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5/18 13:31:00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역사] 쌍둥이를 낳으면 조정에서 보상을 주었던 조선.


복지의 개념이 없던 시대였지만, 조선시대의 복지와 비슷한 제도에 대해 알아보면 놀라운 사실이 꽤 많죠.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게 세종시대에 관노비에게 출산 휴가를 준 것이 있고...

도성의 고아 아이들을 제생원에 모아 키우기도 했으며,
장님들을 명통사에 모아 비가 올 수 있도록 기도하게 하면서 쌀과 콩을 내려주고,
세종 땐 아예 이중 뛰어난 장님을 서문관에 소속시켜 하급 관리에게 길흉을 보는 학문을 가르치게까지 했죠.


그런데 이런 건 그래도 이해가 가는 정책인데,
또 다른 재미있는 조선시대 복지 정책 중 하나가
조선시대엔 쌍둥이를 낳으면 국가에서 쌀과 콩 등을 하사했다는 겁니다.

거의 근대까지만해도 쌍둥이를 그렇게 좋게 여기지 않던 시대라
우리 할아버지 세대 이야기만 들어도 쌍둥이를 낳으면 한 명은 죽이기도 했다. 불길하게 여겼다.
등등의 말을 종종 들을 때가 있죠.

실제 조선시대에도 쌍둥이, 특히 3명 이상의 쌍둥이는 굉장히 희귀한 일로 인식하여
어느 집 누구가 세 쌍둥이를 낳았다라는 기록이 실록에 빈번히 보일 정도입니다.

이렇게보면 쌍둥이를 낳은 것을 불길하다 여겼을 거 같으나 신기한 기록이 있습니다.


○楊根人韓金妻一産三男, 例賞。
(양근(楊根) 사람 한금(韓金)의 아내가 한꺼번에 세 아들을 낳으니, 전례에 의하여 상을 주었다.)


한금의 아내가 한 번에 세 아들을 낳으니 상을 주었다라는 기록이 세종 때 있는 것입니다.
분명 당시엔 쌍둥이를 낳으면 불길하다 여겼을 터인데, 상을 주다니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치는 사실 특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기록이 처음 나타난 건 태종 6년 때인데요.
원주에 사는 노비가 한 번에 2남 1녀를 낳으니, 태종이 명하여 쌀과 콩을 10섬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 때는 이게 거의 법제화 되어
세 쌍둥이를 낳은 집에겐 쌀 10섬을 하사했는데,
당시 9품 벼슬아치의 1년 연봉이 15섬 남짓이었던 걸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혜택입니다.

요즘 셋째를 낳으면 국가에서 어떤 혜택을 주는 것과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지요.
한 번에 아이 셋을 낳아 키워야하니 국가에서 그것을 일시적으로나마 보조해주는 것입니다.

세종이 구체적인 법령을 내린 적이 없지만,
이게 법률화 되었다는 간접적인 기록이 실록에 존재하는데요.
전문을 보면 이렇습니다.

---------------
경상도 감사가 아뢰기를,

“초계군(草溪郡)에 사는 사비(私婢) 약비(若非)가 세 쌍동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두 아이는 죽었습니다.”
하니,

대언사(代言司)가 아뢰기를,
“한 태(胎)에 세 아들을 낳은 자는 쌀 열 섬을 주옵는데, 이제 둘은 죽고 하나만 산 것은 쌀을 주는 예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한 태에 세 아들을 낳으면 현재(賢材)가 많다. ’고 하였으니,
이 여자는 두 아들이 죽긴 하였으나, 그래도 역시 쌀을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였다.

안숭선이 아뢰기를,
“전례가 없으므로 줄 수 없습니다.”
하니,

이를 예조에 내려 의논하라고 명하였다.

본조에서 아뢰기를,
“반을 감하여 닷 섬만 주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53권, 13년(1431 신해 / 명 선덕(宣德) 6년) 7월 5일(정묘) 2번째기사)
--------------

대언사가 아뢴 내용을 보면, 한 번에 세 아이를 낳으면 쌀 열 섬을 주는 것이 일반적 조치인데,
둘이 죽었으니 쌀을 줄 수 없다고 하니,
세종이 그 조치에 대해 신하들과 의논하는 실록 기사입니다

기록을 보면 세 쌍둥이를 낳았을 때 조정에서 당연히 쌀을 하사하는 데,
상황이 조금 다르니 그 조치에 대해 의논하는 걸 보면 이런 제도가 아주 보편적이었던 걸 알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 대신들과 의논하고 뭔가 절충안을 내놓는 세종은...
개인적으로 세종을 고기 덕후가 아니라 토론 덕후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 제도는 세조 때는 아주 법제화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세조 6년의 기록을 보면,

“선군(船軍) 박흥(朴興)의 처(妻)가 한꺼번에 세 아이를 낳았으니, 청컨대 호전(戶典)에 의하여 쌀·콩 10석(石)을 주소서.”

호전은 육전의 하나로 조세나 호수에 대한 법률이 기록된 법전인데,
호전에 의하여 쌀과 콩을 하사하라는 걸 봤을 때 법제화 되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명종 때는 가뭄이 들어 세 아이를 낳아도 쌀과 콩을 감량해서 주자고 건의하니,
그 정도도 준다고 국고가 비지 않는다고 전례대로 주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대부분의 복지 제도는 조선 초기에 많이 활성화되다
중기 후기로 들어갈 수록 기록이 적어지는데, 개인적인 추측으론

국가가 어느정도 안정화 되어 이런 구체적인 제도 없이도 먹고 살만해져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수도,
혹은, 국가가 연산군 때와 임진왜란 등을 겪으며 여력이 없어져 점차 사라졌을 수도,
아니면 다 남아있는데 너무 보편적이라 굳이 기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 쌍둥이를 낳은 여인에게 쌀을 하사하는 것은 기록상 영정조 때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이는 걸 봐서,
얼마만큼 보편적으로 행해졌는 지는 추측이 쉽지 않지만,
이 제도는 확실히 유지 됐음을 짐작할 수가 있지요.



....얼마전 질게에 쌍둥이에 대한 질문이 있어 글을 쓰긴 썼는데 마무리가 쉽지 않네요.
그냥 이런 제도도 있었다는 걸 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Practice
13/05/18 13:36
수정 아이콘
크... 보면 볼수록 조선 참 호감 가는 나라입니다. 중기까지의 조선은 세계 어디를 둘러 봐도 이런 나라가 몇 없지 싶네요.

가난한 노비 여인네 세 쌍둥이 낳았다 둘 죽었지만 그래도 쌀 몇 섬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복지 덕후 세종느님의 하교도 뭔가 귀엽구요 크크
wish buRn
13/05/18 14:43
수정 아이콘
애민정신이 몸에 배어있나봅니다.
존경심이 새삼스레 쌓이는군요.
얼린피카츄
13/05/18 14:0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sungsik님의 역사글은 항상 재밌는데 특히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참 좋네요.
13/05/18 15:23
수정 아이콘
이런 리플 써주시니 글 쓰는 보람이 생기네요.
고맙습니다.
사상최악
13/05/18 15:08
수정 아이콘
쌍둥이를 불길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전 세대에서 쌍둥이 중 하나를 죽였다는 얘기도 처음 들어보고...
개장군
13/05/18 17:53
수정 아이콘
드라마에서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선덕여왕이었던가요. 저도 그거 보고 여태 그런 줄 믿고 있었거든요.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었군요.;
sungsik님 덕에 또 하나 배웁니다.^^
펠릭스
13/05/18 15:43
수정 아이콘
조선초기에는 땅보다 중요한게 인구였습니다. 황무지(라고 하지만 사실은 지력은 있는데 경작할 인구가 없어서 버려진땅)가 사람 수 보다 많았거든요.

후기에는 이게 역전이 되지요. 그래서 사라진게 아닐까 마 그리 생각합니다.
13/05/18 19:35
수정 아이콘
좋은 지적이긴 한데,
조선 초기의 복지 제도는 생산 능력이 불가능한 장님, 절름발이 등등도 국가에서 어느정도 책임을 졌습니다.
후후하하하
13/05/18 17:13
수정 아이콘
인구가 중요하므로 쌍둥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줬다라고 해석하면 되겠네요.
배려심을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실생활에서 개개인이 타인에게 배려하는 것이 복지죠.
13/05/18 19:07
수정 아이콘
이런 의견을 내놓는 분들이 좀 계신데, 쌍둥이라는 게 노력해서 낳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 되겠지만,
우연적으로 생기는 요소에 대한 결과물이 국가가 원하는 부분과 부합한다고 포상을 한다?

제가 아는 인센티브라는 개념이 원래 쓰시고자한 의미와 맞다면,
딱히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추측이라고 봅니다.
후후하하하
13/05/18 20:15
수정 아이콘
아 그렇군요.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쌍둥이가 생기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기도 하고,
쌍둥이의 보상의 근거가 현재賢材인 것처럼 단순 결과와 보상을 연결하는 사고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력이 증명되진 않았지만 아들을 낳은 여성에게 보상이 주어졌던 것처럼 말이죠.
13/05/18 20:43
수정 아이콘
예, 미신적인 요소도 굉장히 많이 들어갔을 거라고 봐요.
당시엔 숫자 3이 행운을 의미한다고 해서 준 게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더라구요.

미신적인 요소 + 수고했다는 노력에 대한 보상
물론 님이 말씀하신 인구 증가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을 거라고 보고...
이유야 다양하겠죠 흐흐
이즈리얼
13/05/18 18:33
수정 아이콘
흥미로사실 잘 배우고갑니다

세쌍둥이가 아니라 일반 삼형제는 보조금?이 없었나요?
그랬다면 시대를 앞서가는 정책일텐데요 크크
13/05/18 19:11
수정 아이콘
실록 인조대의 기록을 보면 쌀을 내릴 때 나온 문구가 있습니다.
"임광의 아내가 젖 하나로 세 쌍둥이 딸을 키웠는데...왕이 해조로 하여금 물품을 주게 하였다."

사실 젖은 2개이지만.. 여튼 여자 가슴이 2개인데 아이가 3명이라 동시에 젖을 물릴 수 없는 것을 인식한 문구로 봅니다.
이걸보면, 동시에 3명의 아이를 키워야하는 노고에 대한 어떠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일반 3형제는.. 아무리 못해도 한 해 걸러서 나오니 별 거 아니라 생각했을 수도.
아니, 솔직히 그런 것까지 포상하면 조선은 애낳은 집안에 포상하다 국고가 거덜날듯 크크
곡사포
13/05/18 20:27
수정 아이콘
그렇죠~.
애매하면 반띵이죠~.
.Fantasystar.
13/05/19 01:42
수정 아이콘
오 이제야 봤네요 질문게시판에 제가 올렸었는데 흐흐흐흐
왕족중에도 쌍둥이가 있었으면 재밌었을 거 같은데 아쉽네요.
예를들어 왕후가 적장자를 떡 하고 생산했는데 그게 쌍둥이라면...크크크크
.Fantasystar.
13/05/19 01:42
수정 아이콘
그리고 그 쌍둥이중 하나가 왕세자가 된다면....!!
13/05/19 19:31
수정 아이콘
조선 시대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하나를 죽이는 그런 풍습은 없었습니다.
쌍둥이를 불길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심지어 몇몇 설화를 보면, 아비가 복이 많아 일곱 쌍둥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요.

쌍둥이에 대해서 불길하게 여겼다는 것은 아마도 유럽에서 넘어온 이야기 같은데 말이죠.(실제로 프랑스나 오스트렐리아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하느를 죽이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그냥 저냥 넘어갔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4318 [일반] [역사] 기술자.. 기술자가 필요하다. [9] sungsik6013 13/06/06 6013 4
44238 [일반] [역사] 난 차가운 조선의 왕, 하지만 내 백성들에겐 따뜻하겠지. [30] sungsik7969 13/06/03 7969 7
44130 [일반] 소소한 룩셈부르크 여행기 [13] sungsik4663 13/05/30 4663 2
44017 [일반] [역사] 나도 조선시대로 가면 미녀? 아닐 수도 있어염... [41] sungsik28196 13/05/25 28196 1
43920 [일반] [역사] 조선의 왜곡된 효행이 낳은 그림자. [78] sungsik6023 13/05/21 6023 3
43864 [일반] 요리 잘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면서요? [52] sungsik8837 13/05/20 8837 5
43841 [일반] [역사] 쌍둥이를 낳으면 조정에서 보상을 주었던 조선. [18] sungsik7236 13/05/18 7236 3
43682 [일반] [역사] 명분만 중시하는 어리석은 신하인가, 꺾일 줄 모르는 올곧은 충신인가... [15] sungsik4959 13/05/10 4959 2
43407 [일반] [역사] 세종대왕이 만든 병크 제도? '부민고소금지법' [10] sungsik14011 13/04/25 14011 1
43394 [일반] 내한 공연의 레전설을 썼던 트래비스가 6월 내한합니다. [12] sungsik6827 13/04/24 6827 2
43352 [일반] [역사] 화냥년이 병자호란 후 조선으로 돌아온 여자를 일컫는 말? [20] sungsik8277 13/04/22 8277 1
43329 [일반] 소음과 음악의 경계선은 한 끗 차이, 소닉유스 [12] sungsik5250 13/04/20 5250 0
43321 [일반] [역사] 원 간섭기 고려와 조선에 대한 대만 정씨 왕조 관점 [15] sungsik6389 13/04/20 6389 0
43273 [일반] [역사] 정사 삼국지 저자 진수는 정말 제갈량까일까? [24] sungsik10932 13/04/18 10932 2
43251 [일반] [역사] 조선 최대의 거리, '육조거리' [13] sungsik10847 13/04/17 10847 2
43210 [일반] [역사] 조선시대 실패한 화폐제도: 저화(楮貨) [39] sungsik7838 13/04/15 7838 3
43198 [일반] [역사] 조선은 왜 가난한가. [125] sungsik12278 13/04/14 12278 2
43165 [일반]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 [28] sungsik5635 13/04/12 5635 0
43142 [일반] [역사] 조선시대 의녀와 대장금 [7] sungsik6971 13/04/12 6971 0
43033 [일반] [역사]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여름에 얼음을 쓸 수 있었을까. [22] sungsik12554 13/04/05 12554 5
42844 [일반] [역사] 선조에 대한 변명. [53] sungsik21342 13/03/25 21342 3
42821 [일반] [역사] '태종실록'이 너무 보고 싶은 세종 ㅠㅠ [15] sungsik7613 13/03/24 7613 1
42751 [일반] [역사] 세종대왕의 성격과 철학을 알 수 있는 일화들. [49] sungsik16725 13/03/18 16725 1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