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어느정도인지 모르겠다. 월 소득 얼마 이상 이렇게 백종원 무 자르듯이 딱딱 끊어서 말하는건
좀 비인간적인것 같고 개인적으로 그냥 본인이 가난하다면 그래 너 가난해 라고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연도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넘어가는 그 언저리 였을 것이다. 대략 16?17년 전 IMF 그 어드매 였을것이다.
우리집은 가난 했다. 동사무소에서 쌀 받고 돈받고 하는 정도는 아니였지만(물론 그 보다 몇년전에는 받은적도 있다) 나는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심여사가 식당을 하고 있으니 남들은 그래도 좀 먹고 살만하다 생각했을지 모르나 빚으로 시작한 장사, 일수쟁이들만 노났지...뭐..
여튼 그 무렵 나라가 어렵다고 맨날 테레비에선 금 가져오라 그러고.. 농구는 기아, 야구는 해태 좋아했었는데 두개 회사가 싸그리 망했다.
그러고보면 사회나와서 내가 가는 직장마다 맨날 위기라 그러고 심지어 망하기도 하는데 내가 문제가 아닌가 싶다.
심여사 식당은 한강성심병원 근처였다. 지도를 찍어보면 알겠지만 다리하나 건너면 여의도다. 가끔 답답해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가는 길엔
좌우로 높은 오피스 빌딩이 늘어서 있었다. 무슨 증권, 뭐 무슨대투, 국민일보, SBS, 전경련 회관 기타 등등...
맨날 뉴스에 나오는 무슨무슨 그룹, 주채권 은행인 뭐뭐 은행이 다 이거겠지? 쳐 망한다더니 건물은 졸라 높네 개똥이들... 이라고 속으로
영양가 없는 욕지거리만 했었다.
그날도 아마 일수쟁이가 와서 피곤하게 하고 간 날 이었을거다. 그때 생각하면 일수쟁이 만큼 쉬운일이 없는것 같다.
여튼, 답답해서 한강으로 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높은 사람들은 돈 많을 테니까 좀 꿔달라고 해볼까? 좀 이자싸게?
아니지.. 핏덩이 같은 녀석이 나중에 갚겠다고 빌려달라 그러면 이 사람들 한테는 푼돈인 그거 "허허 어린녀석이 당돌하구나" 하면서
그냥 주지 않을까?
드라마랑, 소설이랑, 영화가 애를 그렇게 베려 논거다. 난 그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집에서 편지를 썼다. 구구절절... 국민학교3학년때 글짓기로 담임을 울려보기도 하고 후에 군대에서 대적관 확립교육으로
사단장 표창까지 받았던 나이기에 신파는 자신있었다. 돈만아는 회장놈들 감성 자극하는건 식은죽 먹기 같았다.
십 몇년 나의 인생 스토리에 양념좀 치고 고생하는 심여사 비련의 여주인공 만들어서 초안은 완성했다. 대충 뭐 1억 빌려주시면
제가 나중에 졸업해서 이 회사에 취직해서 꼭 갚겠습니다 이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억 받는거 보다 거기 들어가는게 더 이득이었는데...
그러나 편지는 초안에서 진전이 없었다. 받는 사람을 누구로 하느냐라는 어려운 문제가 남았던 것이다. 그냥 받는 사람 이름만 바꿔서
여러군데 돌리면 되지 않았냐라고 하면 댓츠 노노 ~!! 이미 회장들은 전경련이란 곳을 통해서 심여사 계하듯이 모인다는 정보를 알고 있던
나는 혹시나 내가 쓴 편지가 먹힌다 해도 여기저기 뿌려논게 걸리면 말짱 도루묵이 될 거라는 걱정을 했었다. 선택과 집중...
그 시절의 나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 였다.
여의도로 나갔다. 역시 눈에 제일 먼저 띄는건 쌍둥이 빌딩. 좋아. LG. 신문사는 돈이 없겠지? 국민일보 패스.
63빌딩 회장은 뭐하는 사람이지? 일단 63빌딩... 오 SK 나 들어봤어. SK도 메모...순복음 교..
집에와서 폭풍 검색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SK... 다른데는 늙다리 할배들인데 여기는 좀 젊은 아저씨 였다.
풍채도 좀 있고 성격도 시원시원 해보였다. 주식으로 몇천억 날려도 허허 할 사람같았다. 그렇게 나는 최태원 회장님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영등포 고향식당에서 시작해....도 해보지 못하고 결국 책가방 한 켠에 있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던것 같다.
난 그게 될 줄 알았다. 대면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 시뮬레이션도 짜 놨었다. 드라마가 애를 그렇게 베려논거다.
SK 정문 입구 앞에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질풍노도의 아이는 몇 번을 들어가려다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나보다 고작 23살많은 형이었는데...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성공했으면 현금 1억, SK 취업보장 인데.. 그 꿀을.. ㅠㅠ
태원이형 안녕하세요. 형이라고 부를게요. 저는 휴대폰은 KT를 사용하고, 야구는 기아를 응원하며, 농구는 내가 돈 건팀을 응원합니다.
축구는 잘 보지 않는데 저는 남패 라는 말은 몰라요. 차가 없어서 주유소 갈일이 없네요. 주식은 그냥저냥 소액으로 하고 있어요.
주식하면 패가망신 한다길래 선물 옵션 이런건 손도 안댑니다.
이번에 특사에 나오시죠? 그 때 전하지 못한 편지 다시 정성껏 쓰고 있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나오시는 날까지 몸조리 잘하시고 15일날 뵈요. 풀무원 두부(부침용) 사갈게요.^_~
가난 탈출하고 싶으신 분들 15일날 두부한모씩 사서 의정부교도소 앞에서 뵈요. 편지도 써오세요. 글재주 없으면 대필해서라도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