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제주도에 머무르던 초여름날이었다. 느지막하게 눈을 떠 보니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푸르렀다. 햇볕이 따가웠지만 바람은 선선했다. 아이가 바다에 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바닷가로 향했다.
제주의 잿빛 현무암과 눈부시게 빛나는 모래알이 뒤섞인 해변가에 차를 세웠다. 아이는 시멘트로 된 야트막한 제방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의 뒷모습을 찍었다.
뭘 보니? 나는 물었다. 바다. 아이는 대답했다. 그러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로구나.
나는 사진을 잘 찍는 편이 못 된다. 구도를 잡는 것이 서투르고 미술적인 감각도 부족하다. 참 멋진 풍경이라도 막상 사진으로 찍어낸 결과물은 영 신통찮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딸아이를 둔 아빠의 자격으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고, 그러면 간혹 오백 장이나 천 장 중에 한 장 꼴로 건질 만한 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기적이란 때때로 일어나는 법이다.
그렇게 손에 넣은 이 사진은 이후로 내게 힘이 되어 주었다. 가끔 힘이 들 때마다, 지칠 때마다, 피곤할 때마다, 나는 이 사진을 들여다보곤 했고 그러면 마음속 깊은 곳 어디선가 조그마한 따끈함이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깊고 음울한 우울증 속으로 가라앉아 있을 때도 그랬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낄 때에, 나는 때때로 이 사진을 보고, 세상과 맞서는 것만 같은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날 힘을 얻는 것이었다.
삶이란 때로는 덧없다는 걸 느끼곤 한다. 오로지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특히 그랬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주 사소한 기억 하나조차도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충분할 이유가 된다. 나는 과거에 그러했듯 앞으로도 종종 이 사진을 들여다보리라. 그리고 그때마다 사진 속의 아이는 자신의 뒷모습을 통해 내게 말해줄 것이다. 인생 별 거 없다고. 그러니 한 판 붙어 보라고.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몇 해가 지난 후의 어느 날, 예컨대 초여름 오후쯤 되었을 무렵에, 내가 아이에게 말해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하리라. 인생 별 거 없다고, 그러니 한 판 붙어 보라고.
(※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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