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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1/12 18:09:16
Name 글곰
Subject [일반] 그 중년, 청년을 만나다
한 중년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도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세상이 만만해 보였지요. 모든 세상을 내 발밑에 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그는 거침없이 세상으로 뛰어나왔습니다. 가진 건 쥐뿔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건대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내로라하는 부하직원들과 함께 사업을 크게 벌이기도 했습니다. 중소기업치고는 돈도 꽤 벌었죠. 그러나 세상 살아가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세상에는 참 금수저도 많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수천억에 달하는 자들이 남자의 머리꼭대기에 서서 남자를 내려다보며 비웃었습니다. 그럴 때면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꼈습니다. 한때 그의 아래에 있던 유능한 인재들이 하나 둘 대기업으로 떠나갈 때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홀로 술잔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
그래요. 남자는 이제 동네에서 조그만 슈퍼 하나를 운영하는 동네 아저씨일 뿐입니다. 높은 직위에도 올라 봤고, 한때는 업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끗발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비록 사장님 소리를 듣지만 직원 두 사람뿐인 구멍가게 사장일 뿐이죠. 직원 하나가 출근하지 않으면 사장이 직접 카운터를 봐야 하는 그런 가게 말입니다. 그나마도 먼 친척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공사판에서 노가다라도 뛰어야 했을 겁니다. 한때 잘나갔던 그의 회사는 이미 부도나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야망이 있었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잘 나갈 것이라는 야망이요.

사람들은 남자를 비웃었습니다. 이보쇼. 당신 나이를 생각하쇼. 당신이 아직도 이십대 젊은이인줄 아쇼? 처자라도 굶기지 않으려면 지금 슈퍼나 잘 운영해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요즘 세상에 무슨 야심이고 무슨 얼어죽을 야망이요?

그래. 그렇지. 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이었으니까요.
꿈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는 당장 먹고 살기에 바쁜 중년 남자일 뿐이었습니다. 자신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어느 날, 남자는 한 젊은이의 소문을 듣습니다. 그보다 스무 살이나 젊은 청년이었죠. 남자가 사회에 나와서 한참 사업을 벌일 때 겨우 부모님 밑에서 유치원이나 다녔던 그런 나이입니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 학위도 땄지만 아직 취업을 못해서 백수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저 청년 언젠가는 큰일을 할 거야, 하고요.

남자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대체 어떤 청년이기에 백수 주제에 저렇게 평이 좋은가? 대학은 그럭저럭 좋은 데를 나온 모양이지만 무슨 아이비리그 출신인 것도 아니고, 박사논문도 꽤 잘 쓴 모양이지만 그래봤자 별 볼 일 없는 경영학과 출신인데 말이죠. 요즘 세상에 경영학과 졸업한 사람이 한둘입니까 어디.

그래서 어느 날, 남자는 슈퍼 문을 잠시 닫아 두고 청년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청년을 만난 순간 남자는 보았습니다. 이십 년 전의 자신이 맞은편에 앉아 있음을. 세상에 대한 야망에 불타고 있는, 언젠가 세상 모두를 내 발밑에 두겠다는 야심에 찬 자신감 넘치는 젊은이의 모습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남자는 결심했습니다. 내 남은 인생을 이 젊은이에게 걸어 보겠다고.





그렇게 유비는 제갈량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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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오스
17/01/12 18:15
수정 아이콘
야. 너 만나기 힘들다?
요슈아
17/01/12 18:22
수정 아이콘
(우당탕탕 쨍그랑 소리 사이 사이 가죽 두드리는 소리)
폭력적인 장면을 대체해봤....음?!
17/01/12 18:20
수정 아이콘
그렇게 침대에서 같이 자는 사람이 한명 더 늘어나고
17/01/12 18:22
수정 아이콘
-어머 왜 이러세요!
-헤헤. 잠시면 돼. 잠시 등짝을 확인해 볼 게 있거든.
17/01/12 18:22
수정 아이콘
조작임. 암튼 조작임.
AngelGabriel
17/01/12 18:23
수정 아이콘
문제는 만나는 과정이...(?!)
17/01/12 18:25
수정 아이콘
아저씨 지금 미청년보고 하악댈 때가 아니에요 당신네 구멍가게 직원 자질논란으로 밑에서 난리가 났다구요!
17/01/12 18:26
수정 아이콘
이래저래 단점도 많은 친구지만, 또 그만큼 믿을 만한 친구도 없더이다. 그러니 너무 그러지들 마시구랴...
17/01/12 18:27
수정 아이콘
아, 저 아조씨 구질구질하게 왜 이래
17/01/12 18:29
수정 아이콘
인기척이 있어서 벨을 여러번 눌러봐도 청년이 방문을 걸어잠그고 나오질 아니하자
가스통을 들고와서 불을 붙이기 시작하는데..
행운유수
17/01/12 18:33
수정 아이콘
청년은 낯선 중년 남자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며 오늘도 노량진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탑니다.
안토니오 산체스
17/01/12 18:37
수정 아이콘
그렇게 둘이서 수퍼를 운영하다가 대기업한테 무너졌다고 합니다..
AngelGabriel
17/01/12 18:38
수정 아이콘
몇번은 대기업 지사 정도는 M&A 했었어요!!!

다시 다 뱉어내서 그렇지.(......)
17/01/12 18:44
수정 아이콘
서주마트, 예주마트... 대형마트 사장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근데 두 번째 건 거의 명예사장 같은 거라서 실권은 없었다지요.
변태인게어때
17/01/12 18:57
수정 아이콘
아닙니다 그래도 중소기업까진 됐습니다 흐흑.
마프리프
17/01/12 18:38
수정 아이콘
제갈량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열정페이로 골수까지 쪽쪽 빨리다가 과로사하는 결말이란게 피눈물이 ㅠㅠ 30년동안 회사에 몸바쳤더니 오너가 유선이야 히이익!!!
엘케인82
17/01/12 18:52
수정 아이콘
그보다는 좀 똘똘해보이는 애를 키워볼려다 그놈의 등산취미때문에 회사의 명운을 건 프로젝트가 나가리 되었을때 더 피눈물이 나올겁니다.
변태인게어때
17/01/12 18:55
수정 아이콘
아 진짜 산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는 버릇 고쳐야 합니다...제가 그래서 등산을 안합니다 흐흐
강동원
17/01/12 19:24
수정 아이콘
이런 애들이 크면 꼭 주말에 단합대회 한다면서 직원들 다 끌고 산 정상에 올라가서 한다는 말이
'어때? 역시 산에 올라 오니 상쾌하지?'
'다음에 또 오고 싶지 않나?'
'내려가면 술 한 잔 하고들 가야지? 그냥 가면 산이 섭섭해~'
AngelGabriel
17/01/12 19:33
수정 아이콘
팩폭 자제요!!!

- 강제로 회사에서 마라톤 참가해서 2개월 연습하고 완주한다고 지옥을 봤던거 생각하면...아오...
변태인게어때
17/01/12 18:54
수정 아이콘
그리고 저 젊은이는 늙은 중년이 던진 이릉대전이라는 똥을 치우다 그만.....
17/01/12 18:59
수정 아이콘
그렇게 백수청년을 데리고 알짜배기 중소기업 오너 차리를 꿰차 대기업 말석 즈음까지 키웠지만, 평생 함께해 온 최측근 직원에게 내 준 계열사가 경쟁 대기업에 집어삼켜짐. 그리고 자존심빼면 시체였던 최측근은 이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와 형동생하던 다른 최측근도 술퍼마시고 부하직원 폭행하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사망. 이에 복수심에 불 탄 중년아저씨는 경쟁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본사와 전 분야 계열사를 쏟아부어 총력전을 벌였지만 다 말아먹고 수많은 유망주 사원들이 정리해고, 퇴사함. 그리고 창업주 아저씨는 실패의 충격으로 몸져 눕고 결국 사망.
창업주의 유지를 이은 청년은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점점 확장세를 잃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국내 서열1위 대기업이 보유한 한중이란 회사를 차지하여 이를 통해 서열1위 대기업 핵심 계열사인 장안까지 노리는 대전략을 수립한다. 이 계획에 프로젝트 북벌이란 이름을 붙인 그는 창업주의 아들이자 현재 오너인 2세 회장에게 출사표를 내는데...
17/01/12 22:26
수정 아이콘
마치 부기영화 한줄 요약을 보는 듯 하군여! 추천!
Agnus Dei
17/01/12 19:01
수정 아이콘
세번 뺑뺑이 치게 만든 대가로 그 청년은 사장이 죽을 때까지 죽어라 일해야했고 그후에도 사장 아들 뒷바라지 하다가 과로사했다고 한다.
17/01/12 22:30
수정 아이콘
과로사 할 즈음 오장원에서 혜성이 나타나고 몸이 바뀌게 되는데.
17/01/12 19:04
수정 아이콘
유비도 군사참모진 운이 늦게트였죠.. 간손미는 외교,내정형 인재였고.. 서서는 좀 키워보려니 뺏기고..

그뒤 방통,법정은 정말 더할나위없는 참모진인데 그들도 수명이...
난이미살쪄있다
17/01/12 19:17
수정 아이콘
지금 조아라에서 삼국지 관련 소설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글이 확 와닿네요!!
17/01/12 19:22
수정 아이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만화에서 나온것처럼 제갈량이 꽃미남 과 인가요?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7/01/12 19:51
수정 아이콘
손상향 만난 부분부터 전 이 양반 안티하기로 했어요
새벽포도
17/01/12 20:11
수정 아이콘
그 청년, 중년을 만나다

----------

제 앞에 한 중년 남자가 있습니다.

그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겁니다. 그 때는 세상이 만만해 보였겠지요. 그런데 지금의 그는 어딘지 모르게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반평생 노력하며 작은 기업을 하나 꾸렸다는데 인재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보고 도와달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의 눈빛이 부담스럽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저는 애초에 중소기업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로라하는 친구들을 제치고 명문대를 수석졸업했고 친구들 중에
가장 빨리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엔 이미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금수저들로 넘쳐나서 제가 들어가기엔 쉽지 않았습니다.
기약없는 백수생활이 길어지자 대기업은 아니지만 나름 탄탄한 중견기업을 다니는 형님이 자기 회사에 이력서를 넣으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초라해짐을 느겼습니다. 한때 저의 아래라 생각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대기업으로 들어갈 때면 저는 자괴감에
집을 떠나 며칠씩 피시방을 떠돌다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이제 동네에서 츄리닝입고 피시방이나 드나드는 백수일 뿐입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을 정도로 동네에서는
가장 끗발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저그런 평범한 사람일 뿐이죠. 동네마다 한둘은 있을 법한 그런 백수 말입니다. 그나마도
중견기업 다니는 형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공사판에서 노가다라도 뛰어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여전히 야망이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는 잘 나갈 것이라는 야망이요.

사람들은 저를 비웃습니다. 이보쇼. 당신 나이를 생각하쇼. 당신이 아직도 명문대 출신의 촉망받는 젊은이인 줄 아쇼?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편의점 알바라도 하쇼. 쓸데없는 야망 내려놓고. 요즘 세상에 무슨 야심이고 무슨 얼어죽을 야망이요?

그래. 그렇지. 저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이었으니까요. 꿈이고 나발이고 간에 저는 당장 먹고 살기를 걱정해야 하는
백수청년일 뿐이었습니다. 저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어느 날, 저는 한 중년 남자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사람이었죠. 제가 겨우 부모님 밑에서 유치원이나 다녔을
그런 나이에 그 남자는 사회에서 첫 사업을 벌였을 그런 나이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른이 되는 세월동안 그는 아직도 동네 구멍가게
사장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러더라구요. 저 사람 언제쯤 큰 사업을 할 건지, 하고요.

저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20년 넘게 사업했는데도 아직 동네 편의점 하나를 겨우 꾸려간다는 걸까...
그것도 동네 구멍가게에 쓸데없이 직원을 둘씩이나 채용해서 형동생하며 지내는데 그 직원들도 보통은 아니더군요.
조폭 두목이라해도 믿을 정도의 인상입니다. 암튼 요즘 세상에 경영학을 아무리 몰라도 조그만 구멍가게에 직원을 둘씩이나 채용하다니...
그런데 그런 그 남자가 조폭같은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요근래 저희집을 두번이나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마침 저는 피시방에 가 있어서
마주치지 않았지만 왜 저를 찾아온 걸까요... 혹시 저번에 제가 그 편의점에서 직원들 몰래, 천하3분찌개를 전자렌지에 4분이나 돌렸는데
그거 때문에 전기요금이 많이 나와서일까요...

아무튼 이 일을 잊고 지내던 어느 날, 경영학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삼국지 게임을 정신없이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저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난 순간 저는 보았습니다. 이십 년 후의 저의 미래가 맞은 편에 앉은 편의점 사장이라는 것을.
세상에 대한 야망에 불타고 있는, 언젠가 세상 모두를 내 발밑에 두겠다는 야심에 찬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편의점 야간 알바를 구하려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 남는 시간을 이 편의점 사장에게 걸어보겠다고.
카루오스
17/01/12 20:36
수정 아이콘
근데 '세번이나 와서 겨우만나네'라고 하면서 저를 갈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그때부터였을까요? 제가 흑화하기 시작한게...
동원사랑
17/01/12 20:42
수정 아이콘
천하는 자기 힘으로 얻는거죠 순 도둑놈심보.
17/01/12 21:06
수정 아이콘
작성자 안보고 글부터 읽었습니다만 마지막 한줄로 글곰님이실거라 생각했습니다.
'출사' 잘 읽고 있어요. 열심히 결제하고 있으니 더욱 연재에 매진하시길!! 크크
물리쟁이
17/01/12 22:43
수정 아이콘
잘되길 바란다고 댓글 적을려고 했는데 유비와 제갈량에 빗댄 팬픽인지 본인 얘기신지 @_@ 헷갈려서... 잘 읽었습니다!
17/01/13 17:36
수정 아이콘
전 다행히 삼십대 중반밖에 안 됩니다. :)
17/01/13 02:13
수정 아이콘
출사 잘 보고 있습니다 크크 장르는 분량이 쌓여야 읽기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점점 탄력받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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