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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8/04 17:15:20
Name 만트리안
Subject [일반] Better late than never.


아직 서른도 안 살았지만 그래도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개중에 몇몇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는 친한 사이가 되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일부 중에서도 또 몇 안되는 일부의 인연은 아직도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간간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 울고 웃고 살고 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현재 간간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몇명이 안된다는것은 곧 그만큼 정말로 많은 사람과 이별을 겪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와는 사소한 일로 인해 다툼이 심해져 어영부영 얼굴 볼 일이 없어 인연이 끊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와는 단순히 사는 곳이 멀어져 연락이 뜸하게 되자 서로 억지로 연락하는게 어색해져 인연이 끊어지기도 하구요.

그렇게 많은 사람과 이별하면서도, 특별히 더 이별하기 싫고, 특별히 더 아쉬운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이야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더없이 잘 알고 있고, 누군가에게 뿌리침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와 그 용기의 기반이 되는 일종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까지 아쉽게 완전히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는 많이 없지만, 이 용기가 생기기전에, 이렇게까지 인연의 소중함을 잘 알게 되기 전에는 정말로 많은 아쉬운 사람들과 헤어지고 안타까워하고 맘 아파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개중에 정말로 특이한 케이스가 있는게, 그 당시 이별할 당시에는 그 이별이 제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는데, 나이가 한둘 먹어가면서 그 무게를 절실히 깨닫게 된 케이스가 있었어요. 많이 안 친했던것도 아니고, 그래도 학년마다 가장 기억나는 3명을 꼽으면 그 학년에서는 명백히 들어갈만큼 친했다고 생각하고,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인데도요. 그 친구와 서먹서먹해지면서 결국 인연이 끊어진 이유는 단순히 학년 진급하면서 반이 달라져서 자연스럽게 서먹해진 케이스였는데, 그때는 그게 '이제는 쟤랑 안 친하네' 하는 정도의 아쉬움이었어요. 그리고 다른 애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 아쉬움도 희석 되어갔고, 나중에는 '쟤는 잘 지낼까?' 하는 정도 호기심만 남았지만 그 마저도 다른 생각들에 매몰되어 표면으로 거의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죠.

그리고 나서 상위 학교에 진학하고 그 친구에 대해서는 거의 잊은거나 다름없어졌습니다. 어느 학교를 갔다더라 하는 얘기까진 들었고 그래도 한때 친했던 사람이니까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 고3이 될때까지 또 아예 잊고 살았어요. 고3이 되고 수능을 보고 나서는 공부를 잘했던 친구니까 어느 대학에 갔을까? 잠깐 궁금하긴 했지만 이내 곧 내가 갈 대학이나 신경쓰자는 생각에 생각을 접었죠.

대학생 새내기가 되고 나서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이 한번 더 바깥 구경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동기가 그 친구하고 같은 고등학교 출신 우리 동네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분명히 공부를 잘했는데, 동기가 하는 말로는 '우리 학년에서 수능 괜찮게 본 사람이 별로 없다. 나는 잘 풀린편' 이라는거에요. 그래서 다시 물어봤어요. 내 친구 누구누구도 너랑 같은 고등학교 나왔는데 혹시 모르냐고, 알면 무슨 대학 갔는지 아냐고, 그럴거 같지 않지만 혹시 대학 잘 못갔으면 혹시 이유가 뭐냐고... 근데 모른답니다. 둘이 안 친했나봐요. 하긴 나도 내가 나온 고등학교 친구 누구누구 있는지 잘 모르니까. 그냥 아 그렇구나 그러고 넘어갔어요.


그 이후에 저는 본격적으로 인생에서 고비라고 할만한 일들을 좀 몰아서 많이 겪었고, 굉장히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힘든 시기를 겪었으며 극복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로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홀로 생각하는데 사용했고, 내 나름 인생에서 중요한것이 뭔지도 깨닫고, 사람과 사물을 보는 눈도 많이 달라지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힘이 굉장히 많이 길러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 과거를 돌이켜보니 보이지 않던게 참 많이 보이더라구요, 했어야 하는 일, 해서는 안되는 일, 붙잡아야 했던 기회, 전환점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던것들중에는 놓치지 말았어야 했던 인연도 있었습니다. (물론 반대급부로 당연히 가까이 하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도 보였습니다만 크크 이건 따로 이야기할 일이 있겠죠)

그 친구에 대해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건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읽는 능력뿐 이었어요. 과거에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게 그 행동에 이면에 담겨진 그 친구가 하고 있는 생각, 가지고 있는 가치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환경들을 생각해보니 전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그 나이에 나랑 동갑이 맞았나 생각할만큼 괜찮았어요. '훌륭하다' 같은 괜히 크기만 하고 딱딱한 표현들로 수사하고 싶지 않은 순수하게 바른 느낌. 뭔가 서툴고 어린 걸음이지만 분명히 맞는 목적지로 의심없이 향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가 궁금해졌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저도 교우관계가 아까 언급했던 힘든 시기에 거의 다 박살이 났고, 그 친구도 저와 접점이 있는 사람과는 그렇게 활발하게 교우 관계를 하지 않았는지 찾을 방법이 당시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법적으로 올바르고, 도의적으로 추해보이지 않을 선에서는 별의 별 짓을 다 했는데도 못 찾았어요.

그리고 나서는 그냥 만나고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진 채로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만나다가도 문득 그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친구 생각을 하고, 살면서 또 사람한테 상처받을 일이 생기면 그 친구도 어른이 되고 이런 일을 많이 겪었을텐데 괜찮을지도 생각해보고, 어~쩌다 다른 동창들 만날 기회가 생기면 또 그 친구 혹시 소식 들은거 없냐고 괜히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처음 그 친구의 진가를 알게 된지 3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다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기대도 안했던 루트로 다른 친구덕에 그 친구가 저랑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피지알 질문 게시판에도 그래서 관련 질문을 올렸었구요. 학교 가지고 사람 찾을 수 있냐구요 크크. 그리고 나서 몇번의 헛짓거리 끝에 결국 그 친구 번호를 알게 됐고, 이후엔 몇몇 예상치 못한 고비가 있었지만 어쨌건간에 십수년만에 다시 만나서 얼굴을 보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약속부터 잡은 다음에 알게 됐지만 그 친구는 여전히 정말 괜찮게 살고 있었어요, 여전히 배울만한 점이 많은 친구였고 저는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된 이후 또 많은것을 배우고 받고 얻었습니다.

그 친구하고의 앞으로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 순수했던 학생때처럼 막역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이제 서로 성인이 되었으니 존중해줄건 존중해주는 지인이 될 수도 있고, 서로 일이 겹치는 분야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이지만 어쩌면 일을 함께 하는 동료가 될 수도 있겠고, 예상 못한 일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갈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저는 이번에는 이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떻게든 붙잡고 있고 싶어요. 지금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인연이 다 소중하고, 모든 인연의 끈이 다 놓기 싫은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정말로 나에게 소중했지만 그걸 모르고 한번을 놓쳤다가 수많은 풍파끝에 다시 잡게된 이 끈 만은 유독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라도 절대로 놓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 친구와 다시 만나는 날, 그 날 하루만큼은 적어도 저 만큼은 아니어도 그의 반, 반의 반만큼이라도 이 친구도 나랑 다시 만나서 하루를 보내는게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 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있구요.

사실 내가 잘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절실히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걸지도 모르겠어요. 이 너무나 멋있고 괜찮은 친구는, 비록 내가 실망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했을지라도 내 앞에서는 너무나 날 만나 반가웠다고 말해줄 그런 사람이기에.

Better late than never. 저는 이 인연이 이렇게나 늦어서야 다시 시작되었다는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나 아예 만나지 못했을 상황을 생각하면 어쨌거나 이 재회에 정말로 그냥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을 그 친구가 읽지 않기를 바라며, 피지알 자게 글을 모두 확인하는 헤비 유저가 아니길 바라며 글을 마쳐봅니다. 크크 내 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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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15/08/04 17:31
수정 아이콘
캬 알고보면 같은 피지알러로서 사이좋게 똥드립을 하는 사이였다 정도면 진짜 엔딩까지 완벽한데 말이죠. 흐흐.
농담이고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로군요.
만트리안
15/08/04 17:36
수정 아이콘
안 그래도 떨리는데 그 친구가 피지알러라면 저는 그날 급성 장염에 걸리는것으로..
오리마루
15/08/04 17:35
수정 아이콘
지금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멘토같은 분을 만났는데 거리상으로 멀리 계셔서 이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정말 답이 되는 글이었네요. 연락이 끊기지 않도록 저도 만트리안님처럼 그 분에게 최선을 다해야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만트리안
15/08/04 17:46
수정 아이콘
지금 실제로 인연이 끊어졌던 많은 사람들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고 더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사람들과도 어찌 어찌 꾸역꾸역 그래도 연락하고 관심갖고 지내고 있는걸 보면 가장 중요한건 마음가짐인거 같아요. 물론 그것만으로 어떻게 되는것은 아니라 결국 눈물을 머금고 놓은 인연도 있지만요...
스타슈터
15/08/04 17:47
수정 아이콘
Better late than never.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네요.
지금이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이른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는 순간 다음 기회는 더 늦어지니까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인연에 있어서 만큼은 성공과 실패를 논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끊어지면 끊어진대로 의미가 있는거고, 이어지면 이어진대로 의미가 있거든요.
그래도 기왕이면 이어지는게 더 좋겠지만요.
꼭 그 인연 이번에는 잘 이어져서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만트리안
15/08/04 17:50
수정 아이콘
빠르다 늦다 생각하지 말고 어쨌거나 지금 할 수 있는것을 하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그리고 인연에 성패에 대한 부분은 동의합니다. 인연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노력한 이후에도 최선을 다해도 결국에 끊어지는 인연이 있었고, 내가 끊어야만 하는 인연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 전과는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느끼는 바는 많이 달랐습니다. 일단은 미련도 덜 남았고, 무엇보다 언젠가 상황과 환경이 또 바뀌면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의해 마음도 좀 편해진 느낌이에요. : )
바위처럼
15/08/04 18:04
수정 아이콘
으왕 뭔가 설레네요 멋져요 저도 누군가가 그렇게 기억해줄 친구로 살기위해 노력해야겠어요
만트리안
15/08/04 18:12
수정 아이콘
제가 설레는 맘이 글에 녹아들었나봅니다 크크 바위처럼님 친구들에겐 바위처럼님이 최고의 친구일거에요
15/08/04 18:30
수정 아이콘
멋진 이야기네요.
만트리안
15/08/04 18:55
수정 아이콘
멋진 대상에 대한 이야기니까 기본빵은 하는거 같아요. 세느강 사진이 누가 찍어도 멋있듯이..
솜이불
15/08/04 18:31
수정 아이콘
제목에 끌려서 (이러한 종류의 글이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첫 단락부터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었습니다.
읽기 편안하게 정말 잘 쓰셨네요.
그리고 제가 기대했던 내용이라 더 기분이 좋고요. 다른 분의 생각의 면모를 보게 되어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일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멋진 인연 이어가셨으면 좋겠어요. :)
만트리안
15/08/04 20:23
수정 아이콘
글을 써야지 써야지하고 미루다가 오늘 문득 저 문장을 보고 영감이 떠올라서 일필휘지로 쭉 써갈긴 글입니다. 기분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암증기광
15/08/04 21:34
수정 아이콘
와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저도 최근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흔히 주변에 사람 없어도 난 잘 살 수 있다고 뭐 어차피 헤어질 사람 왜 만나고 왜 붙잡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한데, 뭐 그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겠지요. 그렇지만 요즘 들어 정말 그렇게 살다보면 남는 게 없고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을 놓치는 거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에 사람 잘 챙기고 안 보인다 싶으면 연락 한번씩 해 주고 인연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 정말 성공하고 만족스러운 삶 살고 있는 경우가 많구요. 저도 노력중입니다 흐흐
만트리안
15/08/05 07:53
수정 아이콘
저도 혼자서도 잘 살 자신이 있지만 자신이 있는것과 별개로 역시 사람과의 인연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열심히 노력해요
호느님
15/08/05 13:01
수정 아이콘
저도 얼마 전 연락이 12년 정도 끊겼던 친구와 우연히 연락이 닿아 만났는데 예전에 제 기억속의 멋지던 모습보다 업그레이드 돼 있더라구요. 저도 그 친구에게 그런 느낌을 줬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는데..실제로 그럴지는 의문이네요 흐흐.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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