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얘기한 “지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는 단순히 현재 밖의 날씨만을 전달하는 문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발화의 시점이나 발화의 맥락에 따라서 여러 가지 암시적인 뜻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주말 아침에 이루어졌고 주중에 아이와 아빠가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놀이동산에 가자고 미리 약속을 한 경우라면 “지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는 “오늘 놀이동산은 못가겠다”라는 의미를 암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주중에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만 아니라면 놀이동산이 가기로 두 사람이 약속한 경우라면 “지금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는 “오늘 놀이동산 갈 수 있겠다”의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말이라는 것은 그 말을 언제,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맥락에서 말했느냐에 따라 같은 말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 질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은 또한 이런 암시적 의미 외에도 말하는 사람이 의사소통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거나 내 말을 듣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맺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또는 태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발화를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판사님.)
[(a) 대통령은 이번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서는 잘못한 것이 없다.
(b) 내가 아는 한 대통령은 이번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서는 잘못한 것이 없다.]
이정현 대표의 가상적인 이 두 발화는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바에서는 동일하고 (대통령은 잘못한 게 없다) 아마 암시적인 의미(이제 최순실 이야기는 그만하고 개헌논의 시작합시다)도 두 발화가 비슷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정현 대표가 (b)의 발화에서 (a) 발화에는 없는 “내가 아는 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내 주장이 전적으로 맞는 것은 아닐 수도 있어요”라는 자신의 태도를 듣는 사람이 이해줬으면 하는 심정이 발화의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는 말에는 말 그대로의 명시적 의미 외에도 암시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고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이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심정, 태도 등도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만큼은 꺼뜨리지 말아주실 것을 호소 드립니다.”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박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었던 걸까요? 박대통령이 말한 명시적 의미는 알겠는데 이 발화들의 암시적 의미나 박대통령이 “선의의 도움...”이나 “필요하다면...”또는 “성장 동력 만큼은...”, “...일일히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박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면서 국민들이 받아들여 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생각이나 입장, 태도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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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10개월이 다 되가는 재임기간 동안 제대로 기자회견, 담화문 발표 몇 번 해본적도 없지만(근혜체는 제외하고요), 그나마 해본 발언들 살펴보면 볼드 처리해주신거 같은 뭔가 조건이 걸리거나, 문장에 필요없는 사족이 붙거나, 명시적이지 않은 애매모호한 단어, 구절들이 자주 쓰입니다. 예전에는 이게 다 최순실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하는거 보니 그냥 박근혜 종특인거 같더군요.
게다가 박근혜 연설문 대표적 특징인 3인칭으로 본인이 관련된 일들 바라보는 구절도 여지없이 오늘 쓰였죠. 크크. [...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것입니다]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