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원했던 신경과 병동은 6인실이었다.
대부분의 6인실처럼 3명씩 양쪽으로 나뉘어 눕게 되어 있었다.
나는 한쪽의 가운데 자리였고 양 옆에는 하반신 마비 환자와 중풍 환자가 누워 있었다.
맞은 편에는 차례대로 자폐증과 불면증 그리고 한 명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대체 왜 자폐증 환자가 신경과 병동에 입원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병동 사정이 열악하여 정신과 병동이 가득찼거나 하는 이유겠지.
그 자폐증 환자가 입원했던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는 매우 위중했고 가족들은 매우 다급해 했으며
입원절차가 모두 끝난 후 가족들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빠르게 도망쳐 나갔다.
내 왼쪽의 중풍 할아버지는 뱃고동을 연상케 하는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를 때마다 나는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
내 오른쪽, 하반신 마비 아저씨는 매일 똥을 쌌다.
부인이 간병하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가끔은 싸움이 일어났다.
나는 그 사이에 있었다.
나는 편두통이었다.
편두통으로 입원했다고 말하면 여전히 다들 믿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입원했던 곳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 최고라고 여기는 대학병원이었는데
그 바쁜 병동에 고작 편두통 환자를 입원시키는 일은 아무래도 흔치 않은 일이다.
편두통은 중학교 이전부터 있었다. 처음에는 반년에 한 번 정도 왔는데 나중에는 점차 잦아졌다.
편두통이 오면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마구 긁어대며 길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굴렀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고통은 점점 심해져서 나중에는
머리와 턱이 분리되고 눈알이 튀어나와 데롱데롱 흔들리는 고통이 2시간 정도 지속되었고
더 심해지면 정신을 잃을 때도 많았다.
정신이 다시 돌아오면 나는 내가 쓰러졌던 기억을 잘 하지 못했고 매일 버스에서 졸도하여 종착지에서 깨어나곤 했다.
시험보는 날 편두통이 왔고 극장에서 영화보다가 편두통이 왔고 소개팅 중에 편두통이 왔고 섹스하다가도 왔다.
그 때마다 기절했고 기억을 잃었다.
온갖 병원을 전전했다.
잡지에 명의라고 나온 사람은 모조리 찾아가 봤고
언젠가는 굿도 했으며
매일 아침 동쪽에 절을 세 번하고 부적을 흔든 뒤에 그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두통 때문에 굿을 했다고 하면 미개하다며 욕을 했을 테지만
정작 당사자가 되고 나니 제발 뭐라도 하나 걸려라 하는 심정이 있었다.
화타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노인을 찾아가 눈 바로 옆에 침을 꽂았고 엄청 큰 침도 맞았다.
CT, MRI는 병원마다 찍어놔서 이젠 전국 모든 병원에 내 뇌 사진이 있을 지경이었다.
조금도 낫지 않았다.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지자 나도 점점 음침해졌다.
이 고통을 끝낼 수 있을까? 있다. 저기 저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만큼 많이 아팠다.
입원할 즈음에 편두통은 하루에 15번씩 찾아왔다.
한 번 올 때마다 1시간에서 2시간이었으니 나는 하루 중에 아프지 않았던 시간이 10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외래 진료 중에 의사 앞에서 쓰러지고 CT 찍다 쓰러져서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쯤이면 나도 저 위의 신경과 중증 환자들에게 별로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 한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입원한 이후로 편두통이 씻은 듯이 나았다.
단 한 번도 편두통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까지의 삶 중에서 가장 행복했고 병원 밥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입맛이 폭발하여 하루 세끼로는 모자라 7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에 가서 돈까스를 또 먹었다.
편두통 없는 삶, 하루하루 나는 행복의 극치를 맛보았다.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양 옆에서는 온종일 비명소리가 그치질 않았는데 나는 침대에 뒹굴거리며 만화책을 봤다.
자폐증 환자는 매일 침대에 올라서서 옷을 벗은 채 빙글빙글 돌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했다.
맞은편의 불면증 환자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24시간 나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 봤다.
내가 밥을 먹을 때도, 자고 있을 때도, 자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부스스 깨어났을 때도
맞은 편 어둠 속에서 그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교수의 회진 때도 나는 불편해졌고 하루에 두 번 혈압을 재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링겔도 맞지 않았고 약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퇴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퇴원하면 또다시 편두통이 올까봐.
불편함을 피해 병동을 빠져 나와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죽이는 일이 많아졌다.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만화책 한 권을 들고 나와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며 읽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병동에서 나를 찾으니 빨리 올라가 보라고.
결국 퇴원인가.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병동 간호 데스크로 향했다.
나를 본 간호사는 회의실 문을 열고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그 안에는 내 주치의가 있었다.
주치의는 다급히 일어나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TV와 쇼파, 자판기, 동전을 넣는 컴퓨터가 있는 휴게실은 밤이 늦어 불이 꺼진 상태였다.
아무도 없었기에 주치의는 나를 앉히고 맞은 편에 앉아 테이블에 A4용지를 하나 꺼내 놓았다.
어둠 속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혹시 최근에 술 드시고 실수하신 적 있습니까?
답답할 지경까지 침묵을 고수하던 주치의가 기묘한 말을 꺼냈다.
저 술 안 먹습니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텅 빈 A4용지 위에서 펜을 빙빙 돌렸다.
혹시 동성애자이신가요?
나는 동성애가 뭔지 잘 몰랐다.
얼떨떨한 내 표정을 보고 나서야 주치의는 내 여자친구가 매일 면회를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맞다 맞다. 멍청한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는 계속해서 펜을 돌렸다. 그러다가 빈 종이에
HIV
라고 썼다. 그리고 굳이 딴 곳을 바라봤다.
어디서 많이 본 말이기는 한데 어디서 본 단어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컴퓨터 부품이나 단자 이름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환자분 혈청 검사에서 HIV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면서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 내일 계속.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