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Europa/3Q5x/58815
저번에 올렸던 글의 작성자분이 이 글도 올려달라 부탁하셔서 복붙해서 올립니다.
직접 올리고 싶으셨지만 60일 유예 때문에 올리지 못하셨다고 하네요...
새로운 시대를 위해
라고 Charment4님이 또 글을 써주셨는데 사실 저는 2편과 4편에서 대량실업 얘기를 조금 언급 했다고 하고 싶지만 읽고 나서 추가적으로 든 생각들을 또 던져보겠습니다.
--
1. 질주하는 종
Charment4님은 산업혁명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만 우리 종이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저는 두 달 전 쯤에 괴베클리 테페에 대하여 라는 게시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때는 신석기 혁명과 종교의 등장에 대해서 끄적여 보았는데, 써놓은 것처럼 신석기 혁명과 종교의 등장은 농업혁명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농업혁명 얘기를 할 거라고 흔히 짐작하시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말하려는 건 농업혁명이 아닙니다. 산업사회로의 이행이 농업사회 질서의 고도화와 위기로 시작되었듯이, 농업혁명은 그 이전에 인간 종이 맞이하게 된 또 다른 혁명적 변화가 가능하게 해준 것입니다. 바로 인지혁명입니다.
옥스포드 대학교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는 뇌의 전두엽피질 크기가 호미닌이 수용할 수 있는 집단의 크기와 매우 강력한 상관관계를 지닌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가설을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이라고 하는데요.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호미닌의 뇌가 커지면서 인지적인 능력도 같이 성장을 했고 인간 지능이 기원이 여기에 있다고 하는, 매우 흥미로운 주장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엿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그래프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산발적으로 발굴된 호미닌 집단의크기를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추측이 많긴 합니다만은, 적어도 인간 집단의 크기가 지수적인, 그러니까 계속 더 빨리 성장하는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일면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뇌 가설을 일단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인간의 인지적인 능력 또한 지수적으로 성장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죠.
그래프를 대충 보면 침팬지에서 호모 하빌리스 때까지는 빌빌 기다가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르가스테르로 넘어갈 때 한 번 도약합니다. 호모 에르가스테르와 여러분들에게도 익숙할 호모 에렉투스 사이는 그렇게 차이가 없는데 이것은 아프리카의 호모 에르가스테르가 더 추운 유라시아로 건너가서 생긴 파생형이 호모 에렉투스이기 때문입니다. 둘 사이엔 많은 차이가 없지요. 대신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는 상당한 도약이 보입니다. 하이델베르겐시스는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공통조상인 고인류입니다.
자세히 설명하면 조금 길어지지만 이러한 변화는 적대적인 환경 변화에 맞서 인류가 생존을 위해 더 많은 집단적 협력을 선택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에너지를 획득할 동식물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거나,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에서 살게 되어 위협적 육식동물에 연약한 영장류의 몸으로 맞서 싸워야 했을 때가 집단적 협력이 필요한 때였습니다. 집단적 협력은 높은 수준의 지능과 더 큰 뇌, 그리고 다양한 갈등관리 기제들을 요구로합니다.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 2부" 여기서 잘 나와있지만 인간 집단의 상당부분은 아프리카의 영장류 조상의 관습들을 물려받았습니다. 서로 무리를 짓고 우두머리와 왕따가 존재하며 종종 폭력이 난무하는 그 관습들 말입니다. 이걸 통제하기 위해서 호미닌은 시대에 걸쳐나가면서 웃음, 불을 피워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정겨운 풍습, 영적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는 축제 등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지금 로빈 던바의 책이 없어서, 제가 조금 더 잘 아는 하이델베르겐시스 얘기만 간략하게 해보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서 글쓴 분이 거울뉴런을 언급해주셨죠. 인간은 거울뉴런을 통해 공감을 할 수 있는 게 맞지만 거울뉴런은 사실 영장류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애초에 거울뉴런은 이탈리아의 영장류행동학자 지아코모 리졸라티가 침팬지를 연구하다가 발견했습니다. 영장류보다 더욱 복잡한 사회적 갈등관리 기제를 발전시켜야했던 고인류들에게는 거울뉴런으로는 불충분했던 것이죠. 실제로 거울뉴런은 처음 나왔을 때 인류 진화의 비밀을 밝혀줄 혁명으로 간주되었으나 현재의 연구들은 훨씬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거울뉴런은 다른 개체의 단순한 움직임을 의도성 있는 행동으로 파악하게 하는 신경적 기제라는, 거울뉴런이 조또 쓸모 업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회의론과 적당히 절충된 가설을 제일 합리적으로 봅니다. 쉽게 말하자면 거울뉴런으로는 "쟤는 손을 뻗어서 사과를 집는다"라는 걸 읽는 것 정도가 가능하지, 그 너머의 의도성까지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거울뉴런을 넘어서 의도성, 지향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기제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입니다. 이는 타인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함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마음이론을 획득하기 전의 3세 정도의 유아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거짓말은 타인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우선 파악하고 그것이 나의 정보와 어떻게 다르며, 그 차이를 나의 이익으로 전환시키는 매우 복잡한 인지적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대충 간략하게 말하자면 마음이론은 "쟤는 손을 뻗어서 사과를 집는다"를 넘어서 "쟤는 사과를 집어서 먹기 위해 손을 뻗는다"와 "쟤는 사과를 집어서 나를 사과로 후려까려고 손을 뻗는다"를 구분짓게 해주는 능력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 마음이론을 획득한 것이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때인데, 이 때부터 인간 집단은 빙하기의 유럽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합니다. 더욱 많은 에너지를 자연으로부터 얻어내고 빙하 시대의 더 큰 포유류들을 사냥할 수 있는 협업능력이 증대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는 곧 이어 다가올 인지혁명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습니다. 인지혁명은 저 그래프의 맨 끝에 존재하는 현생인류가 약 5만년~10만 년 전에 경험한 진화의 폭풍인데 이 때 등장한 것들의 목록은 너무나 많지만, 대충 추려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불의 체계적 사용, 예술과 동굴벽화, 원시적 음악, 장례풍습, 신앙체계, 정교한 수준의 언어"
사실상 우리와 그 이전의 인류를 구분지어주는 모든 것들이 이 때 탄생합니다. 수 만년의 시간이 걸린 일이고 이는 엄청난 시간이긴 합니다만은, 그래도 이전까지 이루어진 진화의 속도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만 했습니다. 침팬지가 그 이전 초보적 마음이론을 획득하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350만년이 걸렸으나 하이델베르겐시스가 인지혁명을 맞이하는 현생인류가 되는 데는 40만년 정도가 걸렸고, 그 이후 인지혁명이 정리되기까지는 수 만년 밖에 걸리지 않았죠.
아마 모든 변화가 그렇듯 인지혁명은 이전까지 겪지 못했던 갈등을 수반했을 겁니다. 과거 시대의 왕과 황제보다 더욱 풍요롭게 살고 있는 우리도 세상 살기 드러운데 원시인들이라고 하물며... 복잡한 마음이론을 갖게 된 개체와 그렇지 못한 개체의 차이가 두드러졌겠죠. 실제로 우리는 여전히 그 편린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왕따지요. 왕따 당하는 것이 당하는 놈 잘못이라고는 전혀 생각 안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타인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하고 그에 적합한 행동들을 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대체로 사회적 고립을 감수해야하는 건 어디서건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뿐만이 아니라요. 인지혁명이 진행되던 당시 인간 집단 내에서는 그러한 격차가 지금 인간들 사이에서의 격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정도로 컸을 겁니다. 로빈 던바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즐기는 언어생활은 곧 사회적인 정보교류라고 했습니다. 즉 구성원들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교환이라는 것이죠. 이거 두 글자로 줄이면 그냥 뒷담입니다. 뒷담 당하는 걸 알게 되면 우리는 깊은 분노, 절망, 슬픔 등을 느끼는데 그건 사회적 분리와 자신에게 내려지는 부정적 평가가 생존에 극히 치명적이어서 그럴 겁니다. 치명적 뒷담의 희생자들은 아마 집단 내에서 고립되고 번식에 실패하여 유전자를 남기지 못 했겠지요. 그 밖에 다른 것도 추정 가능합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이 아마 치명적인 위력을 띠게 된 때도 이 때일지도 모릅니다. 진화심리학은 학술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많다고 하지만, 아마 거짓말을 제대로 탐지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엿을 좀 많이 먹었겠죠. 그것도 목숨이 왔다갔다할 정도로 말입니다.
2. 도시는 인간 종이 모여사는 깊은 구렁
이 말은 요즘 까이는 것이 트렌드가 된 장 자크 루소가 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진리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뭄바이나 나이로비의 슬럼가를 보면 더더욱 그런 말이 나오겠지요. 그리고 이는 농업혁명 초창기 인간이 만들어낸 괴베클리 테페, 예리코, 차탈회윅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종이 모여사는 깊은 구렁을 최초로 지구상에 구현한 곳들이 그 곳들일 겁니다.
인지혁명을 통해 인간이 지구의 정복자가 되고 몇 만년 뒤, 하인리히 사태로 북미의 로렌타이드 빙상이 대서양으로 쓸려나가고 지구에는 영거 드라이어스기가 찾아왔습니다. 인류의 초보적 정착지들은 이 때 죄다 쓸려나갔습니다. 그러나 영거 드라이어스기가 끝나고 지금의 터키 남부와 시리아 일대는 다시 풍요로워졌습니다. 견과류 채집을 중심으로 하는 정착지들은 다종다양한 식량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났고, 정착지의 인구는 인간이 진화로 획득하게 된 인지적 한계를 초월해서 수백명을 찍었습니다.
이 때가 제가 "괴베클리 테페에 대하여"에서 언급한 인지적 압박이 시작된 때였고, 인간은 종교를 만들어 이에 대응합니다. 인지혁명으로 획득하게 된 정교한 언어와 신앙체계, 장례풍습과 의례 등을 조합하여 수백명, 수천명이 거주하는 공동체를 유지하게끔 만든 것입니다. 더 커진 거주지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협력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더욱 많은 인간을 먹여살려야 하니 식량 획득을 위한 집단적 노력이 있었어야 할 것이고, 원거리 교역을 향한 협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장류들이 적대적 포식자에 대항해 협력을 택했 듯이 적대적 인간 집단을 향한 협력이 요구되었습니다. 끝내 이러한 공동체들은 수렵채집으로 방대한 인구집단을 유지할 한계에 봉착했으며, 최초로 농업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변화도, 그 이전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기하급수적 속도였습니다. 우리는 농업시대의 전통사회를 늘 변함 없는 단조로운 사회로 흔히들 인식하고 사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건 당연히 참입니다. 그러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가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데 약 40만년이 걸린 것을 상기해보세요. 괴베클리 테페와 예리코에서 피라미드를 남긴 중앙집권적 이집트 제국으로 이행하는 데 7천년, 그리고 거기서 전통 농업문명이 이루어낸 가장 빛나는 발전상 중 하나인 로마 제국으로 발전하는 데는 대략 3천년 남짓만 걸렸을 따름입니다.
초기 농업의 시대에 대다수 인간들이 겪은 고통은 인지혁명이 초래했을 진화상의 탈락자들, 그리고 초기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들이 겪은 고통의 변주입니다. 루소의 말대로 저 시대 도시들은 말 그대로 인간 종이 모여사는 깊은 구렁입니다. 인간들은 최초의 도시들을 관리하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수천명이 사는 집단적 거주지라는 것이 전에 있어봐야, 혹은 들어봤어야 뭘 하죠. 어떻게 물을 관리해야하는지, 오폐수 처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땔감은 어디서 구할 것이며 전염병은 대체 왜 돌기 시작하는 건지. 모든 게 미지로 가득 찼었죠. 콜레라와 오염된 물의 상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200년이 채 안 된다는 점에서 도시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것은 인류 문명적 과업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도시만 이런 것은 아닙니다. 명색이 농업혁명인데 말입니다. 초기 농민들은, 그리고 솔직히 20세기 저개발국의 대다수 전통 농민들까지 포함해서 농민들은 수렵채집민에 비하면 많은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영양도 수렵채집민보다 부족했고, 그러다보니 키도 작았으며, 과중한 노동으로 관절은 박살났고 날씨가 안 좋으면 기근으로 마을이 몰살당하는 것도 예사였습니다. 전염병은 농촌이라고 피해간 것도 아니었죠. 여성과 남성은 평등했으나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남녀차별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여성의 삶은 진정으로 끔찍해졌는데,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계속 애를 낳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애들은 빨리 죽었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여성의 출산횟수는 엄청나게 늘어갔죠. 이는 신체에 막중한 부담으로 다가왔음은 물론이고 이전에 그들의 어머니들은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을 사회적 억압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3. 열차에 탄 자와 타지 못한 자들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시대의 초상들은 초기 산업혁명 시대의 음울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엄청난 속도로 변화가 일어났고,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상초월의 고통을 낳았습니다 사실 인지혁명의 스트레스는 연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상당수가 미지의 영역이지만, 수렵사회에서 농업사회로의 이행기에 겪은 고통들은 고고학과 역사학계의 사실상 정설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이 두 거대한 이행들은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자들의 고통, 그리고 자동화의 혁명에 곧 유발될 대량실업의 희생자들의 고통이 독특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고통은 빅픽처로 보았을 때 훨씬 더 일반적인 맥락에 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변화에 직면한 인간 집단이 겪는 모종의 패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한 썰들은 이야기의 반쪽에 불과합니다. 저는 보진 않았습니다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라는 영화가 있죠. 지구에 빙하기가 닥쳐오자 세계를 계속 달리는 "설국열차"에 최후의 생존자들이 열차의 칸에 따라서 계급구조를 이루면서 살고 있는 디스토피아입니다. 최고위층들은 개꿀을 빨지만 최하위층들은 그 유명한 양갱(...)을 먹고 살죠. 영화를 보진 않았어도 마지막 장면은 알고 있는데 바로 열차가 터지고 나서 바깥 세계가 보이는 장면입니다. 눈이 뒤덮고 있는 자리에 북극곰만이 있을 뿐이죠. 질문이 제기됩니다. "열차에 타지 못한 자들은?" 다 얼어죽었다는 것이 타당한 판단일 것입니다.
물론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그리고 산업혁명은 인간 집단이 점점 고도화되는 흐름 속에서 일어난 변화이기에, 인간 사회가 가히 멸망하고 팍 쪼그라든 설국열차의 이야기에 곧이곧대로 비유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변화의 시대에 열차에 탄 사람들 중에서는 존나 힘든 사람과 존나 꿀빠는 사람 둘로 나뉘지만 열차에 타지 못한 자들은 다 얼어죽었다는 것입니다.
인지혁명에서 저는 고도의 마음이론을 획득하지 못한 이들이 집단 내에서 사회적 분리의 고통을 겪어을 것이라고, 또 악의적 거짓말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비참한 운명을 감내한 이들이 있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현생 인류가 퍼져나가면서 방히가 대형 포유류들이 싸그리 멸종했다는 주장을 총, 균, 쇠에서 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이건 아직도 논쟁 중인 영역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는 확실한데 바로 인류의 사촌들이죠. 인지혁명을 아예 경험하지도 못한 네안데르탈인과 아시아 호모 에렉투스들, 그리고 데니소바인들은 인류가 그들의 거주지역에 도착하는 족족 멸종했습니다. 요즘에 비해서는 자원을 덜 소모하는 수렵채집민 사회일지라도 인간 집단은 큰 뇌와 연약한 아이들(뇌가 커서 덜 발달한 상태로 출산을 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전승해줄 노인들을 부양하기 위해 거주지에서 많은 자원이 요구됩니다. 인지혁명을 거쳐 고도의 협력을 할 수 있는 현생인류집단과 자원경쟁에서 버티려면 역시 인지혁명을 거쳐서 그와 비슷한 수준의 집단협력을 이루어낼, 같은 현생인류집단이어야 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장례도 없었고 정교한 언어도 없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그 우람한 육체와 근육을 이용해 매머드 등을 사냥했습니다. 인간은 함부로 다루지도 못할 무거운 창을 써서 말이죠. 그러나 현생 인류는 언어를 사용한 협력으로 힘이 훨씬 덜 드는 투척식 무기를 이용해 대형동물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만약 두 집단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면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필패였을 겁니다.
유전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우리는 이들의 운명을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어느 정도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율은 3~4%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마 현생 인류는 몇몇 인류 사촌들과 우호적 교류를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통혼도 했겠죠. 하지만 3~4%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다수는 그저 인류의 확장에 계속 밀려나가 무력하게 스러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 통혼도 사실 더 다크한 이야기들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실 입증할 수도 없지만 마음이론을 획득하지 못하여 여성 개체를 확보하지 못한 번식경쟁의 피해자들이 네안데르탈인 여인을 납치하거나 포로로 잡아서 번식의 기회로 활용했을 수 있겠죠. 하여간 인지혁명에서 뒤떨어진 우리 사촌들의 운명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농업혁명의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수렵채집민들의 육체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농업 사회와 경쟁했을 때 이들의 결과는 필패였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농업이 발전한 곳은 더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더 많은 농경지를 찾아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중국은 대표적인 예로 황하와 장강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은 암세포처럼 증식해서 중국을 중국인 천지로 만들었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야오먀오족을 비롯한 중국 서남부의 많은 소수민족들이 농경이 희박한 곳에 점처럼 분포하는 것이 중국 농경문명의 확산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추측합니다. 연구가 더욱 많이 진행된 유럽은 이를 더 잘 보여줍니다. 인도유럽어족의 기원 중 대세로 평가 받는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하나는 아나톨리아 농경민 설이고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 기마민족 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두 가지 학설의 절충안으로 이탈리아 유전학자인 카발리-스포르차의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에 나오는 학설입니다. 아나톨리아의 농경민들이 농경을 통해 먼저 유럽 대륙으로 확산되고 그 다음 락타아제 소화 효소를 획득한, 말을 다룰 줄 아는 기마민족이 다시 들어왔다는 겁니다. 어떤 학설이 맞건, 수렵채집민들은 쇄도해오는 농경민의 파도에 밀렸습니다.
몇몇 고고학적 증거는 이를 추론하게 하는데 이를테면 흑해 대홍수 사건이 있습니다. 원래 흑해는 에욱시네 호수로, 지금보다 훨씬 좁았습니다. 호수 연안에는 어족자원을 비롯한 식량이 풍부하여 많은 농업 정착지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착지들은 기원전 5천년 경에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또다시 그놈의 로렌타이드 빙상이 녹으면서 발생한 대홍수가 지금의 보스포러스 해협이 있던 자리의 아슬아슬한 담벼락을 넘어버렸고, 지중해 바닷물이 에욱시네 호로 밀려들었기 때문이죠. 이후의 문명 세계가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지리적 대변동이었고, 에욱시네 호는 우리가 아는 흑해가 됩니다. 그리고 호수 연안의 정착지들은 모두 침수되고 대피할 여유가 있던 사람들은 주변 정착지들로 피난을 옵니다. 그러나 이미 농경이 몇천년 진행된 곳이기에 이곳의 인구부양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다시 짐을 싸 더욱 먼 곳으로, 농경이 행해지지 않던 척박한 땅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인도유럽어도 쓰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는 수렵채집민들이 지금 독일과 폴란드에 위치한 광대한 숲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우호적 교류로 시작되었을 것이지만 농경민들의 인구가 불어나자 갈등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그 후 등장한 고고학적 증거들은 이 시기 이후 유럽에 최초로 요새와 전투의 흔적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유럽의 언어지도를 통해 우리는 그 여파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영국부터 그리스까지, 러시아부터 포르투갈까지 유럽인들은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한 곳은 예외지요. 바스크어는 인도유럽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입니다. 이는 인도유럽어족을 구사하는 농경민들 이전에 살던 유럽 원주민의 운명을 추측하게 합니다. 농경이 그다지 용이하지 않고 지리적 단절이 심하던 바스크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조리 인도유럽어족에 흡수(혹은 몰살) 되었다는 거죠.
유전학의 발전으로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들의 운명도 대체로 추정 가능합니다. 현대의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의 방법론인 분자시계를 사용한 연구는 현대 유럽인의 조상이 3분의 2는 인도유럽어족의 고향에서 왔고 3분의 1은 유럽 원주민이었음을 나타내줍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떤 식으로 통혼이 되었을지는 인도유럽어족 간의 충돌에서 역시 추측 가능합니다. 우리는 미토콘드리아를 써서 모계를 추적할 수 있고 Y염색체를 써서 부계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앵글로색슨과 노르만인들이 켈트족이 있던 영국을 정복한 뒤에 영국인들은 누구의 피를 물려받게 되었을까요? 현대 영국인 Y염색체에서 켈트인의 유전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반면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상당한 비율로 발견됩니다. 이는 다수의 켈트 여성들은 거의 강제로 정복자들의 부인이 되었음을 시사하는 반면 켈트 남성들은 피정복민으로서 비참하게 살아갔음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산업혁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이 산업혁명을 찍고 나니까 농업사회들이 지금까지 이룩한 문명의 발전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영국군은 천조대국을 개발살 내버릴 수 있었죠. 유럽을 벌벌 떨게 한 오스만 제국은 졸지에 유럽의 환자가 되었고, 바스코 다 가마가 갖고 온 포르투갈 잡동사니들을 개무시하던 인도의 마하라자들은 이제 영국인들의 면화 셔틀이나 되어야 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고통 받은 노동자들은 동시대 농민으로 운 좋게 남을 수 있던 동료 영국인보다 더 비참했을 순 있지만 적어도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하루에 4시간 자고 끔찍히 뜨거운 고로에서 사탕수수를 녹이던 아이티 노예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겠죠. 다가오는 변화는 내부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지만, 변화에 동참조차 못하는 이들은 그보다 더 끔찍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4.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엉덩국의 훌륭한 통찰이 빛나는 이 문장은 그동안 모든 변화들 또한 잘 설명해주는 굉장히 유익한 말입니다. 영장류 조상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서기 시작하자, 환경에 변화하기 위해서는 더욱 복잡한 집단생활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더 커진 영장류 집단은 더 많은 자원을 요구했고 더 정교한 갈등관리 기술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상호 되먹임을 통해(조금 있어보이는 말로 자가촉매작용)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일시적인 안정기가 찾아와도 지구가 이걸 가만두지 않았는데 갑자기 엄청난 환경변화를 선사해주셔서 분명 로렌타이드 빙상일 거임 변화를 사실상 강제했습니다. 호미닌은 규모를 줄이고 더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걸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멸종하거나, 진화해야만 했습니다.
농업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저 자가촉매작용이라는 말을 처음 본 것은 총, 균, 쇠에서 국가 형성을 추적할 때였습니다. 식량 생산이 확대되고 인간의 정착지는 더 커진다. 더 커진 정착지는 더 많은 인구를 먹여살려야하기에 더 정교한 정치조직을 필요로한다. 이러한 정치조직은 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 가능하게 해주어서 이전 사회들은 수행하지 못할 클라스의 공공사업을 벌일 수 있게 해준다(관개사업 등). 이런 사업들이 생산력을 늘려줘 인구는 더 커진다... 의 무한루프 끝에 방대한 관료제를 갖춘 국가가 등장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농경사회 역시, 자연의 충격 때문에 변화가 강제되었습니다. 이를테면 기원전 6천년 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몬순의 변화로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정작 물이 필요할 땐 비가 안 오고 농사 다 끝나면 비가 오기 시작했던 겁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이에 본격적인 관개시설을 갖추는 것으로 대응합니다. 물을 모아뒀다가 농사에 적절히 쓰자는 것이었죠. 이미 농경이 전해진 지도 수천년 지났기에 여기도 버티려면 더 고도의 사회조직을 요구하는 쪽으로 테크를 밟아갔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 사회조직들은 더 큰 사업을 벌립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습지를 개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방대한 물과 개간한 습지의 널찍한 평야가 합쳐지자 생산력은 훨씬 증대되었습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다시 사회는 진화했습니다. 촌장이 왕이 되었고 그의 수족인 관료제가 등장했습니다. 공공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생산물들을 재분배 해야 했으니 누구에게 얼마 주고 누구에게 얼마 받았다 이런 걸 알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겠죠. 문자가 등장하고 전문적인 서기들이 생깁니다. 당시 상형문자는 매우 복잡했고 이를 가르치기 위한 서기 학교가 생깁니다. "문명"은 그렇게 등장하게 됩니다.
산업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맬서스 트랩은 농경사회의 철칙을 제대로 포착한 것이었죠. 당시 영국의 실질임금은 또 다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사용 가능한 방법은 다 써봤습니다. 배고픈 인구를 아메리카로 보내고, 토지제도를 바꿔보고 미개간지를 개간하고, 사람들은 더 많이 일을 하는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남녀 모두 노오오력을 하게 된 근면혁명입니다. 그러나 이는 환경적으로 불가능했는데 이미 고도로 발전한 국가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런던의 엄청난 도시인구 때문이죠. 이들의 난방수요와 주택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의 숲이 씨가 말랐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토양의 질도 추락하여 생산력도 다시 떨어질 것이 눈에 선했습니다. 맬서스가 암울한 전망을 한 것을 우리는 쉽게 까곤 합니다만 18세기 말 맬서스 트랩은 그야말로 철칙이었습니다. 유라시아 동쪽 끝에서 가장 진보한 사회였던 장강 삼각주 지역도 마찬가지였는데 Bin Wong의 "China Transformed"에서는 남중국의 삼림이 에너지에 굶주린 남경과 양주 등의 도시민들에게 모조리 뜯겨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문명은 수억년 전 땅에 묻힌 나무들이 간직해온 거대한 에너지를 세상에 풀어냈습니다. 석탄을 이용한 산업혁명입니다.
이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자신의 지능을 활용하여 더 복잡하고 고도화되는 방향을 선택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런 복잡성의 증대와 사회조직의 고도화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자원요구량을 증대시킵니다. 다시 사회는 자원압박에 시달리게 되며 이는 또 다른 위기를 불러일으킵니다. 때로는 로렌타이드 빙상의 붕괴와 같은 외부환경의 충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전의 글에서 다이아몬드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그린란드 바이킹 사회가 이누이트로부터 배웠다면 조금 더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라고 얘기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킹 사회는 이미 농업전통이 확립된 유럽 문명의 최전선에 세워진 사회였습니다. 이누이트들의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가는 건 아예 수용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자동화의 물결에 직면한 우리는 어떨까요. 산업사회는 필연적으로 인구구조의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교육 받고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더이상 아이를 많이 낳지 않습니다. 특히 여권이 상승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교육 받고 경제적으로 자립 가능한 여성은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평균수명의 상승은 생산에 더이상 참여할 수 없는 노인들도 늘어나게 합니다. 선진사회가 대체츌산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대체츌산율을 설령 유지한다고하더라도 노인을 아우슈비츠에 보내지 않는 이상 부양비용의 증가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생산성 혁신으로 사회의 자원획득량을 다시금 올려야 이에 대응할 수 있죠. 안 그러면 뭔 꼴 나는지는 현해탄 건너 일본을 보세요. 아니면 이미 망한 소련을 보시면 됩니다. 사회의 자원생산은 그대로인데(혹은 위축되는데) 부양 부담이 늘어날 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죠. 부양할 인구에게 돌아갈 자원을 줄이면 됩니다. 노인복지 삭감하고 아동복지 줄이고 장애인 복지도 줄이고. 이게 옳다 그르다를 차치해서 감내할 수 있는 민주국가 정치인이 있을까요? 피해를 볼 노인은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누군가의 부모님이고 아이들은 누군가의 자식입니다. 장애인은 안 그런 사람이 더 많긴 하지만 그들의 가족들은 생산에 참여하여 부를 분배받고 정치적 권리도 분배받습니다. 그런 정치적 선택을 하는 사람은 나쁜 새끼이기도 하지만 븅신 새끼이기도 한데 선거에서 필패할 것이 틀림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미 사회는 이러한 선택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대신 이들은 혁신을 주도해서 가치창출 사슬의 꼭대기에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트럼프와 존슨을 불러내야 했죠.
외부환경의 충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뒤쳐졌던 과거의 농경사회들은 산업화의 물결에 급속히 동참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시작했고 최근 모디 정부의 강력한 추진 하에 인도도 들어왔죠. 기본 바탕이 너무 바닥이라 실 증가분은 크지 않지만 심지어 에티오피아도 10%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 자원이 언제까지 버텨줄까요? 최근의 자동화, IoT라던가 하는 혁신들은 모두 탄소배출을 줄이고 자원사용을 최소화하는 에너지 효율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더하여 에너지 사용을 가능한 한 줄이는 사회공학들도 데이터 과학의 발전으로 점차 등장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행성의 자원압박이 파국으로 치달을 때까지 손 놓고 있자는 겁니다. 이건 범지구적인 문제이고 타임 리미트는 애석하게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사실 지금이 오버워치에서 게임 다 끝났을 때 더 주는 추가시간일지도 모르죠. 기후변화의 티핑포인트를 넘게 된다면 지구는 금성이 될 겁니다. 네, 산업시대에 들어온 건 마음대로지만 나가는 건 우리 마음대로가 아닙니다.
5. 다른 강물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뭐가 정답일까요? 지금까지 제가 한 얘기는 결국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를 입증하는 것 같죠. 인간이 인지능력의 대폭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되어 10만년 간 지속될 폭주기관차에 탄 역사 말입니다. 따지고보면 암울하죠. 폭주기관차에 탑승하지 못하여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농경민에게 그들의 신성한 땅을 빼앗긴 수렵채집민,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농사 짓다가 끌려와서 영문도 모른채 지옥같은 노동에 시달린 플랜테이션 노예들은 또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아마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 뻔한 후진국 사회의 빈곤층이겠죠. 이를테면 아직 개발이 덜 된 중국 서부지역의 노동자들은 개혁개방의 결과로 제대로 된 사회보장도 경험하지 못하고, 상하이와 선전 시민들처럼 산업화가 가져다준 엄청난 부는 구경 밖에 못한 채 비참하게 죽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열차에 탔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실리콘밸리와 중관촌, 혹은 판교 테크노밸리는 최고층으로서 문명의 신세계를 즐길 겁니다. 하지만 양갱을 먹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있지요. 인지혁명의 제물이 되면서 사회적으로 도태된 호모 사피엔스들, 초기 도시의 불결함으로 발병한 전염병으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죽은 어린 아이, 한 차례 휩쓴 가뭄으로 노인을 죽이고 자식을 잡아먹은 부부가 있을 것이며, 스모그 가득한 런던에서 하루 15시간 굴뚝 청소부 일을 하는 말라비틀어진 소년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생산에서 배제되어 구조조정 당할 대다수의 인간이 이 행렬에 동참하겠죠.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진정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존나 멋있는 말로 정리해줬잖습니까? 인류가 운전하는 폭주기관차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우리 사촌들은 분명 멸종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굶주린 농민들의 쇄도를 맞이한 소수의 수렵채집민들은 다른 수렵채집민들의 운명과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춘추시대 초엽 배고픈 중국인들은 남쪽으로 끝없이 내려갔고 그곳의 수렵채집민(혹은 원시농경민)들과 마주칩니다. 분명 피를 동반한 충돌이 있었겠죠. 그리고 남쪽의 원주민들은 문명사회를 모방하기 시작합니다. 인간 집단은 그들의 사회적 지능을 통해 모방을 할 수 있었죠. 춘추오패의 자리까지 차지한 월나라는 그렇게 탄생합니다. 기차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어떻게든 기차에 달라붙었고, 끝내 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농업문명의 확산은 대다수의 수렵채집사회를 멸망시켰고 아메리카에서는 아포칼립스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만, 소수의 수렵채집민들은 자신들만의 국가를 조직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단군 설화라던가 고고학 자료, 그리고 지금껏 우리가 쓰는 한국어로 미루어보았을 때 고조선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을 겁니다.
그러나 열차에 기껏 탔어도 열차의 말석에 있는 이들까지 구제할 수는 없었죠. 사실 월나라가 뭐 춘추오패를 처먹든 춘추일패를 처먹든 월나라 농민 1은 다른 수렵채집 집단처럼 땅에서 쫓겨나거나 노예가 되지는 않았더라도 비참한 인생을 살았을 것임은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변화의 물결은 조금 달랐습니다. 일단은 여기서도 월나라처럼 대응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일본은 산업혁명의 기차에 올라 타보겠다고 아등바등 대응하여 결국 성공한 훌륭한 사례입니다. 한국과 대만도 마찬가지죠. 처음에는 이들도 열차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변화의 흐름에 놀랍도록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여기까지는 농업혁명 시기의 대응과 별 다를 거 없어 보이겠죠. 동아시아 국가들이 적응하긴 했어도 여전히 열차에는 양갱 처먹는 인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농업혁명과 같은 강물일 수가 없습니다. 이는 다른 강물입니다. 인지혁명에서 농업혁명으로,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가는 동안 한 인간의 역량(아마르티야 센의 개념)은 계속 증대되었습니다. 산업화의 기차에 제대로 몸을 싣기 위해서는 아무리 밑바닥 노동자들에게라도 기초적인 글은 물론이고 최소 중등교육은 제공해줘야 했습니다. 배움을 알게 된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 농민들은 귀족 나으리들에 복종하는 것을 그냥 하늘이 정해준 질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은 그들끼리 단결하여 우리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는 분명히, 평등주의가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빛을 발했던 순간입니다. 그들은 기계를 멈춰 역사를 열었습니다. 새로운 산업사회에 걸맞는 평등주의 사회협약이 최초로 등장했습니다. 이제, 열차의 말석에 있는 자들이 최상석에 있는 풍요를 모두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벌레 녹여 만든 단백질 바 대신에 쌀밥에 고깃국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최소한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의 열차에 제대로 탑승했다면 말입니다.
다시 먼 과거, 인지혁명으로 돌아가보고자 합니다. 인지혁명은 정교한 언어를 발명해냈습니다. 그 언어를 통해 인간은 과거의 지식들, 즉 정보들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구전으로, 그 다음에는 문자로, 이제는 수많은 디지털 자료를 통해 말이지요. 아마 자신들의 공동체가 어떤 사회인지, 그 기원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건 인간이 종교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아닐까 싶습니다. 구전을 통해 전승된 설화들이 체계화되고, 이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최초의 "정보"가 만들어졌겠지요. 현대의 우리들은 창조설화들을 원시인들의 토속신앙 수준으로 치부하지만 창조설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인간에게 있어서 최초로 역사라는 것이 등장한 때일 것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서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 과거 수렵채집민들의 노인들은 과거 자신들의 경험을 구전해주면서 공동체의 생존에 기여했습니다.
인지혁명의 결과물인 조악한 창조설화로 시작된 역사는 농업혁명과 문자의 발달로 훨씬 정교해졌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던가 사마천의 사기는 동서양의 최첨단 농업문명들이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더욱 발달된 시도였습니다. 많은 지도자들은 그들 사회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물론 지도자가 역사를 좀 더 잘 안다고 해서 자신들 나라를 더 잘 통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농업문명 시대 역사 연구의 수준과 공동체의 복잡성이 어느정도 불균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공동체의 생존에 기여할 수 있던 것은 그만큼 수렵채집 공동체가 작았으며 단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농업문명의 군주들은 훨씬 복잡해진 사회를 통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통치할 때 쓸모 있는 지식을 역사로 배우기에는 당대 역사 서술의 수준은 모자람이 많았습니다. 한 번 흑사병을 보죠. 중세 온난기는 유럽의인구를 엄청나게 늘려줬습니다. 이미 맬서스 트랩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죠. 그런데 여기에 우호적 기후조건이 막을내리게 됩니다. 중세 온난기가 끝난 겁니다. 유럽의 기온은 떨어지고 강수량은 너무 많아져서 독일이라던가 동유럽이라던가 새로 개척한 농지들은 박살이 났습니다. 곧이어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기근은 면역력을 약화시킵니다. 거기에 몽골이 만들어준 유라시아 교통망은 질병교환의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중세 후기 흑사병 창궐의 원인을 짧게나마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중세인들의 역사로 기후변화라던가, 인구학, 맬서스 트랩, 그리고 미생물의 생태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죠. 까놓고 말하자면 농업시대에 역사는 상당부분 무력했습니다.
그러나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과거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도구들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우주의 기원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나톨 프랑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정한 불가사의는 우주의 크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우주의 크기를 측정했다는 사실에 있다." 현대 학문의 놀라운 위업을 통해 우리는 과거 사회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무엇을 통해 번성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록된 사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전학이 있고 언어학이 있으며 고기후학과 고고학, 그리고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이 있습니다. 거기에 복잡계 과학과 게임이론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신경과학이 있습니다. 이 모든 지식들은 과거의 역사를 더욱 정확하고 풍성하게 알려주는 데 진짜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수만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역사는 세계를 설명해주는 힘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Charment4님은 다가올 문제들이 알 수 없는 전인미답의 영역이기에 우리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우버와 에어비엔비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 불법화하는 것으로 대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나아갈 능력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다면, 그 두려움은 조금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 속에 스러졌고 말석에 탑승한 자들은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내야 했지만, 인간은 지식을 생산하고 그것을 공유하기에 진정으로 위대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의 힘으로 우리는 다가올 사회변동에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농업혁명기에 농업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짐작이라도 한 사람은 틀림없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산업시대에는 몇몇 선각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예측은 사실 조악한 면이 많았습니다.
다시 새로운 이행을 맞이한 지금, 정보혁명의 결과물로 저와 같은 일개 학부생도 이런 그다지 예리하지 못한 글을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대서양 양안과 태평양 양안 학계가 200년 동안 축적한 현대 학문의 눈부신 결과물을, 대한민국 사회가 발전하면서 저 같은 평민도 극히 일부나마 접근할 수 있게 되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닥칠 도전은 전례가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제 비슷한 패턴들을 바라보면서 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선 시작할 일은 문제가 뭔지 명확히 직시하고, 과거를 돌아본 뒤 미래로 떠날 행동에 바로 지금 착수하는 것입니다. 열차의 말석에서나마 인간다운 삶을 보장 받던 사람들은 사회발전의 결과로 평등주의와 함께 비참한 삶의 구렁텅이로 떨어졌습니다. 열차에 타지도 못한 중동과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제 공포의 전도사가 되어 우리를 습격합니다. 과거는 이런 사람들이 저항해봤자 소용 없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인류를 습격해서 강력한 완력으로 가끔 압도하는 일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몇몇 수렵채집민들은 험준한 지형을 활용해 농경민들을 엿먹일 수 있었죠. 특히 유목민들은 실제로 농경제국의 사회발전을 끌어내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전열을가다듬은 농업제국, 청제국과 러시아 제국은 이들의 저항을 분쇄해버렸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열흘만에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기와 500만명의 육군도 갖추었죠. 하지만 수만년 동안 모든 피착취자의 영웅들이 고군분투한 결과가 보여주는 공통점은 그들 중 누구도 종국적으로 변화의 기관차를 멈추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더 빨리 달리는 열차일수록 같은 충격에도 더 약하겠지요.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인류 문명은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꾸라질 것입니다. 로마 제국과 한나라는 이전 어떤 사회도 건설하지 못한 첨단 제국들을 건설했으나 결국 그들이 풀어놓은 괴물 - 질병과 유목민족의 대이동 - 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한나라 멸망 이후 삼국지의 이야기와 로마 제국 멸망 이후 게르만 족장들의 이야기는 깡패 같은 지도자들과 그들에게 학대당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죠. 반동적 옛관념에 기초해서는 우리는 자신이 풀어놓은 괴물, 기후변화와 대량실업, 지구적 인구이동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에 굶어죽는 특권만 누린 그린란드 족장들의 운명을 감내해야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열차에 타지 못한 자들을 일으켜 세워 변화와 혁신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고 열차 안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 일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말입니다.
사실 그래서 중요한 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지식을 갖추는 일입니다. 역사는 옛 관념을 선택한 자들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인지혁명 때는 인간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런 감도 못잡았기에 그냥 흘러갔지만 적어도 우리는 농업을 선택했다가 다시 수렵채집사회로 돌아간 여러 사회들이 존재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농경민이 되거나 노예가 되거나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맬서스 트랩이라는 도전에 직면해서 농업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토지구조를 개선하자고 주장한 중농주의적 발상도 있었습니다. 실제 청나라의 많은 상인들과 농민들은 그런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결과는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에 잘 나와 있습니다. 다수 중국인들은 맬서스 트랩에 걸려서 조상들보다 훨씬 짧고 가난하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마 흥선대원군의 개혁이 서양의 도전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선 사회도 그런 위기를 그대로 겪었을 겁니다. 농경사회는 맬서스의 저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상황에 과거의 관념과 지식으로 대응한 가장 최근의 결과는 무엇이 있을까요? 3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왔을 때 소련은 철강만 만들고 석유를 더 많이 채굴하여 파는 것으로 대처했습니다. 평등주의의 옛 관념에 기초한 경제운영은 재앙이었죠.
그동안 써온 글들에서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낙관주의자입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겁에 질려 있고 게으르고 쓸데없이 탐욕스럽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옛 관념으로 우리가 대처하는 것은 인간이 대체로 겁에 질려 있고 게으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저는 인간의 힘을 믿습니다. 이언 모리스는 자신의 책을 관통할 "모리스 이론"을 소개합니다. "변화는 일을 하는 데 더 쉽고, 더 이득이 많고, 더 안전한 길을 찾는, 게으르고 탐욕스럽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 의해 야기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거의 모른다." 압력이 시작될 때, 인간은 변화합니다. 그리고 저는 과거의 압력에 대응한 인간의 모습과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의 지식은 우리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가 그 증거입니다. 저는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으면서 지식이 세계를 진정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역사가 우리 미래를 밝혀줄 등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인들은 아마 이언 모리스 얘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언 모리스 선생님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마지막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직면한 도전과 1000년 전 단단한 천장을 압박하고 있을 때 송나라를 좌절시키고 또 그보다 1000년 전 로마제국을 좌절시켰던 도전 사이의 커다란 차이는 바로 이제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와 송나라와 달리 우리 시대는 어쩌면 우리 시대가 필요로하는 생각을 앞으로 얻을지도 모른다.
생물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책 "문명의 붕괴"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세계를 파국에서 구할 수 있는 존재가 둘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고고학자들(앞선 사회가 저지른 실수의 세부사항을 밝혀주는 사람들)이고 하나는 텔레비전(그들이 발견한 사실을 알리는 매체)이다.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고고학자로서 나는 그의 주장에 확실히 동의하지만 거기에 세 번째 구원자, 역사를 추가하고 싶다. 역사가만이 사회발전의 거대한 서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다. 역사가만이 인류를 나누는 차이점을 설명하고, 그러한 차이가 우리를 파괴하는 것을 인류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설명할 수 있다.
이 책이 그러한 과정에 약간의 보탬이 되길 바란다."
이언 모리스의 이 위대한 저작에 비하기엔 너무나 조악하지만, 제 글도 그 과정에 먼지만큼의 보탬이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
혹시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거 같아서(혹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데 쟤는 대체 뭘 근거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하실 분들을 위해) 참고도서 목록을 이번에도 올립니다.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는 슬슬 이 카페 분들도 지겨울 정도로 듣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밖에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포괄하는 책으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매우 조금만 읽었고 내용에 동의 안 하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만 참고는 될 수 있을 겁니다. 더 통합적인 역사서술은 데이비드 크리스천의 "시간의 지도"가 있습니다. 사회의 몰락과 우리 시대의 도전에 대해서는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를 보십시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에 관한 책들은 최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로빈 던바의 "발칙한 진화론"은 가볍게 읽기 매우 좋은 책입니다. "멸종하거나 진화하거나"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 종의 400만년 발자취를 다루고 있는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신경적인 최신내용들은 매튜 리버먼의 "사회적 뇌"를 보십시오. 종교가 인지혁명 당시 인류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예술의 기원은 에릭 캔델의 "통찰의 시대"가 훌륭합니다. 아지트 바르키의 "부정 본능"은 마음이론에 관한 재밌는 '썰'을 제공해줍니다.
농업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안 읽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레고리 코크란과 헨리 하펜딩의 도발적인 책 "1만년의 폭발"은 농업과 문명이 인간에게 유전적으로 남겨준 흔적에 대해 얘기합니다. 루이기 루카 카발리-스포르차의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는 나온 지 벌써 10년이 넘은 책이지만 인간이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그리고 현대과학은 어떻게 이를 추적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인도유럽어족에 대한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브라이언 페이건의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는 농업문명의 여명기를 전후로 하여 어떻게 인간이 내부 자원 압박과 외부 충격에 대응하여 복잡한 사회를 건설해나갔는지 알려주는 훌륭한 책입니다. 중세 온난기와 기후충격에 관해서는 같은 저자의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를 보십시오. 대항해시대 이후 국제교역의 세계사인 케네스 포머란츠의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은 농업문명 말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같은 저자의 "대분기"는 맬서스 트랩에 집중한 책입니다.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은 산업화에 뒤늦게 올라탄 국가들을 조명해주고 아직 합류하지 못한 이들을 어떻게 지원해야하는가에 대한 책입니다. 에드워드 스타인펠드의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한 이야기지만 세계화와 산업화의 확산에 대한 일반적인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은 이것이 어떤 파장을 몰고올지 가볍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폴 콜리어의 "빈곤의 경제학"은 산업화에 합류하지 못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제프리 삭스의 책보다 더 현실적인 분석을 보여줍니다. 하름 데 블레이의 "왜 지금 지리학인가"는 글로벌 이슈를 공간적으로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소개해줍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는 인류 변화를 이끌어온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빛나는 통찰들을 보여줍니다. 살만 칸의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는 (제목 번역은 심히 구리지만) 교육을 바꿔야하는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한, 짧으면서도 강렬한 책입니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의 "제2의 기계시대", 제리 카플란의 "인간은 필요없다"는 전인미답의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기에 충분치는 않을지라도 유용한 책들입니다.
다른 책들도 일부 미약하게 영향을 미친 것이 많고, 솔직히 제목만 알고 출판사 서평만 보고 대충 썰 푼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참고도서 목록에 포함시키진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같이 나눠왔던 친구가 몇 명 있고 그들의 인사이트들도 영향을 정말 많이 줬습니다만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얘기한 걸 뭐 출처를 표기할 수는 없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