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는 제왕절개로 태어나서 5박 6일을 병원에 있었습니다.
저도 여름 휴가 3일 + 연차 1일 + 주말 2일을 합쳐서 옆에 같이 있어줄 수 있었죠.
생각보다 옆에서 도와줄 일이 많이 없어서 폰으로 슬더스를 엄청 했습니다. 흐흐
일요일에 산후조리원으로 향했는데 병원에서 아기를 꽁꽁 감싸줬습니다.
7월초라서 엄청 더워보였네요.
신주단지 모시듯 산후조리원에 데려다놓으니 아내가 하루만 같이 자면 안되냐고 하여 같이 있었습니다.
모자동실 시간이 되어 아기와 한 공간에 있으니 묘한 기분이었어요.
산후조리원은 2주였습니다.
아내는 산후조리원에서 외롭다며 전화로 울었지만 한 시간의 통화를 마치면 전 롤토체스를...
산후조리원에서는 24시간 캠으로 아이를 볼 수 있었는데 부모님이 참 좋아하셨네요.
윗 사진은 캠을 보던 중 귀여워서 남겨봤습니다.
2주가 지난 토요일 아내와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도우미 이모님은 월요일부터 오시기로 해서 이틀간 생초보 부모가 아이를 봐야해서 긴장했습니다만
아이는 먹고 자고만 반복해서 생각보다 별 일은 없었네요. 휴...
도우미 이모님은 2주를 출퇴근하셨는데 엄청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주말에 먹으라고 금요일에 반찬까지 많이 해주셔서 진짜 감사했어요.
마지막 날은 애기 옷이 너무 남자 옷밖에 없다고(태어나기 전에는 남자인지 알았으니...) 분홍옷까지 선물 받았습니다. ㅠㅠ
아내가 말하길 자기는 손하나 까딱 하지 않게 해주셨다고 하여 마지막날 봉투와 함께 소정의 감사금을 준비했었는데
준비해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이모님이 퇴근하면 제가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온전히 두 사람의 육아였습니다.
아이가 잘 울지 않고 울더라도 울음 끝이 짧아서 이모님도 참 순한 아기라고 했던지라 아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만
새벽에 밥을 먹어야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1~2시까지만 케어하고 그 후는 아내가 전부 담당해줘서 6시간 정도 잘 수 있어서 할만은 했네요.
사실 도우미 이모님의 마지막 출근 날 장인어른께서 심장 때문에 쓰러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하던 중 아내의 전화를 받으니 엄청 울면서 오늘 군산에 내려가야할 것 같다고 오래있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
다행히도 다음 주부터 제 출산휴가 2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퇴근하고 아이와 관련된 모든 짐을 꾸렸습니다.
아이가 새벽에 잘 잤기 때문에 밥을 먹이고 잠이 든 것이 확인된 순간 바로 안산에서 군산으로 운전을 시작했죠.
이제 막 태어난지 한달 된 애기와 함께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이 부담되었지만 아이는 내려가는 도중에 잘 자더군요.
도착해서 차를 주차하니 그제서야 일어나서 밥 달라고 우는데 참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입원해 계시고 장모님은 병 간호를 하셨기 때문에 아내와 아이와 셋이서 처갓집에 머물렀습니다.
아내는 매일매일 병문안을 갔지만 낙관적인 상황이 아니었죠....
아내가 병문안을 가있는 동안은 처갓집 근처에 사시는 제 부모님이 와주셔서 아이 보는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장모님에게서 연명치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정해야한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는 펑펑 울었고 저도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죠.
장인어른께서는 자신이 건강해지면 병원 밖에서 온유를 보겠다고 데려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온유를 데리고 병문안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군산에 내려간지 12일째인 수요일은 아기용 마스크다 도착을 안해서 못 데려갔는데
목요일에는 태풍이 상륙해서 데려갈 수가 없었죠.
금요일에는 데려가려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장모님 전화를 받으니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이 전면 금지되었다고 하셨셔서 또 못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토요일 새벽 장인어른께서 주말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연락을 받습니다.
아내는 울며불며 근처 친척오빠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고
전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러 오셔야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며 아이와 함께 있다가 나중에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병실에 도착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이 이야기가 나왔고
장인어른께서 온유가 보고싶다고 얘기를 하시니 제가 울음을 참지 못하겠더군요.
이대로는 정말 온유를 못 보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가 너무 가슴 아파서 제 독단으로 아이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이 눈코입을 모두 가리고 병원 관계자분들께는 사정사정해서 겨우겨우 장인어른께 아이를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만
장인어른께서는 병원에 아이 데려오면 좋지 못하다고 얼굴 봤으니 됐다며 얼른 나가게 하셨죠.
원래도 그런 분이셔서 아프셔도 변하지 않으시는구나 생각하며 아이를 다시 집에 데려다놓고 병원을 가던 중 전화가 왔습니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다고
8월 12일 토요일의 군산은 비가 왔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손세차를 업으로 삼고 계셨는데 비오는 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하셨었죠.
그렇게 장인어른께서는 자신이 좋아하던 날씨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아내는 무남독녀였기 때문에 제가 상주를 맡았고
장례식동안 온유는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돌봄을 받았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손녀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셔서 참 좋은 시간이긴 했지만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죠.
발인날 부모님에게서 아이를 받아 다시 처갓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발인 다음날이 광복절이었기 때문에 전 그 때 안산으로 올라오기로 했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장모님곁에서 2주를 더 있기로 했죠.
그리고 전 오랜만에 출근한 날 아내와 장모님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일단 아이는 제 아버지가 다시 데려가셨지만 아내는 아이에게 코로나가 옮겼을까봐 엄청 걱정을 했습니다.
전 안 걸릴수도 있다고 위로했지만 사실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죠.
역시나 이틀 후에 어머니께서 저에게 온유가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고 카톡을 보내셨습니다.
어차피 아이도 코로나에 걸렸으니 어머니와 아내는 온유를 데리고 만났고 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울고 아내도 울고 하니 병원에 데려가주는 택시 기사님도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두 달도 안된 아기가 주사를 맞을 수도 없고 해열제만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코로나 확진이 된 다음 날 아이는 하루종일 추욱 늘어져있었데요.
저도 동영상을 받았는데 참 안쓰러웠죠.
그래도 해열제 잘 먹고 더 심해지는 기미도 없더니 다음날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습니다!
아프다고 울지도 않고 하루만에 나은게 얼마나 대견한지... ㅠㅠ
그렇게 2주를 군산에 있던 온유는 또 다시 안산으로 장거리 이동을 하게 됩니다.
내려올 때는 쉽게 내려왔는데 안산으로 올라올 때는 길이 막혀 밥 시간이 되니 밥 달라고 칭얼거리더라고요. 흐흐.
결국 휴게소에 들려서 분유를 타주니 먹고 바로 응가까지 해서 그것까지 처리하고 돌아왔습니다.
안산에 올라와서는 별일없이 잘 지내고 있네요.
얼마전에는 50일 기념 사진을 찍으러 갔다 왔습니다.
60일이 넘어서 찍는 50일 사진이라 좀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100일 사진은 120일 되면 찍는다고 하니 머 그런갑다 했네요.
100일 사진을 찍기 위해 이쁜 옷을 사줬는데 입히고 나니 배시시 웃는 것이 참 이뻤습니다. 흐흐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한 번도 안 울고 안 찡얼대서 사진 찍어주시는 분들이 착하다고 칭찬 많이 해주셨습니다.
저는 애가 웃지를 않길레 '사진찍기 힘드시겠어요'했는데 이 정도면 아주 쉬운 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스튜디오에서는 잘 안 웃었지만 엄마 아빠와 같이 있을때는 참 많이 웃어주는 아이입니다.
아침 일어났을때 엄마 아빠를 보면 웃고, 아빠가 퇴근하고 얼굴을 보여주면 웃고, 새벽에 밥 달라고 해서 가까이 가면 웃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밥 주는 것은 힘들지만 웃어줄 때만큼은 힘이 납니다.
젖병을 물리고 1분이 지나면 다시 힘들지만 크크...
위 움짤은 유투브로도 만들어 봤어요.
이 동영상만 만들어봤는데 계속 할 지 안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흐...
나중에 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기 위해 아기용 아스날 슈트를 사줬습니다.
12개월 사이즈 옷인데 돌이 되면 같이 이쁜 사진을 찍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