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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5/08/16 00:48:35 |
Name |
yangjyess |
Subject |
[일반] 짐승과의 이별 |
초등학교때 기르던 개가 집을 나갔던 적이 한번 있고
20대 초반에 골프연습장에서 일할때 그곳에서 기르던 개의 죽음을 지켜본 일이 있다.
그리고 지금 자주 놀러가는 친구네 애완견 한마리가 개의 수명을 3~4년 넘겨가며 나의 방문을 맞아주고 있는데
최근 급격히 기운을 잃어가는 모습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골프연습장에서 기르던 개는 이름이 '버디'였다.
골프를 조금이라도 알면 무슨 의미인지 알것이다. 그 홀에 규정된 타수에서 한 타수를 줄이면 버디, 두 타수 줄이면 이글, 세 타수 줄이면 알바트로스,
한번에 넣으면 홀인원인데 취미로 골프를 즐기는 동호인 수준에서 현실적으로 그 홀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성적이 버디이다.
골프연습장의 회원이 약 300명가량 되었고 그중 일주일에 3~5번 이상 꾸준히 연습하는 회원은 100명 정도였다.
그런데 연습장 후문(후문이라고 해도 큰 의미는 없는게 문이 앞뒤로 나있던게 아니라 양옆으로 나있어서 사실상 두개의 문중 하나라 보면 된다)에
묶여있는 우리 버디는 회원이나 직원이 들어오면 안짖고 배달사원이라든지 비관계자가 들어오면 사납게 짖어댔다.
자주 들어오는 사람이면 얼굴 익혀서 안짖을 수도 있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들어올때 컹컹대며 맞았던 손님이 회원결제를 하고 다음날 찾아왔을때 짖지 않는다면 믿어지겠는가?
내가 이곳에서 1년 정도 일하고 군대를 갔다가 제대한후 다시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 이놈은 나를 보고 짖지 않았다.
연습장 옆에 있던 슈퍼마켓 아주머니도 나를 잊었었는데 (회원들 심부름으로 담배를 사려고 했는데 신분증을 보여달라더라. '아주머니 저 모르시겠어요? 예전에 연습장 일하면서 담배 많이 사갔었는데' 하니까 그때서야 알아보시더라)
너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니?
일하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지만 내가 실수하거나 부득이한 형편으로 인해 회원들께 불편을 끼쳐 싫은소리를 들을 때도 있고 기분이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렇게 꿀꿀해져서 문 쪽에 가 앉아 있으면 버디 이놈이 다가와서 내 팔을 핥았다.
내 기분 탓인지 마치 녀석이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가 고생한다고, 기운 내라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힘들어질 때면 친구나 동료들의 위로보다 버디의 축축한 혓바닥이 더 그리울 정도이니 당시에 내가 느꼈던 교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시리라.
그런 버디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동물적인 번식욕이었겠지만 이미 버디를 친구나 다름없이 여기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버디에게 찾아온 사랑이었다.
상대는 형편없이 못생긴 동내 똥개였다.
도무지 버디와 격이 안맞는 놈이었지만 그녀석만 보이면 버디는 끙끙대고 괴로워하며 짖었다.
연습장 회원들도 '버디 애인 찾아왔네' 하면서 웃었고 사장님도 풀어주라고 하셔서 버디는 바깥에 나가 교미를 했다.
그 사랑, 반대했어야 했던 걸까...
새끼를 밴 버디는 그해 겨울 다섯 마리의 강아지를 낳고 죽었다.
같이 일하던 형과 연습장 공터에 버디를 묻었다.
나는 울거나 하진 않았는데 연습장 오래 다니시던 여자 회원분들하고 사모님은 소식을 듣고 눈물을 보였다.
강아지들을 어떻게 잘 키워보려고 사모님과 많은 연습장 회원들이 방법을 강구해 노력했으나 다섯 새끼들 모두 두 달 안으로 어미를 따라갔다.
10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임종을 앞두고 있는 친구네 애완견 이름은 '꼬맹이'다.
갓 낳은 새끼일 때 데려왔는데 그때 너무 몸집이 작아서 그렇게 이름붙였다 한다.. 새끼니까 당연히 작았겠지.. 킄
꼬맹이는 버디보다 지능은 좀 떨어지는듯 하다. 내가 놀러갈 때마다 요란하게 짖다가 한 10분쯤 되면 나인줄 알고 꼬리를 흔든다.
최근 3개월 정도는 내가 현관문을 열어도 짖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기 때문이 아니다. 짖을 기력이 없는 것이다.
"꼬맹이! 이제 아는척도 안하는거야?! 킄킄킄" 하며 농담을 건네 보아도 쳐다도 안본다.
게임하고 있으면 항상 앵겨붙어서 안아서 쓰다듬어 주면 좋아하던 놈이 이제는 몸이 아파서 그런건지 손만 대면 깽 하고 비명을 지르며 기겁을 한다.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고 서먹해진지가 3개월 정도 됐다.
그런데 바로 어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옆에 와서는 고개를 들이대는게 아닌가?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머리에 손을 얹어 봤더니 가만히 있길래 한 5분 정도 쓰다듬어 주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꼬맹이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걸 예감하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예감을 했든 안했든 이미 제 수명을 몇년씩이나 넘긴 놈이다.
이빨도 두개만 남겨놓고 다 빠졌고 뒤쪽 다리는 털이 다 빠지고 부스럼이 일어나 있다.
마루바닦이 매끈하면 미끄러지는 때가 많아 따로 깔개를 깔아놓기도 했다.
친구는 꼬맹이가 그저 고통스럽지 않게 편안하게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이 누구나 죽듯이 개도 때가 되면 죽을 뿐이다. 특별히 슬픈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라고 이야기했다.
버디나 꼬맹이가 돼지나 소, 말이 아닌 개였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특별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나는 개고기도 맛있게 잘 먹는다.
눈앞에 개고기가 있으면 그건 그냥 고기다. 그 고기에서 버디나 꼬맹이의 모습이 떠올려지지는 않는다.
버디와 꼬맹이와의 유대를 그들의 동족을 먹는 문제에까지 확장시켜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내가 개의 언어를 알아서 '꼬맹아 오늘 개고기 먹었는데 맛있더라' 라고 전달이 가능하다면 꼬맹이는 화를 낼까?
아니면 어차피 고기를 먹으면서 꼬맹이의 기분을 궁금해하는 것이 위선일까?
아니면 어떤 개는 귀여워하고 어떤 개는 아무 생각없이 먹는게 무심하고 감정이 매마른 것일까?
내가 나름 내린 결론은 그렇다.
개는 종으로써 개마다 같은 대우를 할 수는 없는 거라고.
버디와 꼬맹이와 식당에서 먹은 개 A는 전부 아예 다른 생물이라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의 특성상 개에게 물려 오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이 지역은 광견병 위험지역이라 보건소에서 따로 조사도 하고 거기에 맞는 주사비 같은 것들도 지원해 준다.
사례조사를 하다보면 정말 위험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개 주인이나 관리자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던 경우까지도 드물지 않을 정도다.
이런 개들은 거의 늑대나 마찬가지이지 꼬맹이나 버디 같은 애들하고 함께 개라는 종으로 뭉뚱그려서 보호해야 하느냐 경계해야 하느냐 규정지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논리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았다.
이문열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개에 대해 호의적인 소설을 읽은 기억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케이스들을 종합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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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전 다른 커뮤니티에서 개고기를 먹는 문제로 키배가 벌어졌을때 저의 경험을 적어올렸던 글입니다.
질문게시판에서 더위 먹은 고양이 사연을 읽고, 뒤이어 자게에 올라온 그 후기를 읽고 생각나서 다시 찾아올려 봅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꼬맹이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다리의 부스럼은 이제 몸톰 절반이 넘게 번졌고 이빨이 없어 음식은 잘게 부스려뜨린 것만 겨우 먹습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고양이를 기르며 <동물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라고 하더군요.
객관성을 좋아하는 우리 시대의 사고방식으로는 영혼같은건 신경줄기에서 만들어낸 화학신호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신호가 무엇이길래 머지 않은 시간 내에 흙으로 돌아갈 존재가 같은 운명을 조금 일찍 받아들인 그 작은 생물에 대해 감상에 젖게 하고 지나간 일을 추억하게 만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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