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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12 11:36:15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오하의 아몽인가 사별삼일 괄목상대인가


에휴.....시작하죠.

219년 겨울, 공안에 위치한 손권의 내전에서 오의 대도독 여몽이 사망합니다. 향년 42세.

여몽 자명. 예주 여남군 부파현 사람입니다.


여몽은 아마도 태어나거나 10세 이하때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고향인 여남을 떠나 장강을 건너 비교적 안정적이던 오와 회계 지역으로 이주합니다. 여몽 일가가 이주 한 이유는 여몽의 매부인 등당이 손책의 부장으로서 그 지역에 살고 있어 등당에게 의지하기 위해서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왜 여몽 일가는 강남으로 이주한 것일까요?

동탁에 의해 예주자사로 임명을 받은 공주는 문약한 문사에 불과했고, 이러한 상황에 부하들마저 반란을 일으키기 까지 하면서 예주 일대는 난장판이 됩니다. 당시 여남 일대의 상황을 알려주는 사람의 기록이 위서 이통전이죠,

여남 일대는 이통과 같은 임협집단이 발전한 무장집단 뿐만 아니라 황건의 잔당까지 이 지역에 있었고, 이들은 서로 세력권을 다투며 싸우고 있었죠.(거의 조폭이나 다름없는...)이통은 여남일대에서 자신을 따르기 거부하는 세력들을 꺾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싸움이 벌어졌고, 거기다 이 인근의 원술이 이 기회를 틈타 세력을 넓히면서 이 지역의 사람들이 회하 이남으로 도망치듯 이주했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그러나 매형을 의지해 이주했지만 어떠한 지역적 기반이 없었던 여몽 일가는 가난하게 살았던 모양입니다. 당시 등당은 손책의 부장으로서 산월 토벌의 임무를 맡아 자주 전장에 나가게 됩니다. 가세가 빈한에 어떠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여몽은 몰래 등당을 따라 전장에 나아가는데 이 때 나이가 15~6세. 어느날 전장에서 지휘를 하다가 여몽을 발견한 등당은 놀라서 여몽을 따라다니지 못하게 했지만 여전히 여몽은 등당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노련한 장수도 죽어나가는 전장터에 어린 처남이 죽으면 아내와 장모를 볼 면목이 없던 등당은 결국 장모인 여몽의 모친에게 모든 일을 고합니다. 놀란 여몽의 모친은 여몽을 불러들여 혼을 내죠. 그러나 여몽은 지지 않고 말합니다.

여몽 : 가난과 미천은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잘못을 벗어버리고 공로가 있다면 부귀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호랑이 굴로 들어가지 않으면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집안이 가난하고 미천한 상황에서 가문을 부귀하게 하려면 전장에 나가서 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 것이었죠. 여몽의 모친은 미안했던지 여몽을 벌주지 않습니다. 결국 모친의 허가를 받고 등당을 따라 전장을 다녔는데, 지휘관인 등당의 처남이라고 비호를 받아 어린 놈이 전장을 다니는게 불만이었던 등당 아래의 부하들은 여몽을 낮춰봅니다.

"여몽이란 애가 무엇을 할수 있을것인가? 단지 호랑이에게 고기를 주려는 것일 뿐이다."

한마디로 등당이 여몽에게 버스태워주는 거라는 것이죠. 그리고 거기다 이들은 여몽을 볼때마다 모욕을 줍니다. 그나마 등당을 보아 참고 있던 여몽은 어느날 길에서 또다시 자신에게 모욕주는 관리에게 격분해 가지고 있던 칼로 모욕을 준 관리를 죽입니다. 처벌이 두려웠던 여몽은 정장이라는 사람의 집에 숨어 살다가 교위인 원웅의 설득을 받아 자수했는데 상급자 였던 원웅은 여몽을 위해 변호해줍니다. 이를 들은 손책은 여몽을 불러들여 수하의 병사로 삼습니다.

얼마 안가 여몽의 매형인 등당이 죽자, 그 후임을 물색했는데 장사로 있던 장소는 여몽을 추천해 등당의 후임이 되게 합니다. 상급자이던 원웅이나 군주인 손책, 그리고 어떠한 연관이 없었던 장소까지도 여몽을 추천한 것을 보아, 여몽은 장수로서의 능력은 상당히 평가받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200년 손책이 죽은 후 손권이 기업을 이어받습니다. 손권은  군소부장들 중 공적이 없거나 병력이 적은 부대는 통폐합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여몽도 이렇게 통폐합되는 부대의 지휘관이었던 모양입니다. 여몽은 몰래 돈을 빌려 병사들의 병장기를 확충해 눈에 띄도록 하고, 이를 손권에게 크게 평가받습니다. 자신의 최대 후원자인 군주 손권과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이죠.

손권은 여몽을 단양군의 반란과 이술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령하고 공을 세우자 광덕현장이 되었고, 이후 208년의 황조 토벌에 종군해 황조 수군의 도독 진취를 죽여 횡야중랑장이 되고 이후로도 적벽대전, 강릉전투, 합비전투, 유수구 전투 등 오의 주요 전장에 장군으로서 참여합니다.

여몽에게서 나온 고사가 둘 있는데, 오하아몽(吳下阿蒙)과 괄목상대(刮目相對)죠.

손권은 자신이 아끼는 두 장수인 여몽과 장흠에게 책을 가까이 하도록 권합니다. 그러나 장흠전에는 그런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장흠은 이러한 손권의 명령을 쌩까버린 모양입니다만, 여몽은 손권의 명을 받아 책을 가까이 해, 이전의 무력만을 앞세우던 장수에서 통솔력과 지모를 갖춘 장군으로 발전한 모양입니다. 당시 대도독이던 노숙은 여몽이 무식하다고 속으로는 낮춰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여몽이 많이 발전하니 만나보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어봅니다. 여몽을 만난 노숙은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크게 놀라 여몽과 개인적인 친교를 맺고 여몽의 모친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이걸 보고 나온 이야기가 괄목상대죠. 그러나 어찌보면 이것은 여몽을 비웃은 것도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힘만 쓰는 여몽이었는데 이제는 조금 군략을 이해할 정도네?"

이런식으로요.

뭐 질리도록 보신 것이겠지만, 저는 여몽을 평가할때 이런말을 합니다.

"십리를 보는 모사로서는 합당하나 천리를 보는 책사로서의 능력은 없다."

그는 한 지역의 군사령관이나 지휘관으로서는 적합하지만, 국가의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은 일천했습니다. 외교 관계나 국가간의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아니 이해하지 않았다고 볼 수 밖에요.

여몽이 대도독이 되었을 때, 촉과 오는 동맹관계는 유지되고 있었지만 실제 관계는 험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강자인 위(魏)가 있는 이상, 아무리 험악한 관계라도 동맹관계는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형주 쟁탈전과 관우 살해로 촉오의 관계는 완전히 원수가 되어버린 책임을 묻는데는 손권과 여몽이 모두 나눠져야 하죠.

그렇다고 오가 그렇게 동맹관계를 박살내면서 형주를 차지했다고 해서 얻은 이득이 있었냐? 그것도 아니구요.

촉오관계가 회복되었지만, 여몽이 박살낸 신뢰관계로 인해 촉오간은 단지 반감은 덮어둔 상황이었고, 촉은 촉대로 그 선례가 있는 이상 항상 오를 경계해야만 했죠.

어느 분들은 여몽이 아닌 육손을 노숙의 후임으로 임명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말하지만, 육손은 당시 하제처럼 반란 진압에만 동원되고 있었습니다. 여몽이 손권에 의해 중용된 이후 주요 전투에 참전했던 경력이 있는데 어떠한 공적도, 그 능력도 평가받지 않은 육손을 노숙의 후임으로 바로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죠.

관우가 사망한 후, 손권은 여몽을 남군태수 잔릉후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여몽이 작위를 받기도 전에 가지고 있던 지병이 발병해 악화되었고, 손권은 자신이 있는 공안으로 여몽을 데려와 자신의 내전을 내주어 병을 치료하도록 하고 여몽을 치료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포상을 내리겠다고 포고합니다. 손권은 여몽의 병이 호전되면 사면령을 내렸고, 병이 악화되자 도사들을 불러들여 여몽의 병이 낫도록 성신에게 기도하도록 명령합니다.

여몽이 죽자 손권은 여몽의 아들인 여패에게 잔릉후를 계승케하고 여몽의 묘를 지키고 돌보도록 3백 호를 하사하고 농지 50경의 부세마저도 면해줍니다.

782년 안진경이 무성왕과 함꼐 배향한 역대 명장 64인 중에도 여몽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몽의 영예는 거기까지 였죠. 관우가 충의의 화신으로 떠받들어지면서 당대에는 무안왕, 원대에는 현령의용무안영제왕, 명대에는 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 청대에는 아예 성충공에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관성대제까지 올랐고, 아들인 관평은 알충왕에 영후태자까지 되고 심지어 창작 인물인 주창마저도 위령우용공까지 오르는 등 관우가 높게 평가받자 그에 반해 여몽은 말 그대로 관성대제를 죽인 찌질한 인간이 되어버리죠. 심지어는 난징 인근을 일본군이 점령하면서 관우를 존경한 일본군 장교가 여몽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부관참시 당하고 결국엔 무덤마저도 폭약으로 폭파해 없애버렸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손권은 지금 손제리, 손퍼피 등으로 난리를 치지만 관우 죽음의 이미지는 대부분 손권에서 여몽으로 대부분 떠넘겨져버렸고,(연의에서는 처형명령을 내린 것은 손권이죠.) 이후 육손이 대도독, 승상으로서 촉오동맹을 회복하면서 여몽은 촉오동맹을 파토내고 관우를 죽인 천하의 XXX로 지탄을 받게되죠.

그러나 이러한 여몽의 악평 중에서 여몽의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하지 못했던 손권이 들어야 할 악평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단지 형주 문제로 인해 동맹관계를 파탄낸 것도 여몽이기 보다는 손권이 여몽의 형주 공략 주장을 제지하거나 제어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 지지했다는 점과 전종의 관우토벌 상소를 봐서도 이러한 악평은 손권이 여몽보다 더 욕을 먹어야 하죠.

손권은 이후로도 더 깔껍니다. 그러나 여몽은 손권이 죽기 전까지는 또 까일겁니다. 오가 위로 굴종한 것, 이후로 위의 무리한 세공 요구, 이릉대전 등등 손권과 여몽의 오판은 촉오동맹관계 회복으로는 되돌릴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죠.

자인 자명(子明).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자명(自明)하지 못했습니다. 여몽이 신삼국 처럼 관우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기때문인지, 아니면 정사 처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관우와 적대한 것인지는 명백하게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삼국지가 존재하는 이상 후세에도 별로 좋은 평가를 들을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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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12 12:28
수정 아이콘
무리한 영토를 요구하는 외교, 얻은 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는 내정, 동맹을 박살내는 신의, 모든 걸 보여준 군주와 사령관이죠.

결국 주체는 손권이고 여몽은 그 손권의 의중을 살펴 까라는거 같으니까 까버린. 군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책은 많이 봤지만 결국 군인이었고 전임이던 주유, 노숙 같이 외교와 내정, 군사를 한꺼번에 볼 능력은 없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격도 호전적이구요.
Je ne sais quoi
13/01/12 14:1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3/01/12 21:02
수정 아이콘
정말 흥미진진했던 삼국지의 결말을 지어버린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여몽이 저지른 일만 없었다면 5:5까지는 아니더라도 4:6까지는 다른 결말을 바라볼 수 있지 않았나 싶었는데요,
지금뭐하고있니
13/01/13 00:0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선 리플 후 일독
13/01/13 11:48
수정 아이콘
글쎄요.촉한중심 관점때문에 지나치게 저평가되는것 같습니다.
위-진이 천하통일한다는건 그 당시로서는 결과론일뿐이고 위촉오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알수 없는 당시 오나라 입장에서는 영토를 늘릴수 있을때 늘려놓아야죠.오나라 입장에서 보면 관우가 바로 허도까지 함락해버리고 패권을 쥐어버리면 오나라는 역시 또 궁지에 몰라는거고 반대로 오가 재빨리 서천까지 밀고 가면 남북국으로 갈수도 있는거구요.그렇게 얻은 영토를 후대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해서 영토를 얻는데 공헌이 있는 장수가 까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만약 형주침공을 이유로 여몽이 좋은 평가를 듣을수 없다면 역시 이릉전투로 촉-오의 군사력만 말아먹고 위나라만 좋은일 시켜준 유비도 결코 좋은 평가를 듣을수 없겠죠.
13/01/13 13:54
수정 아이콘
주유-노숙이 유지하던 외교 기조를 버리고 국가 전략을 바꾼건데, 결국 다시 위랑 갈라 서고 촉과 손을 잡게 되었으니 여몽의 시야가 좁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죠.

촉 뒷치기 하고 그 기세로 양양-완까지 치고 올라간 것도 아니고, 형주를 기반으로 국력을 신장시킨 것도 아니고, 위의 인질 요구에 결국 또 위랑 대판 싸우고 갈라지게 만든게 여몽과 손권의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위나라 최대의 위기인 창업군주의 죽음을 아주 손쉽게 넘겼죠.

그리고 이릉대전은 단순히 유비의 개인 감정만으로 일어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물론 그게 가장 크긴 했겠지만) 유장 일족을 우대하고, 남만을 지원해서 촉의 배후를 흔드는 등, 오가 이미 촉을 멸망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공작 중이었고 여기서 유비가 참아버릴 경우 내부 단속 문제가 생길 여지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봐도 여몽과 손권의 실책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죠.
13/01/13 22:58
수정 아이콘
여몽이 건강이 너무 안좋고 형주공방전 이후 바로 죽어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 뿐이죠
여몽이 장기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었는지는 확인 불가능한 사실인데 손권의 삽질가지고 여몽까지 까면 안되죠.

이릉대전만 하더라도 조운이 간곡하게 말리기도 했고 제갈량도 부정적으로 봤는데 강행했다가 진건 유비 책임이죠.
국력 다 꼬라박아서 약해진걸 이것도 오에게 책임을 씌우는건 지나친 촉 위주의 사관이 아닐까 싶네요.
13/01/14 00:50
수정 아이콘
여몽이 안 죽었어도 이릉대전은 불가피했을 겁니다.

애초에 형주를 치자는게 손권과 여몽의 생각이었는걸요.

유비가 감정에만 치우쳐서 제갈량-조운 말 무시하고 오나라로 달려간게 아닙니다.(형주 공략이후 관우를 죽인 것 뿐만이 아니라 본래 촉의 군주였던 유장을 이용해서 촉의 분열을 노리고, 남만까지 흔든게 오의 행적입니다.) 전후 사정을 보면 오의 행적은 거의 촉을 멸망시켜버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을 정도였는데 먼저 전쟁을 도발한 오의 책임이 아니면 이게 누구 책임일까요?

막상 형주 먹고 위랑 손잡고 나니 인질 내노라고 하는 위는 또 아니꼽고 해서 촉이랑 또 손잡는 길을 택했습니다. 괜히 뻘짓해서 상호간에 국력만 낭비하게 만든거죠.
13/01/13 19:43
수정 아이콘
여몽이 형주를 침공하기 전에도
이미 노숙이 관우와의 담판을 통해
강하군, 장사군, 계양군 3군의 형주 동쪽을 가져갔습니다.

여몽이 형주를 침공한 후
오나라에 추가된 지역은 남군의 남부와 영릉군, 무릉군이죠.

근데 어차피 오나라는 형남 4군(장사군, 계양군, 영릉군, 무릉군)을 반란으로 인해
제대로 통치하지 못했어요. 오나라가 멸망할 때 까지.

관우 뒷치기를 해서 가져간 건 남군 남부의 일부지역 뿐이죠.

이거라도 가져갔으니 된 것 아니냐고요?
관우 뒷치기 하기 전 까지 오나라는 위나라를 서주, 유수구 이 쪽만 신경썼으면 됐어요.
근데 관우 뒷치기를 하고 남군을 가져감으로 인해 형주로도 전선이 넓어져버렸죠.

여몽이 관우 뒷치기를 함으로서 오나라 땅은 전혀 넓어진게 없는데
부담해야하는 짐만 커져버렸습니다.

그거 때문에 여몽은 대차게 까여도 할 말이 없죠.
13/01/13 23:01
수정 아이콘
여몽이 주유처럼 장기적으로 촉 정벌을 할 계획이 있었는지 모르죠.
그저 일찍 죽어서 손권의 합비꼬라박 등 정권의 방향 설계 실패 등이 겹쳐서 오가 형주먹은걸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이지
오에 제대로된 재상이 있고 주유나 여몽같은 전략, 전술, 전투에 능한 사령관이 있었다면 형주 나머지 먹고 오히려 국력신장했을겁니다.

영토 먹고 제대로 관리 못하고 위에 대한 공격 다 실패해서 문제인걸
형주 나머지 먹어서 문제라고 하면 안되죠.
땅은 먹으면 일단 이득이죠. 이후 관리가 중요할 뿐.

애초에 익주먹으면 형주준다고 해놓고 안줬을때부터 문제가 있던거였습니다.
동맹인데 먼저 약속 안지키고 배쨰라 식으로 나온건 촉이었죠.
그러다 위가 공격할 것 같으니깐 그제서야 강하, 장사, 계양 넘겨준 것이구요.
이래놓고 뒷통수쳤다고 죽도록 까는건 황당 그 자체네요.
촉이 대한민국도 아니고 그렇게 촉 중심적으로 봐야할 필요가 있을지...
13/01/14 00:55
수정 아이콘
빌렸다고 나오는건 남군 일부(이미 남군을 잘라서 공안이라 하고 유비가 세력을 두고 있었으니. 이것도 주유 사후 전선 부담을 줄이기 위한 오의 계산이 깔려있었던 행동이었고요.)인데, 유비가 자기 힘으로 먹은 형남 4군도 내놓으라고 땡깡부린게 손권입니다. 적벽대전 이후에 강릉-양양 금싸라기 먹겠다고 유비가 형남 4군 먹는거 방치하다가 조인의 분전으로 강릉 하나 간신히 먹고 주유가 병사하자 뒤늦게 형주 전체의 영유권 운운한게 형주 분쟁의 시작이죠.

결국 오의 무력도발로 악양에서 대치하고서 유비가 자기 힘으로 먹은 형남 4군중 절반 이상과 본래 유비의 근거지였던 강하군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형주 문제에 대해서 정리를 했고요.

상호 합의로 영토문제를 정리 했는데 눈앞의 땅 좀 더 먹어보겠다고 국가간의 신뢰관계를 파탄내버린 선택을 한게 여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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