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 스페셜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를 보자니 제 지옥같았던 2년의 직장생활이 떠오르네요.
정말 그 회사 1년만 더 다녔어도 정신과 진료 받았을겁니다.
이름만 알면 다 알만한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다녀본 사람만 알 듯, 그 실상은 정말 참혹했죠.
한번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타자의 편리함과 수필체에 익숙한 탓에 존댓말은 생략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 회사를 들어간 것은 2005년의 겨울이었다.
이미 서울에서 다른 분야의 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서울생활+박봉+야근' 에 버티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울생활 자체가 힘들었다기 보다는 그 '박봉'으로 서울에서 사는게 힘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업계는 사실 원래 박봉으로 유명하고 야근이 잦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던 일을 한다는 재미로 버텼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는 것도 1년 정도.. 해당 업계에서 메이져 회사로 넘어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고,
무엇보다 내 능력이 이 업계에서 성공할 만큼이 되지 못한다고 뼈져리게 느껴졌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와 입사한 회사는 해당 업계에서는 세손가락에 드는 메이져였다.
당시 연봉이 이미 초봉 3천을 넘을만틈 페이도 괜찮았다.
지방에서 근무가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며 회사를 다닌다는건 외지 생활을 해본 입장에서는 큰 메리트였다.
외근이 잦았지만, 활동적인 성격에 사람들 만나는걸 어려워하지 않던 내겐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근무강도를 떠나서 온갖 불합리한 문화와 업무구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1. 출근
회사 내부적인 출근시간은 8시다.
표면적인 이유는 8시에 출근해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9시에 곧바로 외근을 나가라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상사들과 논의할 문제가 있으면 밍기적 밍기적 대는 그들의 시간에 맞추느라,
10시 이후에 외근을 나서는 일이 더 많았다. 한마디로 8시 출근은 뻘짓이었다.
심지어 나의 직속 매니저는 7:45까지 사무실을 통과하라고 지시했다.
2. 신입사원 연수
모든 신입사원이 연수를 받았다.
무려 3주나... 연수 기간에는 아침 6시에 아침 조회를 하고 구보도 하였으며,
모든 시간 구성이 밤까지 엄청 타이트 했다.
모두들 주말인 토, 일요일에는 숙소에서 자기 바빴다.
다행이도 나는 부서 상황상 업무에 먼저 투입된 상황이라 1주일만 받고 퇴소했다.
지금도 그때 함께 연수 받던 동생들 기억이 난다.
나름 똑똑한 친구들도 많았고 열정이 넘쳤다.
그런 친구들이 그런 근무환경을 견디다 못해 다들 떠나갔으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3. 퇴근
퇴근시간은 대중없었다.
사실 외근을 마치면 딱히 할일이 없다.
매니저와 의논할 일이나 처리할 서류는 다음날 아침에 해도 되고, 내근직원이 퇴근해버리면 처리할 수도 없다.
그래도 다들 강제로 다시 사무실로 왔다가 퇴근했다.
매니저는 PC만 바라보고 있다. 사실 그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냥 SAP으로 팀실적을 바라볼 뿐이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면 숫자가 오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사이 밑에 직원들은 자기 자리에서 인터넷 써핑을 할 뿐이다.
그러다 8시가 될 무렵이면 매니저가 한마디 한다.
"우리 밥이나 먹고하지?"
말이 밥이지 술이 빠지지 않는다.
당시 매니저는 40대 중반의 나이.
이미 아이들은 클만큼 커서 손이 갈 나이도 아니고, (그 사람 성향에 어릴때에도 딱히 육아에 신경썼을 것 같지도 않다.)
집에 들어가봐야 재미도 없다.
밑에 직원들의 용비어천가 난무하는 술자리에서 술이나 퍼마시는게 더 재미있을 것이다.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본인의 재미도 재미지만, 다른 사람도 배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알면서 모른척 하는 것인지,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머릿속을 열고 싶었다.
그렇게 술자리는 새벽 2,3시까지 이어졌다.
거절하면 되지 않냐고?
매니저의 권력은 막강했다. 지역조정이나 목표액수를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직원들의 앞날이 바뀐다.
이제 갓 입사한 직원들과 아이들이 어린 선배들조차 매니저 눈밖에 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게 다들 뻘개진 눈으로 다음날 8시 이전까지 어김없이 출근도장을 찍었다.
4. 마감
한달에 두번 마감이 있었다.
25일 경에 하는 판매마감.
그리고 말일에 하는 수금마감이다.
외근직의 업무는 거래체에 물건을 납품하고 수금을 받는 일이다.
회사가 업계에서는 메이져였지만, 구조적으로 거래선에는 을이 되는 일이었다.
마감이 다가오는데 실적을 못채운 직원에게는 쌍욕이 날라갔다.
"오늘까지 당장 실적채워!"
이말의 의미가 뭘까? 그렇다. 가서 무릅을 꿇던지 빌던지 그건 니가 알아서 하고 일단 물건 보내란 의미다.
그때 거래처와 잘 샤바샤바해서 물건 잘 보내는 것도 직원의 능력으로 취급받았다.
그럼 직원들은 거래처에 그야말로 통 사정을 해야했다.
제발 물건 좀 받아주세요. 부담되시면 월초에 찾아갈께요.
유통기한 전에 반품 해드리겠습니다. 제발 물건 좀 받아주세요.
등등의 서러운 전화통화들이 마감때면 사무실에 난무했다.
5. 차액문제
실제로 거래처에 통 사정하고 월초에 물건을 받아다 집에 쌓아두는 직원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러면 그 직원들을 그 제품들을 개인이 알아서 처리해야했고, 그러려면 실제가격보다 약간이라도 싸게 팔아야했다.
그리고 그렇게 판 돈을 실제로 거래처로 납품된 곳에 본인이 매꿔넣는 식이었다.
그렇게 파는 물건이 쌓일수록 직원들은 자체 할인해준 금액이 차액이 되어갔다.
한번은 차액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직원이 과도한 밀어내기에 대해서 매니저에게 따진 적이 있다.
그때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실적 채우랬지, 언제 물건 날리랬어?"
한두달 근무한 신입도 안다. 실적 채우란 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마감을 하루 앞두고 그 물건들을 어디가서 판단 말인가.
6. 수금
밀어낸 물건을 거래처에서 받아줘도 문제였다.
우리 제품이 창고에 쌓여있으니 수금이 될리가 없다.
판매는 1억인데 수금은 2, 3천만원도 안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판매가 안좋으면 판매로 쪼고, 수금이 안좋으면 수금으로 쪼아댔다.
수금이 좀 안좋아도 이번달은 판매가 문제다 싶으면 수금이야기는 안하고 판매를 쫀다.
그렇게 그달은 다들 밀어내기에 올인을 하고 나면, 다음달에는 수금을 쪼는 식이다.
모든 직원은 SAP으로 다른 직원들의 실적은 물론, 총 잔고와 수금상황을 볼 수 있었다.
월말이 다 되어가는데 잔고가 1억인 직원 수금이 5백만원이다.
누구나 안다. 얘 밀어내가 장난 아니게 했구나... 수금이 될리가 없다.
그런데 말일날 하루만에 갑자기 수금이 3천만원이 올라온다.
다들 예상한다. 아... 얘 자기 돈으로 일단 수금 잡았구나.
마감 막날에 3천을 정상적으로 수금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그 갈굼 버티며 수금을 늦게 할 직원은 아무도 없다.
그 회사에서 마이너스 통장은 직원들의 필수 아이템 이였다.
7. 경제사범이 되다 - 실제상황
큰 금액이 오고가는 지역을 담당하던 직원은 이런 차액관리를 잘못해서 차액이 억대 단위가 되고 말았다.
다른 지역보다 매출이 '0' 한개는 더 나오는 특수지역이라 가능한 상황이다.
말도 안되는 상황은 아니다. 대부분 직원들이 천만원 이상의 차액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직원은 아몰랑을 시전하고 퇴사후 잠적했다.
회사는 그를 경제사범으로 걸었고, 그는 지명수배자가 되었다.
회사 한번 잘못들어왔다가 인생이 망한 것이다.
8. 이런 회사를 왜 다닌다고 물으신다면...
당시의 회사 분위기 때문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직원의 절반 이상은 1년내에 그만두었다.
그 절반이 또 2년내에 떨어져 나갔다.
버티는 이는 둘중하나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남아서 매니저를 노리는 직원이거나,
혹은 악착같이 2년을 버텨서 경력으로 대우가 좋은 회사로 옮기기 위함이다.
경력직으로 옮기는데 있어 1년은 너무 짧고 3년 이상은 너무 길다. 2년이 가장 적당하다.
나도 후자와 같은 부류였다.
그리고, 몇몇은 그곳이 첫회사인 관계로 그냥저냥 만족하며 다니기도 한다.
어쨌든 매달 개고생하면 월급은 들어왔기 때문이다.
9. 결혼? 야이 양심없는 인간아...
이직률이 높다보니 젊은 직원이 많았고, 결혼 적령기의 청춘들이었다.
때문에, 그곳 회사를 다니며 결혼하는 직원도 많았다.
외부에서 보기엔 나쁘지 않은 실랑감이다. 페이도 높고, 누구나 말하면 알만한 회사다.
(현실이 시궁창인건 본인들만 알고 있다.)
그렇게 선배, 동기들이 결혼할 때면 난 진심으로 그들의 아내될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이미 그들의 차액이 얼마인지, 현재 마이너스가 얼마인지 대충 알았기 때문이다.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로 정말로 진심으로.
'아니, 어떻게 이런 회사를 다니면서 결혼을 할 수가 있지? 아내 될 사람한테 미안하지도 않은가??'
10. 탈출
2년이 되던 시점에 나는 사표를 던졌다.
정확히 내가 근무일이 만 2년이 되기 2달전의 일이다.
당시 팀 상황을 봤을때 지금 사표를 던져도 후임자 뽑고, 인수인계하려면 2달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옥상에서 얘기좀 하자는 날 본 매니저는 2달만 더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매니저의 표정을 보며 느낀 기분이 내가 그 회사를 입사한 이래 최고의 희열이었다.
그렇게 사표를 던지고나서 나는 이직을 준비했다.
2달안에 이직을 못하면 어쩌냐고? 상관없었다.
그곳에서 한달이라더 더 있으라면 난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해당 업계를 다니다보면 알게된다. 진짜 알짜가 어디인지 말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회사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다.
규모는 작아도 근무여건이 좋은 회사가 여럿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2달안에 다른 회사로 이직이 결정되었다.
국내 매출규모는 작았지만 외국계에 아이템도 더 좋았고, 복리후생이 좋았다.
무엇보다 납품 수금에 미칠뻔했던 내 상황에서 외주방식으로 납품 및 수금을 대리점이 하는 방식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문득 해당 회사에 면접을 볼때가 기억난다.
경력직 면접은 아무래도 편하게 서로의 조건을 조율하는 식으로 오간다.
불필요한 말들 떼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너 올래?말래? / 얼마 줄껀데요? 이런 식이다.
담당 매니저와 납품과 수금 이야기를 하다가 수금은 우리가 직접 안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해 버렸다.
그리고 그곳을 탈출한 이후에, 여전히 나는 해당업계에 근무하고 있지만 매우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보내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 멀쩡한 회사를 잘 다니다가 그만둔다고 하면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런 내부 상황을 시시콜콜 말하기도 쪽팔리는게 남자라서 그렇다.
그냥 묵묵히 다니면 다들 괜찮은줄 안다.
내부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힘들지만 한가지 걱정이 본인을 붙들고 있다.
"옮긴 곳도 이곳과 별반 차이 없으면 어쩌지? 그럼 오래 다닌 이곳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는데?"
나는 이직을 고민하는 후배에게는 이런 조언을 하고는 한다.
옮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현재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기에 한번 옮겨보라고.
'아! 예전회사가 별로였구나' 하는 생각은 옮겨봐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이다.
현실이 불만족 스러우면 바꿔보는건 어떨까?
바꿔보지 않고 바꿨는데 더 나쁠까를 고민한다면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직' 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거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