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촛불집회의 민심을 무겁게 받겠다고 하면서 곧 대국민 3차 담화를 준비하지 않을까 하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두 번의 대국민담화가 모두 거짓말로 '뽀록'이 난 판에 이제 와서 무슨 내용을 가지고 대국민담화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법에도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던 2선 후퇴를 이제 와서 이야기한다 한들 때는 이미 늦었고 지금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하야를 이야기하지 않는 한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을 만큼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범죄의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박근혜씨가 대국민담화를 하는 것 자체도 이제는 우스운 노릇이고요.
박근혜씨의 지금 행보는 권력의 사유화에 너무나 익숙해진 근대 현대의 타락한 지도자의 전형이자, 망령된 언행을 내뱉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고대 악덕 군주들의 전형적인 모습에 가깝습니다. 국민 대상으로 거짓말이 차고도 넘칩니다.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말도 거짓말, 선의로 그랬다는 말도 거짓말, 도움을 임기 초 잠깐 받았다가 말았다는 것도 거짓말, 세월호 7시간 동안 제대로 일했다는 것도, 전원 구조사실이 오보라는 것을 언제 알았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거짓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은 대국민담화를 준비하고 있는 사고방식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새누리당 역시 날로 참여인원이 늘어가는 촛불집회를 놓고 매 주마다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겸허함과는 애초에 거리가 멉니다. 박근혜씨를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검증한 정당이고 박근혜씨와 뜻을 같이 한 것만 봐도, 심지어 마치 '7인의 사무라이'처럼 정유라씨를 비호하던 7인의 인사들의 행각만 봐도 새누리당 역시 이번 국정농단의 또 다른 가해자라고 봐야 마땅한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원죄가 자신에게도 있다는 자기고백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문제에 대해 자신들이 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은 완전히 쏙 빼놓고, 적반하장격으로 야당의 책임있는 정치적 행보를 기대한다고 말합니다. 똥은 자기가 싸놓고 다른 사람더러 자기 밑까지 닦은 다음 똥도 치워달라는 격입니다.
애초에 최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에 새누리당 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머리 숙여 사과를 하며 잘못했다고 하고 독단적이지 않게 야당과 또 국민과 소통하면서 해나가겠다고 했지만 그 사과부터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지에 대한 내용은 완전히 쏙 빠져 있었던 이상한 사과였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게 진실한 사과라 한들 그 이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닌 야당의 책임을 말하는 적반하장식 행동이 과연 그 사과문의 취지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저런 헛소리를 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이런 흔한 새누리당의 사고방식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런 사고방식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답을 찾으려 고민하다가 - 이미 이 답을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 어떤 분의 연설에서 이게 그나마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은 대목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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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설명을 위해서 부득이 쓸 수밖에 없는 가정으로써, 만일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로 보면 정부는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민주주의가 점차 발전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해 보니까 [아, 이게 좀 끔찍해요.] 한나라당이 무슨 일을 할까, 이것을 예측하자면 한나라당의 전략을 보아야 되는데 한나라당의 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는 일은 거의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과 행동, 말과 행동이 다른 주장이 너무 많아서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무책임한 정당]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참평포럼 강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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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사고방식의 근원을 '무책임'이라고 봅니다. 그 무책임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성장 과정에서 양심이 거세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책임을 생각하는 이성이 실종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 원래 있던 책임의식을 없애는 데에 자기최면이나 현대의학 혹은 약물의 힘을 빌렸을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실제로, 자신들이 이미 알았을 뿐만 아니라 은폐하고 있던 사실들을 덮는 데 그 '무책임'은 적어도 이번 사건이 터지기까지는 매우 유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이슈들 속에 숨기에, 어떤 사람들 속에 숨기에 '무책임'은 딱 좋은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지금껏 한 가지 이슈로 여러 가지 사고들이 연이어 계속되면 사람들은 처음엔 분노하고 그 분노는 갈수록 커지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내 일도 아닌데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라는 식으로 사그라들곤 했습니다. 고된 일상 때문이든, 정치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든, 상대편에 대한 역공이 어찌저찌 먹혀 소위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양비론과 물타기가 효과를 거뒀든, 그냥 지쳐버려서 사람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든 말이죠. "거짓을 거짓으로 덮는다.", "사건을 사건으로 덮는다"라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말들을 바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무책임'의 그늘 속에 숨어버린 사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고정된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잘못을 숨기는 것은 시간이 문제일 뿐 잘못을 숨기는 건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나중에 이 이슈가 다시 재조명된다 한들 그 때는 이슈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한 뒤였지요.
이처럼 새누리당의, 이명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덮는 데에 '무책임'만큼 좋은 도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무책임이란 도구를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해 가며 야당 탓, 국민 탓, 일부 불순세력 탓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기울어진 경기장 속에서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그들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덧붙여, 이명박근혜 정부의 태생이 '잃어버린 10년'이란 워딩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명박근혜 정부의 존재 그 자체가 무책임으로부터 태어났다는 가정도 가능하겠군요) 하지만 이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은 더 이상 무책임으로 덮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게 되었고 마침내 돌아오는 주 혹은 다음 주에 탄핵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까지 놓였습니다. 결과가 어찌 되든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온 것입니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근혜씨의 퇴진으로 조기 대선을 치루는 상황이 되면 국민은 어쩔 수 없이 허겁지겁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며 탄핵 시간을 더 늦춰야 된다고 말하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나. 오늘 모여 박근혜씨에게 늦어도 내년 4월까지 퇴진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직 국회의장들을 비롯한 각계 원로들의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물론 저 목소리들은 탄핵과 개헌을 연계시키는 등 다분히 잇속을 따지는 목소리들입니다만. 어쩌면 나름 좋은 점도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소위 질서 있는 퇴진이 이루어진다면 당장은 더 답답하겠지만 국정공백을 최소화시킬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국민들의 목소리 중에 여론조사의 조사 항목 중 '탄핵'과 '하야'의 목소리를 비교하면 '하야'의 목소리가 '탄핵'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도 있음을 감안하면 국민의 뜻에 더 맞는 목소리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럴 수 있'었'습니다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엔 이런 식으로 박근혜씨의 퇴진에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메시지조차 이제 와서는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질서 있는 퇴진 같은 목소리가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탄핵 등의 즉각적인 퇴진이 목소리를 더 높이게 되어 마침내 턱 밑까지 몰아붙이게 된 원인은, 박근혜씨 자신의, 그리고 박근혜씨가 몸 담은 새누리당의 무책임 때문이니까요.
박근혜씨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진실을 말하기는 커녕 무책임한 발언과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며 여론을 악화시켰고, 새누리당은 무책임한 사과와, 국민을 우습게 보는 말들과, 오히려 야당에게 국정공백의 책임을 떠넘기는 망언들로 여론을 악화시켰습니다. 대국민담화에서 거짓말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헌법 핑계 대며 2선후퇴 같은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약속한 대로 검찰 수사에라도 성실히 응했다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식의 망언과 고자세를 집어치웠다면, 국정공백의 책임을 야당에게 묻지 않았다면, 새누리당 대표건 내각이건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사퇴하고 먼저 검찰에 나가 석고대죄를 했다면, 지금 국민들이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는 일까지는 없었거나 높아졌다 해도 지금처럼 강렬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아직 여론조사에서 하야가 탄핵보다 높은 응답률을 받고 광장의 목소리도 아직 탄핵보다는 하야가 높은 상황임에도, 이제는 조속한 탄핵과 단죄를 매우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더더욱 힘을 얻는 것은. 단순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국정농단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것 외에도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무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놓았던 것들이 더 덮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을 벌여놓고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되면 그 일은 묻히게 됩니다. 묻힌 일은 걸림돌이 됩니다. 지금 박근혜씨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걸림돌은, 하루라도 빨리 치워야 합니다. 치우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저는 이제 박근혜씨와, 박근혜씨와 공모한 최순실 일파와, 그들에게 부역한 새누리당 및 소위 비선실세들로부터 비롯된 '무책임'이란 악순환을 끊어낼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해 언제까지 광장에 나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The xian -
P.S. 가뜩이나 지친 몸과 마음에, 어제 오전부터 폭풍설사로 인하여 컨디션은 엉망입니다. 심지어 오늘도 이 글을 쓰다가 다섯 번이나 화장실에 갔다 왔습니다. 부득이하게 어제는 광화문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소식을 보며 응원했습니다. 이런 저이지만, 적어도 이번만은, 무책임한 결과는 더 이상 보기 싫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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