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3/04/20 00:58:30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역사] 원 간섭기 고려와 조선에 대한 대만 정씨 왕조 관점


대만이 만약 중국의 일부처럼 취급되지 않고 현재 완전히 다른 민족의 독립국이었다면,
아마 한국만큼이나 힘든 역사를 가진 국가로 여겨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선의 경우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고 청나라에 항복을 했는데,
그와 멀지 않은 시기 정성공이 죽은 후 대만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습니다.
이때 강희제는 정성공 아들인 정경에게 항복을 권고하고,
정씨 왕조도 이에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타협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기록을 보면 조선과 고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내용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이에 관련된 글이 있어 퍼와봅니다.


---------------------------------------


이를테면 대만 정씨 왕조의 정경에 대해 강희제가 항복을 권유하고,

정씨 정권 역시 항복에 대해 상당히 고려하게 됩니다.
문제는 항복 후 정씨 왕조가 받을 대우에 대해서인데,



1. 정씨 왕조는 대만 지역에 거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나라와 대만 모두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만약 항복했다고 정씨들을 베이징으로 끌고 가면 절대로 항복을 안할테니...



2. 정씨 왕조가 대만에서 세습해서 작위를 이어감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3. 변발하고 옷도 청나라 복식으로 입고 투항해라



문제는 이 부분입니다.

그냥 생각하면 머리 자르고 옷 입는 정도인데, 오히려 별거 아니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이야 말로, 항복한 후 대만이 "청나라의 일부" 인가,

아니면 그저 조공 책봉 관계에 들어와서 공납을 바치는 "자율적인 주변국" 인가 차이가 납니다.




청나라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보장을 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번봉을 받아들여 신하로 칭하면 자연히 그 제도와 복장을 다르게 할 수 없다." 는 겁니다.



반면에 정경은 전혀 이 부분을 따를 의지가 없었습니다.



1669년 천주 지역에서 청나라와 대만에서 보낸 인물들이 이 문제로 협상을 벌이지만,


대만 쪽에서 나온 말은

"조선의 사례에 비추어 변발을 하지 않고 대만을 세습하여 신하로 칭하고, 공납을 바치면 그만이다."

이에 대한 청나라의 반응은


"제도를 준수하여 변발을 하고 투항하면 작위와 봉록을 우대하고 아낌없이 상을 내릴 것이다. 대만 지역에 거주함도 허가한다. 
그러나 조선과 비교하여 변발을 하지 않고, 다만 공납을 바치고 투항하겠다는 것은 절대로 윤허할 수 없다.
번봉하여 대만을 세습함은 허가하나, 번봉을 받아들여 신하로 칭하면 자연히 그 제도와 복장을 다르게 할 수 없다."


원문은 明清史料·丁編에 나오는 부분이고,
제가 옮겨 적은 번역은 강희제 평전, 민음사, pp 249 장자오청 항저우 대학 역사학과 교수의 책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고려의 경우가 언급이 됩니다.


"고려의 경우처럼, 만일 변발하고 투항해야 한다면 나는 죽어도 동의하지 않겠다."



고려가 변발하고 투항했던 시기라면, 몽골 원 강점기 시절입니다.


이후 삼번의 난이 실패로 끝난 시점에서도 대만과 청나라의 협상은 계속 이루어지지만,

결국 (표면적으로는)이 부분 때문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엇나가게 됩니다.




하여 이런 부분을 보면, 원간섭기의 고려와 이후 조선의 위상에 대해 지켜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당시 고려 왕들이 원나라 황제의 사위 되는 신분이니 위상 자체는 낮지 않겠지만,

이런 위상이 "몽골의 일부" 로서의 위상이라, "개별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시 청나라 쪽에서, 대만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맞선 논리는 


"애당초 대만인들의 대다수가 복건 등에서 넘어온 중국인들 아니냐. 조선과는 전혀 다른 경우다."


라며 "대만인들이 본래 중국인" 임을 강조하는데, 즉 이런 상황에서 변발을 하고 청나라 옷을 입으면,
대만은 곧 중국의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만약 대만이 변발을 하지 않고, 옷도 다르게 입고, 다만 그저 공납만 바칠 뿐이면,
독립적인 속국으로서 중국과는 확실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당시 대만인들이 보던 고려와 조선의 차이가 이런 면이 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나이트해머
13/04/20 01:05
수정 아이콘
네이버 까페는 가입을 해야 볼 수 있으니 엠팍링크를 찾는게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신불해님은 제가 알기론 네이버 부흥, 역개루, 다음 토탈워, 엠엘비파크에 같은 글을 올리시거든요. 개중 가입 없이 자유롭게 볼수 있는 곳이라면 엠팍 정도가 아닐까...
13/04/20 01:17
수정 아이콘
위 링크의 글은 그냥 전체공개가 되어 있어서 회원 아니라도 읽을 수 있네요.
13/04/20 01:12
수정 아이콘
어허 이거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13/04/20 01:12
수정 아이콘
대만 원주민들은 원래 폴리네시아인들이죠.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인데 대만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원향입니다;;
모든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언어가 대만 각지역에 다 있다고 보면됩니다.
그런 원주민들이 쭉 거주하다 중국인들이 넘어왔고...

대만이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며 독립된 의식을 가졌는지 안가졌는지 잘 모르겠네요.
하나의 공동체로서 중국과는 별개라고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었다면 저건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만
이주해온 중국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못할 것도 아닌데 괜히 토벌당한걸로 보이기도 하네요.
13/04/20 01:17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13/04/20 01:20
수정 아이콘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되었나요?
나이트해머
13/04/20 01:23
수정 아이콘
강희제가 무력으로 토벌해 끝냅니다.
13/04/20 01:24
수정 아이콘
위소보가 거의 다 했다고 볼 수 있죠..
강희제의 행동대장
Neuschwanstein
13/04/20 10:50
수정 아이콘
아..갑자기 추억돋네요 녹정기.
13/04/20 01:24
수정 아이콘
조선과 대만과 상황이 달랐던것이 조선이 청에게 항복할 당시 명이랑 청이랑 대립하고 있던 상태여서 청입장에서 조선은 어떻게든 빨리 처리해야 했었고
한편 저당시 대만은 청이 삼번의 난도 진압하고 중국대륙을 완전히 평정 한 상태였죠. 시기상 청나라가 완전히 유리한 상태이기 때문에 저런 강경책을 쓸수 있었던것입니다.
키스도사
13/04/20 01:41
수정 아이콘
역사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네요.:)
김어준
13/04/20 02:5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대만인이 바라보던 고려와 조선의 차이를 언급했지만 제가 조선인이여서 그런지
청나라가 바라보던 대만과 조선의 위상의 차이가 더 맘에 와 닿네요.
항복의 표시를 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는거 같네요. 할려면 제대로..
13/04/20 07:43
수정 아이콘
대온이 딱 이시대 배경이라 안평에 가면 정성공과 정경을 만날 수 있는데(.... 부자 에피소드도 있죠)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아마돌이
13/04/20 08:09
수정 아이콘
sungsik님 눈시bbr님과 많은 분들이 올려주시는 역사 관련글은 매번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치킨마요
13/04/20 16:58
수정 아이콘
본문과 상관없지만.. 뜬금 대만 정씨라고 하길래 응?? 정대만?? 이라고 생각해버렸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4318 [일반] [역사] 기술자.. 기술자가 필요하다. [9] sungsik6013 13/06/06 6013 4
44238 [일반] [역사] 난 차가운 조선의 왕, 하지만 내 백성들에겐 따뜻하겠지. [30] sungsik7969 13/06/03 7969 7
44130 [일반] 소소한 룩셈부르크 여행기 [13] sungsik4663 13/05/30 4663 2
44017 [일반] [역사] 나도 조선시대로 가면 미녀? 아닐 수도 있어염... [41] sungsik28196 13/05/25 28196 1
43920 [일반] [역사] 조선의 왜곡된 효행이 낳은 그림자. [78] sungsik6023 13/05/21 6023 3
43864 [일반] 요리 잘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면서요? [52] sungsik8837 13/05/20 8837 5
43841 [일반] [역사] 쌍둥이를 낳으면 조정에서 보상을 주었던 조선. [18] sungsik7236 13/05/18 7236 3
43682 [일반] [역사] 명분만 중시하는 어리석은 신하인가, 꺾일 줄 모르는 올곧은 충신인가... [15] sungsik4959 13/05/10 4959 2
43407 [일반] [역사] 세종대왕이 만든 병크 제도? '부민고소금지법' [10] sungsik14011 13/04/25 14011 1
43394 [일반] 내한 공연의 레전설을 썼던 트래비스가 6월 내한합니다. [12] sungsik6827 13/04/24 6827 2
43352 [일반] [역사] 화냥년이 병자호란 후 조선으로 돌아온 여자를 일컫는 말? [20] sungsik8277 13/04/22 8277 1
43329 [일반] 소음과 음악의 경계선은 한 끗 차이, 소닉유스 [12] sungsik5250 13/04/20 5250 0
43321 [일반] [역사] 원 간섭기 고려와 조선에 대한 대만 정씨 왕조 관점 [15] sungsik6390 13/04/20 6390 0
43273 [일반] [역사] 정사 삼국지 저자 진수는 정말 제갈량까일까? [24] sungsik10932 13/04/18 10932 2
43251 [일반] [역사] 조선 최대의 거리, '육조거리' [13] sungsik10848 13/04/17 10848 2
43210 [일반] [역사] 조선시대 실패한 화폐제도: 저화(楮貨) [39] sungsik7838 13/04/15 7838 3
43198 [일반] [역사] 조선은 왜 가난한가. [125] sungsik12278 13/04/14 12278 2
43165 [일반]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 [28] sungsik5635 13/04/12 5635 0
43142 [일반] [역사] 조선시대 의녀와 대장금 [7] sungsik6971 13/04/12 6971 0
43033 [일반] [역사]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여름에 얼음을 쓸 수 있었을까. [22] sungsik12554 13/04/05 12554 5
42844 [일반] [역사] 선조에 대한 변명. [53] sungsik21342 13/03/25 21342 3
42821 [일반] [역사] '태종실록'이 너무 보고 싶은 세종 ㅠㅠ [15] sungsik7613 13/03/24 7613 1
42751 [일반] [역사] 세종대왕의 성격과 철학을 알 수 있는 일화들. [49] sungsik16725 13/03/18 16725 1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