래도 나정도면 겉보기는 괜찮잖아요. 그냥 그걸로 넘어가 주면 안되나?
많이 귀찮아도.. 그냥.. 선배 착하잖아요. 엄청 착하고, 차분하고. 남들 배려 잘하고, 또..그냥.
아 씨. 이게 뭐야. 쪽팔리게..
몰라요. 미워하지마. 싫어..
캔맥주가 비었는지, 중간중간 들리던 목 축이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고 깊은 흐느낌만이 들리는 듯 마는 듯 스러진다. 나는 어느 새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훌쩍, 하고 코도 먹었다. 크흥 하는 소리가 울린다. 흐느낌이 멈춘다.
"...........깨있었어요?"
..............................아,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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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로 이어집니다. 시간상 완결을 우왕 이벤트 내에 쓸 수가 없네요.. 언제나 계획과는 다른 분량.. 제가 이렇죠 뭐.
이게 우왕 이벤트 시간 내에는 마지막일 것 같고.. 다음 글은 우왕을 빼고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