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의 정규 2집 "GUTS"(2023)가 나왔다. 좋은 팝 펑크 앨범이었다. 그녀는 Z세대의 대표 가수로, 2000년대에 대중음악을 뒤흔든 팝 펑크 아이돌,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의 재림이라는 평을 받는다. 에이브릴 라빈은 작년에도 꽤 좋은 신보를 냈던 현역인지라 이런 평이 마냥 좋지 만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올리비아의 신곡을 듣고 있자니, 그 시절이 재림한다. 그 시절엔 문득 네가 있다.
에이브릴 라빈의 데뷔 앨범인 "Let Go"(2002)는 내가 CD를 사 모으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산 음반이었다. 그전에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고는 mp3의 시대가 열렸다. 고등학생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이 음악을 듣던 그때 너는 갑자기 나타나 이 CD를 빌려달라고 했다.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이름도 학년도 모르던 네가 느닷없이 손을 내밀어서 당혹했지만, 그냥 빌려줬다. 일주일을 빌려달라고 했던 너는, 다음날 바로 돌려주었다. 얼마 후 나는 대학생이 됐고, 너는 모르겠다.
시간은 훌쩍 갔고, 대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느닷없이 너는 우리 학교에 놀러 왔다. 교복을 입고 왔던 걸 보면 넌 여전히 고등학생이었던 듯하다. 당시 나는 여전히 널 잘 몰랐는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기에, 오락실 안에 있던 동전 노래방을 갔다. 거기서 넌 에이브릴 라빈의 ‘Complicated’를 불렀다. 나는 하루 만에 CD를 돌려줬었기에 별로 맘에 안 들었나 보다 했는데, 모를 일이었다. 사실은 그날 그 노래를 불렀기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었다.
그러고는 급히 돌아갔다.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기에 너의 당부를 들어야 했는데, 소년다움을 잃지 말라는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 후 나는 널 본 기억이 없다. 봤는데, 기억을 못 했을 수도 있고, 진짜 못 봤을 수도 있다. SNS의 시대에 네 소식을 들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냥 그런 세월을 보냈다.
얼마 전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느닷없이 나의 소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와 결혼한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여전히 그런 세월을 보내고 있나 보다.
나에게 마들렌의 냄새가 되는 건 그 시절의 음악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폴은 마들렌과 홍차로 시간여행을 떠나지만, 나는 그때의 정서가 멜로디를 타고 흥얼거린다. 이건 일부러 떠올리는 기억이 아니라, 나 자신도 망각하고 있던 기억이라, 더 흉하고, 흐릿하다. 그런 의미 없던 얼굴들이 오늘의 내게는 아무렇게나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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