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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2 14:18
화웅, 문추, 안량 등 A급 맹장을 한방에 보내버린 것만 해도 관우의 임팩트가 다른 장수들에 비해서 낮지 않지 않나요?
이런 네임드 장수를 일기토로 거의 1합만에 쓰러뜨린 장수를 1명 죽인 것만 해도 찾기 어려운데.. 물론 문추, 안량은 적토마빨이 큰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17/01/12 17:21
저도 낮지 가 맞는거 같은데요.
낮지 않다 니까 높다 라는 뜻이니까요. 낫지 않다면 모자라다가 되구요. (넘나 헷갈린 한국어. 크크크)
17/01/12 14:20
전 관우 무력 정도는 둘째치고...대체 왜 중국에서 그정도로 인기가 있는지 의문입니다.(신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솔직히..연의에서 관우만큼 멋있는 캐릭터는 그밖에 많이 있고...무력 순위도 마찬가지인데...
17/01/12 15:00
관우가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연의에서 멋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방송을 얼핏봐서 잘 기억은 안나는데 뭔가 상거래할 때 민간 풍습에서 미신으로 관우를 사용(?)했는데, 그게 내려오다 신격화 된 것으로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17/01/12 15:05
관우의 고향이 소금 판매로 유명한 곳이고, 소금 상인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관우 신앙을 퍼트려서 이렇게 유명해졌다는 설이 있지요.
17/01/12 15:09
관우는 비명에 죽은 직후부터 형주와 하동군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사당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민간에 인기가 있고 좋지못하게 죽으면 신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17/01/12 15:13
무속신앙에서는 한이 남아 있어야 이 세상에 계속 떠도는 신이 되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습니다.
최영 장군이 한국사 무장 원탑이냐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하겠지만 무속에서는 떠받들 듯이요.
17/01/12 15:22
또 다른 이유로는 역대왕조가 충의를 강조하기 위해 조금 더 신격화시킨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백성들아 말 잘들어라. 우리에게 충성하고 배반(반란)하지 말거라. (관우처럼)
17/01/12 14:20
아무리 관우가 잡은 장수들이 맹추들이 많다고 해도 연의에서의 관우의 무용은 당연히 정사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죠. 문제는 그 과장된 정도가 관우 정도면 양반 수준이 아니라 거의 밑바닥 수준이라는점...
즉 정사의 관우의 무용이 사냥개라면 연의에선 호랑이처럼 묘사를 해놓았기에 마치 상당히 띄워준것 같지만 현실은 정사에선 사냥개가 가장 센 동물이었으며 호랑이 같은건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연의에선 개나소나 다 호랑이 늑대 사자 표범 살모사로 묘사해놓기에 상대적으론 너프된 느낌... 어쨌든 연의에서의 관우의 무용도 충분히 멋지고 다른 등장인물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맹추들만 원샷에 잡고 은가이 찌질찌질댄 이미지는 결코 아님.
17/01/12 16:44
사실 관우 정도면 장수로서의 클래스 말고 순수한 무의 클래스만 치면 최상위일겁니다.
청룡님이 자세히 쓰시진 않았지만 삼국시대 바로 이후 남북조때도 맹장들을 묘사할때 관우 장비 같았다, 관우 장비에 비했다 같은 말이 맨날 나올정도로 '스타' 였지요. 민담들과 연의 등으로 거품빨 받기 전에요. 청의 고증학자 조익이 이십이사차기를 쓸 때 한 파트를 따로 할애해서 증거들을 구구절절히 설명해놓았을 정도입니다.(아마 청대쯤 오면 청나라 사람들도 '관장 거품빨 받은거 아님?'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조익이 아니거든? 하면서 막 써놓은 듯...)
17/01/12 17:20
하긴 청나라때면 거의 천오백년 전 사람들이니 재평가 얘기가 나올만도 하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관우,장비나 청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우, 장비나 까마득하게 옛날 사람이라는건 별반 차이 없으니까요.
17/01/12 14:59
무기 현질 안하고 다이다이 능력치는 저게 맞을겁니다. 2부터 13까지 해봤어요. 대체적으로 큰변화없이 저정도 수준이더라구요.
청공검, 명운검, 언월도, 방천화극, 장팔사모, 짱똘, 벽돌 이런거 없이 케이지안에서 싸움하면 저거임. 아무튼 저거임.
17/01/12 14:33
자신의 무용만 뛰어났지 큰 비가 내려 운이 따라 이긴 거랑 안량 베어서 조조에게 이득 준 것 빼면 패배와 항복의 반복이었을 뿐인데 이렇게 과대평가되고 거대 동상도 지어졌던 이유는 관우의 사대부(귀족 계층)을 무시하고 아랫 사람들에게 잘 대해줬던 성품과 주군에 대한 충성때문이죠.
전자로 인해 민간 신앙에서 대접이 좋았고 후자로 인해 후대 왕조에서 프로파간다로 써먹으며 점점 더 계속 띄워줬죠. 군을 이끄는 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은 바닥 급인데 군재가 좋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조조, 주유, 여몽 등의 진짜 명장과 비교하면 패장에 불과할 뿐이죠. 이렇게 과도하게 띄워지는건 거품이 맞고 매우 이상해 보이네요. 삼국지만 파시는 것 같은데 앞 시대인 전한, 후한의 명장들과 뒷 시대인 (진 - 5호 16국/동진 - 남북조시대) 명장들과 비교해도 관우는 보잘 것 없죠. 그냥 삼국지만 미친듯이 파다보니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고 인물을 평가하는게 결여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7/01/12 14:37
군재가 바닥이라 하기엔 관우가 형주에서 군 일으켰을때 위랑 오가 손 잡고 관우 잡을려고 총출동한 멤버들 보면 군재바닥이란 말 못할겁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동시대 비교지 다들 난다긴다해봤자 한신 출동하면 깨깽하는데 다 아무 의미 없죠.
17/01/12 14:41
한신도 한족 한정이지 유방따라서 흉노원정갔다면 흉노의 묵돌(혹은 묵특)에게 대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신 말고도 명장은 많죠. 무조건 한신이 최고다 이런 것도 저는 반대합니다. 꼭 관우라서 위랑 오가 손잡고 총출동한게 아니죠. 형주가 중국 가운데에 있던 땅이고 오 입장에서는 차지하면 방어도 더 쉬워지는 등 이점이 많은 땅이었습니다. 위 입장에서는 관우가 아니어도 다른 촉의 총사령관이 출동했어도 같은 멤버들 총 출동시켰을겁니다. 수도랑 가까우니까요.
17/01/12 14:46
그러니깐 결국 동시대 비교지 딴 시대 사람 글고 와봐야 의미 없다는겁니다.
한신도 흉노원정 갔다면 대패했을 수도 있다 이런 가정 들어가면 님이 생각하는 다른 시대 명장들도 삼국시대 갖다놓으면 관우한테 목 잘렸을 수도 있다라고도 말 할수 있습니다.
17/01/12 14:50
동시대 비교라고 해봤자 관우는 바닥입니다. 개인 무용이 뛰어난 것 이외에 높이 평가할 것은 거의 없습니다.
우금의 칠군이 홍수로 인해 수몰되어 이긴 것 밖에 없죠. 안량 벤 것이야 개인 무용이구요. 딱 한번의 승리로 모든 평가를 최상으로 놓는게 이상한거 아닌가요? 그 이전이나 이후는 패배밖에 없는데요.
17/01/12 14:39
손권이 관우를 주살한 후에 문제는 조칙을 내려 모든 신하들에게 물어 유비가 관우를 위하여 오나라에 보복하려는지 않으려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모두들 논의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말했다.
“촉나라는 작은 나라일 뿐이며, 명장(名將)으로는 오직 관우만 있었습니다. 관우가 죽고 군대는 무너졌으며, 나라 안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다시 출동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 정사 유엽전 ====================================================================== 능력 바닥 급인 관우를 명장이라 평가한 위나라 신하들 1패 관우는 용맹하여 전쟁을 잘하므로, 승기를 잡아 진군해 오면 반드시 근심이 될 것입니다. - 정사 온회전 ======================================================= 온회도 1패 유비에게는 영웅의 명성이 있고, 관우와 장비는 둘다 능히 만 명의 적을 대적할 수 있는 맹장이니 - 정사 정욱전 ============================================== 정욱 너도 1패 곽가가 태조(조조)에게 말했다.“유비는 웅재(雄才)가 있고 뭇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얻고 있습니다. 장비(張飛)와 관우(關羽)는 모두 만인지적(萬人之敵, 만 명에 필적할 만한 인물)으로 그를 위하여 사력을 다합니다 - 정사 곽가전 =========================================================== 곽가도 1패 적립
17/01/12 14:49
왜 이리 개행을 많이 하시는지요? 가독성 심히 안좋습니다.
안량 베어서 명성 높아졌고 조조가 그에 대해 높이 평가하자 동시대 사람들도 과대평가를 해서 저런 말을 했다고 봅니다. 개인의 무용은 뛰어났던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만 공적을 보면 패배만 있는데 이건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보게 되네요. 모든 사람들이 관우를 칭송한 것도 아니고, 요립같은 촉의 인물은 평가절하했죠. 온라인 촉빠들은 요립이 모두까기 시전하다가 나온 말이라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데 전혀 근거도 없이 말도 안되는 지어내기를 하면 아무도 그 말에 신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해서 말했을 거라고 봅니다. 저런 평들은 대부분 관우가 오에게 사로잡혀 죽기 전에 했던 평이니 이후 관우의 죽음 후의 평가가 더 낫겠죠.
17/01/12 14:54
붙여쓰면 헷갈려서 더 가독성 안 좋을까봐 그런겁니다. 알아서 보세요.
동시대 사람들이 과대평가를 했다는 '추측성' 발언 말고 사료에 근거한 팩트를 원합니다. 관우를 깎아내린 요립의 평가는 맘에 드니 믿겠다는거고, 관우를 호평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모조리 과대평가라고 몰아붙이는 걸로 밖에 안 보입니다. 관우의 군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생전 평가는 못 믿겠고, 정작 형주공방전의 진행과정을 제대로 지켜보지도 못했을 요립의 죽음 후의 평가만 믿을만하다는건 무슨 이중잣대인지 모르겠고요.
17/01/12 15:00
동시대 사람의 인물 평가보다 그 사람의 전투에 임한 결과를 훨씬 더 중요시 하는데 칠군 상대로의 승리 이외에는 모두 패배를 했으니 당연히 낮춰서 보는거죠.
동시대 사람의 평가보다는 그사람의 전투 결과로 군사적인 면을 평가하겠다는데(인물 성격 등 관우의 다른 부분이 최악이었다고 전 말한적이 없죠.) 이게 이상한 것인가요? 개인 무용빼고 자신이 군대를 이끌고 통솔할 수 있는 위치에서의 전투 결과를 논해 보죠. 1. 하비의 수비를 맡았다가 조조에게 항복한다. 2. 주유가 남군을 공격할 때 문빙, 악진에게 깨지고 조인의 퇴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이통이 포위망을 뚫고 조인을 구출한다. ->문빙, 악진에게 패배하고 퇴로 차단 임무 실패 3. 익양대치에서 관우는 도강을 시도했으나 감녕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단념하고 관우뢰를 설치한다. ->도강 임무 실패 4. 번성에서 수해에 빠진 7군을 궤멸시켜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참살했다. => 유일한 승리 5. 오랜만에 관우가 서황과 대면하여 사담을 나누는데 갑자기 서황이 관우 공격을 명하자 관우는 놀라고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서황과 번성 내부의 협공에 밀려 번성 공략에 실패했다. ->번성공략 실패 6. 동시에 여몽의 심리전으로 군대가 와해되어 맥성에 고립, 거짓 항복 후 탈출을 시도하다 생포되어 처형된다. -> 사망 전 이런 결과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군사적인 부분을 평가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17/01/12 15:04
사마염은 자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친정을 한 적 없으니 군사적인 부분을 평가할 수가 없죠. 전적이 0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17/01/12 15:11
폐하께서는 신무(神武)의 자태로써 하늘의 안배를 받아 오림(烏林 ; 적벽)에서 조조를 무찌르고, 서릉에서 유비를패배시켰으며, 형주에서 관우를 붙잡았는데, 이 세 명의 적은 당대의 영웅호걸이었지만 모두 그 예봉을 부러뜨렸습니다. 폐하께서 성스러운 교화로 어루만지자, 만 리 안의 백성들은 바람이 풀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중원을 평정시키고 통일 대유(大猷)를 실현 시킬 때인 것입니다.
- 육손전 - 죽은이후의 평도 영웅으로 일컬어지고 있어요.
17/01/12 15:14
써놓고 보니 맨 위의 "명장(名將)으로는 오직 관우만 있었습니다." 라는 위나라 신하들 대부분의 평가부터가 관우가 죽은뒤의 평가네요.
오나라에 사로잡혀 죽은 관우를 촉에서 유일한 명장이라 평가하는 위나라 신하들의 안목을 의심하면 됩니까? 군재가 바닥인 사람을 명장이라 부르다니 위나라 평균 군재가 대체 얼마나 처참한 겁니까?
17/01/12 15:38
그게 어떻게 합리적입니까;; 그럼 원균이 조선 수군 다 말아먹은 칠천량 해전과, 오천 결사대로 중과부적인 백제의 계백이 나당 연합군 상대해서 선전하다 결국 패한 황산벌 전투도 다 "진 싸움"이니까 동급인가요?
오히려 현대 시점에서는 전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세세히 알기 어렵고, 이 경우 당대인들의 평가를 보는 게 훨씬 정확합니다.
17/01/12 15:41
단순히 승패만으로 평가를 내린다고 한 적 없는데요? 전투 안에서의 활약도 별로였으니 하는 말인데요.
혼자 수백명을 쳐죽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배했다 이런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디테일이 있으면 당연히 디테일도 보고 평가를 하는거죠.
17/01/12 15:59
"동시대 사람의 인물평"보다 "다 나와있는 전투 결과"를 더 중시하신다는 게 이해가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우선 당대의 전투에 대해서 지금의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나요? 단순히 어떤 전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다 파악이 되지 않는 데다, 그 "남아 있는 전투 결과"라는 것도 전체 병력 숫자와 구성, 이동 경로 등등 제반 사항이 근대의 전쟁/전투사 수준에도 못 미치게 남아 있죠. 그에 비하면 동시대 사람의 인물평이 훨씬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근거 있는 사료가 됩니다. 심지어 그런 평가를 내린 인물들이 위의 사람들, 즉 위의 중신들이나 유비, 곽가라는 지점은 더욱 근거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까놓고 말해 오늘날의 사람들은 부족한 사료와 알량한 한문 독해 능력으로 당대의 정황을 "흥미 위주"에서 파악하고 평가하지만, 관우에 대해 평가한 사람들은 그를 직접 기용하고 장군으로 쓰거나, 혹은 적으로 상대하고 격파해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즉 "자기 삶과 목숨을 걸고" 대해야 했던 인물이죠. 만약 잘못 평가한다면 자기 세력과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흥미 위주로 떠드는 저희들과는 필요성과 절박함부터가 다르고, 또 당대인인 만큼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도 차원이 달라요. 그런 사람들, 심지어 삼류도 아니고 당대의 명사들(유비, 곽가, 위의 중신들)이 평가한 결과가 "명장", "맹장", "용맹한 자", "만인지적"인데, 그걸 무시하고 전투 결과를 더 중시한다고요? 그것도 전부 내용이 파악되지 않아서 부정확하거나 부족한? 황당한 소리죠.
17/01/12 16:05
제 의견은 아래 댓글에서 의견 개진 중이신 Jace T MndSclptr님과 정확하게 동일하니 저 분의 댓글들을 읽으시면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https://pgr21.com/?b=8&n=69964&c=2817426 https://pgr21.com/?b=8&n=69964&c=2817398
17/01/12 16:08
특수문자 님// "자신의 무용만 뛰어났지 큰 비가 내려 운이 따라 이긴 거랑 안량 베어서 조조에게 이득 준 것 빼면 패배와 항복의 반복이었을 뿐인데"
"군을 이끄는 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은 바닥 급인데 군재가 좋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첫 댓글에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은 지세요.
17/01/12 16:13
SEO2015 님// 무슨 책임을 지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제가 할 말은 딱 이것 뿐입니다. Agnus Dei 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군재가 바닥이라고 말한 부분을 수정한 것입니다. ============= 그냥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발언을 수정하죠. 군재가 바닥 -> 군을 통솔하는 입장에서는 딱 한 번 이기고 나머지는 모두 패배로 기록한 군재를 가진 사람
17/01/12 16:19
특수문자 님// 아니, 이렇게 수정해야죠.
현존 사료상 군을 통솔하는 입장에서는 딱 한 번 이기고 나머지는 모두 패배로 기록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상대했던 당대의 명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 따라서 군재가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7/01/12 16:23
SEO2015 님// 저는 당대 명사건 뭐건 동시대 인물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왜 제가 SEO님 입맛에 맞도록 의견 표명을 해야하나요? SEO2015님만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17/01/12 16:24
SEO2015 님// 아니, 생각해 보니 이 발언도 이상하네요.
"딱 한번 이겼다"라는 게 위의 6~7가지로 나온 전적 정리에서 나온 말 같은데, 사실 여기엔 정확한 기준도 없네요. 몇몇 전투의 구분이나 흐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조차 애매해요. 군 통솔 전체를 맡았을 때 실패했다고 쓰면 되지, 딱 한번 이겼느니 하는 말은 필요없을 것 같군요. 심지어 저 밑에 댓글을 보니 관우의 패배는 평생 3번 뿐이었다고 하는 말도 있네요? 결국 전공 가지고 폄하하는 것도 근거가 부실하거나, 이견이 존재하는 사안이군요.
17/01/12 16:25
특수문자 님// 입맛에 맞는 의견 표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게 "객관적이거나 논리적이지는 않다"는 거죠. 이 점은 위의 분들이 모두 지적하는 사항이고요.
이 점에 불복하신다면 자기 의견을 남한테 내보이지 않으시거나, 혹은 "주관적인 의견"임을 명확히 하시면 됩니다. 그러지 않으시니 이렇게 반발하는 의견이 많은 거지요.
17/01/12 18:24
SEO2015 님// 그거야 저도 관우 옹호하는 분들을 똑같이 생각하는데요.
어떠한 군공의 뛰어남없이 동시대 인물들의 평가만 중요시해서 고평가하는게 저는 딱 이종범 팬들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양준혁보다 낫다는 그런 빠심으로 밖에 안보이거든요. 저야 중국삼국시대의 어떠한 인물에게도 좋아하는 마음이나 싫어하는 마음 전혀 없고 그냥 중국 역사의 일부로 접근하고 있고 그 전시대인 전한, 후한과 뒷시대인 진, 오호십육국/동진, 남북조시대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고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들을 정확히 평가하려면 전후 시대의 인물들과 평가해야 맞다고 생각하는데 꼭 삼국지 팬들은 삼국지 시대 내에서만 한정해서 장수가 명장이니 아니니 하며 도토리 키재기를 하더군요. 당연히 그 인물이 어느 정도의 인물인지 비교하려면 앞시대나 뒷시대와 비교해야한다고 보구요. 관우는 한국에서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마원이나 석륵, 탁발도 등과 비교해도 걍 저리 찌그러져 있어야 할 수준인데 꼭 삼국지 팬들은 삼국지 시대내에서 누가 낫니 하며 도토리 키재기만 하고 삼국지 시대에만 매몰되어 논의 하니 그게 황당할 뿐이죠. 걍 님 의견은 그냥 님 의견대로 가지고 있으세요. 제가 님에게 제 의견을 강요하기라도 했습니까? 제 의견에 반발해서 니 의견 틀렸다고 주장하며 바득바득 댓글 다시는데 걍 넘어 가세요. 전 그런 반박들이 전혀 객관적이라고 보지 않고 삼국지에 매몰된 촉빠들의 빠심으로 밖에 안보이니 더 논하고 싶지도 않네요.
17/01/12 21:38
특수문자 님// 글쎄요. 전 이 문제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관우가 명장이었는지 아니면 (전공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이름만 높고 실제로는 부족한 점이 많은 장수였는지도 결론을 잘 못 내리겠어요. 결국 당대에 있었던 보다 믿을 만한 사료가 나와야 제대로 결론이 나올 문제라고 봅니다.
하지만 위의 토론이나 여기 달린 댓글에서, 특수문자 님의 관우에 대한 평가는 "전공과 당대인들의 평가들을 모두 고려한" 게 아니라 "관우의 전공만(그것도 편향된 형태로) 보고 당대인들의 평가는 배제한" 것으로밖에 안보입니다. 위의 한 분이 지적한 것처럼, 그건 주장을 펼칠 때 입맛대로 근거를 취사선택하는 거죠. 당장 특수문자 님께서는 밑의 Jace T MndSclptr님의 의견과 완벽하게 동일한 의견을 개진한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그 분이 개진하신 주장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 분께서는 자기 주장을 펼칠 때 당대인들의 관우에 대한 평가를 "무시"하지 않아요. 그런 것까지 감안해도 높게 평가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고, 분명 수긍할 수 있는 지점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보여준 특수문자 님의 의견 개진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대인들의 평가라는 이미 존재하는 사료는 무시하고, 무조건 다른 사료인 전공만 보자! 이 태도이니, 당연히 저를 포함해 다른 분들의 반발이 많고, 논리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사견으로 받아들일 수밖에요. 이 점을 무시하시고 자꾸 제 의견을 강요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저는 딱히 님에게 관우를 높게 평가하라니 뭐니 하는 걸 강요할 생각이 없어요. 그냥 주장을 하시려면 "제대로 된 근거"를 갖추시라는 겁니다. 근거를 취사선택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하지 마시구요. 전후 시대와 비교하는 문제는 딱히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도 별 관계없으니 그냥 패스하겠습니다.
17/01/12 14:43
애초에 본진인 촉에 있던 유비와 긴밀하게 공조하며 물자와 병력 보급 등의 지원이 있은 후에 한중쪽으로도 동시에 병력이 나가던가 했어야 그나마 할만한 판단이죠. 형주의 군 단독으로 위를 치러간 것 자체가 군재 바닥이라는걸 드러내는 겁니다.
17/01/12 14:47
관우에게 단독 인사권 및 군사작전권이 없었다는건 정사에 잘만 나오는데 관우가 홀로 번성 공략을 하다가 까여서 죽었다고 말씀하시고 싶은겁니까.
17/01/12 14:50
관우의 북진이 유비의 명령이었는지 관우의 독단이었는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라고 Agnus Dei 님이 말씀하셨는데 변태인게어때님은 관우가 단독으로 위를 침공했다는 흔들리지 않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신가봐요?
17/01/12 14:50
전 유비의 명령쪽에 관한 자료를 더 많이 봤으니까요. 본인도 시비트고 싶으시면 자료를 토대로 얘기하세요 뭔 키배 하려고 도발 거시려는 모습이 안타깝네요
17/01/12 14:53
그 자료를 봤으면 여기에 올려서 근거로 삼던가 혼자만 봤다고 하면서 여기서 그걸 제시안하고 주장만 하는게 어째서 합리적인가요? 저는 그런 자료들도 봤지만 명백히 유비의 명령에 의해서 공격했다고 결론이 안나던데요.
키배싫어해서 제 댓글 반박 댓글 많이 달려도 평소에는 대댓글 하나도 안다는 사람인데 키보드 워리어 취급하시니 황송하네요.
17/01/12 15:16
특수문자 님// 남이 가져온 사료는 자기 주관으로 무시하면서 다른 사람보고는 또 자료 가져오라니 일단 태도의 일관성부터 잡으시죠. 별 달리 근거도 없는 자의적 주장이면서 논조는 또 뭐가 그렇게 고압적인건지?
17/01/12 15:31
앙겔루스 노부스 님// 애초에 동시대 사람의 인물 평에 대해 큰 신뢰가 없는데요?
자료를 또 가져오라고 한 적없는데 무슨 소리이신지? 변태인게어때님이 유비가 명령내렸다는 자료를 많이 봤다 -> 그러면 가져와보라 이것일 뿐인데요. 저 분이 자료 제시 안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니 자료를 가져와보라고 했을겁니다. 저는 Agnus Dei님이 말씀하신대로 관우의 북진이 유비의 명령이었는지 관우의 독단이었는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얘기를 하시니 그 주장에 맞는 근거를 대라고 한게 잘못인가요? 별 달리 근거가 없는 자의적 주장이라 1. 하비의 수비를 맡았다가 조조에게 항복한다. 2. 주유가 남군을 공격할 때 문빙, 악진에게 깨지고 조인의 퇴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이통이 포위망을 뚫고 조인을 구출한다. ->문빙, 악진에게 패배하고 퇴로 차단 임무 실패 3. 익양대치에서 관우는 도강을 시도했으나 감녕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단념하고 관우뢰를 설치한다. ->도강 임무 실패 4. 번성에서 수해에 빠진 7군을 궤멸시켜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참살했다. => 유일한 승리 5. 오랜만에 관우가 서황과 대면하여 사담을 나누는데 갑자기 서황이 관우 공격을 명하자 관우는 놀라고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서황과 번성 내부의 협공에 밀려 번성 공략에 실패했다. ->번성공략 실패 6. 동시에 여몽의 심리전으로 군대가 와해되어 맥성에 고립, 거짓 항복 후 탈출을 시도하다 생포되어 처형된다. -> 사망 이 부분을 제가 날조, 조작해서 없는 패배를 꾸며 있다고 써서 관우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인가요?
17/01/12 15:37
특수문자 님// 동시대 사람의 인물평에 신뢰가 없다구요? 그럼 1차사료란건 왜 존재하는 겁니까? 1차 사료 자체가 당대 사람이 적거나 말한걸 일컫는 건데, 도대체 어느 역사연구에서 동시대 사람의 인물평을 가치가 없다고 하나요? 대단히 특이한 역사적 태도를 가지시는 분이네요?
그리고 변태인게 어때님한테는 잘만도 자료 가져오라고 하는걸 보고 하는건데 가져오라 한 적이 없다니 무슨 말인가요?
17/01/12 15:40
특수문자 님// 관우의 패배들은 대부분 정황상 납득할 부분이 있어요. 하비라던가 형주전투는 일방적으로 세력상의 열세가 있었다는 점, 조인 이통 악진이라던가 감녕과의 전투는 상대역시 만만찮은 강자였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기에 원탑이다, 라고 하는 것은 무리인 부분이 있다고 보지만, 그걸 근거로 지휘관으로서의 가치를 아주 깎아내리는게 타당한 태도인가요? 명장론이 과하다면 님은 지금 졸장론을 펴고 있는데 그게 훨씬 과합니다.
17/01/12 15:43
앙겔루스 노부스 님// 자료를 "또" 가져오라고 한 적 없다는 말인데 이걸 오독하신듯?
자신이 주장을 했으니 그에 맞는 근거를 대라고 사료를 가져오라고 한 번 말했는데 어떻게 또 가져오라고 한 것이 되죠? 제가 저 말 하기 이전에도 사료를 가져오라고 한 적 있었나요? 객관적으로 기록된 사실이 당연히 개개인의 주관적인 평가보다 앞서는 거 아닌가요? 사실에 기반을 한 전투 결과 기록이 개개인의 평보다 우선하지 않다고 보시는지요? 군재가 바닥이라는 발언은 Agnus Dei 님의 의견에 동의해서 아래와 같이 수정했으니 더 이상 군재는 바닥이라는 발언가지고 따지지 마시면 좋겠네요. 그냥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발언을 수정하죠. 군재가 바닥 -> 군을 통솔하는 입장에서는 딱 한 번 이기고 나머지는 모두 패배로 기록한 군재를 가진 사람
17/01/12 15:57
특수문자 님// 당대인의 평가를 무시하는 것도 잘못된 겁니다. 바로 그걸 말한거에요. 무엇보다 그 당대인의 평가가 하나같이 일관된다는 것은, 그걸 무시하기 힘들게 만드는 겁니다. 관우를 싫어한 사람은 있어도 관우를 무시한 사람은 없어요 당대인중에. 당대인의 기록이라는 사료는 무시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사료는 고평가하는. 물론 사료평가를 해야하겠지만, 그 당대인의 평가를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선택적 평가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당대인의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만한 확고한 근거가 없다면, 그 평가들이 단순히 오판이었다느니 잘못이라느니 하면서 무가치하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17/01/12 15:58
특수문자 님// 물론 남아있는 기록상으로 그가 거둔 전공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건 부정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렇기에 당대인의 평가는 전부 틀린거, 라고 바로 논리를 이어가는건 비약이라는거죠. 당대인이 다 틀렸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당대인들이 그렇게 평가할 만한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가 있지 않을까? 라는 추론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 사이에서 님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거에요.
17/01/12 14:47
관우의 북진이 유비의 명령이었는지 관우의 독단이었는지는 아직도 논란거리이고, 북진 자체도 방어적 공격에 그칠만한게 칠군 수몰 등 전과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면서 걷잡을수 없이 확대된거라 보는 시각도 있어서 그것만으로 군재가 바닥이니 뭐니 평가할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관우의 칠군수몰을 그저 운빨이라 깎아내리는 시각이 많은데, 그럼 그 군재 바닥인 관우가 번성까지 우르르 몰려와서 포위할 동안 위군은 대체 뭘 했습니까. 홍수 나고 관우가 배까지 미리미리 준비해서 타고 공격할때 위군은 뭘했고요. 군재 바닥인 관우만도 못한거네요.
17/01/12 14:54
운이 섞였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단 한번의 승리로 대단한 명장처럼 취급하는게 우습다 이거죠. 칠군 상대로의 승리 이후로는 또 패배만 하다가 쫓겨서 거짓 항복하고 도망가다가 잡혀 죽었을 뿐이니까요.
17/01/12 15:15
근거가 없다고 하길래 위의 댓글 다시 복사 붙여넣기합니다.
역사에 기록된 군 통솔 권한이 있던 시기의 관우의 전적입니다. 이런 전적을 가지고 있는 장수가 엄청나게 높게 평가되고 있는데 저평가라뇨? 저는 아래처럼 근거를 들어서 평가를 했는데 근거없는 깎아내리기라는 말은 틀린겁니다. 1. 하비의 수비를 맡았다가 조조에게 항복한다. 2. 주유가 남군을 공격할 때 문빙, 악진에게 깨지고 조인의 퇴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이통이 포위망을 뚫고 조인을 구출한다. ->문빙, 악진에게 패배하고 퇴로 차단 임무 실패 3. 익양대치에서 관우는 도강을 시도했으나 감녕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단념하고 관우뢰를 설치한다. ->도강 임무 실패 4. 번성에서 수해에 빠진 7군을 궤멸시켜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참살했다. => 유일한 승리 5. 오랜만에 관우가 서황과 대면하여 사담을 나누는데 갑자기 서황이 관우 공격을 명하자 관우는 놀라고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서황과 번성 내부의 협공에 밀려 번성 공략에 실패했다. ->번성공략 실패 6. 동시에 여몽의 심리전으로 군대가 와해되어 맥성에 고립, 거짓 항복 후 탈출을 시도하다 생포되어 처형된다. -> 사망
17/01/12 15:23
개인무용은 인정하는 바임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관우의 개인무용이 별 볼일 없었다고 제가 주장했다면 저평가 한 것이 맞겠지만 딱 한 번 그것도 홍수같은 자연 현상의 도움으로 이겼는데 이런 식으로 1승한 사람이 당대 명장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어서 바닥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냥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발언을 수정하죠. 군재가 바닥 -> 군을 통솔하는 입장에서는 딱 한 번 이기고 나머지는 모두 패배로 기록한 군재를 가진 사람
17/01/12 14:35
삼국시대에 무장원탑은 관우 문관원탑은 제갈량
이건 정사기반에서 확고부동한거죠. 관우랑 그나마 비빌만한게 장비 조인 장료 문앙정도로 봅니다. 유비가 능력도 능력이지만 운빨이 끝내주는게 동네에서 친분 쌓은 한량 둘이 그 시대 무장 1,2였음.
17/01/12 14:43
무용 원탑이나 국정 원탑이면 몰라도 저 둘이 무장 원탑 문관 원탑은 전혀 확고부동하지 않은것 같은데요.
전자는 개인 능력으로만 평가하는게 맞지만 후자는 당연히 업적도 평가요소에 들어가야죠. 제갈량이야 그렇다쳐도 관우가 확고부동한 무장 원탑이 될만한 공이 뭐가 있습니까; 공으로 판단해도 원탑이 아슬아슬한데 그 공으로 인한 결과물로 얘기하면 확고부동은 절대 불가능이죠.
17/01/12 15:15
제가 읽은 삼국지로 내린 평가는
삼국지 최고의 장수는 장료 장합 조인 삼국지 최고의 책사는 법정 곽가 가후 삼국지 최고의 문관은 순욱 제갈량 이중에 한명으로 꼽히더라구요 물론 제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17/01/12 14:47
타 나라 인물들이 저평가 되서 더욱 고평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로 JOIN 같은 경우는 연의에서 많이 저평가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17/01/12 14:55
예전에 글 쓰면서 정사를 뒤적거리다가 확인해 보니.....
유비가 참 조조에게 많이도 패했지만, 조조 자신이 끌고 온 군사가 아니라 휘하 장수가 이끄는 부대에게 패한 적은 한 번뿐이더군요. 단독으로 유비를 격파한 전과를 올린 장수가 바로 조인이었습니다. 관도대전 때의 일입니다. (물론 제가 못 찾은 전적이 또 있을수도 있습니다)
17/01/12 14:48
관우는 술이 식기 전에 돌아왔다는 거랑 청룡언월도 들고 싸웠다는 것 때문에 거품소리를 많이 듣는 것 같아요. 마취없이 바둑두며 수술받은 것도...
허세왕
17/01/12 16:55
"아이 Cx 아프다고!! 졸라 아파 뒤지것네! 이 돌팔이 의사새퀴!!!" 하면서도 바둑두고 있었을거란 상상을 해보니 웃기네요 크크크크
17/01/12 14:49
6번에 특히 동의합니다. 연의는 "이런 '위대한' 장수가 있었다'가 아니라 "이런 위대한 장수를 죽인 '네놈들은 무사치 못할 것이다'"에 중점을 둔 거 같아요.
17/01/12 14:59
관우가 최고의 개인 무용을 가진 당대의 명장인건 맞지만 삼국시대 무장중에 최고라는건 솔직히 동의 못하겠네요.
국내 삼빠들에겐 조롱의 대상인 동오는 심지어 위나라보다도 늦게 망했고 위나라는 그래도 패권은 쥐어봤는데다가 침략으로 망한것도 아닌데 촉한은 위촉오 삼국중 제일 먼저 엘리 당했고 패권이고 뭐고 없었죠. 그 촉한이 엘리 당하는 과정에 제갈량은 할만큼 했다고 보기 때문에 승리자는 아니지만 개인 능력이 짱짱맨이라는 근거로 문관 원탑 얘기해도 확정이라곤 못해도 수긍할 여지는 있는데 관우는 솔직히 촉한 망하는데 초기지분이 결코 적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관우가 삼국지 무장 원탑이면 크리스 폴이 포가 역대 투탑인 부분입니까 리켈메도 역대 아르헨 축구 선수 쓰리탑 껴주시는 부분인가요.
17/01/12 15:04
형주 상실은 위에서도 상술했듯 관우만의 책임이 아니에요.
유비/제갈량이 무책임했던 것도 크고, 관우와 형주 쌈싸먹을려고 위나라와 오나라가 에이스들만 모여 비밀공동작전 펼쳤습니다. 관우가 형주 상실의 책임이 큰 것은 사실이나 촉한 망하는데까지라는 논리는 너무 비약입니다. 그리고 관우는 역대명장 선에 거의 주욱 다 뽑힙니다. 제갈량, 사마의, 주유, 육손 등은 순수 무장이라고 보기도 어렵구요.
17/01/12 15:10
형주 상실이 당연히 촉한 망하는데 인과관계가 있죠. 형주 상실하고 본인 꾀꼬닥한게 100프로 관우 잘못은 아니지만 0프로 관우 잘못도 아니죠. 저는 그게 촉한 멸망행의 시발점이라고 보기에 "초기 지분" 얘기를 한거고 백프로 관우탓은 한적도 없습니다. 적지 않은 지분이 있다는거죠.
결국 무공은 관우만큼 혹은 관우 이상으로 세우고 관우와 달리 단명하지도 않고 관우와 달리 몸담았던 국가가 1등으로 망하지도 않은 많은 장수를 제치고 관우가 1등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걸 그렇다고 생각하시는건 자유지만 확고부동이란건 동의가 불가능하네요. 저는 특수문자님처럼 관우가 명장도 아니고 군재도 형편없었다는 얘길하는게 아닙니다. 단지 확고부동 원탑급은 객관적으로 봐도 아니고 주관적으로는 원탑은 아니다~ 라는 얘기죠.
17/01/12 15:13
지금의 인식이 아니라 당시의 인식이 그랬습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당시 군주, 명사, 신하들 생각이요.
동의하시건 그렇지않건 팩트입니다.
17/01/12 15:21
당시 군주 명사 신하들의 생각 역시 그냥 관우를 평가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일뿐입니다. 그걸 왜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들은 당시 역사적으로 언제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그 일로 인해 미래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몰라요.
반면 현세대 삼국지를 읽는 사람들은 여러 문헌들을 종합해서 충분히 타당성 있는 당시 역사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죠. 이거야말로 팩트죠. 당시에 관우에 대한 평이 최고인것이 지금에와서도 그가 최고임을 보증하는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대의 많은 삼국지 독자들도 관우를 최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만큼 다른 장수들도 다른 독자들에게 최고로 꼽히죠. 그러니 확고부동이 아니라는거구요. 그리고 저는 전공과 승리 만능주의자라서 관우는 도저히 최고로 꼽을 수가 없네요. 군공의 부족. 이른 이탈 이 두가지만 해도 제 가치관에서는 이미 최고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17/01/12 15:27
당대인들은 직간접적으로 그의 행적을 보거나 들었습니다.
근데 후세인인 우리는 기전체로 쓰여진 삼국지만을 보고 판단하죠. 정사 삼국지의 특징을 제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17/01/12 15:35
당대인들은 직간접적으로 그의 행적을 보거나 듣고 평가했지만 그것은 현대인과의 비교에서 전혀 우위인 요소가 아닙니다.
왜냐면 현대인들은 그 당대인들의 평가 역시도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당대에는 관우가 이런 평가를 받았다" 이거 모르는 사람이 삼국지 제대로 보는 사람중에 누가 있습니까? 현대인은 당연히 그 사실도 판단의 근거에 추가하겠죠. 그것을 청룡님처럼 "오죽 대단했으면 당대인이 그랬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처럼 봉화와 전령의 시대에 당대 사람들이 정확한 사실적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결론을 낼수도 있는거죠. 많은 어르신들이 박정희 시대에 박정희의 훌륭한 통치로 나라가 부강해졌고 박정희는 명군이라고 합니다만 지금 현대사 공부하는데 그 의견을 신봉해야 합니까? 어불성설이죠.
17/01/12 15:11
형주상실이 관우만의 책임이 아님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공이 될수는 없고 다른 뛰어난 군공을 세운 무장보다 위라고 쳐줄수는 없죠.
그냥 사정을 봐줄수 있다정도지.... 그리고 유비, 제갈량이 무책임하다고 하기에는 성도먹고 한중먹고 한중왕 오른지 얼마되지 않은 사이에 관우가 형주를 빼았겼습니다. 유비나 제갈량이 어떻게 해볼 상황도 아니었고 관우도 관우나름대로 손권을 개자식이라고 도발하고 밑의 사람들 업신여기면서 반목하는등 실책이 있었죠. 군공으로 치면 관우보다 더 큰 공을 세운 무장들은 많고 관우가 역대명장 선에 꼽히는건 군공보다는 충의 때문이겠죠.
17/01/12 15:14
그럼 역대명장에는 충의스러운 사람만 뽑혀야하는데 그렇지가 않거든요. 또한 명장을 충의로 뽑았다는 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또 공적은 수학처럼 빼고 더하는 부분이 아닙니다. 형주 상실은 사실상 물량전과 공동작전에 희생된 모양새에요. 관우는 장기말에 불과합니다.
17/01/12 15:16
관우가 충의만 있는건 아니고 당연히 전공도 크긴 하죠. 다만 지금처럼 신급으로 대접을 받는건 전공때문이 아니라 그 충의 때문인거겠죠.
실질적으로 관우보다 전공이 많은 장수는 삼국시대에도 많지 않나요? 형주상실은 뭐 어쩔수없는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관우의 실책인거고 마이너스가 되면 되었지 절때 플러스는 되지 않을거구요. 관우가 한 군단을 이끌고 전공을 세운것은 조인, 서황, 장료보다도 부족하지 않나요?
17/01/12 15:22
한국과 독일중에 어떤 나라가 월드컵 우승하기 쉬울까요?
근데 그럼에도 관우는 군단장(안량) 잡고 사단장(우금) 잡고 준장(방덕) 잡았는데 순수 무장중에 이런 전공 세운 이가 있습니까?
17/01/12 15:26
그래서 님은 관우의 전공이 조인, 장료, 서황보다 더 우위라는건가요?
한국과 독일 비교해서 한국이 더 우승하기 힘들다는건 맞지만 그렇다고 한국 4강이 독일 4회우승보다 전공에서 우위다 라고 할수는 없죠. 관우야 안량은 개인무용이었고 우금은 큰 비를 통해 잡았는데(물론 이것도 대단한 전공입니다) 그 건 외에는 딱히 없지 않습니까? 반면 조인, 장료, 서황의 전공은 정사에 나와있는것만 봐도 훨씬 다대한데요.
17/01/12 15:26
형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 : 여몽
자신보다 강대했던 세력을 무찌르고 하북 전체를 통일한 사람 : 조조 매우 험한 산길을 거쳐 촉을 기습하여 멸망시킨 사람 : 등애 이 정도만 해도 관우랑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수준이죠.
17/01/12 15:24
충의라는 것은 관우라는 장수의 한 단면이니까요. 굳이 따지자면 관우라는 장수가 민중들에게 무신과 같은 존재로 각인되면서부터 충의의 면모가 더욱 부각된 것이지, 관우의 충의로움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민중들이 관우를 무신처럼 떠받들었다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는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연의와 무관하게 이전의 공적, 사적인 기록들을 바탕으로 판단하여도 관우가 첫 손가락에 꼽혔다고 해도 무방한 당대의 뛰어난 무신이었다는 것은 인정할 만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위상이 극적인 생애나 유교적 가치 등의 요소들로 인해 부풀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런 잣대로 따지자면 중국사의 어느 영웅들 중에서도 그에서 자유롭다 할 만한 사람은 없다고 보여지고요. 장수들을 스포츠 선수를 판가름하듯 오늘날에 와서 스탯과 기록으로 나열하자면 관우가 최고의 장수가 아니었다고 논박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으나 적어도 당대의, 그리고 그 직후의 시각에서 관우가 최고의 장수였음은 저는 큰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17/01/12 15:11
무력이며 군재며 미화되어서 S는 아니고 A정도로 생각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연의에서 미화했건 어쨌건 오관육참과 마지막 죽음은 정말 사나이의 피를 끊게 하기 때문에... 관우가 좀 더 자존심을 굽혀서 촉오분열, 장비죽음, 촉오대전, 유비죽음, 촉나라 쇠퇴의 연결고리를 끊고 형주와 가정으로 동시에 진군할 수 있었다면 말이죠...그러면 좀 더 많은 군공을 쌓고 인정받았겠지만 지금처럼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겠죠. 천년이 넘어 남의 나라에서 말이죠.
17/01/12 15:18
정사만 봐도, 무장부문에서 관우가 최고죠. 물론 그 당시에도 그러려니, 토너먼트로 모든 장수들이 일기토해서 자웅을 겨뤄 우승자를 뽑는 식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에도 관우가 최고로 용맹한 특급무장이었다는 것을 진수도 기록한 거지요. 그게 설령 근거가 부족하니 뭐니 해도. . 그렇게 고평가가 되어있습니다.
전장에서의 용맹함과 기백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꼭 전장에 나가서 적을 몇이나 베고 그 수급을 가져와서 증명할 거 없이, 삼국시대의 위한오 세 나라의 명사들에게 이미 관우는 최강의 무장이라 인식되고 전해졌습니다. 더 왈가왈부할 것도 없죠. 다만 이게 대국적 전략으로 지휘하는 명장으로 관우가 특급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초한시대의 한신처럼요. 하지만 일신의 무용만큼은 삼국시대 원탑이죠. 이미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리 인식하고 언급한 기록들이 많으니.
17/01/12 15:28
무장에 대한 평가가 무예만 가지고 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한 군단을 이끌고 얼마나 전공을 세웠는가도 무장에 대한 평가중 중요한 부분일텐데요.
이순신이 무예만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명장, 무장이라고 꼽히는게 아니잖아요. 이순신보다 무예 뛰어난 장수들은 수두룩할테니 말입니다.
17/01/12 15:29
후선에서 병사들을 장기말 다루듯이 다루면서 통솔하는 명장타입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두에 서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기백과 용맹함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적군에겐 큰 부담과 공포심을 안겨주는 전형적인 무장타입이 관우인 것 같습니다.
17/01/12 15:21
저는 관공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긴 합니다만, 사실 의문이 드는 부분은 있습니다. 분명히 기록상으로는 획기적인 전공을 세운 부분이 두드러지진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사람들이나 후대의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구요. 이 간극이 어디서 나오는 거라고 봐야할까요? 후대 사람들이야 나관중한테 선동(^^)당했다 치더라도, 당대 사람들이 뚜렷한 "결과" 가 없음에도 그를 높게 평가한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명백히 전공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안량 참살과 우금군 격파밖에 없어서, 실드쳐주기가 좀 힘들긴 하거든요.
17/01/12 15:25
당대사람은 그의 행적을 직간접적으로 모두 보고 들었습니다.
허나 우리는 기전체가 뭔지 실록이 뭔지도 모르면서 기록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더구나 유비집단은 형주에 오기전까지 평생 붕괴되었던 집단입니다.
17/01/12 15:29
사실 저도 지금 우리가 접하는 사료로 파악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없는데 그렇게 높게 평가받을 이유가 있을까 싶긴 합니다만... 역시 그래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기록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무래도 아쉽네요.
17/01/12 15:27
아무래도 촉 인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유실된 기록이 좀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하는 편입니다.
유비가 초반 공손찬과 편먹고 원소와 싸울때 관우도 활약했을게 분명한데 구체적인 기록을 찾기 힘들죠. 그외에도 유비군이 원술이나 여포와 싸울때도 활약하지 않았을까요. 안량을 베기 전에도 곽가 같은 조조 진영 인물들에게 '만인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것 보면 그만한 전공을 세웠다고 보는게 합리적이죠. 위에서 말한 형주공방전의 경우도, 번성이 무슨 동네 코앞에 있는 성도 아니고 위군이 바보가 아닌 이상 관우가 북진해서 성을 포위할 동안 가만히 있었다는건 말도 안되거든요. 관우는 배타고 잘만 다니는데 왜 위군은 배가 없었는지도 의문이고(이걸 위군의 수군이 관우에게 미리 격파당한건 아니냐고 추측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전에 뭔가 전투가 있지 않았을까요. 관우의 부족한 전공에 비해 당대의 평가는 일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누락된 기록이 있었던게 아닐까 합니다.
17/01/12 15:53
사실 그 관우의 북진때 막아섰을 상대가 요즘 위나라 원탑이라고 자주 일컬어지는 조인이었을 거라는 것 생각하면 그 부분에 대해 사람들 평가가 인색한 것도 사실이죠. 허창 방어의 요지인 형주에 박아놨던 조인의 군세가 합비의 장료나 정군산의 조홍, 하후연에 비해 뒤질 리가 없을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선 묘사가 부족하니까요.
17/01/12 15:31
관우의 승패마진을 놓고 보면 승보다 패가 훨씬 더 많긴 합니다. 그런데 그 패배는 나름대로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형님 유비의 세력은 잠시의 서주목 시절이나 훗날의 전성기를 제외하면 항상 형편없었고, 상대의 병력이 많고 이쪽은 고립되어 있었고, 때로는 가장 신뢰할 만한 자가 뒤통수를 치고, 기타 등등등. 그런 이유들에 대해서 누군가는 단지 핑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사람의 힘으로 극복이 불가능한 제약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전자냐 후자냐에 따라 사람들은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그래서 여기부터는 순수한 제 상상의 영역입니다만, 저는 관우가 패하되 결코 맥빠지게 지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더라도 끝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지고,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입히려고 기를 쓰고, 한 놈이라도 더 저승으로 보내려 하고... 그래서 승자조차도 질릴 정도의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이야 콩알만한 병력으로도 저렇게 바득바득 버티는데 대병력을 지휘하면 대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감탄마저 들게 해 주었기에 늘어만 가는 패전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인들의 평가가 높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패배한 장수가 이름을 날리려면 어떤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하니까요.
17/01/12 15:36
사실 형주에서의 실패도 결국 촉의 주력이 아닌 일개 방면군으로 촉보다 국력이 강하던 두 나라의 주력부대를 상대한 끝의 패배이니 그냥 패배는 절대 아니죠. 세력상으로 이길 수 없던 상황...
다만 역시 명장이란건 안될거 같을 때 이겨내는 것, 이라고 본다면 그게 좀 아쉽달까나요. 이를테면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티벳의 가르친링 같은 경우는 대당제국의 군대를 수십만 단위로 갈아마시면서 동아시아의 정세 자체를 일개 무장이 바꾸어버렸을 정도니... 관공한테 나쁘게 보자면, 혼자서 정세를 바꾼 정도의 명장이 못된다는 점(이미 한대이전에도 곽거병 악의 한신 같은 인물들이 있었으니...)이 결격이고, 좋게 보자면 그만큼 삼국시대가 상호간의 팽팽한 균형이 이뤄진 시점이라, 그걸 극복하기에는 군사학 군사술 자체의 한계가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해 봅니다.
17/01/12 15:51
이 링크로는 글곰님 의견이 전혀 반박이 안 되는데요.. 그냥 위에 이야기하셨던거하고 딱히 다른 논조를 못 찾겠습니다.
불가항력인 패배였다는걸 말하고 싶으신거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글곰님은 오히려 링크글에 동조하는 겁니다.
17/01/12 15:49
저는 애초에 당대의 사람들이 지금처럼 정돈된 사료와 전부 다 나온 자료를 가지고 평가하는게 아닌데 간극이 벌어지는게 이상할 일이 아닌거 같은데요.
일단 관우가 죽기전 관우에 대해 높이 평가한 사람들은 관우가 그렇게 번성에서 죽을 줄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무조건이죠 죽기전에 평가한건데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어떻게 압니까 90살까지 천수를 누리다가 갈 줄 알았을수도 있죠. 관우가 죽은 뒤에 관우를 높이 평가한 것이 사료에 남아 있는 사람중에도 촉한이 고렇게 허무하게 망할줄은 시기상 몰랐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꽤 있으며 그 후에 평가를 한 사람중에도 지금처럼 관우가 몇번 싸워서 몇번 지고 몇번 이기고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지고 뭐 때문에 이기고 뭐 때문에 지고 이렇게 확실하게 알고 평가했을수는 없죠. 당시엔 구립 도서관도 없고 교보문고도 없고 나무위키도 없는데요. 즉 제가 생각엔 관우의 기재 자체는 당대 최고였으나, 결과적으로 그 기재에 비해 결과물을 전혀 못 냈기에 평가의 차이가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오래전 역사니까 혹시 뭐가 있겠지 하는거지 근래로 봐도 특별히 이상한건 아니지 않나요. 제가 타임머신타고 92년으로 가서 대학 야구 경기장에서 '얘들아 대런 드라이포트는 선발로 평타 좀 치다가 FA 계약하고 역대급 개먹튀가 된다'라고 말하면 헛소리 하지 말라고 갓런 갓라이포트는 다저스의 구원자가 될거라고 당대인들은 말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제가 옳고 그들이 틀리다는걸 알고 있는데요.
17/01/12 15:55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 사람들의 평가가 일관된다는거죠. 그 누구도 관우를 경시하거나 가볍게 본 사람들은 없다는건데, 그들이 관우를 그렇게 평가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냐? 이것을 묻는겁니다. 당대에도 수천만의 사람들이 살았고 오히려 선전공작이라기엔, 유비 세력은 항상 마이너한 소규모 세력이었음에도, 그 관우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던건 확실한데, 분명 우리가 갖고 있는 기록상으로는 그걸 평가할 부분이 마땅치 않아요. 그렇기에 그 간극을 좁히는 추론을 해야하는데, 님과 같은 추론법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전해지지 않는 어떤 모습이 있지 않느냐, 그런 추론을 해볼 수 있다는 거지요.
전쟁이나 정치에 있어서 결과는 월등히 중요하지만, 적어도 그 과정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관우란 인물을 논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결과는 갖고 있는데 과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17/01/12 16:06
글쎄 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관우의 모습만으로도 당대의 관우에 대한 평가는 납득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유비 세력은 마이너 세력이었지만 한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고, 적어도 그 명분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왔죠. (적어도 특정지역 사람 학살하고 그러진 않았죠) 상대적으로 소규모 세력이었다는게 꼭 평가가 나빠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삼국이 아니었던 삼국지 초반부를 제외하고 진짜 삼국지쯤 가면 소규모 세력인지 조차도 사실 의문이고
게다가 우리가 보통 말하는 관우의 패배는 마지막에 지고 관에 들어간 그 패배 말고는 그야말로 후대 사람들이나 책임자를 알 수 있을법한 패배들이고, 반면에 승리는 당대에도 이미 그 승리의 파급력이 어느정도 영향이 있었다는것이 증명이 된 승리인데 당연히 관우가 어디서 누구한테 비공식전에서 몇번 졌대 이런게 당시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을리가 없겠죠. 크게 이긴적이 없는게 아닌데요. 게다가 현대에서 보통 관우 이상의 평가를 하는 장합 서황 장료등의 장수는 관우가 염라대왕이랑 바둑두고 있을때도 쉼없이 공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누구도 관우가 딱 번성에서 골로 가는 순간까지의 공만 보고 이들을 평가하진 않죠. 즉 실제로 관우에 대한 좋은 평가가 잔뜩 기록된 시기까지를 놓고 보면 관우는 그 정도 평가를 받기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물론 삼국시대에 기록되지 않은 무언가가 당연히 남아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특별히 관우의 과정에만, 그것도 긍정적으로만 존재할거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대에는 그냥 말 그대로 위대한 장수였으니 위대한 평가를 받은거고, 현대에 와서는 그 위대함이 너무나 빨리 져버렸다는 결과를 알고 있고, 그가 그 위대함을 평생 바쳐온 촉한 역시 너무나 허망하게 날아간것도 알고 있으니 당대보다 평가가 떨어진게 아닐까요.
17/01/12 16:13
오히려 저는 지금 기록으로 남은 것으로만 보면 별 볼일 없는 장수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라고 보기에 하는 말입니다만. 저 위에 나온 관우의 전적들만으로는 그를 별 볼일 없는 장수로 평가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당대 사람들이 지금만큼 정리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일반론의 이야기이고, 위에 인용된 호평들은 당대 최고의 책사급들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모사의 첫째 요건은 정확하고 수준높은 정보의 획득능력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인이면 몰라도 조조군 최고급 모사들이 정확히 알지 못하고 말했다? 그건 무리한 말이라고 보네요. 권위에의 호소의 오류라고 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을만한 어떤 전적들이나 역량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가능했던거 아닌가? 하는 질문은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를 평가하는 제 3자가 아니라, 그에의해 직접적은 위협을 받던 적들이기에, 그 평가가 단순한 인상비평이라고 보는건 여러모로 무리라고 봅니다.
17/01/12 16:19
만약 당대의 높은 평가가 저 위에 청룡님이 인용하신 조조군 책사들의 평가를 말씀하시는거라면 저는 저것은 군공이 높은 자에 대한 평가라고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관우라는 인물의 기재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네요. 애초에 저 위에 인용된 평가 중 관우의 사후에 했음이 명백한 평가는 유엽전에 나온 신하들의 평일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관우가 조조군의 현실적인 위협으로 존재할때 나온 평가니까요.
그러나 저러나 결국 앙겔님은 '역사에 드러난 관우의 모습만 봤을땐 조조군에게 저렇게 높게 평가받기 어렵다. 따라서 누락된 기록이 있을법하다' 라는 생각이신것 같고 제 경우 '역사에 드러난 관우의 모습만으로도 관우는 당대에 충분히 저렇게 평가받을만하다. 따라서 누락된 기록이 있을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거 같은데 이것은 관점 차이인것으로...
17/01/12 16:21
저도 관점차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다만 제 관점이 어떻게 나왔는가를 밝히기 위해 구구하게 이야기한거죠.
분명히 인정하는건 저는 엄청난 빠심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낄낄~
17/01/12 16:25
네 흐흐 앙겔님 이야기는 잘 들었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92년이라면 대런 드라이포트가 몰래 대학다니면서 메이저리그 불펜 알바도 뛰고 있었다면 모를수가 없는 년도지만, 삼국시대라면 또 다르니까요. 뭐 관우의 공이 다른 이름으로 어디 슬쩍 올라가 있어도 백프로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시대죠. (뭐 이것도 비약이고 실제로 그랬다면 거의 밝혀졌겠지만... 아무튼간에)
17/01/12 21:50
뭐 대런 드라이포트보다 비근한 예들이 역사적으로 수두룩하죠. 예컨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대인의 인식이 정답이라고 하면 역대급 사치로 나라 박살낸 주제에 빵 대신 케이크 먹으란 드립이나 쳤던, 나라를 오스트리아에 팔아먹으려던 매국노인데다 자기 자식을 따묵은 미친 엄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죠. 불과 100년 전에 김홍집이 '당대인'들에게 을미사변 주동자로 오해 받아 사지가 찢겨 죽었고..지식과 정보의 교환 속도가 극도로 느려서 세상만사 그 어떤 것이든 투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몇몇 소수가 지식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서 지식 독점상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여론이 가지는 의미는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봐야죠. 막말로 문맹 무지렁이들이 9할이던 시절이고 소문과 같은 구어적 수단 이외의 정보 접근이 아예 없다 시피하던 때인데. 그만큼 윤색과 왜곡이 Ctrl C and Ctrl V 되기도 쉬웠을 테고요.
17/01/12 16:15
유망주가 기대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는 수두룩합니다만 최소한 '왜 유망주라 평가받게 되었는지' 판단할만한 근거는 존재하죠. 야구는 잘 모르지만 위에서 예로 드신 대런 드라이포트라는 저 선수도 그만한 활약상을 보였기에 기대를 받은거겠죠. 근데 관우는 그 근거마저도 찾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유비가 조조에게 항복했을 때, 곽가는 관우와 장비를 보고 만명을 상대할만한 장수라고 평하는데, 밝혀진 기록만 보면 왜 이런 평가를 했는지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관우가 안량을 베기도 전이거든요. 곽가의 인물 보는 눈이 빵점이었거나, 혹은 그전에 유비 세력에서 관우가 뭔가 (기록되지 않은) 전공을 세웠거나 둘 중 하나죠.
17/01/12 16:23
제 주장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관우의 활약은 아무것도 없었다] 라는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평가를 뒤엎을만한 명확한 군공일거라는 예상에는 확실한 근거가 없으며, 그런 군공이 있을 확률은 다른 드러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있을 확률과 큰 차이가 없다] 에 가깝죠. 지금 예를 든 대런 드라이포트의 경우도 대학리그에서 좋은 활약상을 보였기 때문에 기대를 받은것이 맞지만, 바꿔 말하면 그가 별볼일 없는 선수였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 '대학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상' 자체는 선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정말로 별 볼일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거든요.
뭐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확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저도 당대를 살아본건 아니니까요. 다만 저의 논리적 조립으로는 글쎄 아닌거 같은데라는 결론이 계속 도출되는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 같아요.
17/01/12 16:31
평가를 뒤엎는다기보다는 [동시대인의 평가에 걸맞는] 군공이라 하는게 적합할것 같습니다. 관우는 유비 세력이 보잘것없을 때부터 만인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그후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계속 맹장, 삼군을 뒤덮을 용맹 등의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패배하여 죽고 난 뒤에도 적국인 위나라 대신들에게 명장 소리를 들었거든요. 유망주 시절 벗어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끝까지 고평가를 받았다는 거죠. 그런데 기록된 군공은 그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니 계속 "동시대인의 평가가 잘못된거 아니야?" 딴지거는 사람들이 나타나는거고요.
17/01/12 16:16
당대인들이 그렇게 "평가"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런 평가를 내린 "사람들"에도 주목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Agnus님이 쓰신 댓글에, 관우가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촉한에는 명장이 그밖에 없다"라고 (과장적이긴 하지만) 평가한 것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당대 사람들은 흥미나 연구 본위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관우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이해당사자들이었고, 자신과 자기가 속한 세력을 위해 그를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간에) 대해야 했습니다. 그런 만큼 관우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객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저렇게 높게 평가하는 문구가 많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리고 정보의 문제를 얘기하셨는데, 이는 오히려 이천 년 가깝게 떨어진 현대인들이 당대의 정황을 훨씬 잘 모르는 상황이라는 점이 더 부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날만큼 정돈된 사료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오늘날의 소위 사료라는 것도 몇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대인들이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훨씬 나을 것 같아요.
17/01/12 16:25
전성기는 화려했지만 누적이 부족하기에 역대 평가에서는 밀린다는 이야기인데
관우의 명성이 유비가 객장으로 떠돌던 시절에도 드높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사첼 페이지마냥 누락된 초창기 기록들이 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잘 쳐줘야 합리적 추론 이상 갈 수가 없는 이야기지만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당대 평가를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있겠지요.
17/01/12 15:21
제갈승상을 까면 승상빠인 제가 출동해서 키배를 떠야겠지만......
관우를 놓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저는 그저 도망가야겠습니다. 흐흐.
17/01/12 15:23
정사만 보면 관우가 원탑이라는 망상병자들 때문에 까인거지 관우 자체는 삼국시대 기준으로 놓고보면 명장 맞죠.
관우 까려고 이렇게 저렇게 따지고보면 다른 장수들은 남아나질 못하거든요. 그만큼 전란시대라서 버프빨 받은게 크기도 하고. 조인은 말년에 신참급 장수에게 패배(아들놈이 실제로 패배한거라고 봐야하지만 어쨌든 총사령관이니)한게 꽤 컸고 장료는 임팩트에 비해 공적량 자체는 밀리고. 그나마 서황 장합이 관우에 비빌만한 급이라고 보는데 둘다 연의 때문에 관우보다는 아래라는 이미지가 깊게 박힌데다 장합은 맹장 이미지가 아닌 것도 크고요. 삼국지 기준으로 안 잡으면 삼국지가 민중에 설화로 많이 퍼지고 삼국지연의가 소설로 대중화되지 못했으면 그냥 그저그런 인물이죠. 그만큼 중국은 인구도 많았고 명장도 그만큼 많기도 한거지만..
17/01/12 15:28
관우의 능력에 관해서는, 전략 전술은 당대 최고의 인재보다는 조금 못하고 무용은 당대 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용장이 당시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당시는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은 난세였기 때문에 개인의 무용이 곧 전술이요 통솔력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800명 데리고 돌격해서 10만명 상대로 이기는 게 가능한 시대였으니까요. 이런 시대에는 무용이 최고의 평가요소죠.
17/01/12 15:31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하후연이 그런 식으로 군 운용하다가 개작살이 났죠..
당대 평가에서 장합>하후연의 기조가 있었던 거만 봐도 무용이 뛰어나다고 무조건 고평가 했던건 아닌듯 합니다.
17/01/12 15:35
그건 소설에서 무용에 대한 과대 평가고 실제로는 항우 때도 기병의 기동성을 이용한 망치와 모루 전술에 의한 격파 같은걸로 이겼던 것 같습니다.
개인 무용으로 봐도 5호 16국 시대의 염민이 혼자서 300명 베고 결국 졌다는 기록같은게 있긴 하지만 역시나 대세를 뒤엎을 정도는 아니었구요.
17/01/12 15:38
제가 말하는 무용은 혼자 직접 다 썰어죽인다는 의미보다는, 숫적 열세인 상황에서 맨앞에서 싸움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게 없으면 당시의 어중이떠중이 군대가 흩어지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요. 6.25 때조차도 사단장이 돌격하는 게 병사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줘서 그걸로 상황을 역전시키는 사례가 나오는데 그때야 오죽했겠습니까.
17/01/12 15:38
그런 시대에 관우가 그 무용을 살려 800명으로 10만명을 상대로 승리한 기록이 두번만 있었어도 여기서 이럴일이 없죠.
무용이 곧 전술이요 통솔력인 시대에 최고의 무용을 가지신분이 결과물이 시원치 않으면 전자를 의심하던가 후자를 의심하던가 하나는 의심해봐야죠.
17/01/12 15:42
당대의 기록이나 평가가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보면, 위쪽의 댓글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 스탯이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거 같습니다. 역대 최고 수준의 명장처럼 극도로 불리한 상황을 뒤집는 수준의 장수는 아니었으니 결과를 바꾸진 못한 거고 따라서 역대 최고의 장수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당대에는 뛰어나다고 평가할 이유가 있었겠죠 뭐.
17/01/12 15:54
애초에 관우는 현대의 관점으로 봐도 뛰어난 장수인것은 맞기 때문에 뛰어나다고 평가할 이유는 당연히 많겠죠. 저도 제 기준 원탑이 아니라는것뿐이지 명장이 아니라거나 누구의 기준으로도 원탑이 아니라거나 하는 극단적 의견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구요.
다만 당대의 기록이나 평가가 지금처럼 전방위적인 모든것을 알고 이뤄진 평가는 아닐거라고 생각해보면, 저는 저런 평가만으로 보이지 않는 '군공'이 있었다는 평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개인적인 영웅담이라면 있었던게 당연하겠지만요.
17/01/12 15:51
그래서 두번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사실 공을 얘기할때 그 안량을 벤것은 미묘하긴 하죠. 소속이 소속이었으니까요.
17/01/12 15:56
조조의 관우에 대한 고평가가 그 안량을 베기 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전에도 관우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가 뭔가 있긴 있었겠지요. 다만 기록이 없다는 것은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기도 하므로 그 한 번이 두 번이 될 일은 없다시피 하겠고요.
17/01/12 15:45
1:3도 이기기 힘든게 인간인데 1:125를 어케 이김요... 그전에 체력이 고갈될듯
게임에서나 그렇게 다 쓸어버리지 현실에선 장수 개인의 무력보단 전략전술이 더 중요하겠죠.
17/01/12 15:48
1:125는 불가능하지만 800 대 10만은 10만의 상태에 따라서 가능한게 전투입니다. 실제로 합비에서 있었던 전투에요.
10만이 체계적으로 잘짜여진 정규군이면 800명이 다들 관우 항우 여포로 이뤄져있어도 불가능하지만 10만이 어중이떠중이면 앞에서 좀 밀리면 도망치거든요. 맨앞에 몇 명이 상대한테 한방에 썰리면, 그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잘되어있거나 그에 맞설 만한 장수가 없으면 쓱 밀립니다.
17/01/12 15:53
관우 사후 몇십년 후에 필마단기로 추격군의 수 천명의 기병 속으로 뛰어들어 단번에 100명을 죽이고 이를 7~8차례 반복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만 별로 잘 알려지지 않았죠. 제가 볼때는 관우보다 무용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만 뒷 세대니 듣보 취급받아도 그러려니 하는데 관우가 삼국지 개인 무용 원탑이라고 하면 이 사람 때문에 태클걸고 싶어서 근질근질하긴 합니다.
17/01/12 16:07
그렇게 해도 전투의 결과를 바꾸기 어려운 걸 생각하면 개인의 활약으로 한두번이라도 전세를 바꾼 관우가 대단하다 볼 수 있지요.
17/01/12 15:40
관우는 분명히 삼국지를 대표하는 명장이긴 합니다. 하지만 삼국지의 가장 원탑 명장이라고 하기에는 전공이 부실해요.
그리고 제가 군주라면 관우에게 한군단을 맡겨 한 지역을 통솔하게 하지는 않을거 같습니다. 뭐 여러가지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었던간에 결국 관우는 계속 자기가 지키는 지역을 제대로 지킨적없이 뺐겨왔죠. 그걸 볼때 한 지역을 지키는 지휘관으로서는 믿음이 안갑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관우의 성격때문일거구요. 저라면 관우를 한신처럼 쓰기보다 그냥 내 밑에 두고 번쾌처럼 쓸거 같습니다. 어쨌든 무용하나만큼은 정말 뛰어난 명장이니 내 감독하에 두는게 더 안심이 될거 같아요.
17/01/12 15:43
근데 그러기에는 유비세력 내에서의 관우의 지위가 문제가 되지 싶네요. 관우라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제갈량 오기전까지 2인자인데, 직접 밑에 두고 직할로 부리기엔 세력내에서의 서열문제가 생기지 싶어요. 그리고 관우가 형주를 맡은게 입촉당시의 일인데, 당시 형주를 맡길 정도의 위계라면 조운 장비 정도지만 그들보다는 역시 관우가 낫다는게...
17/01/12 15:47
저도 이 관점에 동의합니다. 군단을 통솔할 능력이 있고 없고를 차치하고 촉에서 관우의 서열이나 그런것들을 조합해보면 군단장은 시켜줘야 되는게 제 생각입니다. 뭐.. 결국 실패한 유비의 운용이긴 했지만 관우, 장비, 조운 이 세명이 유비, 제갈량을 제외한 누구 밑에서 일한다는게 사실 상상이 잘 안된다는....
17/01/12 15:51
개인적 감상을 첨언하자믄 조조세력과 유비세력의 결정적 차이는 전자는 조직화된 관료집단으로서의 한의 전통의 수혜자인데, 유비는 어디까지나 의협집단출신을 못 버렸다는 부분같아요. 장합이나 장료같은 조조군의 명장들은 (당시기준으로)타이트하게 조직된 조조휘하 관료집단의 서포트를 받을 수 있는데 비해, 유비집단에 그런게 생기기 시작한건 아무래도 제갈량영입과 형주장악 이후의 일이라... 조직력이 좀 약했다고 봐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을 관우 장비 유비같은 사람들의 개인기로 때워온건데, 아무래도 개인기가 출중해봐야 조직력 넘기는 힘들고...
17/01/12 15:57
동의 합니다. 3명이서 의형제를 맺고 시작한 집단의 한계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 뭐랄까 우리도 일하다보면 친분때문에 선뜻 친한사람에게 직언이나 일에 관해서 칼같이 못할때가 종종 있잖아요. 전 유비가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긴 약점이 터진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 전 도달했구요. 유비 인재풀이 참 좁다는 생각이 아직도 드네요 흐흐..
17/01/12 16:40
그보다는 시작 기반자체가 달랐죠. 명문집안출신에 지역 우두머리인조조와 암것도없는 돗자리장수유비.
게다가 조조는 교위시절의 십상시의 인척을 참살한일 덕에 이미 명망이쌓여있었고 인맥도 탄탄했죠. 또 초반부터 순욱이라는특급참모를 얻었구요. 기반도 달랐고 운도좋았습니다 조조가.
17/01/12 16:52
말씀하신 부분이 원인에 가깝고 제가 말한게 결과에 가깝죠. 조조가 최종승자가 된 큰 바탕중 하나가 결국 중앙정부의 장악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그걸 가능케 한 부분이 말씀하신 부분(+지리적 위치)인거고. 사실 이 추론을 검증하려면 비슷한 명문이지만 중앙에 있던 조조와 지방(중요한 곳이긴 하지만)에 있던 원소를 비교해봐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서두.
17/01/12 15:47
계속 지역을 뺏겨왔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관우가 한 지역을 맡은 경우래봐야 하비, 형주가 다입니다. 하비는 이미 군사적으로 대세가 기운 상황, 유비와 장비의 본대가 패하여 두 사람의 생사마저 불확실한 상황에서 주군의 가족의 안전을 대가로 항복한 것이죠. 전투 이전에 전쟁에서 패한 상태이고 이건 관우가 아니라 삼국시대 명장 누가 와도 뒤엎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형주의 경우야 위에서 말도 많고, 논란도 많으니 제가 딱히 뭐라 붙일 말도 없군요.
17/01/12 15:51
정말 제가 속으로 생각했던 부분을 말씀해주시는군요.제가 군주라도 관우는 믿음직하고 의지가 되지만, 통솔하는 총사령관으로는 (그것도 최고의 단 한자리)에는 두지 않을 겁니다. 그 총사령관에겐 차라리 제갈량이 걸맞고,
초한시대의 한신 역시 전방에서 선두에 서서 지휘한게 아니라 후방에서 지도나 펼쳐보면서 전법을 고안하고 부장들에게 전달, 실행시킨 명장이니까요. 관우는 이런 캐릭터가 아닙니다. 관우에겐 관영이나 팽월, 경포같은 포지션으로 둔다면 그게 최고이자 최강일 것 같네요.
17/01/12 15:44
몇몇 대놓고 분란조장 댓글을 제외하곤 꽤 흥미로운 본문과 댓글이네요. 관우가 원탑 명장인지 아닌지는 여기서만 봐도 확고부동한건 아니니깐 넘어가고 돗자리팔던 유비가 촉나라를 세우고 한중왕까지 올라선데는 관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많이 봐줘도 탑 5안에 드는 장수가 관우라고 생각합니다.
17/01/12 15:48
조조, 장료, 장합, 서황, 이전, 유비, 장비, 제갈량, 주유, 여몽
관우랑 거의 동시대 사람들만 뽑아 놓고 봐도 누가봐도 관우보다 뛰어난 장수가 5명보다는 많아보이는데요.
17/01/12 15:56
보통 조조 유비 제갈량 주유를 사람들이 장수라고 생각 안하는거 보면 탑 5안에 든다고 생각하는게 무리같지는 않네요. 장비 이전이야 당연히 이견이 있을 사람들이고
17/01/12 15:50
행복한 꿈을 살았다
이제 우리 형제들의 꿈은 불멸로 남으리라 이걸로 끝난거죠. 고평가건 당대인물의 평이건 뭐그리 중요하답니까? 누가 빨건 누가 까건 상관 없어요. 기록의 재구성엔 한계와 헛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저장면 하나로 저한텐 관공 관제입니다
17/01/12 15:54
원탑 어쩌고야 뭐 어차피 기준도 천차만별이고 답이 내려질수 없는 문제니 별로 논할 가치는 없을것같고
포인트는 이거네요. 기록된 관우의 전공이 부실한것은 사실. 기록된 당대 사람들의 관우에 대한 평가가 높은것도 사실. 그럼 여기서 '당대 사람들이 뭣도 아닌데 그렇게 찬양했겠냐. 기록이 잘못된거겠지' vs '기록이 없는데 고평가할 이유가 있냐. 당대 사람들에게 돌았던 소문이 과대평가 된 거겠지' 이것인것 같은데.... 여기부터는 뭐 팬심에 가까운 영역이라 결론이 안나겠네요.
17/01/12 15:57
정확히 말하면 당대 사람들이 뭣도 아닌데 그렇게 찬양했겠냐. 기록이 잘못된거겠지가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뭣도 아닌데 그렇게 찬양했겠냐. 누락된 기록(관우의 승리 기록)이 있겠지. 가 더 맞는 말일 것 같습니다.
기존 기록이 사실과 다른 거짓이라는 말이 될 수 있으니까요.
17/01/12 15:58
이 떡밥이 인터넷 개통 이래로 삼덕들 사이에서는 계속 터지는거만 봐도 추가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다만 그 긴 세월 속에서 기조 자체는 관우 최강->관우 거품->그렇게까지 거품은 아님->다른 애들이랑 비교해봤는데 별거 아닌데?->그래도 명장 맞음 순으로 흐르면서 재평가 되고있다는게 흥미롭습니다. 십몇년간 강동 쥐새끼 소리 듣는 분도 있는데..
17/01/12 15:59
과거사야 기록이 발굴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실관계가 확 뒤집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까요. 지금처럼 삼국지에 대한 논쟁이 연의를 벗어나 정사 차원에서 벌어지게 된 것도 위서나 자치통감 같은 기록들이 민간에 풀려서 일반인들도 읽고 판단할 수 있게 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고요.
미래에라도 실전된 촉한 측 기록이 발굴되어서 관우가 뭘 했길래 명장이냐. 라는 증거가 나타난다면 관우도 억울한 누명을 풀 수 있을테고, 아니면 지금처럼 플루크냐 아니냐로 오랜 기간 호사가들의 논쟁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17/01/12 16:13
냉정하게 말해서 기록하고 평가가 갈렸을때 어느쪽에 비중을 둘 것이냐를 정하는게 정말 중립적인 가치 판단의 영역인가요? 저는 합리적인 선택은 정해져 있고 그 반대편에 서는것이 팬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로 보이는데요.
17/01/12 16:20
고대사는 기록누락의 문제가 많기 떄문에, 역사학에서는 다르게 봐야합니다. 오죽하면 바로 저 진수의 삼국지 말고 한국 고대사는 딱히 참고할 사료조차 없을 지경이니... 그 시대 기록이 조선왕조실록만큼 있었을 경우와 아닌경우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죠.
역사학에서 기록의 가치는 적어도 기록된건 평가할 수 있다, 이지 기록되지 않았으니 없는일, 이렇게 확정하는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17/01/12 16:30
네 말씀하신 내용에는 공감하는데 원 댓글의
'당대 사람들이 뭣도 아닌데 그렇게 찬양했겠냐. 기록이 잘못된거겠지' vs '기록이 없는데 고평가할 이유가 있냐. 당대 사람들에게 돌았던 소문이 과대평가 된 거겠지' 라는 표현은 그 정도의 확정에 대한 조심스러움의 단계를 넘어선거 같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기록이 잘못된거겠지' 하고 '소문이 과대평가 된거겠지' 가 저울의 양 축에 놓일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누락된 기록이나 인과가 있겠지라면 혹시 몰라도... 크크
17/01/12 16:30
저도 위의 댓글과 같아요 지금 기록이 고대 역사의 다가 아니에요 유실된 기록이 많습니다 뭔가 지금기준으로 생각하시는데 고대 역사는 기록 이면의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추가적인 사료가 나와야 파악 가능한 부문이 많아요 이게 연대가 오래될수록 더 그렇구요
현대가 당대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 있다는 주장이 늘 옳을수 없다는 겁니다 현대에 남아 있는 자료만이 모든 정보가 아니거든요
17/01/12 16:35
저도 저 위에다가 [삼국시대라면 또 다르니까요. 뭐 관우의 공이 다른 이름으로 어디 슬쩍 올라가 있어도 백프로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시대죠.] 이렇게 댓글을 달았고 모든게 다 밝혀졌을거라고 생각은 안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특별히 문제가 있는 기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잘못된거겠지' 라는 기록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에 대한 근거로 당대의 평가를 드는것은 과잉으로 보입니다. 특수문자님 말씀대로 (누락된 기록이 있겠지) 라면 모를까요. 누락된 기록이 있겠지~ 라는 내용은 기록에 대한 부정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기록이 그만큼 중요하다는것을 이야기하는 의견에 가깝죠. 뭐 그래도 저는 역시 평형이라는 생각은 안듭니다.
17/01/12 16:26
흠 좋은 의견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고려를 해야되요 역사자료 유물 같은건 특히 연도가 오래될수록 사실 생각보다 후대까지 못 가는 경우가 꽤 존재합니다 유실이나 실전되는 경우가 있어요 즉 현대라고 그 당시를 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 가능하다고 확신하는건 오만입니다 왜냐면 당시에 있던 자료가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한줄로 요약하면 꼭 저 두 주장의 대립 말고도 다른 가능성이 있을수도 있다는 거죠 누락된 전공이 있었는데 이를 기록한 역사서가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거나 하는식으로요
17/01/12 15:57
삼국지 팬들이 무장으로서의 관우를 지나치게 고평가하는 감이 있는 건 사실이죠.
관우는 삼국시대에서는 명장이었겠지만, 중국사 전체로 보면 끼워줄 자리가 없는 수준입니다.
17/01/12 16:05
삼갤이 관우 싫어하는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정치적인 요소도 있어보이더군요.
삼갤에서 싫어하는 인물이 관우를 그렇게 찬양하는 인물이다보니 그에 대한 반발심에 관우에 대한 평가도 굉장히 박하다는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17/01/12 16:06
개인적으로 관우의 가장 큰 모순은
관우가 가장 잘 활약할수 있는 역할은 전략이 뛰어난 지휘관 밑에서 지휘를 받아 자신의 무용을 발휘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안량참살시 순유의 전략에 의해 움직여서 큰 공을 세운게 관우의 가장 베스트라고 봅니다) 문제는 관우의 자신감이 너무나 지나쳐서 유비를 제외하고 누구 밑에서 지휘받아가며 하지 못한다는거죠. 성격과 능력의 불일치라고 할까요. 관우가 조운같이 누구밑에서라도 자신의 임무 묵묵히 잘 할수 있는 성격이라면 더욱더 많은 전공을 올렸을걸로 생각됩니다. 롤로만 보면 관영, 번쾌 같은 롤이 딱인데 자꾸 몸에 맞지 않는 한신의 롤을 맡았으니... 뭐 촉에는 딱히 한신 롤을 맡은 사람이 없었다는것도 불행이긴 하겠네요. 그나마 제갈량인데 유비때의 제갈량은 소하 롤을 맡아야만 했고...
17/01/12 16:08
저는 당대인들이 그랬다는 이유로 관우를 높이 평가하는 주장에는 회의적입니다. 가령 이제동이 당시(07~10년도) 팬덤 싸움에 밀려서 본좌라인에 들지 못하다고 해서 지금 이제동이 최강이 아니었다거나 임이최마보다 아래인 선수였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니까요.(이윤열은 몰라도 나머지 3명보다 아래인 선수가 아니니) 객관적인 커리어로 봐서 최강이었음이 명백하니까요.
또 한니발이 스키피오랑 만나서 대화할 때 최고의 명장 1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고 2위는 피로스 1세이고 3위는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한니발이나 스키피오가 피로스 1세보다 아래인 명장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것도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관우는 삼국지 내에서는 명장이라고 불릴지는 몰라도 당대(삼국지)에 장료를 비롯해서 관우보다 뛰어난 장수가 결코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예 한정으로 놓고 본다면 최고라고 불려도 무방하겠지만요.
17/01/15 16:14
책사들의 주장은 팬들의 주장과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없죠.
상대편 코치, 상대하던 선수들의 평가 정도가 되어야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17/01/19 09:48
지금 확인해서 답글을 답니다만, 한니발이 피로스를 알렉산드로스 다음의 명장이라고 주장한 게 있다고 해서(윗 댓글에 제가 쓴 걸 보시면...) 스키피오나 한니발이 피로스 1세보다 떨어지는 명장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한쓰우와와님 말대로 라면 한니발 같은 역대급 명장이 책사들의 주장보다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없죠. 팬들의 주장보다야 말할 것도 없고...
17/01/19 20:47
피로스 1세는 전략적인 식견이 부족한 장수이긴 합니다만, 전술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는 역대급의 명장중 한명이고,
피로스 1세가 스키피오나 한니발보다 못하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습니다. 그정도의 역대급 명장들을 간단히 줄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고요. 한니발 정도의 명장의 평가를 우리같은 전알못이 뒤집는것도 말도 안되고요. 실제로 목숨을 걸고 상대하던 사람들이 가용한 모든 데이터를 평가하는 것과, 후대 사람들이 기록 몇줄로 평가하는데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기록에 없다고 그때도 없었던 것이 아니죠.
17/01/21 07:24
무조건 전문가의 평가가 신성불가침인가요? 그럼 이영호가 개인방송에서 허영무>송병구로 평가했는데 역대 스타1 토스 순서에서 김택용 다음으로 송병구를 꼽는 사람들 모두 스알못의 건방진 평가인가 봅니다?
야구에서 논란이 되는 골든글러브 수상, 축구에서도 요즘 인기투표라고 비판받는 피파 월드베스트 11도 팬들이 받아야 되는 선수는 따로 있다고 얘기하면 안되는 건가요? 암체어에서 역대 명장 100명 순위 발표한 것도(한니발이 10위, 스키피오가 19위, 피로스는 100위 안에 없네요.) 군알못들의 평가인가 보군요. 그리고 피로스가 한니발 스키피오보다 아래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요? 한니발처럼 경이로운 원정으로 당대 최강국을 어마어마한 위기로 몰아넣고 역사에 손꼽힐만한 전술적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키피오처럼 역대급 명장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제국이 세력으로 대약진하는 기반을 남긴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리고 스키피오도 한니발 까지는 아니어도 스페인이나 카르타고 본토로 가서 승리하는 어려운 원정이 있었고.
17/01/12 16:13
"현대 시점"을 기준으로 내리는 평가에서 가장 뛰어난 장수를 뽑아야한다면 장합이 되겠죠. 1차북벌 실질적으로 다 막은데다가 살아생전 끝까지 제갈량 괴롭혔으니. 마지막에 윗대가리 사마의의 오판으로 억울하게 죽은거까지 포함하면.. 장비한테 전술적으로 패배한 거 빼고는 오점도 거의 없고.
17/01/12 16:13
리플들 보니 생각나는게 딱 둘 있네요
지네디 지단/페니 하더웨이.. 둘 다 본인 전성기엔 당연히 전설들 갈아치울거라고 했지만 지단은 최전성기 펠마지 되네 어쩌네 했지만 은퇴하고 나서 결국 저 라인의 뒷줄도 힘들고 유럽 최고의 선수 자리도 못먹었죠. 페니 하더웨이는 보여준 것도 짧지만 임팩트 있었어서 페니가 부상이 없었더라면 if만 계속 나오고 동시대에 이미 전설급 스탯이었던 스탁턴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고, 후대 평가할 때도 페니가 건강만 했더라도.. 나오지만 실제로 선수 평가할 땐 가드 랭킹에서 스탁턴은 2~4위 사이지만 페니는 아예 논외죠. 동시대 사람들의 평가만큼 불확실한것도 없어요.
17/01/12 16:37
당장 은퇴하고 동시대에 있던 사람들은 동시대 사람들이죠...
호나우두는 커리어로 봤을 때 월드컵 정도 외엔 거의 우위가 없는데도 아직까지 호날두와 아웅다웅하는 것처럼요.
17/01/12 16:41
동시대와 후시대를 가르시는 기준이 궁금하군요. 그런식으로 치면 지단도 아직 그의 플레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살아있으니 동시대라 쳐야 하나요. 관우가 반짝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유비 세력이 보잘것 없던 시기부터, 이후 세력이 성장하던 시기, 그리고 패하고 죽고나서까지도 일괄적인 고평가를 받았는데요.
오히려 후대의 관우 평가야말로 여러 요소가 합쳐지고 끝도 없이 고평가 되면서 왕, 황제, 신으로까지 추앙되는데 이런걸 보면 후시대 사람들의 평가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죠.
17/01/12 16:49
당장 그 시대를 봐왔던 사람+당 시대의 명을 직접 들은 사람까지는 동시대로 봅니다.
지단과 페니는 그게 매우 빨리 깨진 편이구요. 이름이라는건 얼마든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명불허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삼인성호라는 말이 있듯이요. NBA에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는 동시대를 봐왔던 저에겐 코비의 라이벌이고 실력으로는 코비보다 나았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저를 통해 저저번 시즌 NBA에 입문한 친구도 티맥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두 선수의 비교는 이제와선 코비에게 들이대는것조차 미안한 수준이죠. 이렇듯 누군가를 "평가"해야 한다면 그 사람이 이룬 커리어로 보는거죠. 사실 리플 달 때 결국 남는건 커리어고 그 커리어가 비슷하기나 해야 동시대 평가가 들어가는게 맞다라고 썼는데 좀 이상할까봐 뺐는데 괜히 뺐네요.
17/01/12 17:06
스포츠 선수와 전쟁터의 장수를 비교하는 일이 원래 어렵겠습니다만, 관우에 대한 당대의 평가가 말씀하신 티맥에 대한 평가처럼 온전히 관우의 휘두르는 칼끝을 직접 지켜본 사람과 그들의 입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겠죠.
민간에서 관우에 대한 신앙과 같은 고평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관찬 사서들을 충분히 접하고 여러 장수들의 공적을 고루 접할 기회가 있었던 문관들과 장수들의 입에서도 관우의 무공은 자주 오르내리던 화제니까요. 인물에 대한 평가에 '기록'이 아닌 '인상'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 평가들이 의미없어 지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제 삼국지에서도 관우보다 중요한 전공을 세운 장수도, 중요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믿기 힘든 전공들을 여러 차례 세운 장수도 존재하지만, 관우만큼 천하에 스스로의 인상을 깊이 각인시킨 장수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전공 역시 결코 부족하지 않지만) 역사적인 인물의 평가에서 이 인상이라는 면을 간과할 수 만은 없겠죠. 그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저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이 부분에서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와 프로스포츠 선수의 평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17/01/12 17:21
말그대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불과한거죠.
딱 좋은 예가 있네요. 제가 정말 최고로 아끼는 선수지만 타이거즈 이종범선수요. 분명 본인이 세운 기록도 엄청나고 임팩트도 엄청났죠. 그래서 후대에도 최고의 유격수 뽑을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갑니다. 선수 이야기할 때도 언제나 90년대의 최고의 선수 라인에 뽑히고 매번 화자되죠. 동시대의 양준혁 선수와 비교할 땐 결국 스탯에서 밀립니다. 그래도 당시의 인상만으로 동시대의 최고의 선수로 꼽힙니다. 다만 선수 중에 누가 더 좋은 선수인가를 논하게 될땐 결국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외엔 없는 이종범이 항상 밀립니다. 이종범이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아니 거기서 데드볼만 안맞았다면? 이런건 다 IF에 불과하고 결국 둘의 평가는 이루어진걸로 하는거죠. 이종범이 데드볼에 맞았기 때문에 확 폼이 죽은거 누구나 압니다. 근데 그건 이종범 개인의 사정이고 양준혁이랑 비교할 때는 고려해줄 부분이 아닌거죠. 단순히 허명이라는게 아니라 단지 평가는 커리어로 봐야한다는 거죠.
17/01/12 17:35
네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프로스포츠 선수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Dalek님께서 말씀하시는 요지가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평가라는 것이 일괄적으로 정답이 딱 떨어질수도 없는 일이니 다를 수도 있는 것이겠고요. 저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가에서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평판의 축적도 결국 역사거든요.
17/01/12 16:37
관우의 경우에는 딱 잘라 당대라고 말하기에는 최소한 수백 년, 못해도 천여 년 그런 고평가를 받았으니까요. 물론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또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만 전자의 평가가 불확실하다고 단정짓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17/01/12 16:19
삼국지에서 장수가지고 싸우는게 사실 도토리키재기죠.
제갈량이나 순욱같은 인물들은 중국사전체에 내놔도 겨룰 수 있을만한 인재들인데 반해 삼국지의 장수진은 한신이나 백기같은 애들이랑 비교하면 너무 초라합니다. 도토리키재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다들 고만고만해요. 마치 삼국지겜에서 능력치평균 80인 애들가지고 누가 더 뛰어난지 싸우는 수준.
17/01/12 16:24
사실 그렇죠. 무장으로 따지면 중국은 역대급으로 뛰어난 장수들이 쌔고 쌔서 평가를 내린다면 삼국지 내에서만 따져야합니다.
단순한 무용 부풀리기로 중국사 명장들이 고평가 받는 문제가 아니라, 전술 활용 이런거만 봐도 삼국지 시대는 딱히 봐줄만한게 없죠. 조운 공성계나 하후연의 용맹믿고 돌격이나 장료의 800기로 들이대기 등등..
17/01/12 16:29
아무래도 조조가 악역이고 제갈량은 선역의 이미지가 있어서.
그 악역 조조에게 천하평정의 길을 열어준 일등공신이 순욱이니까요. 제갈량쪽이 많이나올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순욱을 더 높이 칩니다.
17/01/12 16:32
아무래도 그렇죠. 조조와 유비 기본 베이스의 차이도 있고, 순욱은 어찌되었건 모양새가 막판에 조조하고 불화가 있었고 병으로 죽었다고는 하나 자살에 가까웠던게..(살아 생전 직접 순욱을 전장에 투입을 거의 안했던 조조가 "굳이" 불화가 있던 순욱을 "굳이" 출정시켰던 이유는 저는 아무리 봐도 흠흠...)
그에 반해 제갈량은 후반부에 가서도 북벌을 직접 진두지휘하는거 뿐만 아니라 촉의 국력까지 생각하면서 북벌했고 그 와중에 위와 대등하게 싸웠죠. 실제로 그렇게 전쟁을 했음에도 촉의 경제상황이나 백성들 민심은 크게 동요도 없었고. 전 중국사에 기록될만한 삼국지 인물을 한 명만 뽑으라면 무조건 제갈량입니다. 물론 순욱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요.
17/01/12 16:43
순욱역시 조조가 초반에 별거없을때부터 보필해왔습니다.
제갈량은 유비가 어느정도 거느리는세력이 생기고 난 뒤에 들어왔죠. 제갈량의 북벌은 별성과가없었으니 그걸가지고 대단하다볼건 안되는것같네요.
17/01/12 16:49
순욱은 조조를 찐따시절부터 업어 키웠는데 제갈량은 유비가 기반없이 똥밭을 구를때는 고시공부나 하다가 정작 유비가 살만해질때 슬쩍 오빠 요새 좀 멋있다 이러면서 들어왔다고 폄하하자면 사실 반대도 생각해야죠
그렇게 치면 순욱은 정말 큰 일, 나라를 위한 중차대사를 해줘야 할 시기에는 정작 조조 눈밖에나서 독감예방주사도 못 맞고 집에서 인형 눈깔이나 붙이다가 켈룩켈룩대다가 죽었는데 제갈량은 유비 골로 간 다음에도 촉한을 위해 계속 일했고 그 일도 되게 잘했잖아요.
17/01/12 16:55
님 의견에 전반적으로 모두 동의는 하는데 순욱이 말년에 죽을때는 집에서 인형 눈깔 붙이다 죽은건 아니고.. 조조가 억지로 끌고갔죠 손권 유수 침공할때.. 그런데 병 때문에 끝까지 안 따라가고 수춘에서 요양하다 죽었을겁니다.
17/01/12 16:56
정말 큰일을 해줘야할시기가 조조의 찐따시절 아니었나요? 관도대전이후 원소세력 토벌되고나서는 조조에게 위기가 한번도없었죠.
조조도 지가 좀 살만해지니까 팽한건지 어떤건지. 저는 관도대전이후로는 삼국지가 재미가없어서 덮게됩니다. 조조 win!!
17/01/12 17:03
그러니까 순욱을 그냥 '조조 부하'라고 생각하면 님 말씀이 맞겠습니다만 인간 순욱 입장에서는 그때부터가 사실 시작이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뭐 순욱을 조조 부하 제갈량을 유비 부하라고만 생각하면 저도 순욱 WIN이라고 하겠습니다만... -_-;
17/01/12 17:34
조조를 대륙의 최강자자리에 올려놓았는데 그정도면 할일은 다했다고 생각됩니다.
이후는 그냥 지지부진한 산발적인 교전좀하다가 정리수순이라. 삼국지는 관도대전끝나고나서는 너무 재미가 떨어져요. 사실상 위나라패권이 확립이 되니까요.
17/01/12 17:30
사실 조조가 유비만큼 어려웠던 적이 별로 없죠
제갈량이 유비에게 들어올때는 유비가 살만해질때 들어온 것도 아니고 유표객장시절입니다. 비육지탄 소리 나오던 때고... 그 이후엔 뭐 조조의 남하에 쫓기며 처자를 버리고 도망갈정도로 비참했고 믿기 힘든 장비의 장판교 일화가 없었으면 진짜 뒤질뻔 했죠. 힘들때 들어온 것인데 ㅡㅡ;; 힘들던 때에 오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유손동맹을 이끌어내며 타개한게 제갈량이고요. 순욱이 힘든 시절에 이뤄낸 공이라면 연주가 장막 뒷치기로 휘둘릴때 조조는 진짜 망할 뻔했는데 순욱과 정욱이 같이 방어해서 근거지를 보전한 것과 원소에게 밀릴때 이길 수 있다고 해서 북돋아 준 건데 아무래도 제갈량하고는 클래스 차이가 있다고 봐야죠. 일단 제갈량처럼 일군을 끌고 큰 군공(익주를 쳐들어갈때 장비/조운/제갈량이 군을 3개로 나눠서 각지 평정, 남만 정벌, 3차 북벌 성공으로 무도, 음평 획득)을 세운 적도 없고요.
17/01/12 17:41
저도 대부분 의견에 동조하기 때문에 제갈량을 우위로 보는 입장이지만
힘든 시절에 이뤄낸 공은 분명 더 있었다고 봐야겠죠. 순욱의 경우 죽기 전에 조조와 나눴던 필담(이라 쓰고 상담내용이라 읽죠)을 모조리 다 불태워버렸으니까요. 실제 사서에 남은 기록이기도 하고.. 원소에게 밀릴때 이길 수 있다고 해서 북돋아준 것 이상으로 초창기 조조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기록이 남아있질 않으니 추정할 수 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조조가 원정 나온 상황 속에서도 순욱과 상담을 주고 받았었고, (말년을 제외하고) 대우해줬던 것만 봐도 조조가 순욱에게 의지했던 부분이 상당히 컸을거라는건 유추할 수 있겠죠..
17/01/12 17:44
순욱이 조조휘하에들어간건 조조가 연주목이 되기전이고, 조조가 본격적으로 천하를휘두른것이 헌제를 맞이했을때인데 그것역시 순욱이 조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조의 초기 인재들도 거의 순욱이 천거해서 그 천거한인물이 또다시 다른이를 추천하고. 이런식이 많습니다. 조조가 천하를 휘어잡고 알맞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쓸수있게 모든 계획을 그려준게 순욱입니다.
17/01/12 17:52
그런데 조조가 연주목이 되기 전이 유비가 형주에 더부살이 할 때보다 못하냐 라고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순욱이 인재를 천거했다지만 그건 순욱의 공보다는 조조가 낙양북부위 시절 명성과 반동탁 연합을 주도하면서 얻은 명분이 더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17/01/12 18:01
레스터 님// 당시 천하의 인재들은 모두 원소, 조조 휘하에 있었죠.
원소는 사세삼공의 가문빨로, 조조는 북부위와 반동탁 연합의 후광으로 얻었습니다. 그 시절의 인맥이라는 것이 서로서로 얽혀 있는 것이라 천거가 없는 사람을 끌어오는 것도 아니구요. 유비도 실제 행정조직을 갖추게 되는 건 형주에 있던 명사들을 영입하면서 입니다. 제갈량의 인맥으로 얻게 되는 인재들이죠.
17/01/12 18:02
홍승식 님// 아뇨. 여기저기 다 흩어져있었습니다. 점점 모여든거지요. 무슨 천하의인재들이 처음부터 원소 조조휘하에 있었다는 이야길 하십니까. 황당하게 들리는군요
17/01/12 18:06
레스터 님// 첨부터 있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모여든 것인데 그 이유는 순욱의 역할보다는 조조의 역할이 더 크다는 거죠.
17/01/12 17:56
조조세력의 성립에 순욱의 공이 최고였던걸 부인하는 건 아니고 군단을 끌고 정벌전도 벌였던 제갈량에 비해 손색이 있었다는 겁니다. 세력을 만드는 데에 순욱이 소하+장량의 역할을 했다면 제갈량은 소하+장량+한신의 역할을 했으니까요.
17/01/12 18:04
레스터 님// 성공했습니다. 3차 북벌에 무도랑 음평을 빼앗았죠. 남중 원정도 성공했고요. 촉에 진입할때도 제갈량/장비/조운이 군을 나눠서 정벌했다고 나오죠.
17/01/12 18:06
적토마 님// 성공했으면 촉이 위나라쪽으로영토를 뻗었겠죠. 일시적으로 지역을 빼앗으면 뭐하나요. 도루묵인데.
마속을 중용함으로써 결정적실책도있었고요.
17/01/12 18:11
적토마 님// 그러니까 작은지역 한두개 뺏는다고 큰흐름이 바뀌는게아니죠. 그 몇차의 북벌동안 소모한국력은 어쩌구요.
누가 제갈량의 북벌을 성공했다고평가하나요? 좀 그런역사가있으면 보고싶네요. 진수도 군사적으로는재미를 못봤다고평했는데요.
17/01/12 18:16
레스터 님//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가는데요? 그럼 제갈량이 북벌해서 위를 다 털고 멸망시켜야 되는건가요? 이런 논리론 한니발도 별거 아닙니다. 제갈량이 북벌로 위를 털었으면 역대 명장들 손꼽을 때 논해질 정도가 되는 것이죠. 저는 제갈량 군재를 그런 급으로는 생각 안하는데요. 그냥 어느정도 뛰어난 수준이지
17/01/12 18:19
적토마 님// 작은지방 몇개 빼앗는정도가 아니라 흐름을 바꿀정도의 큰승리는 있어야하는거 아닌가요?
위촉 공방전에서 장안코앞, 주변을 다손에넣는다던가, 장안까지 점령하면 더좋고. 근데 그런거없이 그냥 매년 출병했다가 큰소득없이 막히고 돌아왔잖아요.
17/01/12 18:23
레스터 님// 순욱보다 군재가 높았다고 사례를 들은 것이지 제갈량이 군재 짱이라 한게 아닌데 왜 제갈량이 다 털지 못했냐고 계속 물으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논리론 한니발도 그냥 망캐인데
17/01/12 18:28
적토마 님// 다털라고 한적없습니다. 전세를 바꿀만한 큰 승리나 그런소득이 없었다고 했지요.
한니발은 아예 로마 본토까지 들어가서 몇년동안 쑥대밭으로만들고다녔는데 제갈량과 견줄건아니죠.
17/01/12 18:36
레스터 님// 한니발에 제갈량 군재가 버금간다는 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님 논리대로면 결국엔 물러나고 카르타고 망해서 결과는 똑같다는 거죠.
제갈량 군재는 뛰어났지만 눈부시게 뛰어나지 못한 것일 뿐이죠.
17/01/12 18:44
레스터 님// 촉정벌이랑 남중정벌은 명백한 대성공이었는데 언제 소득이 없었나요? 또 3차북벌은 성공했다니까요. 결론적으로 촉이 지는 결과를 못 바꿨다는 소리는 제발 그만하시고요. 그 논리라면 한니발도 똑같이 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은 국력 소모한 적이 없어요. 제갈량을 그나마 까는건 군재로 까는거지 내정은 찬양 일색이죠. 모든 기록마다 제갈량의 행정, 경제, 정치를 찬양하는 것 뿐인데 언제 국력을 소모했습니까? 살면서 제갈량이 내정으로 까이는건 또 처음 보네요.
17/01/12 18:46
적토마 님// 한니발은 피레네와 알프스를 넘는 고된 원정을 극복하고 로마 본토에서 칸나이 전투로 로마를 어마어마한 위기에 몰아넣은 사람입니다. 결과야 그럴지 몰라도 과정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에요. 전술 같은 군재로서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한니발에게 실례죠.
17/01/12 18:51
FlashVision 님// "한니발에 제갈량 군재가 버금간다는 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라는 제 리플이 명백히 위에 있는데 허수아비 치시면 안되죠.
한니발 예를 들은건 레스터 님이 제갈량이 군사행동에서 업적이 없다고 하시길래 이런게 있다라고 했는데 결정적인 결과를 바꾸지 못해서 없는 거다라는 논리를 펼치시길래 그런 논리하에선 한니발조차도 공이 없게 된다라고 말한 것이고요.
17/01/12 18:55
레스터 님// 저 위에 보면 단순히 군단을끌고 정벌을한게 어떻게 플러스점수가됩니까? 성공하지 못했는데요. 라고 해서 제가 반례로 촉 정벌, 3차북벌, 남중 정벌을 들어서 글타래가 이어진 것이지요. 처음부터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논의의 주제인데 왜 갑자기 말을 돌리시는지...
그리고 제갈량이 국력소모했다면서요. 3차북벌 빼고 전부 실패했지만 당시의 기록엔 계속 내정의 찬양 일색일 뿐입니다. 전쟁에 동원한 물자를 메꾸는걸 넘어내서 그 이상을 했는데 언제 국력을 소모했나요?
17/01/12 18:57
적토마 님// 자꾸 한니발하고 비교하시는데, 그논리면 한니발도 똑같이깔수있다고요.
전 위나라를 아예 밀어버리라고한적 없는데 자꾸 한니발을 끌어들이시는지? 결정적이거나 큰소득이 있어야한다고했죠. 장안까지는 진출하든가. 없잖아요그런게. 결국 그땅 그대로 거의벗어나지못하고 되돌아왔지요.
17/01/12 19:00
적토마 님// 군단이라고 표현할정도의 대규모병력으로 전쟁을수행한건 북벌이니까요. 북벌이야기를한거고.
남만정벌은 뭐 그닥이죠. 그리고 전쟁에동원한물자를 메꿨다? 아무리 내정을잘한다고 이미 소모한 인명과 곡식이 어디서 떨어지나요? 소모한건 소모한거죠.
17/01/12 19:05
레스터 님// 군단을 이끌고 정벌을 한게 성공한 적이 없어서 플러스요소가 되지 못한다고 님이 그랬고
그래서 아니라고 성공한걸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난데없이 결정적인 소득이나 큰 소득을 얻어서 판세를 바꾼건 아니니까 성공이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셨지요? 그래서 그 논리대로라면 한니발도 결과적으로 카르타고가 망하고 판세를 못 바꿨으니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했지요? 성공한 사례들에 대해선 님이 할 말 없다는 것을 알겠으니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갈량 치하에서 내정의 발전으로 촉의 국력이 강화되었다는건 팩트입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내용이고요.
17/01/12 19:10
적토마 님// 남만정도규모의 적과 싸운걸가지고 군단을 이끌고정벌을벌였다는건 전혀와닿지않네요. 차라리 순욱의 조조 근거지방어가 훨씬 큰거같습니다. 북벌을성공했다면야 제갈량의 군재를 인정하겠습니다만 아니죠.
한니발은 세계최강의 로마를 궁지에몬사람입니다. 자꾸 제갈량따위랑 묶지마시구요. 판세를 크게뒤흔들었죠. 단지 로마가 역전시켰을뿐. 플래시비전니미 말하신대로 로마멸망은 실패했을지언정 과정속에서얻은 큰승리들이 비교가안됩니다. 그리고 내정을 잘한건잘한거고 국력을 소모한건 소모한거죠.
17/01/12 19:20
레스터 님// 정사에 보면 남중의 여러 군이 난을 일으켰다고 되어있는데 이를 원정가서 진압한건 별거 아니지만 순욱이 정욱과 함께 3개 현을 지킨게 더 크군요. ...네 아니고요
님이 전공이 없어서 플러스요소가 안된다면서 우기길래 아니라고 말씀해드렸더니 판세를 못바꿔서 없는거라는 황당한 정신승리 하셔서 계속 예를 드는거잖아요. 판세를 못 바꿔서 승리가 있어도 승리 인정 못한다하니 그런 논리론 한니발도 폄하될 수 있다는건데 '한니발 군재가 제갈량보다 뛰어난데?' 라는 동문서답은 대체 왜하시는건가요? 그건 저도 잘 아는데요. 그니까 판세를 못 바꿔서 승리가 있어도 승리가 아니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거두시면 됩니다.
17/01/12 19:21
적토마 님// 용병제였던 카르타고, 징병제였던 로마. 심지어 지중해 재해권도 로마에게 있었고 심지어 로마는 전통적인 육군 강국이었던 상황에서 아프리카-이베리아-피레네-알프스-로마 이런 경이로운 원정을 성공시킨게 한니발입니다. 제갈량과는 차원이 다르고, 그리고 위에 처음에 레스터님도 제갈량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위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했다라는 말이랑 동일시 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국력을 투자했으면 가치 있는 전과라도 남겨야 했는데 제갈량을 다섯 차례 북벌 가운데 3차 북벌에서 무도 음평이 전부 아닌가요? 같은 중국사의 한신처럼 병사 몇 만으로 나라 몇 개를 멸망시킨 것만 봐도 전쟁 평가에 과정이 중요하죠
17/01/12 19:29
FlashVision 님// 위에 있는 리플좀 읽고 끼시면 좋겠는데요.
제갈량이 직접 군을 이끈 점에서 순욱보다 우위인 점이 있다고 했고 성과가 없어서 아니라 하길래 성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판세를 못 바꾸면 성과가 없다(???????)라는 논리를 펴서 결과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점의 예를 들기 위해 한니발을 써먹은 것에 불과하고 서로의 군재를 비교한 것이 아니니 한니발의 대단한 점은 설파하실 필요가 없고요. 저 논리가 해괴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겁니다. 자신이 상대보다 불리해도 엄청난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이 있지요. 명량해전같은 신화를 써낸 이순신이 있고 한니발이나 벨리사리우스가 있고요. 그건 해낸 사람이 대단한 것이고 못해낸 사람은 폄하될 이유가 없죠.
17/01/12 19:30
적토마 님// 그리고 고작 3개의 성이라고 하시지만 당시 조조에게는 그 3개성이 집입니다.
그것마저 잃었다면 조조는 돌아올집이 사라지고 연주라는 자신의근거지를 잃는것이었으니까요.
17/01/12 19:42
적토마 님// 직접 군을 이끌고 원정을 갔으나 군재라고 할만한 업적은 별로 없죠. 그렇기에 진수도 제갈량의 군재는 부족하다고 한것이고.
17/01/12 19:44
적토마 님// 오히려 님이 레스터님 댓글을 읽으셔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레스터님은 [제갈량의 북벌은 별성과가없었으니 그걸가지고 대단하다볼건 안되는것같네요.] 이런 식으로 제갈량의 북벌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님이 성공했다고 했잖습니까. 그걸 북벌 가운데 무도 음평을 들었고요. 그리고 마속 기용 실책이나 진창성에서 막혀서 무도/음평으로 플러스된 성과보다 실책으로 마이너스 된 성과가 크면크지 아래는 아닌것 같은데요. 전 레스터님 논리가 해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과를 따질 때에는 실책으로 감점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야구의 WAR이 마이너스가 있는 것처럼
17/01/12 19:55
FlashVision 님//
'성공한게 없다' 길래 '성공했습니다. 촉과 남중정벌, 3차북벌이 성공했죠' 라고 말한건데요 있는 성과를 없다하는게 이상한거지 1차와 2차가 실패라 3차는 성공했지만 성공이 아니다라는게 말이나 되나요.
17/01/12 19:57
적토마 님// 북벌이 3차까지만 있는게아니죠. 5차에걸친 북벌동안 들인 인명이나 물자에비해 얻은소득이 별로이고
그래서 성공하지못했다고 평하는거죠.
17/01/12 17:47
순욱이 추천한 다단계식 인재 피라미드입니다.
https://namu.wiki/w/%EC%88%9C%EC%9A%B1#s-1.3.4 위키에서는 순욱의 인재를 보는안목을 삼국지에서 이분야 원탑이라는 유비와 견주고 있습니다.
17/01/12 17:23
제갈량이 유비에게 들어올적이 예주목때나 서주목 시기도 아니고 유표 객장시절이었고 이때부터 적벽대전 까지가 유비가 제일 고생하던 시기인데 전혀 맞지 않죠. 어느정도 세력이 생기고 들어온 애라 매도하려면 적어도 적벽대전 이기고 나름 자리잡은 후 들어온 인사들한테나 할 수 있는 말이고요.
17/01/15 16:17
조조는 말 그대로 플래티넘 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최상급 금수저인데요...
조조가 초반에 별거 없을때, 라고 해도, 당시 유표한테 빌붙어 있던 유비보다 밀리는 때가 있진 않으리라 봅니다.
17/01/12 16:40
흔히 이런 비교를 할 때 제갈량의 자리에 순욱이 있었다면? 순욱의 자리에 제갈량이 있었다면? 하는 식의 단순한 비교를 즐겨 쓰는데
순욱은 제갈량을 대체하지 못했을 것이고, 반대로 제갈량 역시 순욱을 대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서로가 가진 장점이 워낙 특별하고 각국에 꼭 필요한 재능들이었기 때문에.
17/01/12 17:45
전 제갈량을 더 높게 봅니다.
순욱과 제갈량은 문제의 난이도 측면에서 제갈량이 꽤 많이 어려웠기에 원점수는 순욱이 높더라도 표준점수는 제갈량이 더 높게 나올겁니다.
17/01/12 18:04
조조가 이룬 공적에서 순욱의 몫은 많이 봐도 1/4을 넘지 못하지만, 유비+유비 사후의 공적에서 제갈량은 적게 봐도 1/3 이상이죠.
전 순욱이 없었더라도 조조는 천하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17/01/12 18:22
그건 개인의 평가가 다른 것이니까요.
전 순욱이 한 일 중에서 가장 큰 건 조조가 서주 치러 갔을 때 여포의 공격을 막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의 일이야 순욱의 대체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좀 돌아갔을 망정 조조의 대업에는 크게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겁니다.
17/01/12 18:31
순욱이한일중에 보통 가장 크게 꼽히는것은
조조가 개털이던시절 초기 조조를 보좌할 참모진을 꾸린것과 헌제가 피난을 갈때 가장먼저 마중나가 헌제를 보호하고 천자를 옆에끼고 제후를 호령해야한다는 조언을 한것 그리고 조조가 밖에나가 싸우는동안 본진수비한것 이세가지가 꼽힙니다. 모두 조조의 대업에 큰 영향을 끼친것들입니다.
17/01/12 18:37
1.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조조를 보좌할 참모진을 꾸린것은 순욱의 공도 있지만 조조 개인의 매력이 더 큽니다.
2. 헌제를 옹위하라는 조언은 전풍도 한것이라 역시 순욱의 조언보다는 받아들인 조조가 더 대단한거죠. 3. 본진 수비는 인정합니다.
17/01/12 18:41
홍승식 님// 그리따지면 천하삼분지계는 주유도 이야기했었고 당대에 그걸 얘기했던사람이 제갈량말고도 있었습니다. 방통도 있었고.
그리고 순욱이 천거하지않았다면 그사람들 대부분이 그냥 초야에 묻혀있거나 다른쪽에서 컨택이 와서 그쪽으로 갔겠죠. 말도안되는 소릴 하시네요. 조조가 뭐 처음부터 원소급으로 유명했나요? 원소도 처음부터 그렇게 명성이 자자했던게 아니죠. 조조가 십상시의 인척을 참살했다곤하나 그정도수준의 명망이야 당시 한둘이 아니었겄죠.
17/01/12 19:41
레스터 님// 그러니까 헌제 옹위, 천하삼분지계 같은 건 당대 지식인들에겐 어느정도 인정받은 것이라는 거죠.
그걸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거고 그건 실행한 조조가 대단한 거라고 봐야하는 거구요. 제갈량이 대단한건 행정조직이 전무했던 유비의 사병집단을 가지고 국가의 기틀을 만들고 전력의 열세임에도 전선을 유지하면서 내정도 잘 수행한거지 책략을 내고 그런게 아닙니다. 반면에 조조는 기존의 한나라 체제 안의 군벌이라 순욱이 새로 만들거나 한게 아닙니다. 원소는 첨부터 유명했습니다. 기존 가문의 위세에 본인이 3년상을 두번 치르면서 지식인들 사이에 알려졌고 하진이 집권할 당시에 하진의 최측근으로 이미 정계의 기린아 였는걸요. 괜히 조조가 반동탁연합의 맹주로 원소를 앉힌게 아닙니다. 이정도면 황건적과 십상시 이후 삼국지 시대 첫번째 네임드로 원소가 손꼽히는게 당연합니다. 거기에 동탁이 반동탁연합이 결성된 후 원가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면서 원소는 이미 사람들에게 동탁을 견제할 영웅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조조는 소시적에 원소와 함께 보내면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북부위시절이야 그냥 이름만 알려진 정도였지만 반동탁연합 결성과 홀로 동탁을 추격한 걸로 전국구급 명성을 쌓게 된거죠. 물론 그때까지 조조는 원소의 부장 정도로 취급받았지만요. 순욱도 원소의 밑에 있다가 원소의 인물됨에 실망했는지 인재들이 너무 많아 자신이 치고나갈 수 없어서인지 조조로 옮기게 되는 겁니다. 즉 원소와 조조는 이미 당대 지식인들에겐 출사한다면 첫번째 선택지 - 물론 원소가 더 - 인 겁니다.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하는 바람에 서주지역의 지식인들이 형주로 대거 이동해 촉의 주요세력이 되는거구요. 익주(촉)와 양주(오)야 당시엔 그냥 깡촌이구요.
17/01/12 19:47
홍승식 님// 당대지식인들에게라고 묶기에는 실제로 움직인사람이 거의없단점에서
그걸생각해낸사람은 단수는 아니었지만 소수였던건 맞습니다. 그리고 당시 조조정도의 군웅이야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조조도 천자를 끼면서부터 손에꼽히는 군웅이된거지 그전에는 원소하고 견줄정도는 전혀아니었고, 서서히 세력을 뿔려간것이죠. 거기에 순욱이 공헌한거고. 당대 사람들이 무슨 전부 조조원소에게 있던것도아니고. 원소는 하북에서 주변군웅들을 멸망시키고 세력을 흡수했고 조조역시 마찬가집니다. 처음부터 세력이컸던게 아닙니다.
17/01/12 20:01
레스터 님// 그러니까 순욱의 공이 없다는 게 아니라 제갈량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순욱은 주식회사 조조의 능력있는 임원 정도라면 제갈량은 주식회사 유비의 제2주주&COO 정도로 봐야 하니까요. 순욱이 없는 조조와 제갈량이 없는 유비를 생각해 보세요. 조조는 그래도 여차저차 대업을 이룰 가능성이 큰데 유비는 절대 불가능입니다.
17/01/12 20:21
레스터 님// 그리고 순욱이 조조에게 임관하고 피라미드를 구성할 당시에 명사들에게 매력적인 군웅이 조조 말고 어디에 있나요.
원소, 원술을 빼고는 없죠. 유언이야 익주에 들어가 혼자 왕노릇하고 있었고, 유표는 형주에 콕 쳐박혀서 중앙정계에 미치는 영향이 없었죠. 공손찬이야 변두리에서 오랑캐랑 투닥거리는 지라 지식인들에게 전혀 매력이 없고 원소랑 싸우는 세력이라 오히려 기피대상이구요. 손견은 원술의 부장이고 나머지는 언급할 필요도 없죠. 그에 비해 조조는 전국적인 명성에 원가의 두터운 인재풀이 없는 신흥 세력이라 뜻을 펼치기도 좋은 매력적인 취업처죠. 유비처럼 기반이 모자란 것도 아니구요.
17/01/12 20:51
홍승식 님// 원소나 공손찬이나. 많잖아요? 원소원술도 물론이고. 유표도있고요. 따르려는인물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가.자신을 필요로 하는지가 더중요하죠. 딱히자신을 필요로하지않는데 제발로찾아갑니까? 그랬다면 순욱이 천거하기이전에 제발로 왔겠지요.
17/01/12 16:21
'명장' 이라는 단어에 각자 기준이 다르니 불필요한 내용이 언급되는 일도 많죠. 이게 단순이 무력이 높고 쌈질을 잘하는 장수인 '맹장' 으로 취급되는지 전쟁의 처음과 끝을 정하고 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으로 취급되는지요.
17/01/12 16:26
현대 시점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실상 명문화됐다고 봐도 무방한데, "삼국지"를 당대 기준으로 놓고보면 맹장이 명장인 경우가 많다보니 혼동되는 케이스죠.. 제 개인적으로는 맹장과 명장은 분리되야한다고 봅니다.
17/01/12 16:43
그나저나 평일 낮에 삼국지 떡밥으로 200플을 넘기다니..
관우가 확실히 대중적인 삼국지 인물이긴 하네요. 명장의 기준으로 보자면 부족한데 그것을 충정과 으리(?)라는 남자의 로망 덕에 채워지는 빠심덕분에 팬들도 많은 것인데 그러다보니 그만큼 안 좋게 보는 경향도 컸던 거 같고. 제갈량 관우 빼고 이만큼 댓글 활활 탈 만한 인물이 안 보입니다. 조조도 유비도 손제리도 순욱도(이 분은 인지도 때문에 ㅜㅜ) 이렇게는 못할듯..
17/01/12 17:04
조조전에서 관우 얘길 하시는거보니까 가찐이시군요 진정한 조조전 마니아들은 퍼런 게이지는 0에서 고정인것을... 허허... 통탄스럽도다
17/01/12 16:59
항상 궁금하던 것인데 고구려를 침략한 위나라의 관구검이라는 사람은 연의나 정사에 나오나요?? 나온다면 대략 관구검의 위나라에서의 위치랑 어떤 사람이었는 지에 대한 정보 좀 아시는 분 있나요??
17/01/12 17:03
오나라 후반기 에이스인 제갈각 침공 막아내면서 승승장구하다가 라인 잘못 타서 문흠하고 같이 사마사한테 반란 터뜨렸다가 뒈집니다.
17/01/12 17:06
삼국지 잘 모를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다시 설명 드리자면, 그 당시 기준 적군 최고 에이스의 공격까지 막아서 초고속 승진으로 승승장구하다가 줄 한번 잘못 섰다가 망했습니다. 이래서 라인이 중요합니다.
17/01/12 17:05
공손연 멸할때 나름 활약을 했죠.
고구려 치기 전에 관구검은 유주자사였습니다. 한 주의 자사였으니 어느정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위에서 생각했다고 보아야겠죠.
17/01/12 17:39
번성 공격은 깔게 없죠. 조인을 수세로 몰아넣은 관우를 막기 위해 우금이 이끄는 7군이 박살이 나고 서황까지 원군으로 파견해서야 겨우 관우의 공세를 막아냈는데요.
오히려 관우의 문제라면 형주 민심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정치력의 부재와 손권과 오에 대한 이해할수 없을 정도의 외교 스탠스가 가장 큰 문제였고 결국 관우의 발목을 잡은것도 군사적 재능의 부재보다는 정치력의 부재, 이해할수 없는 외교적 태도가 가장 컸습니다. 패전이 많다고 까이는데 애초에 촉나라에 장비 말고 승률이 좋았던 지휘관이 있었는지...제갈량과 강유는 관우보다 전적이 더 처참한 수준이었는데요.
17/01/12 17:49
옛날 사람이라고해서 바보는 아니죠. 정사에도 알 수 있지만 일기토란게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긴합니다.
아끼는 무장을 전투 한복판에 보내 1:1로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즉 리스크가 너무 크고 그 결과가 승기를 잡기 위한 사기증가 효과정도라.. 그렇기 때문에 명장 , 맹장의 기준을 굳이 나눌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또한 지휘관이 적 지휘관을 사로잡은 상태에서 죽이는게 아닌 한창 전투중에 죽이는 상황이 정말 희귀 할 수 밖에 없고, 상식적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관우가 정말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죠. 거기에 더해서 유비군의 이동경로도 한몫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굵직한 지역들은 거의 다 갔고, 각각의 지역에서 크고작은 전투가 일어나게 되는데 아마도 이 자잘한 전투에서의 활약이 다른 장수들에 비해 유별 날 수 있거든요. 어쩌면 소시적에 했던 짓(전투중 적 지휘관 참살)을 꽤 윗선에 올라가있었는데도 자주 했으리라 추측합니다. 그것도 위에 언급했듯이 북,동,서 각 지역에서 말이죠. 패전이 많아 명성을 깍아내릴 순 없어도 그전의 명성과 사후의 더 올라간 명성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함이 당연하겠지요.
17/01/12 17:55
삼국지 커뮤니티에서 가장 논쟁과 분쟁이 많은 것이 바로 관우/제갈량 일 것이다. 제갈량이야 워낙 연의에서 기책과 모략에서 반인반신半人半神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던 것에 반해 정사에선 신기묘산의 부분보다 오히려 성실하고 우직하고 근성있는 모습이기때문에 그런 괴리감때문에 폄하가 많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관우의 경우를 살펴보면 연의에서 많이 부풀려지기도 하였으나 오히려 연의때문에 폄하를 당한다고 본다. 관우가 연의에서 참살하거나 잡은 장수는 대개 허구의 무장이나 잡장인데 반해 역사상에서 그와 대결했던 이들은 조인, 만총, 이통, 악진, 문빙, 여몽, 육손, 노숙, 주연, 서황, 우금, 감녕 등의 걸출한 무장들이다. 이들은 나관중이 연의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는 무장으로 묘사하여 사실상 관우가 저들에게 진 것에 대해 결과적으로는 관우를 초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사실 저들 역시 위나라와 오나라의 명장으로서 관우가 진다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못된다. 1. 연의에서는 웬만한 장수라면 다하는 적장 참살이 정사에선 굉장히 드문데 관우가 독보적임에도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대인전으로 일기토를 한것 자체부터가 많지않은데 적장을 참살한 경우는 더욱 드물기때문에 관우가 원소의 사령관급인 안량을 참살한 것은 후세에 두고두고 회자된 것이다. 원소가 대장(大將) 안량(顔良)을 보내 동군(東郡)태수 유연(劉延)을 백마(白馬)에서 공격하자, 조공은 장료(張遼)와 관우를 선봉(先鋒)으로 삼아 이를 공격하게 했다. 관우는 안량의 휘개(麾蓋-병거에 달린 대장기 덮개)를 멀리서 보고 말을 채찍질해서 달려가 많은 병사들 사이에서 안량을 찌르고(刺) 그 수급을 베어 돌아왔다. 원소의 제장(諸將)들 중 당해 낼 자가 없었고 마침내 백마의 포위를 풀었다. - 삼국지 촉지 관우전 - 이십이사차기 관우와 장비의 용맹 http://blog.naver.com/smh2829/220648450405 2. 전공이 부실하다? 사실 안량 참살부터가 엄청난 전공인데 이를 두고 폄하하는 사람이 많다. 얼마나 엄청난 전공이었으면 사서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을 정도인가. 저 당시엔 연의같은건 찾아볼 수도 없었던 시대이다. 또 관우의 양번전쟁도 결국은 형주 상실로 이어졌기때문에 단지 행운에 의한 승리로만 여겨 상당히 많은 폄하를 한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관우는 유비의 명령을 받아 한중전과 호응하여 양번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한중전과 양번전쟁 당시 중원의 상황은 관우 또는 촉나라와 연계한 반란이 많이 일어났던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관우는 우금을 포함한 7군을 포획하고 방덕을 참수하기에 이르러 위나라의 중원이 관우의 위세로 인해 진동한다. 위나라의 멸망 전까지 가장 위기상황을 이때로 볼 수도 있다. 안량 참살은 원소의 사령관급 대장을 참살한 것이며, 우금은 위나라의 사단장 급, 방덕은 원스타 급이다. 이런 전공은 결코 부실한 것도 아니며 당시에 흔했던 전공도 아니었다. 따라서 결코 전공이 부실하다고 볼 수가 없다. 3. 패배만 했던 장수이다? 이것도 역시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관우가 일생을 통해 패배한 것은 기록에 의하면 3번이다. 1> 서주 하비전 이 때는 이미 유비의 본진의 궤멸된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2> 적벽대전 이후 남군 공방전 직후의 청니/심구 전투 : 조인을 사로잡기 위해 주유에 의해 강릉 북쪽길을 끊으려 파견되었으나 이통/악진/문빙 등에 의해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http://blog.naver.com/smh2829/220498338416 중국군사통사 http://blog.naver.com/kyspert/110175496795 3> 형주 상실 : 유비의 명을 받아 한중전에 호응하여 위나라 각지에 반란을 조장하고 양번지역으로 진격한 것으로 생각됨. ① http://blog.naver.com/smh2829/209336564 ② http://blog.naver.com/smh2829/220636343024 결론 요약 : 사실 불가항력적인 패배로 볼 수 있다. 4. 촉지의 간략함을 모르고 하는 얘기도 있다. 진수는 삼국지를 편찬하면서, 위지는 왕침의 위서를 기본으로 하였고 오지는 위소의 오서를 기본으로 하였으나 촉지는 기록과 사적이 산일되어 본인이 찬술하였다. 촉지는 선주전, 후주전, 제갈량전 정도를 제외하면 간략한 열전들이 많으며 창업대장열전인 관장마황조전도 부실하고 간략하다. 이런 사례는 매우 많아 미축, 손건, 간옹, 이적의 기록도 너무나 적고 조운에 버금갔다고 했던 진도의 경우는 계한보신찬에서 한줄기록으로 볼수 있고 왕평에 버금갔던 구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런 사례는 일일히 열거하기도 어려울만큼 너무나 많다. 5. 관우만큼 자타공인받은 무장도 없다. 여러 기록이 있는데 몇가지만 올려둔다. 황초 원년(220), 유엽을 시중으로 삼고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다. 손권이 관우를 주살한 후에 문제는 조칙을 내려 모든 신하들에게 물어 유비가 관우를 위하여 오나라에 보복하려는지 않으려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모두들 논의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말했다. “촉나라는 작은 나라일 뿐이며, 명장(名將)으로는 오직 관우만 있었습니다. 관우가 죽고 군대는 무너졌으며, 나라 안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다시 출동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유엽만은 혼자 이렇게 말했다. (이하생략) - 삼국지 위지 유엽전 - 건안 24년(219), 손권이 합비를 공격했는데, 이때 각 주에서는 모두 병사를 변방지역에 주둔시켰다. 온회가 연주자사 배잠(裴潛)에게 말했다. “이 시기는 비록 적이 있지만 걱정할 가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남방을 정벌하는 군사에게 변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강물은 불어나고 조자효(曹子孝 : 조인)는 적지 깊숙이 들어가 고립되어 장래의 위험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우는 용맹하여 전쟁을 잘 하므로, 승기를 잡아 진군해 오면 반드시 근심이 될 것입니다. - 삼국지 위지 온회전 - 공손연이 맹약을 위반하자, 손권은 가서 정벌하려고 했다. 육손은 상소를 올려 다음과같이 말했다. -공손연은 험난한 곳에 의지하고 견고한 수비에 기대어 우리의 특사를 구휴한 채 명마를 바치지 않고 있으므로 사실 원수가 되어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만이는 중원을 소란스럽게 하며 성왕의 교화를 받지 못하고, 새처럼 황폐한 변방에 숨어 있으면서 우리 군대에 대항하여 폐하로 하여금 진노하게 하여 작은 배를 타고 대해를 건너는 위험을 생각지 않고 예측하지 못하는 험난함을 결심하도록 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지금 천하는 구름처럼 혼란하고, 군웅들은 호랑이처럼 다투며, 영웅호걸들은 뛰어오르려고 하며 크게 소리지르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신무(神武)의 자태로써 하늘의 안배를 받아 오림에서 조조를 무찌르고, 서릉에서 유비를패배시켰으며, 형주에서 관우를 붙잡았는데, 이 세 명의 적은 당대의 영웅호걸이었지만 모두 그 예봉을 부러뜨렸습니다. 폐하께서 성스러운 교화로 어루만지자, 만 리 안의 백성들은 바람이 풀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중원을 평정시키고 통일 대유(大猷)를 실현 시킬 때인 것입니다. - 삼국지 오지 육손전 - 6. 중국 역대 명장 선 당나라때 뽑은 역대 명장 http://blog.naver.com/kyspert/110169151712 송나라때 뽑은 역대 명장 http://blog.naver.com/kyspert/110169128071 삼국지 명장들 종합 http://blog.naver.com/kyspert/110174685740 7. 그럼 관우는 비판할 수가 없는 완벽한 무장인가? 아니다. 관우는 오나라와의 외교에서 최악으로 대처하였고 형주 사족/호족의 대해 결집을 시키지못하여 분열이 있었으므로 결국엔 형주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는 외교력과 정치력의 부재가 있었기때문이다. 따라서 관우는 외교력과 정치력을 비판하면 된다. 관우는 첨예한 상황의 형주를 담당할만큼의 역량은 부족했다.
17/01/12 18:01
비슷한 내용을 굳이 댓글로 또 갈음화하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차라리 글에 추가로 덧붙이시던지, 딱히 색다른 의견 제시도 없고 6번 제외하면 삼덕들이면 다 알만한 내용들로만 구성되있는지라.. 그리고 이 내용은 링크에 있는 글 아닌가요?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댓글의 흐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이 내용은 새로울 게 거의 없습니다. 예전 습관 또 나오시는건가
17/01/12 18:04
이해도 못하고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이 몇 있어서 그래요.
불필요한 헛소리엔 답변 드리지않을테니 마음대로 생각하시지요 ^^ 삼덕들이 다 알만한 내용이라 .. 그저 웃지요.
17/01/12 18:12
남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신 건 여전하시네요 시간 할애해서 글 쓰는 노고는 인정 드리지만 파성넷만 링크 걸면 다가 아니듯이 사람들이 님처럼 글을 안 쓴다고 해서 님이 올리는 글을 이해 못하는 수준의 모지리라는 발상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 안 드십니까?
그리고 4,5번 내용은 1차원적으로밖에 접근 못하시는데 그런거에 대해서는 그냥 그렇게만 접근하실거면 파성넷 링크만 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승룡님 정도 분석이면 저도 배우는 자세로 글을 읽겠지만 이 글로 그런 태도로 남을 가르치겠다는건 오만하신 겁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시간 할애해서 이렇게 삼국지 내용 쓰시는건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만 종종 보이는 미개한 너희들에게 알려줄테니 잘 받아적거라하는 태도는 상당히 눈쌀 찌푸려집니다.
17/01/12 18:14
6번 제외하면 삼덕들이면 다 알만한 내용들로만 구성되있는지라..
예전 습관 또 나오시는건가 ============ 이건 뭐 엄청 예의가 바른건가요? 전 피지알에 이 글을 올린 적이 없거든요. 괜히 시비거실거면 피곤하니까 다른사람과 싸워주세요. 終
17/01/12 18:21
6번 제외하면 삼덕들이 다 알만한 내용 구성인건 팩트인데 그걸 시비거는걸로 받아들이는군요.
그 태도가 오만하다는 겁니다. 내가 너희들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 말이죠. 그리고 습관은 평생 못 고치시겠네요. ============ 그리고 피지알에 이 글을 올리고 안 올리고가 문제가 아니라 뉘앙스 비슷한 글을 써놓고 댓글 흐름이 맘에 안 드니까 댓글로 예전에 쓴 비슷한 내용의 글을 굳이 게재하는 의의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겁니다. 저는 그걸 이렇게 글 쓰니까 못 알아먹네 에휴 답답이들아 옛다 이걸 봐라 라고 쓴 걸로 이해했고 그 의도가 맞다면 정작 새로울게 없는 내용의 긴 댓글을 굳이 왜 달았냐고 한 겁니다. 남들 머리 위에 있다고 착각하고 가르치려는 태도만 견지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終
17/01/12 18:27
이 글 제가 만들기전에는 메뉴얼같은게 아예 있지도 않았거든요? 말도 안되는 소리하시네요.
무슨 의도로 시비거는지 뻔히 아니까 적당히 하세요.
17/01/12 18:31
저는 잘 모르는 내용이라;; 두 분의 토론의 전후 관계는 잘 모르지만 댓글 이렇게 다는 것 자체를 깔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17/01/12 18:13
논점이 잘못된것 같은데요
관우의 무력과 지휘관으로써의 역량 이 두가지로 판단해야 될 문제지요. 무력은 상위 지휘관으로써의 역량은 그닥 이렇게 평을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17/01/12 18:22
3. 불가항력적인 패배가 맞긴하지만,
역사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뒤업은경우가 없진 않지요. 충무공의 명량해전이라던지.. 명나라 영락제의 정란의변 알라의 검이라 불리는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의 경우는 대부분의 전투가 숫적열세인 상황이었죠.(다 쳐바르고 이슬람제국을 단기간에 당대 최강국 반열에 올려놓음) 이런 케이스가 극히 드문케이스이긴 하지만..
17/01/12 18:29
뭐 일신의 '무' 같은 것도 엄밀히 따지면 사실 큰 의미를 찾기 어렵죠. 어차피 전장에서는 제한적인 효과만 가지는데다, 까놓고 말해 당시에 UFC가 있었고 백사장이 있어 당시 중국 전토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파이터들이 토너먼트를 벌였다면 우승자는 관우가 아닐 확률이 높겠죠. 아마 삼국지에 기록도 안 된 어느 농민...뭐 이런 사람일 테니. 예컨대 허저 같은 사람만 해도 '기연'이 닿지 않았으면 그냥 초야에서 소나 몰다 죽을 사람이죠.
17/01/12 18:57
무슨 장판파인가 하고 봤던 관운장이네요. 물론 삼국지 장수 떡밥이야 팬심과 사료와 야사와 뇌피셜까지 합쳐진 궁극의 떡밥이기에...
나중에 타임머신 발명되면 가서 보고 와서 제가 말해 드릴게요!
17/01/12 21:48
춘추전국시대에도 진나라의 선진부터 오기, 손무, 손빈 등을 비롯해 연나라의 악의까지 수많은 명장 군신들이 있었지만 소위 기전파목 용군최정이라고 불리는 넷을 가장 쳐주죠. 근데 불패의 명장이라는백기, 왕전을 제하고 염파만해도 80가까이 살면서 조나라를 지탱했다고 하는데 그 전력에 비해 기록에 남은건 별로 없어요. 그마저도 쩌리(..)취급당하는 연나라 상대로 승리한게 대다수죠.
17/01/12 22:21
관우 전공이 운빨이라면 조조도 운빨로 원소밀어내고 반땅먹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조조의 하북접수 1등공신은 원소의 조져버린 자식농사+뜬금 의문사의 기적같은 시너지니까요
17/01/12 22:33
뭐 딴소린데 이건 운빨이 맞다 싶긴 합니다. 원소 안 죽었으면 최소 10년은 더 싸웠어야 할 테니...
심지어 조조는 원상에게도 처음 업으로 진군했을 때는 털렸죠.
17/01/12 23:24
근데 운 받아먹는것도 능력중 하나인게 그 상황에서 손제리였으면...
원소가 관도에서 그렇게 패하고도 원가의 국력이 여전히 조조를 압도하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여양에서 원상이 조조를 격파하기도 했고...
17/01/12 23:08
여러 장수가 있지만 캐릭터에서 관우가 승리했다고 봅니다.
관우는 아랫사람한테 관대했고 이는 시대적으로 봤을 때 굉장한 캐릭터적 요소니까요.
17/01/13 00:04
꼭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대의 평가라는 놈이 그리 막강한 신뢰도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훨씬 근대의 역사인 세계대전 시절의 인물들도 현대에 와서는 평가가 뒤집어지는 케이스가 허다한데요.
역사는 재평가가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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