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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윌슨의 '메트로폴리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오늘날 도심의 최신 커피숍들은 젠트리피케이션과 부동산 가격 상승의 확실한 예고편이다. 부동산 투자의 적기는 특정한 낙후 구역에서 커피점의 숫자가 치킨집의 숫자에 필적할 때다.
2014년 수원에 처음 정착한 후에 수원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수원화성을 홀로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수원화성의 성곽이야 말할 것 없이 웅장했지만, 제가 더 흥미를 느낀 곳은 화성 내부의 행궁동이었습니다. 수원이라는 도시가 태동한 지역이니 만큼, 오래된 세월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주변에 나이드신 상인분들은 이 곳에서 최소 20년 이상은 장사를 하신 듯한 수원 토박이의 냄새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주말임에도 상권 규모에 비해 인적이 꽤나 드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곳이 과거에는 잘 나가는 상권이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쇠락한 곳임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나중에 따로 찾아보니 행궁동, 그 중에서도 특히 남쪽의 팔달문 인근은 수원 뿐만 아니라 무려 경기 남부를 대표하는 최대 상권이었다고 하네요. 마치 인천의 동인천과 유사한 느낌이었습니다. 실제로 저희 부모님 세대때만 하더라도 지인들과 약속장소는 무조건 수도권 1호선 동인천역 인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천시의 권역이 내륙쪽으로 점차 확장하면서, 동인천의 상권은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팔달문 상권도 수원시가 점점 커지면서 쇼핑 수요는 수원역 인근의 AK플라자와 롯데몰이, 젊은이들의 유흥은 인계동 쪽으로 다 빠져나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2014년 그 시절에도 이 곳이 그저 쇠락한 옛동네의 황폐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폐교한 신풍초등학교 북쪽 동네는 오래된 주택가임에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 평화롭고 일상적인 거리의 풍경이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들은 예쁜 벽화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상가의 외관과 간판들은 잘 정비된 상태였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골목에는 작지만 특색있는 가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앞서 벤 윌슨 '메트로폴리스'에 따르면 부동산 투자의 적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때 살 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투자자는 한 명도 없다지만, 저는 실제로 그 때 돈만 있다면 이 곳에 집을 사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에는 예쁜 카페들도, 힙한 로드샵들이 즐비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그야말로 동네 자체가 아름답고 평화로웠습니다. 물론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그럴만한 돈이 있을리가 없었지만요.
2021년 현재, 행궁동 북쪽 지역은 현재 '행리단길'로 불리며, 그 어떤 곳보다 젊고 힙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오래된 집을 최신 트렌드에 맞게 개조하여 데이트 장소로 적합한 예쁜 카페와 식당들이 매일같이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밤에 가면 수원화성 성곽의 조명과 성곽을 따라 자리잡은 카페들의 야경은 놀라운 조화를 이뤄 더욱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잘 되고 싶은 이성이 있다면, 무조건 밤에 이곳에 오면 없던 사랑도 생기겠구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의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입니다. 전국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도시재생 사례일 것입니다. 이 동네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주말에는 매우 혼잡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적어도 '아직까지는' 힙함과 동네 특유의 고즈넉한 평화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욱 몰려 특유의 분위기가 희석되고, 자본력이 힘이 강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지금보다 더 심화된다면, 이 동네만의 특유의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완벽히 극복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하지만 이 곳만큼은 예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행궁동의 카페
행궁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을 풀어낸 창작 뮤지컬도 있습니다.
행궁동 남동쪽에는 매체를 통해 여러번 소개된 수원 통닭거리가 있습니다. 통닭이 거기서 거기일 것 같지만, 의외로 각 통닭집별로 특색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곳은 '진미통닭'입니다. 이 집 통닭의 특징은 크리스피하지 않은 완전한 옛날식 통닭으로, 성인 남성도 1인 1닭이 어려울 정도의 정말 많은 양과 '겉바속촉'에 충실한 튀김에 있습니다. 서비스로 주는 닭똥집은 먹다 보면 물릴 법한 튀김음식의 단점을 훌륭히 상쇄시켜 줍니다. 최근 이 동네가 더 핫해진 이유는 2019년 개봉작 영화 '극한직업'에서 나온 '수원왕갈비통닭' 덕분입니다. '남문통닭'이란 업체에서 개발한 메뉴로 알려져 영화가 한창 흥행했던 시절엔 이 곳의 웨이팅이 정말 길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구역의 터줏대감들은 족히 40년은 넘은 매향, 용성, 진미통닭인데 이처럼 '남문통닭'외에도 각종 신흥 업체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코 '고인물'들이 호갱님들만 기다리는 지역이 아닌 치열한 경쟁의 장입니다. 참고로 영화 촬영지는 이 동네가 아닌 것이 약간의 함정입니다. 영화는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한 인천광역시 동구 배다리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 지역엔 통닭 거리라고해서 통닭 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 각종 오래된 노포 맛집들이 깔려 있으며, 더 남쪽으로 지동교를 넘어가면 '지동순대타운'도 위치해 있습니다. 그야말로 입이 심심할 틈이 없는 동네입니다.
영화의 힘! 남문통닭의 긴 줄. 하지만 저의 최애는 진미통닭입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주변에 KBO리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흔하지만 K리그를 좋아하는 사람 찾기는 힘듭니다. 유럽 축구팬들보다도 더 찾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국내 축구 인기가 예전만 못한다 하더라도, 왕년에 '축구 수도'라 자부했던 수원에서 만큼은 예외입니다. 수원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팬들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상당히 오랫동안 팬심을 유지해 왔으면서 직관률도 높은 충성도가 강한 팬들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과거 전국구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채 초중반 시절에 유입되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 때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창단되기 전이라 인천에서 수원까지 아버지 차를 타고 블루윙즈를 보러 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만큼 당시 블루윙즈는 초인기 구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모기업에서 투자를 줄이면서 지금은 확실히 관심도가 현저히 낮아졌음이 느껴집니다. 2015년에 창단한 야구단 kt wiz의 영향도 클 것입니다. 그래도 최근엔 '매탄소년단'이나 돌아온 권창훈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다시 모이면서, 서서히 관심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K리그 1에 2개의 팀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연고지인 만큼 수원시가 다시 '축구 수도'의 위용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수원시의 면적이 좁기 때문에, 수원 삼성의 홈구장인 빅 버드와 수원FC의 홈구장인 수원종합운동장의 거리는 정말 가깝습니다. 차를 타고 운전하다보면, 양 팀의 홈구장이 금방 나타납니다. 상암과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FC서울과 서울 이랜드와는 아주 다른 케이스입니다. 이처럼 국내 축구 열기만 잘 올라온다면 더비 매치가 흥행할 요소도 충분히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로 10분 안쪽 거리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수원FC의 홈구장
경기 남부 도시들의 특징이라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린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아파트 단지와 대형마트 위주의 신시가지가 많은 만큼 지역 토박이들이 상당히 적은 편입니다. 여기에 유일한 예외인 도시가 바로 수원입니다. 서울과 독립된 도시의 역사가 긴 만큼 많은 수원 토박이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나온 수원 토박이들은 지역에 대한 애향심과 수원시만의 독특한 문화들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이러한 지역민들의 애향심이 다른 인근의 경기 남부 도시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원만의 독특한 색채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경기 남부로 이주하려는 제 또래들에게 그 연령대에서 주로 선호하는 인근 신시가지들 보다는 항상 수원을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인 사유로 회사 기숙사 생활까지 합하면 약 7년을 살아온 수원을 현재는 떠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수원에 대한 애정은 마음속에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제 2의 고향과 같은 수원에 다시 살게 될 날이 있을 것을 기원하며, 도시이야기 수원시 시리즈를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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