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은 수고롭게 육체노동을 하고, 오곡 생산에 힘쓴다.
그들의 몸은 전토를 떠나지 않고,
그들은 손에서 쟁기를 놓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노동만을 하며, 그저 조금의 휴식도 얻지 못한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초가집이며,
그들이 입는 옷은 거친 갈포 치마와 무명옷이다.
그들이 먹은 음식이란, 오직 나물국에 거친 밥에 불과하다.
(중략)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국가의 (기반을 이루는) 세금이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 『중국통사』 서연달 등, pp.630
그대들이 응당 해야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을 왜구들에부터 지키는 것이고, 다른 것은 여기에 고려할바가 못 된다.
압록강 일대는 엄중히 성곽을 축조하고 군대를 파견해 그곳을 수비해야 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군함도 건조해 방어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백성들의 복을 빌고 성심을 다해 이러한 일들을 행한다면, 비록 백만 대군이라도 그대 나라를 감히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돌아가서 그대들의 재상들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하라.
"그들이 먹고 있는 것은 오직 백성들의 것이며,
그대들이 입고 있는 것도 오직 백성들의 것이며,
그대들이 부귀와 온갖 영화를 누리며 즐겁게 살고 있는 것도 오직 백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그대 나라의) 재상들이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숙고하여 삼한의 땅을 지킨다면, 가장 즐거운 것은 다름 아닌 누구이겠는가? 허니 더 이상의 잔꾀는 부리려 하지 마라. 하늘이 분노하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실제로 그대들에게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 고려사, 우왕 13년 5월의 조서
사실 핵심은 마지막에 "그러니까 너희들 백성이나 잘 다스리지 괜히 우리 쪽으로 까부려 들지 마라." 이긴 합니다만.
다른 사람이 했다면, 아마도 의례적인 "백성을 하늘로 삼고…" 운운 하는 그런 느낌으로 봤을텐데, 이런 말을 한 주체가 주원장이다 보니 좀 느낌이 다르더군요.
주원장 같은 경우엔 17살까지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사실 그냥 농사도 아니었고, 조상 대대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화전민에 가깝습니다. 물론 명사 본기에 '화전민이었다' 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써진건 아니지만, 보통 농민들은 대대로 한 곳에서 오래 사는 편인데 기록된 주원장 집 가계를 보면 불과 몇대전부터 계속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이리 갔다가 했거든요. 전근대 지방 사회의 배타성을 생각하면 이런 경우는 같은 평민들 중에서도 집안이 그만큼 기반이 없었다는 이야기고.
그리고 모두가 다 알다시피 17살 이후로는 일가족이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전멸해서 고아가 되었구요. 행각승이 되서 여기저기 구걸하고 다니다가 병에 걸려서 길거리에서 객사할 뻔한 기록도 명사 태조 본기에 나옵니다.
주원장이 과거 신분에 대해 미천하게 여겨 이를 연상시키는 글자를 못 쓰게 했다거나 하는 말을 들었는데
반대로 고려에 보내는 외교문서에서는 꽤 자주 "내가 밑바닥에서 올라와서 잘 아는데……" 같은 말을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