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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4/14 23:33:43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역사] 조선은 왜 가난한가.


흔히 통념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것이 조선은 상업을 천시했고
성리학 이념에 찌들어 물질적 부유함을 배척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개인적 결론을 내리자면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조선이 이념적으로 상업을 천시한 건 맞지만 조정에선 상업을 부흥 시키기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했으며,
부유함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국가의 가난함에 상당히 고심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조선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가난이란 개념부터 정확히 하는 것이 좋겠죠.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의 증언을 따르면, 생필품 부족이 가난함의 척도라면 조선은 절대 가난하지 않다고 합니다.
또 구한말 무슬림 지식인의 증언을 따르면 조선엔 부자가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두 증언을 모두 신뢰한다면, 
조선이란 국가는 백성들 대부분이 밥을 굶고 기본적 생필품 부족으로 비참한 삶을 이어갈만큼 개개인이 가난하진 않지만,
반대로 어떠한 부를 축척한 부호 역시 상당히 드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흔히 생각하는 조선 후기 관리나 부호들의 수탈로 백성들은 모두 굶어 죽어가는데 부호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됐다는,
우리의 일반적 개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증언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증언적 사실 관계를 뒤로 한다고 해도 
조선이란 국가, 그 자체가 가난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성리학 이념으로 똘똘 뭉친 것처럼 보이는 사대부들이 이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고민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실록 기사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실록 기사를 그대로 퍼오면 이해하기가 힘들기에 최대한 왜곡없이 쉽게 풀어서 제 생각과 함께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조 36년, 임진왜란이 끝난지 5년 남짓한 시점에 당시 조정 앨리트의 아주 중요한 논의가 이루어집니다.
7년에 걸친 전쟁 후 국가가 황폐화되어 조정에선 이를 벗어날 해결책을 논의했고,
그 중심엔 화폐의 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논의 주제는 화폐 사용이지만 그렇다고 논의가 단순히 화폐에만 한정되어있지 않습니다.

관중추부사 이원익의 의견입니다.

- 중국에선 오래전부터 입고 먹는 것외에 화폐를 사용하여 지금까지 통용했는데, 조선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는 조선의 습속이 중국과 달라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도록 시행하지 못했고 폐단이 생기면 금방 그만두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화폐 사용을 시험해 보다가 정지한 과거 전력이 있으니,
최대한 신중의 논의하고 영구히 시행해도 폐단이 없을지의 여부를 자세히 계획하여야 합니다.-

이원익은 조선 화폐 유통의 실패를 조선의 습속과 문화가 중국과 달라 실패했다는 의견을 내보입니다.
더불어 과거 전력이 있으니 최대한 신중하자는 아주 원칙적인 의견을 전합니다.


이어 오성 부원군 이항복의 의견입니다.

- 실질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물건과 재화를 만들고 실질 가치가 있는 것을 취해서 입고 먹는 것이
국가를 다스리는 주요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그렇지 못하여 본인이 항상 괴이하게 여기면서
한 번 품계를 조정하여 의논해 시행해보려 하였지만,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과거 무슨 문제가 있어 중간에 폐지했는지, 
무엇을 가지고 솜이나 베를 무역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중요하고 그렇지 않음을 정했으며,
어떤 것을 만들어 기준을 나누고, 어디에다가 그것을 사용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이루어져야하고, 
화폐를 통용하자는 건 신이 예전부터 마음 속으로 고심해 오던 것이여서
의견에 동의하니 이 부분에 대해선 의논드릴 것이 없습니다. -

이항복 역시 오래전부터 화폐 유통에 아주 고심한 흔적이 있으나,
화폐의 원리나 뚜렷한 대책에 대해선 제시하는 바가 없습니다. 
또한 과거 실패 경험 때문에 어느정도 조심히 의견을 전달하지만 그럼에도 그 역시 화폐 유통은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 다음엔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웠던 좌의정 윤승훈의 의견입니다. 내용이 꽤나 길고 구체적입니다.


- 과거 우임금과 탕임금은 국가에 홍수나 가뭄이 생겼을 때 쇠를 가지고 화폐를 주조하여 백성들의 곤궁을 구제하였습니다. 

신이 매일 탄식하기를 과거 성인들도 홍수나 가뭄을 만났을 때도 이와같은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큰 전란을 겪어 모든 재화가 부족해진 데다가 재건을 위한 부역까지 무거워
백성들은 병란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에서는 그들을 불러모아 재생할 수 있는 대책을 전혀 마련하고 있지 않으니 어떻게 민생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의 형세가 안정적이고 사방에 걱정이 없을 때야 예전에 하던 대로 지키기만 하더라도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참혹하게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됨으로써
모든 것이 꼴이 말이 아니니, 이러한 때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끝내는 나라가 망가질 것입니다.
다만, 이런 책임을 맡을 큰 인재가 없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이번 경연에서 성영이 언급한 내용은 돈을 주조하여 화폐를 통용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신이 일찍이 생각했던 것으로 언제나 식견있는 사람과 개인적으로 의논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전하여 시행하지 못했던 것은 과거에 실패 사례(태종때 종이돈과 세종 때 동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천하에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렇게 가난하게 된 까닭은 크고 작은 이권이
개인의 집에만 있고 국가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 물품과 재화가 없다고 하지만,
소금과 철만으로도 국가를 충분히 부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조정에서는 관청에서 소금을 굽고 사적으로 굽는 것을 금지하고,
백성들에게 매매는 하게 하되 한 해 농사 풍작과 흉작을 보아 값을 조절합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유는 이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독 소금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인삼에 있어서도 사적으로 채취하는 것을 허락치 않고,
관청에서만 채취한다면 이것을 가지고 중국과 무역하기도 여유가 있게 되고
중국 관원을 접대하기에도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이권이 국가에 있지 않기에 자꾸 근심거리가 생겨나는 것이나,
200년이나 내려온 문제를 지금같이 백성들이 어려울 때 갑자기 변경하기란 어려운 것이니
의논드리는 것이 아닌 신의 소견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화폐 통용에 있어서는, 과거 통용했다가 끝내 폐지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형편에 맞게 주조하여 시험해보는 게 좋다 판단됩니다.
만약 시행하는데 폐단이 없고 백성들이 편리하게 여긴다면 아주 좋은 제도가 될 것입니다.

신이 얼마전 북경에 갔을 때보니 과거 화폐만 요구하고 새로 주조한 화폐는 받으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돈의 통용은 동이냐 철이냐에 달려있지 않고, 옛것이냐 새것이냐에 달려있지도 않으며, 
백성들이 편리하게 여기느냐 불편하게 여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를 유의해야할 것입니다 -


굉장히 흥미롭죠.윤승훈은 조선이 가난한 이유를 작은 정부에서 꼽습니다.
그러면서 국가가 부유해지기 위해선 국가의 권한을 강화하고 특정 품목을 국가 독점화 해야한다 주장합니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현대식으로 굳이 하자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보단 공산주의나 특정 생산 품목의 공기업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물건의 가격을 전적으로 시장에만 맡길 게 아니라, 
그 해 흉작을 본 뒤 국가가 주도적으로 그 가격을 주도해야한다는 일종의 보이는 손을 주장하는 것이죠.
이는 현대의 케인즈주의와도 약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의정 유영경의 의견입니다.

- 화폐는 중국에선 하나라와 상나라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대 통용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화폐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입고 먹는 것이 쌀과 베이고,
재화를 통용하는 것도 쌀과 베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천하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신이 과거 북경에 갔을 적에 중국 사람들이 재화를 통용하는 문제와 입고 먹는 문제를 각각 따로 했는데,
조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었습니다.
더군나 지금은 전쟁의 고통을 겪은 뒤이므로 공사의 물화가 남김없이 탕갈되었으니,
만일 돈을 주조하여 통용하게 한다면 백성들은 반드시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니,
화폐 사용에 대한 의견을 진실로 동의합니다.

다만, 과거 이를 시행한 경험이 있었고 중지한 건 반드시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만일 이번 한 때의 소견만으로 경솔하게 시행했다가 다시 폐지한다면,
무의미한 정책이 될 뿐 아니라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심사숙고하여 어떤 쇠로 주조하고 어떤 모양으로 표준을 삼으며,
어떤 방편으로 통용해야 영구히 할 수 있고 폐해가 없게 될런지를 먼저 자세하게 계획한 다음 처리해야할 것입니다.-

유영경의 경우엔 조선이 가난한 이유를 현물과 화폐가 구분되지 않음으로 꼽습니다.
즉, 현물이 화폐고 화폐가 현물인 현 시장 상태가 문제라는 거죠.




이렇게보니 여러 대신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공통된 의견이 있습니다.
조선은 가난하다. 그리고 그 가난함의 주요 원인은 화폐 유통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윤승훈은 자신의 추가의견을 제시하며,
작은 정부를 비판하고 큰 정부로 경제의 주도권을 국가가 가져가야한다 주장합니다.

반대로 본문에는 쓰지 않았지만 사관은 이를 비판하며 산림과 강과 연못은 국가와 백성이 함께 사용하는 것인데,
국가가 소금 굽는 일을 독점하고 인삼 캐는 것을 막는다면,(당시에는 현재의 재배식 인삼이 없고 산삼이 곧 인삼이었습니다.)
이는 국가가 백성의 이익을 다 긁어 모음으로써 옳지 못한 것이라며 반박합니다.
역시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국가가 개개인의 경제활동을 간섭하지 말라는 신자유주의와 은근히 비슷하죠.


여하튼 화폐 사용의 필요성은 하나같이 역설했지만,
누구도 화폐 유통이 왜 실패하는지 그 이유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흔히 조선 화폐 유통의 실패 이유를 당시 상품경제 발달의 미약과 유통량의 부족으로 보지만,
사실 조선 초기 도성 내의 상업활동은 상당히 활발했고 재화 유통량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도성 사람들조차 화폐 사용에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냈죠.

또 명나라같이 은본위제를 시행하지 않아 조선의 화폐가 명목화폐로서 물질적 가치를 전혀 지니지 못했기에
조선 백성이 화폐보단 현물을 중시했다 주장하기엔 중국은 은본위제를 시행하기 이전부터 화폐 유통이 어느정도 발달하였고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폐 제도의 실패는 조선뿐 아니라 고려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특징이기에,
상업을 천시한 조선이란 이유로도 역시 설명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고려시대의 화폐 보급 실패로인한 현물 거래의 정착이 조선의 화폐 유통에 더더욱 커다란 장애물이 된 거 같기도하고요.


조선의 화폐 유통 실패에 대한 논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제가 가장 설득력을 느끼는 이야기는,

임진왜란 전에 조선에서 화폐보급을 가장 적극적으로 했을 시기는
태종 때 저화라 하여 종이돈을 보급한 것과 세종이 동전을 주조하여 보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조정에선 통화의 유통이 아닌 통화를 발행함으로써 차익을 내려 했기에
시장에서 외면당했다...하는 게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지고요.

개인적으론 상품의 대량유통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의 화폐가 보급된 시기는 이 논의가 있었던 선조 때도 시행되지 않고,
광해군 때도 반대로 실패하고, 인조때부터 논의되어 시행되고 그만두고를 반복하다 숙종 때정도 가서야 어느정도 보급/사용이 됩니다.

이 사이에 조선 정책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건 바로 대동법의 전국적 시행인데,
그 전까진 국가에서 물건으로 진상해야했던 걸 쌀과 베로 걷고 조정에서 필요한 물건을 다량 구입하다보니
상품의 대량 유통이 활성화 되어 통화가 보급된 게 아닌가.. 막연한 추측을 해봅니다.

조선 경제사쪽으론 아는 게 없어 추측밖에 내놓을 수 없네요.

여튼, 조선은 가난하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타개해야할까.. 하며 고심했던 선조들의 논의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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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모여재
13/04/14 23:3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혹시 당시 국가별 GDP나 1인당 GDP를 추산한 자료 같은 것도 있나요?
13/04/14 23:43
수정 아이콘
영문 위키나 자료등을 뒤져보면 있을 거 같기도 한데...제가 거기까지는 조사해본 바가 없네요.
미스터H
13/04/14 23:45
수정 아이콘
세계 각국의 경제통계로 유명한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자료가 있습니다. http://www.ggdc.net/maddison/oriindex.htm
미스터H
13/04/14 23:50
수정 아이콘
Historical Statistics의 Statistics on World Population, GDP and Per Capita GDP, 1-2008 AD 연구로 엑셀파일 정리되어 있어요.
여기서 보면 1500년에 우리는 이미 일본한테 국력이 2/1 수준이죠...
13/04/15 00:00
수정 아이콘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한국은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네요.
남북 합치면 4800, 일본은 7700이란 걸 봤을 때, 일본의 영토 크기나 인구 규모로 봤을 때
1인당 GDP는 비슷하거나 한국이 조금 더 높지 않았을까 추정해봅니다.

그런데 역시 놀라운 건 중국.. 19세기 전세계 GDP가 693,502인데 중국 GDP가 228,600..
미스터H
13/04/15 00:02
수정 아이콘
북이 기록에 없는걸 보아(... 라는건 엑셀 띄워놓고 대충 본 제 불찰입니다. 있네요) 남북으로 나누지 않고 아마 하나로 취급했을 확률이 높아보입니다. 사실 그게 이상하지도 않은게, 일본은 남방형 기후에 이모작도 빠르게 도입했죠. 중국이야.. 뭐 명불허전이구요.
13/04/15 00:04
수정 아이콘
있는데요; north korea라고...
그리고 조선도 이모작 빠르게 도입했습니다.
세종 때 이미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봄가뭄을 엄청 걱정했죠. 보리 수확 망친다고..
감모여재
13/04/15 00:12
수정 아이콘
GDP는 북 기록도 있네요. 나눠져 있습니다. 1500년에서 1700년이 되면서 일본의 GDP가 한국 GDP에 비해 훨씬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820년 1인당 GDP의 차이는 크지 않네요. 1500년 1인당 GDP는 sungsik님 말씀처럼 한국이 조금 높았을 가능성이 높네요.
미스터H
13/04/15 00:16
수정 아이콘
억. 제대로 못봤군요; 다른분이 스크랩해주신거 가지고 있다가 옮기다 보니... 말씀하신대로 일것 같습니다. 더구나 일본쪽은 전근대까지 수탈에 가까운 징세로 유명했으니 개인의 삶에서는 GDP보다 더한 격차가 났을거 같네요.
나이트해머
13/04/15 01:49
수정 아이콘
솔직히 앵거스 매디슨 자료는 꽤나 의심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전국시대 GDP 추정치는 '어어, 저거 저렇게 높게 나올 리가 없는데...' 싶은 수준이라.
DarkSide
13/04/14 23:48
수정 아이콘
중, 고등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당시 주류 가치관이었던 사농공상 ( 선비 - 농민 - 공인 - 상인 ) 체계가
조선이라는 국가의 시스템의 주축을 이루고 구성했기 때문에
체제 상 조선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나라 일 수 밖에 없었다 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기는 합니다 ....

이미 계층 간의 차별이 정당화되고 신분적 이동 수단이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당시 한반도의 기득권층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의 에너지를 일으킬 만한 동기 부여가 없었기에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 같은 이전 시기보다 더 가난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뭐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미스터H
13/04/14 23:48
수정 아이콘
저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상품의 대량유통이 문제라는 말씀에 전반적으로 동의드리고. 외침등의 이유로 도로망등의 사회 인프라 투자를 꺼려했기에 대량유통이 성숙할 환경이 아니지 아니었나 싶네요.
射殺巫女浅間
13/04/14 23:57
수정 아이콘
전국시대 종결 ~ 에도 막부 성립시점 쯤 기준으로 국력이 역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훨씬 이전부터 후달렸네요(...)
13/04/14 23:57
수정 아이콘
조선은 성내나 시내 읍내를 나가면 큰길이 없습니다. 즉 수래가 다닐만한 길이 없기 때문에 대량 수송이 발달할수가 없습니다.
다행이 한반도는 면적에 비해 강줄기가 여기저기 뻗어 있기때문에 수운이 발달했지만 수운으로 물자 운반할수 있는것은 국가 즉 조세수취에만 이용 했을뿐 개인이 수운으로물자 운반하기에는 비용 부담이많이 갔죠

대동법시행후 특산물조달을 국가가 아닌 상인들에게 맡겼는데 그들은 전부 보따리 상인들이였죠(그나마 이 대동법으로 어느정도 화패경제가 살아나긴합니다.)
화폐란 물품 대량으로 거래할대 효과적인것인데 도로망이 전국적으로 깔리지 않다보니 대량거래를 할수 없고 전국적으로 유통망을 가진 큰상인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하고 일본은 다릅니다 일본은 전국시대 걸치면서 전국적으로 도로망들이 다 연결되었고 중국은 언제인지 확실치 않지만 오래전부터 큰도시들간의 도로망들은 대부분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대량상품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수 있었고 덩달아 화패경제도 발달할수 있었던 것이죠
나이트해머
13/04/15 15:45
수정 아이콘
루크레티아
13/04/15 00:00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는 고려 시절에 잠시 은병을 화폐로 쓰던 것을 제외하면 금, 은으로 만든 원시화폐가 유통이 된 적이 없었죠.
애초에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이런 귀금속으로 된 원시 화폐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 화폐 유통에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금화나 은화는 여차하면 녹여서 화폐 대용의 귀금속으로 쓸 수 있지만, 엽전의 주재료인 구리는 그와 좀 다르죠. 즉, 제 생각에는 물물교환→귀금속 화폐→동전이나 지폐 의 순으로 발전이 되었어야 했는데, 중간 단계를 건너뛴 것이 화폐 유통의 지지부진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랏님이 시키는 일이라고 하지만, 당장 자기네 쌀과 베와 소를 잡철 비스무리한 동전과 바꾸라고 하는데 영 내킬 리가 없었겠죠.
13/04/15 00:02
수정 아이콘
대량 유통보다도 기본적으로 조선이 가난한 건 생산력 자체가 넉넉치 못 해서라고 알고있습니다. 정확한 자료를 지금 갖고 있지는 않지만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애초에 생산력 자체가 낮았습니다. 한 가구당 일리터가 넘지 않는 양의 쌀을 평균적으로 일일소비할 수 있었을 뿐이에요.

화폐의 적극적 이용이 화폐 유통이 활발하지 않은 상태에 비해 더 경제적으로 큰 성장동력이 될 수도 있는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경제력은 생산력이고 조선은 그 생산력이 우수한편이 아니었어요
13/04/15 00:31
수정 아이콘
그런데 일본의 통화 유통은 15세기부터 어느정도 활성화됩니다.
실제 세종 때 일본엔 통화 잘 쓰고 있는데 우린 왜 못쓰냐. 하며 문제 재기를 했었고요.
그렇다하여 당시 일본 생산력이 조선보다 높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거죠.
13/04/15 06:47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것과 일맥상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건데요. 조선이 왜 가난했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화폐의 문제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생산력이 낮았다라고 하는게 보다 본질적인 답에 가깝다라는거지요.
Je ne sais quoi
13/04/15 00:0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상업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적이 없으니 결과만 알지 근본적인 원인을 몰라 치료를 못한 걸로 보이네요. 아는 게 없어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언제나 뭘 읽어도 결국 성리학 주도 시스템이 백성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게 없어 보입니다.
13/04/15 00:13
수정 아이콘
성리학 주도 시스템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화폐란게 대단히 복잡하고 생각보다 인류가 늦게 그 특성들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데 16세기 스페인이 신대륙 금 싹 쓸어오다 물가 폭탄맞거나 이런건 당연히 예상못했고, 프랑스 절대왕정시기만 해도 금은 보화 쓸어오면 경제력이 커진다고 생각할 정도로 조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무지함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물론 그 정도는 다르지만요. 애초에 이백년 밖에 안되는 경제학이 연구하기 전까진 경험적으로 알고 대처하고 그런거죠
펠릭스
13/04/15 00:31
수정 아이콘
아닙니다.
몽키.D.루피
13/04/15 00:05
수정 아이콘
보통 드라마 만화 꽁트 등 조선시대를 묘사하는 극화에서 부자의 상징은 두툼한 엽전묶음이었는데 화폐가 제대로 유통이 안되었다면 그런 장면은 그냥 편의상 만든 장면인건가요? 그렇다면 조선시대 부자들의 상징은 무었이었을까요? 땅?, 집크기(방갯수)?, 곳간의 쌀 가마 수? 머슴 수?, 금, 은, 옥, 비단과 같은 진귀한 보물이나 보석?
눈시BBbr
13/04/15 00:12
수정 아이콘
우리가 아는 전통, 혹은 조선은 숙종쯤부터 해서 조선 후기인 게 많습니다
그 이전이야 부동산과 보물이죠 뭐 (...) 쌀은 썩으니 유기로 바꿨다는 윤원형 얘기만 해도...
루크레티아
13/04/15 00:41
수정 아이콘
그 두툼한 엽전 묶음은 디플레이션을 노린 권세가들의 보험이었죠.
그래서 나라에서는 기껏 찍어낸 엽전이 유통되지 않자 계속 찍어냈고, 인플레이션을 보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내일은
13/04/15 00:29
수정 아이콘
상품의 대량 유통이 없어서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상품의 대량 유통 이전에 대량 생산이 있어야 하는데, 화폐 경제가 우리보다 발달한 중국이나 일본도 전문적 상품 생산자가 등장한건 화폐 경제와 그렇게 상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자본주의 발흥에 관해서 피렌느의 상업주의 관점에서 볼 때, 결론적으로 화폐 경제는 상업의 종속 변수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화폐가 가장 유용하고 또 꼭 필요한 부분은 장거리 무역입니다. 미포들고 천리길, 만리길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유럽도 로마시대 발달했던 화폐 경제가 쇠퇴한게 통행이 자유로운 제국이 분열되고 이슬람의 발흥으로 중근동과의 장거리 무역이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로마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거대한 땅이자 세계이고, 중국에 통일 제국이 들어서면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상업 발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본도 중국과 류구, 나아가 동남아 지역과 지속적으로 무역을 행해왔고, 나중에는 유럽 국가들과도 무역을 하는데, 유럽인들이 일본에 와서 들고갈 것은 금, 은 정도 밖에 없으니... 화폐 경제가 발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반면에 우리나라는 성리학적 체제가 상업을 천시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요 거래국이 중국 한정이고, 그것도 상당 부분은 사대관계-무역이 차지한다는 정치적 조건, 북쪽 국경은 무역할 거리가 별로 없는 유목민족 밖에 살지 않는다는 지리적 조건, 반도 내에 통일 국가가 지속적으로 자리 잡아 사무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조건 등 상업이 발달하기에 안 좋은 조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니 화폐 사용도 굳이 할 필요가 없었구요.
펠릭스
13/04/15 00:29
수정 아이콘
근대화 이전 시기의 생산력은 거의 비슷 할 수 밖에 없는게 이게 내려가면 인구가 줄고 이게 늘면 인구가 늡니다.

앵거스의 연구 자체가 인구로 생산력을 산출한 것인듯한 늬앙스를 풍기는데 사실 전근대 시절 생산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국가들은 지중해 도시국가 정도입니다.

전 근대시대 화폐의 가치는 결국 귀금속의 가치였습니다. 이건 로마-동로마쪽 화폐를 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화폐가 보급되지 못한 이유는 복잡하게 생각 할 것 없이 금과 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면 일본은 한때 전세계 은의 1/3을 생산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럼에도 화폐의 기준은 쌀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서의 '세계화'에 동참하지 못한것이 화폐경제 발달의 장애였다고 생각합니다.



액면이 그 가치를 지니게 된건 아마 2차대전 이후일걸요. 그리고 그 액면을 현재도 유지해 주는건 미국의 힘이구요.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운데 종이쪼가리 14장이 쌀 한가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게 된건 20세기 중반의 일입니다.
고딩어참치
13/04/15 00:37
수정 아이콘
글 내용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긴 한데, 조선얘기만 나오면 궁금한것이 세종때를 위시한 조선초 잠깐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역사에 남을만한 전성기가 조선에 있었나 궁금합니다. 그 세종때도 다른 시대 한국 국가들의 대표적 전성기랑 비교하면 모자란듯 하고요. 가까운 시대라 안좋은 얘기만 듣고 살아서 생긴 선입견 일까요?

고구려때 영양왕부터 시작해서 수,당이랑 맞짱뜬 시기나, 거란 쓸어버리고 확실히 동북아에서 한 목소리 하던 고려 리즈시절이랑 비교하면 조선때는 맨날 털리는 얘기, 사상이나 이념얘기가 다인것 같아서 뭔가 스릴이없고 화딱지만 나고 그러네요. 아는게 적어서 그런거겠죠
DarkSide
13/04/1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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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조선 시대 이내에서 세종 재임 시기 이외 조선의 전성기를 꼽자면 영조 - 정조 시기가 있기는 합니다만 ...
아무래도 고조선, 삼국 ( 고구려 ) 시대나 남북국 시대, 고려 시대 같은 전성기와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딸려보이기는 합니다 ;;

조선 자체가 워낙에 성리학적 ( 유교적 ) 가치관을 중시하고 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국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고조선, 고구려나 고려, 발해 같은 동적인 이미지의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폐쇄성이 강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
눈시BBbr
13/04/1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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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조선 이전은 다 전성기인 건가요? =_=;
DarkSide
13/04/1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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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렇다는 건 아닌데, 상대적으로 이전 시기 국가들 전성기가 더 강력해보이더군요 ...
눈시BBbr
13/04/1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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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땠는지 알기도 어려운 고조선은 빼죠 =_=a
겉보기로만 보면 지금이 최전성기죠. 뭐 지금은 속으로 봐도 전성기인 거 같지만...
DarkSide
13/04/15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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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48년 개국 이후 현재의 한국이 한반도 역사 상 최전성기라는 부분은 동감합니다.

저는 근현대사는 자세히 배우지는 못해서
그 쪽 부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평가하기가 좀 그렇더군요 ;;

국사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배우고 당시 국사 선생님께서
근현대사 파트는 대충대충 설렁설렁 넘어가셔서
대학교 들어가서 한국사 교양 관련 강의 듣기 전까지는 자세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13/04/15 00:47
수정 아이콘
국가가 정적으로 보이는 건 그만큼 침략을 덜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조선 500년 역사상 전쟁이라고 꼽을 수 있는 기간은 임진왜란 7년(실제 전쟁기간 3년)에 병자호란 2달.
끝입니다.

그런데 조선에 이렇게 전쟁이 없었던 건 다른 한반도 국가보다 그냥 운이 좋아서였을까요?
루크레티아
13/04/1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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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운이 많이 따른 왕조죠.
조선은 중국의 분열기를 겪지 않은 유일한 통일 왕조니까요.(원-명-청은 분열기가 아니고 교체기니까요.) 우리나라가 큰 전쟁을 겪던 시기는 거의 대부분 중국이 조각조각 갈라진 왕조로 분열된 시기나, 분열된 중국을 통일한 왕조에 의해서 발생했죠. 통일된 중국의 거대한 힘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은 어찌 본다면 그러한 굴복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운이 좋은 왕조인 셈입니다.(물론 고구려나 고려처럼 뻗대지 않고 바로 굽히고 들어갔던 것은 훌륭한 판단이었습니다. 호란은 그걸 잘 몰라서 크게 당한 것이고요.)
13/04/1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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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대륙의 분열시기가 주변국들이 전쟁을 피할 방법은 더 많지 않나요?
명나라 때 명나라 주변국이 얼마나 많은 침략을 받았는데요.
조선은 그냥 지금으로 따지면 미국의 힘을 빌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한 전략을 그대로 쓴 겁니다.
한반도의 모든 전쟁은 북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명나라를 끼고 그 침략을 억제해버린 거죠.

그리고 그걸 현대의 우리는 굴복을 한 부끄러운 시대라 말하고 있고요.
루크레티아
13/04/15 01:08
수정 아이콘
분열시기는 말 그대로 중국 대륙 전체가 갈리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통일을 위한 무력을 크게 앞세우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여차하면 달려들어가는거죠. 고구려와 줄기차게 웬수지간으로 지냈던 위, 후연 등이 전부 분열 시대의 국가들입니다. 고려의 큰 전쟁인 거란, 여진, 몽고와의 전쟁은 모두 중국이 갈라졌던 시기에 일어났고요. 분열 시대에 외교로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 말은 쉽죠. 하지만 그 외교가 조금만 삐끗하면 바로 전쟁으로 직결되는 것도 분열 시기입니다. 어찌 본다면 호란도 그런 맥락이라고 끼워 맞출 수도 있고요. 하지만 통일 시기는 그냥 그 왕조에게 굽신거리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죠. 명나라가 외정을 많이 한 이유는 명나라에게 사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마지막 문장을 어찌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이 명에게 행한 것은 굴복은 굴복입니다. 다만 저는 그 굴복이 훌륭한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13/04/15 01:57
수정 아이콘
아.. 무슨 말씀 하시는지 이해했습니다.
DarkSide
13/04/15 00:58
수정 아이콘
중국과의 외교에서 고려나 이전 왕조와는 다르게
태조 이성계 시절부터 사대 정책으로 중국를 형 또는 임금 ( 정확히는 상국 ) 으로 받들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조선 왕조에서는 전쟁이 적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어긴 적이 딱 두 번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정묘호란 (1627) 과 병자호란 (1636) 이었죠.

조선 개국 초기에 상국으로 받들었던 한족 중심의 중국 본토 출신의 명나라와는 다르게
기존 태생이 이민족이었던 여진족 중심의 후금과 청에게는 상국의 예를 선조나 인조가 행하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후금과 청에 대해서 기존 중국 외교에서 행하던 상국의 예를 다하지 않고 적대시하다가 후금, 청과 2차례 전쟁 치뤄서
결국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에게 굴복함으로서 적어도 중국과 만주 북쪽 진영과의 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편입니다.
눈시BBbr
13/04/1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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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는 고조선부터 다 했습니다
DarkSide
13/04/15 01:02
수정 아이콘
물론 중국과의 교류에서 고조선 시절부터 한반도가 중국 클럽에 가입하는 형태로
중국 진영이 갑, 한반도 진영이 을 정도 형태였던 건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시대 들어서는 중국과의 외교에서 더욱 자신들의 입지를 스스로 낮추고

(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예전에는 중국과의 외교에서 중국이 형, 한반도 진영이 아우 (동생) 정도의 관계였다면,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중국이 왕, 자신이 신하 정도의 관계로 더욱 종속적인 형태로 전환했다고 해야 할까요 )

이민족의 침입 역시 이전 왕조보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조선 시대 이전의 왕조보다 조선이 더욱 전쟁의 참화로부터 자유로웠다고 보는 편입니다.
13/04/15 01:13
수정 아이콘
그 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 사이에 평등하다는 개념은 굉장히 현대적인 개념이에요.
개개인에게 군신관계가 있듯, 전근대 동아시아 모든 역사에선 국가 사이에도 그런 관계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군신관계는 백제고 고려고 다 똑같았어요. 그래도 조선은 병자호란을 겪든 뭐든 왕이 묘호라도 계속 사용했죠.
백제는 중국으로부터 왕이 왕도 아닌 신하로 불리기도 했고 고려는 후기 6명의 왕은 묘호도 없이
중국에서 내려준 아예 왕이 忠자돌림 시호를 붙여야했죠.
DarkSide
13/04/15 01:18
수정 아이콘
삼국 시대의 경우 백제나 신라는 확실히 중국에게 순종적인 면이 강하고
실제로도 중국과의 관계도 엄청 우호적인건 맞습니다. 그 부분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고조선, 고구려나 발해의 케이스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고 봅니다.

고려 같은 경우도 그 충선왕, 충렬왕 같은 칭호를 사용하기 전에는
몽고 ( 원나라 ) 와 거의 몇십년에 가까운 전쟁을 치룬 뒤에 굴복한 케이스라서
( 그 이전 시기였던 거란, 여진과의 전쟁에서는
아예 그들을 함경도 지방에서 몰아내고 강동 6주를 차지하고 동북 9성을 축조하기도 했고 )
처음부터 알아서 종속적으로 들어간 조선과는 케이스가 조금 다르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선은 그래도 광해군 시절 중립 외교 정책으로 후금과 명과 3각 관계를 아예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인조 재임 시절에는 정묘호란, 병자호란 2번의 전쟁으로 인해서 바로 얼마 가지 못하고 굴복하고,
효종의 북벌 정책도 결국 본인이 북벌을 실행하기 전에 병사함으로서 무위로 돌아갔고 ...

조선은 좋게 말하면 눈치가 빠르고 실리를 취하는 외교를 할 줄 알았다고 생각하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빨리 알아서 기어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사대 정책이 조선 시대 이전부터 계속 행해져왔던 건 일리가 있고 맞는 말인데,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등등 각자 유형 별로 차이는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요컨데, 정도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굴복이라면 굴복은 맞습니다.
다만 중국 진영에 대한 저항을 얼마나 하고 어느 정도 길게 했느냐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시BBbr
13/04/15 01:22
수정 아이콘
전쟁하면서 항복하겠다고 하면서 시간 끈 고구려가 사대라는 면에서 다른 게 뭔가 의문이고 고려의 대몽항쟁은 시작부터 항복하고 들어갔습니다
달라봐야 얼마나 다릅니까
정도의 차이를 그냥 기간으로 보면 안 되죠. 그 속을 봐야죠.
13/04/15 01:26
수정 아이콘
그래서 그렇게 전쟁하면 무엇이 좋은 건가요?
고구려는 그렇게 어설프게 중국과 적대관계를 만들다 신라같은 진짜 찌끄레기였던 국가에게 통일을 뺏겨버리며 망했고,
발해는.. 뭐 기록도 제대로 없어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는데다 결과만 보면 요나라에게 망해버렸죠.
고려의 경우엔 전란으로 수십년간 국가가 개판이되고 조정대신들은 강화도로 숨어 아무것도 안 하고 팔만대장경이나 만들고 있고요.

지금하시는 말은 지금 왜 대한민국 정부보고 중국이나 미국과 대항하여 전쟁 한 번 안일으키냐.
하는 말과 크게 다를바가 없습니다.
DarkSide
13/04/15 01:27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중국도 한반도 자체를 자국화나 식민지화 시키기 보다는
중국 클럽에 포함된 속국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전공이 역사학도인 눈시BBbr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제가 틀렸을 수도 있기는 한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반도 전체의 역사를
한 번에 사대 정책과 군신 관계가 동일하고 똑같다고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13/04/15 01:29
수정 아이콘
일단 전 역사학도 아닙니다. 경영학도입니다.

조선을 왜 속국으로 봤다는 건지 전 모르겠어요.
원나라식으로 머리 깍아 변발하고 옷부터 풍습까지 다 바꾼 고려는 속국 맞겠지만요.
DarkSide
13/04/15 01:30
수정 아이콘
물론 고구려나 발해, 고려가 외교를 잘했고 자주적이고 강력했고
백제나 신라나 조선이 못했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한민족이 잘나봤자 얼마나 잘났겠으며,
반도 국가가 대륙 국가에게 저항해봤자
국력의 차이가 뻔하고 본질적인 힘의 차이가 극명한데
저항하면 남는 것은 폐허 뿐이라는 사실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정론이고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부분은,
과거의 역사를 전부 사대 정책이나 군신 관계로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고조선은 고조선, 고구려는 고구려, 백제는 백제, 고려는 고려, 조선은 조선
이렇게 따로 따로 분류해서 봐야지 전부 동일한 경우로 보는 건
과거의 역사를 일원화시키는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서요.

이건 개인적인 가치관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것이든지 다양성을 추구하는 타입이라서
한 객체나 대상을 보고 관찰 할 때 마다 따로 따로 보는 습관이 강한 편입니다.
눈시BBbr
13/04/15 01:33
수정 아이콘
다르기야 다르죠. 그때의 국력과 목표, 동아시아의 상황에 따라서요. 그런데 그런 상황 고려 안하시구 그냥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요?
위의 고조선부터 기록 없어서 힘든 발해, 사대랑 뭔 관련인지 모를 동북 9성 얘기만 봐도요
DarkSide
13/04/15 01:35
수정 아이콘
상황 자체를 고려 안 한 부분은 제 실책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한해서는 사과 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역사학도 앞에서 역사 주제를 테마로 논쟁하니까 정말 어렵고 힘드네요 ;;
13/04/15 01:38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하신 말씀과 다르신대요.
님이 먼저 조선을 그 이전 국가와 한대 묶어 조선이 그 전의 국가 전성기에 비해 딸려 보인다고 하셨잖아요.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그렇다는 말도 없이 그냥 조선은 그 전보다 별로인 거 같다...이건 일원화 아닌겁니까?
DarkSide
13/04/15 01:39
수정 아이콘
조선이 그 전보다 무조건 별로라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전성기 기준" 으로 비교했을 때 "상대적" 으로 별로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 조선의 전성기들이 이전 전성기에 비해서 강력해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제 주장의 요지였습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조선 500년 왕조 전체의 평가나 그 이전 국가의 전체적인 평가는 또 다를 수 있겠죠. )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조선이라는 국가 자체보다는
유교나 성리학을 더 별로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조선 최고의 전성기였던 세종 시기만 하더라도
근현대사 파트를 제외하고 따지면
역대 한반도 전성기 중에서 단연 탑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시BBbr
13/04/15 01:39
수정 아이콘
그런 것들을 같이 보든 따로 보든 가치관이 어떠하든 이런 얘기할 때 필요한 건 그 부분에 대한 지식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위 댓글에서 지적한 거나 대몽항쟁 얘기가 사대 부분에서 나온 거나... 일단 그 나라들이 사대를 어찌 했는지부터 보셨으면 합니다. 그것을 사대라는 점에서 조선과 비교하기 전에요
DarkSide
13/04/15 01:41
수정 아이콘
대몽 항쟁 파트나 사대 부분은 도서관에 가서 다시 사료를 찾아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대부분 군대 가기 전에 배운 부분이라서 기억이 날 듯 말 듯 해서 정확한 자료의 출처를 표기하기가 애매하네요 ...

아무래도 역사 관련해서는 제가 가방끈이 그렇게 긴 편은 아니라서 자세히는 알지는 못하겠습니다.
13/04/15 01:44
수정 아이콘
정말 대몽항쟁 부분이라도 좀 보시길 바랍니다.
눈시님이 pgr에 글 잘 정리해놓으신 것 있어요.

역사를 제발 상상력으로 해석해 판단하고 결론짓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DarkSide
13/04/15 01:4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인터넷 글을 찾기보다는
도서관에서 사료나 정보, 자료를 직접 찾아서 읽고
그것을 프린트로 복사, 인쇄하거나 공책에 쓰는 것을 더 즐겨하는 타입이라서 ...

그리고 상상력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역사 같은 과거의 사실을 논쟁할 때는 제가 확실히 과거에 학교에서 배웠던 부분을 위주로 말합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판단과 결론 자체는 제가 주관적으로 내린 것은 인정합니다.

( 더불어 조선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이 있는 부분도 인정합니다.
정확히는 성리학과 유교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

물론 군대 가기 전에 배운 부분이라서 기억력이 가물 가물한 것은 맞습니다만,
분명히 중학교,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웠었고, 대학교 교양 강의 시간에도 배운 기억은 납니다.
나이트해머
13/04/15 01:56
수정 아이콘
고려사, 고려사절요는 인터넷 상에 게제되어 있습니다. 그걸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DarkSide
13/04/15 01:57
수정 아이콘
일단 찾아보고 읽은 다음에 답변드리겠습니다 .....

인터넷에서 자료나 정보를 찾고 읽는 방법은 출판물이나 책을 인용하거나 출처를 표기하는 것과는 다르게
개인적인 성향과는 별로 잘 맞지는 않아서 딱히 선호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 일단 눈이 엄청 피로해져서 -_- ;;

P.S. 고려사, 고려사절요는 제가 도서관에 가서 검색해보고 책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13/04/15 04:59
수정 아이콘
국사 교과서에서야 고려, 고구려나 발해가 중국에 자주적이었다고 서술하지, 면면을 들여다 보면 사대주의라고 까이는 신라와 비교해서 크게 다르다고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수당 통일 이전까지 고구려는 중국의 여러 왕조들과 손을 잡기도 하고, 뒷통수를 치기도 하는 외교적 전략을 자주 사용한 편이고(그 전에 수도가 침략당해서 복속한 적도 있고), 고려의 자주적 외교라는것도 따지고 보면 통수죠. 굴복하고 신하로써 섬기겠다고 해놓고 일단 물러가면 말을 바꾸는 케이스라..

동북아시아의 역사에서 중국 중심의 외교관계라는건 대부분의 국가들이 겪어야 했던 것이고 조선-고려-고구려-백제-신라-고구려 역시 그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13/04/15 00:43
수정 아이콘
전 한반도 전성기가 조선 초중기와 현재라 생각하는데요-_-;;;
13/04/15 00:46
수정 아이콘
조선자체가 전성기죠
13/04/15 00:50
수정 아이콘
전 그렇게 생각하지만.. 무분별한 조선빠 소리 들을까봐 그냥 근대화 전시기인 초중기로만 하겠습니다.
고딩어참치
13/04/15 00:54
수정 아이콘
저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 초중기 같은 경우는 확실히 많이 아시는 분들은 높이 평가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관심만 많고 아는게 없어서 그런지 잘와닿지 않는거 같아요..

시대가 지났으니 발전은 대단한게 아니라 당연한듯 생각하면서 계속 안좋은 면만 보아와서 그런것 같습니다.^^;
몽키.D.루피
13/04/15 02:50
수정 아이콘
대한민국만 한정 지으면 한반도 역사상 가장 전성기 국가가 맞겠지만 현재 한반도라고 하면 북한 포함이니까 좀 애매하네요. 한반도 역사상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국가 순위를 따지면 현재 북한이 단연 1위겠지만요..
루크레티아
13/04/15 00:49
수정 아이콘
애초에 조선이 들어선 시기는 중국의 거대 왕조인 명나라가 한참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이었죠.
결국엔 조선의 리즈시절인 태종~세종시기는 명나라의 최전성기인 영락~홍희 시절이었습니다.(물론 세종 중~말기에는 막장인 영종 시절도 있지만, 해놓은 구석이 있던 터라 황제는 바보라도 명나라의 국력은 강했죠.) 그래서 어디 하나 치고 나갈 구석도, 싸움을 걸 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기껏 해야 일본인데, 일본 쳐서 나올게 당시에 있어보이질 않았죠. 고구려, 고려의 리즈시절은 중국이 분열된 상태에서 고구려와 고려가 무게추 역할을 잘 할 수 있었기에 영토도 넓히고 싸움도 하면서 큰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장 고구려도 결국엔 통일된 당제국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졌고, 고려도 원제국의 속국이나 다름 없는 신세가 되었죠.
밀가리
13/04/15 03:16
수정 아이콘
현재 대한민국이 전세계 10~20위 사이 안에드는 나름 강대국인데,
우리나라 역사상 전세게 20위 권 안에 들 정도로 경제,문화,군사적으로 강력했던 시기가 있었나 싶네요.
13/04/15 04:27
수정 아이콘
근대이전에는 나라자체가 별로 없어서 나라만 존재한다면 꽤 높은 순위에 있을걸요(미국도 없고 독일도 없고...)
특히 근대 이전에는 서양보다 동양이 더 잘살었고요. (16세기 이전에 영국, 프랑스같은 서양국가들이 조선보다 강했을까요?)
통일신라부터 조선초기까지 다 20위안에 들겁니다.
13/04/15 13:52
수정 아이콘
엥. 근대이전에 왜 나라자체가 별로 없나요? 독일은 없었지만 그 위치에 신성로마제국이 있는등, 유럽땅엔 주인이 있었구,
아메리카야 아즈텍, 잉카 이런 나라들 밖엔 없었지만, 아시아쪽에 이슬람 국가와 유목민족국가가 강했었죠. 게다가 딴 나라는 쌈닭같은 국가가 많았지만,
우리나라는 변두리에 있고 중원과의 관계에서 이민족에게 수비만 하면 그만인지라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때쯤에도 전투력만 보면 하위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경제 문화야 중국영향이 커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근대이전에도 동양이 그렇게까지 잘살진 않았어요. 명나라 정도라면 모를까?
힘으로 따지면 유목민족이 상당했었구요.
16세기 이전에도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칼같은 서양국가들이 조선보다는 강했겠죠.
16세기말 우리나라가 임진왜란때 일본에게 떡실신되었던게 일본이 서양국가랑 먼저 교역해서 총이란 무기가 발달한 점도 한몫했는데요.
애초에 일본의 전국시대에서 노부나가가 승승장구했던게, 신무기에 적합한 전술등을 잘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들은거 같습니다.
루크레티아
13/04/15 15:13
수정 아이콘
근대 이전에 동양이 잘 살지 않았다니요?
뭔가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계시는 것 같은데, 로마 멸망 이후에 세계 역사의 큰 축은 엄연히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와 이슬람 발원 이후의 서아시아입니다. 유럽은 그냥 깡촌에 불과했죠. 오히려 근대 이전이 유럽과 아시아의 차이가 더 어마어마하게 컸습니다.
13/04/15 15:39
수정 아이콘
대략 중국과 이슬람이 유럽보다 앞서있는건 맞을거에요. 중국같은 경우 청나라 어느시점까지는
앞서 있었을거 같구요.

근데 이건 중국의 기준으로 하는 얘기이지, 우리나라는 중국보다도 많이 뒤쳐져 있었죠. 여기서 언급한
인구, 생산력등을 고려하면 상대도 안되었구요.

한편 개인적으로 유럽 근대문명의 토양은 14세기 북이탈리아부터가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이것의 흐름이 뻗어나가서
최종적으로 끝에서 만나는 지점 중에 한곳이 우리나라겠구요.
13/04/1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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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하나의 나라가 아니죠. 이슬람은 오스만제국(그 이전의 옴니아드 아바스왕조)을
제외하고는 그 주의나라들은 그런저런 나라들 밖에 되지않습니다. 그나마 있는 나라들은 거의 단명하고요. 지속적으로 연결된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발견한해가 1492년이고 희망봉은 1488년입니다.
즉 16세기 다되서 신항로가 개척되었죠 그 이전의 중세유럽은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스패인, 포루투칼 이슬람에서 독립한 힘이 있었고 이슬람영향을 받아서 과학과 항해술 발달하였지만
그 당시 프랑스, 영국은 중세에서 갓 벋어난 깡촌입니다. 프랑스, 영국은 16세기 중반들어와야 절대왕정이 확립되고 대항해시대로 들어오지
16세기 이전에는 조선에 비해모든것이 후진적이였죠
무식론자
16/01/2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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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이후 유럽은 세계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그리 꿀리는 지역이 아닌데요...그 이전이 지옥이라니;;
13/04/1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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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부터 조선 초기까지 10위 안에 쭉 들겁니다.

소위 말하는 '제국' 이라는 국가들 제외하고
한반도 국가들처럼 군주제가 제대로 갖춰져서
10만 가까운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한 시대에 제국이 많아봤자 3~4개고요.
13/04/1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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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도 산업혁명 전까지는 거의 인구=국력 이었습니다.

7세기 통일 신라인구가 4-5백만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 당시 중국의 인구는 6천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인구가 당시 6천만, 세계 인구는 2억 5천만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은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700년대까지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합니다.

1700년대 청나라 시대에 중국이 세계 전체 GDP의 38%-45%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지금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22%-26%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비록 국제화는 안되었지만, 당시 중국경제의 세계 경제에 대한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쨋든, 세계인구 2억 5천만중에 5백만이면, 세계인구의 2%정도가 우리나라에 있었네요. 지금으로 환산하면, 60억중에 2%는 1억 2천만.

지금 일본이 1억 2천 7백만으로 인구로 세계 10위입니다.

인구= 국력 이란 기준으로 보면, 당시 통일 신라는 세계 10위의 나라였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보다 농업생산성을 기반으로 한 경제가 발달되어 있었고, 세계 최고수준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세계 7-8위권 국가였다, 이렇게 보는게 맞을 겁니다)

불행하게 압도적인 세계 최강대국인 중국이 옆에 있어서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중국과 싸워 이기지 않았습니까?

기벌포 등에서 말입니다. 또 고구려는 세계 최강대국인 중국 100만 대군을 두번이나 막아낸 국력으로 볼때, 역시 만만찮은 인구와 국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조상의 실력에 상당히 못미치는, 불초 후손인 겁니다.
13/04/1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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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도 산업혁명 전까지는 거의 인구=국력 이었습니다. '

라는 가정을 세우기 앞서서,

그러면 어떻게 인구가 적은 몽골이 중국을지배하고 전세계를 벌벌떨게 만들었을까요?
또한 소수인 여진족이 어떻게 한족을 지배했을까요?

산업혁명 이전에도, 당연히 전쟁에선 기술과 앞선 전략이 중요했습니다. 그게 17세기 이후 차이가 커지면서 더 두드러졌을 뿐이죠

대략 15세기 이전에는 기마술을 잘 활용한 유목민족이 강세였구, 그 이후엔 화약무기를 잘 활용하는 중앙집권 국가가 우세로 보이는 흐름이 있는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점점 무기기술, 금융신용시스템과 군대체계 및 전략전술이 미칠듯이 전쟁하면서 발전하는 유럽을 못따라갔구요.

경제는 전체 GDP야 당연히 인구가 많은 쪽이 유리하겠지만, 전쟁은 꼭 그러지 않았었죠.
그리고 당시엔 총력전을 할수 있는 시대가 아닌지라, 경제력이 군사력에 연결되는 시대가 아니구요.

우리나라는 당시엔 구석진 곳에 있는 국가였기땜에 주로 중국에 사대하면서, 이민족이 설칠때 방어를 해서 그렇지, 정작 전쟁에서는 그리 강한편은 아니었던걸로..

게다가 타국가와의 교류가 거의 중국에 한정된 상태로 중국과는 거진 사대관계를 맺어왔으면서, 중국과의 수비전 몇번 이겼다는 사실에 당시 통일신라 인구 운운하면서, 우리나라는 옛날은 인구가 많았으니 강했다고 주장하시는게 논리적 비약이 너무 크죠. 문화라는것도 중국의 몇백년전 문화를 따오는 식에 가까웠구요.

차라리 인구에 비해 경제력, 군사력등 국력이 강한 지금이 낫죠..
13/04/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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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은 여진족 잘 때려잡았습니다.
세조 때도 여진 정벌했고 그 욕먹는 선조 땐 명나라에게도 골치거리였던 니탕개도 진압했습니다.
성종 때도 여진족 정벌하러 갔었죠. 그냥 안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성종대 이후 정벌에 소요되는 물자가 너무 심하고, 상대가 유목민족이다보니 정벌하러 가면 도망쳐 숨어버리니
허탕을 치고 돌아와 그 다음부턴 정벌보단 회유가 효과적이라 판단해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선조 대 가서 다시 정벌로 돌아선 거고요.
13/04/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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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여진이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요?

조선시대 후금 VS 조선은 볼것도 없이
고려시대때 금나라VS 고려 진짜 맞짱뜨면 누가 이길까요?

우리나라야 수비전위주로 해서 그렇지 국력자체는?

저는 여기 댓글을 보면서 은근 소중화적인 분위기가 보이는거 같아 놀랐네요.

sungsik님 글은 잘읽었습니다.
13/04/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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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후금 vs 조선, 금나라 vs 고려가 왜 나오는 지 모르겠네요.
이민족이 설칠 때 구석에 처박혀 방어를 했다길래 정벌을 한 예시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리고 자꾸 후금이나 몽골의 예시를 드시는데,
북한도 군사력에 한에선 세계에서 순위권에 드는 국가입니다.
국가 생산력을 얼마나 어디까지 군사력에 투자하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몽골이나 후금은 거기에 올인한 거죠. 그렇게 올인해도 결국 한계가 있고 장기적인 시스템이 될 수 없기에
몽골도 원으로, 후금도 청으로 대륙에 정착해 그 이전의 국가와 똑같은 시스템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외는 분명 있지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구와 생산력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보급력정도겠죠. 전근대에 기술력이나 전략은 그 후순위입니다.
예외가 있다고 이걸 무시하는 건 미국이 베트남에 패전했다고 경제력이 국방력에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고 봅니다.
13/04/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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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나오나요? 지금은 전세계적인 외교관계가 중요하고, 북한은 고립을 당한지라, 올인을 해서 군사력이 쎈들 어디 하나 칠수 없는 상태인대요.

반면 몽골이나 후금은 올인을 해서 인구와 생산력이 앞선 나라를 명백히 무너뜨렸습니다 . 이는 이때뿐만 아닙니다.
위진남북조에서 진나라가 유목민족에게 밀려서 동진으로 가게 된게 인구와 생산력이 뒤졌기 때문일까요?
중국에서는 흔히있는 패턴이죠. 물론 남북조시대에 있어 남조가 북조에게 내내 밀린건 인구와 생산력의 영향이 크긴합니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로봐도 대표적으로 스파르타가 그리스를 잠시 재패한거나, 마케도니아가 페르시아를 정벌한것도 마찬가지이죠. 소수의 집약적 민족이 다수를 석권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시스템을 받아들인건 그 이후의 얘기일뿐이죠.. 님 말대로 장기적 통치를 위한..

한편 미국이 베트남에게 패한거는 다른 얘기이죠. 서로 죽인 인구수만 따지면 미국이 압승을 했죠.
문제는 베트남 국민들이 호치민 체제를 더 따르고, 중국의 보급에 의해 미국이 원하는 목표를 전쟁으로 달성할수가 없었다는거죠.
즉 미국이 명분이 딸려서 정치적으로 완패한거죠. 북한 예시도 그렇고 이걸 중세사에 갖다대는건 아닌거 같습니다..
13/04/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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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과 정주민을 같은 체제로 놓고 보면 안됩니다.
13/04/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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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라시아 넓은곳에 있어서 유목민족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구
이들이 강한 영향력을 미쳤음에도 당시 세력을 보는데 있어서 정주민만 따로 두고 볼 이유도 없습니다.
13/04/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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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을 전투력과 동치시켜서 바라보시지 않습니까.

유목민은 체제 자체가 병영국가에 가깝습니다. 일상 생활=전투죠. 인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병력으로 따지면 유목민이 정주민보다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국력은 전투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의 발전으로 식량생산을 크게 늘리기 전까지 인구의 부양능력만큼 국력을 좌지우지한 요소는 없죠.
13/04/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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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정도 확립한 국제법이 있고, 함부로 침략전 전쟁을 벌이기 힘든 현재라면 모를까?

침략과 정복전쟁이 일상사였던 중세시대를 따짐에 있어서 국력을 따짐에 있어서 전투력을 무시할수는 없죠.

송나라가 인구부양능력에 좋았다한들.. 송나라를 금나라나 몽골보다 국력이 앞섰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13/04/1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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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의 국력은 충분히 금보다 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유목민 시절 몽골보다도 한참 위입니다.

남송을 돈으로 평화를 사는 허접한 국가로 취급하시는데, 군사력으로 따져도 한 때 금의 화북을 위협하고 몽골의 침략을 몇 번이나 격퇴해낸 상당히 뛰어난 수준입니다.

전투력=국력이면 유목민체제인 병영국가야말로 전근대에서 가장 뛰어난 국가체제가 되겠군요. 그런데 왜 매번 유목민 왕조가 결국 정주민 체제를 받아들이고 멸망해갔을까... 참 미스테리합니다.
13/04/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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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금에게 밀려서 중원을 내줘고, 몽골에게 망했죠..

유목민시절 몽골과 비교는 크게 의미가없는게, 결국 전투력이 약하니 인구와 생산력도 먹히면서
밀렸으니까요.

상대에게 밀리고, 망하고 나서 상대보다 국력은 위였다 라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13/04/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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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에게 화북을 내준 이후 다시 탈환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세계제국 원을 상대로 송만큼 오래 수성에 성공한 국가도 없고요. 이런 국가가 국력이 허접하다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설마 남송이 원에 정신 못 차리고 털리기만 했다는 인터넷상의 정보만 알고 계신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중국 통일왕조치고 유목민에게 안 털린 국가 없고, 중국 역사 자체가 주변 이민족 국가의 침략과 쇠퇴의 역사인데 이민족에 털렸다고 국력이 허접하면 중국의 역대 왕조는 죄다 국력이 이민족보다 아래가 되는군요.

그 논리면 저기 북쪽동네 선군정치도 국력 신장의 최선책이 될겁니다.
13/04/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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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송나라가 타국가에 비해 몽골에게 오래 수성했으니 타국가에 비해 국력이 허접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왜 나오나요?.

제가 꺼내지도 않은 얘기를 제가 한것처럼 말씀하신다음 인터넷정보 운운하시는건 합당한 식으로 반박이 불가능해서 그러신건가요?

제 애초의 질문은 '송나라가 인구부양능력에 좋았다한들.. 송나라를 금나라나 몽골보다 국력이 앞섰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라는 걸로써 금이나 몽골과 송의 비교이지.. 송나라가 전세계적으로 어느정도 수준이냐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얘기를 꺼낸것은 고대나 중세시대에 있어서 전투력이 국력의 중요한 척도라는 걸 얘기인거죠.

또한 중국 역사가 이민족에게 털리고 격퇴한 역사는 맞지만, 단순히 약간 털린정도가 아니라, 완전 정권이 밀리거나 뒤집힌 정도면 국력이 뒤쳐지거나 그 직전에 간게 맞죠. 당장은 전투력에서만 딸리겠지만 결국 화북지역을 이민족이 먹으면서 전체적으로 밀리게 되어서 결국 회복을 못했구요.

북한 얘기는 앞서 이미 반박했습니다. 현재 국제사회는 예전과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은 침략전쟁자체가 무리수라 기술과 신용을 바탕으로 교역관계에서 우위를 잡으려고 하는게 맞죠. 물론 그럼에도 군사력의 중요성이 있으니 북한은 무리해서 선군정치를 피는거겠죠?
나이트해머
13/04/1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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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의 기준을 군사력만으로 잡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모르겠군요. 전투력이 국력의 중요한 척도이다? 거기다 그 기준을 주관적으로 잡네요? 그런건 혼자만의 생각이죠. 북한 비유가 딱 맞습니다. 님의 생각에 대해서는.

송나라는 금나라를 국력에서 앞선게 맞는데요. 금 후반기쯤 가면 남송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다시피 합니다. 송나라가 옛다 하고 던져주는 푼돈 없으면 국가가 운영이 안될 정도로 경제력 차가 벌어진 상황이라. 화북지대의 경제력이 강남에 결정적으로 밀리게 된 때가 바로 금-남송 시기입니다. 그나마 소요순이라는 말까지 들은 금세종 시기의 위업이 남아있어서 화북지대에 버티고 있었을 뿐. 몽골? 남송을 공격할때의 몽골은 중앙아시아와 북중국의 여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세번을 공격해 간신히 멸망시켰습니다.
13/04/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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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고 싶은 말을 나이트헤머님이 다 해주셨네요.

좀 깊이 알아보면 남송의 국력이 금이나 몽골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는건 알 수 있습니다. 그걸 전투력 하나로 국력차이 난다고 이야기하시는 burma님의 판단이 성급한거죠.
13/04/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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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고, 망하고 나서는
밀리고 망한다음 다시는 회복하지 못한쪽이 국력이 더 강했다라...

그다지 동의못할 국력 측정법인거 같습니다.
이거야 말로 기준이 주관적이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북한은 지금 경제체제로는 암만 무기 키워봤자 전면전 벌이면 남는건 떡실신인데
애초에 틀려먹은 비유이구요.
13/04/1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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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전투력이라고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더 공감을 받기 어려운 측정법인 것 같네요.

그 전투력이라는 것도 아주 주관적인 판단으로 측정하고 계시고요.

말씀하신대로 측정법이면 금말기 남송은 몽골과 손잡고바고 금을 멸망시켰는데 그럼 남송>>>금이 되는건가요?
13/04/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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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l님은 걍 나라 잃은다음. '전투력에서 밀린것일뿐이지 그래도 국력은 우리가 앞섰다. '이러실건가요?

이것은 아큐식의 정신승리가 아니면 뭘까요?

그리고 저는 국력=전투력이라고 하는게 아니라, 전투력이 국력에 있어서의 비중이 예전에는 더욱 컸다라고 말씀드린겁니다.
전투력자체가 그 세력의 체제나 인구, 경제력, 기술 등 국력의 많은 부분들이 합산해서 나오고요.


+댓글에 첨가하신게 있어서, 거기에 답변을 달면, 굳이 양보를 해도 송과 금간의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력관계에 변화가 있는거죠.

그리고 막판 몽골과 연합해서 승리했는데, 뭔 남송>금 을 운운하시나요? 남송+몽골>금 이라면 모를까요?
기본적인 인과관계 파악이 안되시는지요?
나이트해머
13/04/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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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훨씬 컸다는 근거는 없어요. 전투력 자체가 국력의 많은 부분들을 합산해서 나온다는 건 근대에서나 맞아떨어지는 주장입니다. 국력을 효율적으로 군사력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구비된 시대에, 말이죠.

실제로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력에 비해 군사력이 약한 사례도 흘러 넘치고 반대로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국력에 비해 군사력이 강한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님의 상상처럼 군사력과 국력이 동일한 수준으로 올라온 국가는 별로 없어요. 이걸 무시해 놓고는 남에게 아큐식 정신승리를 운운하다면, 그런 발언은 님 스스로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냥 무턱대고 군사력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님의 주장은 북한이 군사력 높으니까 훌륭하다는 주장밖엔 안됩니다.
13/04/1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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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남송에서 주는 돈 없이 국가가 유지조차 안 되던 금이 남송보다 국력이 위라고 하시니 하는 소립니다. 금말기정도 가면 남송 단독으로 화북회복을 하니마니 하는 수준까지 가기도 했거든요.

['1700년도 산업혁명 전까지는 거의 인구=국력 이었습니다. '

라는 가정을 세우기 앞서서,

그러면 어떻게 인구가 적은 몽골이 중국을지배하고 전세계를 벌벌떨게 만들었을까요?
또한 소수인 여진족이 어떻게 한족을 지배했을까요?

산업혁명 이전에도, 당연히 전쟁에선 기술과 앞선 전략이 중요했습니다. 그게 17세기 이후 차이가 커지면서 더 두드러졌을 뿐이죠 ]


전근대에서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경제력이라는건 전투력보다 국력을 측정하는 척도로서 더 유의미한 기준입니다.

그걸 군사국가 체제인 이민족과 정주민을 전투력만으로 비교하면서 전투력이 거진 국력이라고 이야기하셔놓고 저이제는 또 전투력이 국력에 있어서 비중이 크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시면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송의 국가 체제 자체가 이전 당의 절도사의 난립과 그로인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군인 금군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체제로 바뀐 결과 당에 비해 VS이민족 능력이 다소 부족했을 뿐 국가의 정치체제, 경제력, 기술력을 비롯한 포괄적인 측면에서 송이 약하다고 볼만한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13/04/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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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이야 그렇다 칩시다.

근데 북송시절은 금에게 밀려서 주요지방 다 내주고는 국력은 앞섰다 운운할건가요?
몽골에게 남송이 완전히 멸망했는데도, 국력은 남송이 앞선것이다 하실건지요..

지금은 단순 전투력보다는 경제력과 외교쪽이 체제보장에 있어서의 비중이 컸을지 모르지만,
예전엔 순수 전쟁에서의 우위로 자신의 왕조와 체제를 지켜야 했습니다.

암만 인구가 많고 생산력이 좋아도 전쟁에서 지니 왕조가 망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구요.
그리고 그 많은 인구와 생산력은 이긴쪽의 몫이 되었죠.
그렇게 망하는 나라에게 국력의 우세를 운운할수는 없는거죠.
나이트해머
13/04/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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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승패가 언제부터 국력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습니까. 님 혼자만의 학설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인정받기 힘든. 페르시아가 마케도니아에게 망했다고 마케도니아보다 국력이 딸린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4차 십자군에게 국가가 일시적으로 망했다고 해서 동로마 제국이 4차 십자군보다 '국력' 에서 밀린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도 들어본 적 없고.

군사력, 전쟁의 승패가 국력을 나타낸다는 님 혼자만의 주장은 실로 괴이할 따름이군요.
13/04/15 18:12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

총력전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차원이 아닙니다.

체제나 왕조 유지차원을 말씀드린거죠. 지금은 경제력이나 외교가 중요한 측면이지만
예전엔 지배세력이 전투력면에서 지방세력이나 국외세력에게 밀리면, 그걸로 끝장입니다.

예전에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동의를 받는 정부라는 개념은 없었고 대다수가 힘으로 뺏고 뺏기는
그런관계인대, 여기서 국력을 논하면서 전투력을 배제하면 어찌한답니까?


한편 북한의 군사력이 훌륭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리 강한지요?

게임사이트이니 스타로 따지면 북한은 확장도 안먹으면서 병력만 뽑다보니 병력도 그저 그렇게 된 케이스아닌가요?
물론 테크는 열심히 타서 전술핵이 무섭긴 하지만, 이건 피해가 우려스러운것일 뿐이죠.
13/04/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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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랏..나이트메어님은 결국,

고대시대에 살경우, 자기 나라가 1:1로 운명을 걸고 싸운 전쟁에서 져서 쫄딱 망하고
상대의 정복체제하에 들어갔음에도

'인구가 많고 생산력이 앞섰으니 국력은 우리가 앞섰어.' 라고 말씀하시겠군요

도대체 이런 현실과 유리된 국력 개념이 뭔 소용이 있나 싶군요.
13/04/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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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북송-남송 합쳐서 300년을 유지한 왕조입니다. 전근대 국가에서 300년 왕조를 유지한 나라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체제나 왕조 유지라는 측면에서 할만큼 했는데요.

전투민족으로 구성된 몽골이 이룩한 원은 전투력이 뛰어남에도 100년도 못 갔습니다.

전투력이라는게 정말 엄청나게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군요.(그나마 남송은 몽골의 모든것을 동원한 최후의 한방에 무너지기라도 했지 원은 내부에서 흥기한 반군 세력을 진압 못 해서 무너졌는데..)
13/04/1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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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l님 왕조의 수명은 논점일탈입니다.

수나라는 37년밖에 못가서 내부 반란에 멸망했으니, 수가 멸망시킨 나라들보다 국력이 약했던 걸까요?
또한 고려는 400년가까이 왕조를 유지했으니 중원쪽 국가보다 우위?
심지어 조선도 청나라보다 수명이 길었죠.

그리고 원나라는 명나라에게 밀려난다음에도 중원에서 밀려난거지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북원이란 이름으로 왕조를 유지하고 있었고 명나라에게 어느정도 위협을 했을겁니다.
물론 결국 청나라때 떡실신당하고 병합당했죠
13/04/15 18:33
수정 아이콘
체제 유지차원에서 말씀하셨는데 왕조 수명=체제유지 아닙니까?

전투력이 국력이고, 나라가 망하면 다른건 다 쓸모가 없다고 하시면 얼마나 오래갔는가가 가장 중요하겠죠.

북원은 건국 초기에나 명에 잠깐 저항했을 뿐, 명의 공격으로 20년만에 멸망했습니다. 이후엔 북원이 아니라 중국 북방의 이민족 집단중 하나로 전락했죠.

이민족 국가들이 군사력으로 중원의 국가들을 위협했다는 말에는 동감을 하는데 국력으로 중원 국가를 뛰어 넘었다고 하시니까 당황스럽네요.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대기업 총수보다 그집 들어가서 강도짓 하는 도둑이 더 힘이 있다고 하시는거랑 다를게 없는 것 같거든요.
나이트해머
13/04/15 18:38
수정 아이콘
bruma//전근대 군사력의 특성을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근대 이전의 군사력은 양성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라 국력에 앞선다 해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군사력에서는 상황이 역전되는' 경우가 흔하게 나오며, 이때문에 '국력에서 앞서는데 일시적인 군사력 역전으로 인해 멸망하는' 사례도 빈번한게 역사입니다. 기업의 흑자도산과 비슷한 상황이죠. 그런데 님은 이런 상황이 되면 '국력이 딸리는 거야' 라고 치부해 버리겠네요? 신선한 학설인데요?

님이 주장하는 건 그냥 고대국가들이 총력전을 벌인다는 괴이한 소리밖엔 되지 않아요. 현실과 유리된 국력 개념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bruma님은 결국,

고대시대에 살 경우 미친듯이 백성들을 수탈해서 군사력 거창하게 만들어 어느 한국가 싸워서 밀어버리면 '전쟁에서 이겼으니 국력은 우리가 앞섰어'라고 하시겠다는 말에 불과하죠. 물론 자국 내에서 어떤 생지옥이 일어나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겠고. 이것 참 우리 선조들은 정말 못났네요. 군사력이 국력이니 무작정 군사력만 팍팍 키워서 난리첬어야 하는데 말이죠.

토탈워스런 괴이한 주장 잘 봤습니다. 입으로 하는 게임은 잘하시겠네요. 나라 맡기면 조괄 꼬락서니 나겠지만.
13/04/15 18:47
수정 아이콘
남의 말을 억지 '='논리로 비약시킨다음 반박하는 비논리가 지속되는군요.

그래서 몽골보다 송나라가 쎘고, 송나라보다 고려가 쎘고, 청나라보다 조선이 쎘다는겁니까?

진짜 관념속에서 사시는군요.

p.s, 북원 얘기는 저도 정확한건 아니고 사족이라 지우려고 했는데, 답댓글을 달았으니 계속 남기겠습니다..
어차피 왕조수명이 핵심이 아니라는게 논지이죠...

+ 님 주장에 추가된 게 있길래 여기에 대해서도 저두 나중에 추가합니다. 댓글달고 나중에 보면 글이 추가되어 있어 당황스럽습니다.

'이민족 국가들이 군사력으로 중원의 국가들을 위협했다는 말에는 동감을 하는데 국력으로 중원 국가를 뛰어 넘었다고 하시니까 당황스럽네요.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대기업 총수보다 그집 들어가서 강도짓 하는 도둑이 더 힘이 있다고 하시는거랑 다를게 없는 것 같거든요.'

이런 말씀하셨는데, 한족을 대기업총수에 비유하고, 이민족들을 강도짓하는 도둑에 비유하시네요;;; 보고 놀랐습니다. 님의 시선 이면에 이런 편협한 중국관이 있었군요. 중국은 위진남북조시대부터 보통 한족이 중심이 되었지만 이미 한족만의 나라가 아니었어요..당연히 이민족이 세운 왕조가 한족왕조보다 힘이 쎄질때는 몇번 있었구요.
13/04/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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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력과 이를 기반으로 한다는 체제유지라는 기준으로 줄을 세우면 그렇게 되겠죠.

물론 전 그렇게 단편적으로 국력을 파악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나이트해머
13/04/1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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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비논리는 bruma님이 하고 있습니다. 송나라보다 고려가 쎘다는 식의 억지논리는 또 뭡니까. 허수아비치기 좀 작작 하실래요?
13/04/15 18:57
수정 아이콘
나이트메어님// 걍 몽골보다 송나라가 국력이 강했다라고 믿으십쇼.

전쟁에 져서 완전히 밀려서 노예가 되는대도
'고대는 총력전이 아니었으니 전투력에 밀려도 노예국가 되었어도 국력은 사실상 앞섰다는'

듯한 논리는 진짜 아큐식 정신승리에서 더도 덜도 아니죠.
전투력에서 밀리더라도 나라를 온전히 유지하는선에서 그런 논의가 의미가 있죠.

그리고 나이트메어님이 저에 대해 쓰신말

'한마디로, bruma님은 결국,

고대시대에 살 경우 미친듯이 백성들을 수탈해서 군사력 거창하게 만들어 어느 한국가 싸워서 밀어버리면 '전쟁에서 이겼으니 국력은 우리가 앞섰어'라고 하시겠다는 말에 불과하죠. 물론 자국 내에서 어떤 생지옥이 일어나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겠고. 이것 참 우리 선조들은 정말 못났네요. 군사력이 국력이니 무작정 군사력만 팍팍 키워서 난리첬어야 하는데 말이죠. '

-> 이거 님 혼자만의 망상인거 아시죠? 할말이 없으니 남이 하지도 않은말 멋대로 상상하면서 비꼬는군요.
전 우리선조는 잘해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전 단순히 인구수 많다고 우리나라 고대나 중세가 다른 국가보다 낫다고 말할수 없고 그외의 요소중 전투력의 비중이 높아서 인구수 적음에도 국력이 앞선 케이스가 많다고 얘기한거 뿐인대요.


무슨 학설이니 뭐니 하다가 나중에는 나라를 맡기면 망한다 운운까지...

비꼬시는거 보니 이제 그만해야겠네요.

+ 송나라보다 고려가 쎘다고 한 얘기는 님에게 한 얘기가 아닙니다. 위의 댓글이 koel님께 한겁니다. 전 두사람을 상대하고 있는데, koel님 글 보고 그에 대한 답글을 달면 그 사이에 님이 댓글을 달아놓네요.
13/04/15 19:00
수정 아이콘
burma님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 보기 안 좋네요.
마음같아선 글 삭제라도 하고 싶은데 리플이 많이 달려 그러지도 못하고..
13/04/15 19:05
수정 아이콘
koel님/ 그건 님의 단순한 = 도식구조하에서나 저의 의견을 왜곡해서 제가 그럴거라는식으로 보는거지

저도 그렇게 보진 않는대요?

당연히 청나라가 조선보다 수명이 짧았음에도 국력이 강한 나라였고
송나라나 몽골이 고려에 비해서 그랬죠.

애초에 제가 하지도 않은 주장으로 자신만의 몇가지 전제를 깔아,
제가 한듯하게 주장하는거 보니 님과 논의하는게 의미가 있나 싶네요.

왜곡을 통해 반박하는건 할말이 없을때나 하는겁니다.

부분만 확대해서 말꼬리잡기->자신만의 부족한 논리로 상대방의 주장을 단편적으로 왜곡 -> 그걸 바탕으로 반박 -> 스스로 맞다고 믿기 이런 패턴이군요.
13/04/15 19:08
수정 아이콘
글쓴분이 불편해 하시니 이만 하겠습니다.

뭐 더 하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고요.
13/04/15 19:19
수정 아이콘
저두 그만하겠습니다.

애초에 하나의 나라가 떡실신당해서 멸망했는데, 전투력을 제외한 국력을 따진다는거 자체가 ..시간낭비이죠
13/04/15 14:55
수정 아이콘
어떤 면에서 소중화적인 분위기를 느끼셨습니까?

상당히 불쾌하네요.

똥싸고 도망가는 비겁자는 아니시죠?
13/04/15 15:22
수정 아이콘
님의 댓글만 말하는게 아닌대요..

대략 중국은 당시 강대국이었으니 중국옆에 있으면서
그걸 직접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나라도 문화,경제,군사적으로 강대국이려니..

하는 막연한 논리. 여기서 소중화적인 무언가를 느꼈네요.


당시 다른 아시아국가나 유럽의 국가들이 얼마나 발전했을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없죠.
저의 고찰이 꼭 맞다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 몇몇분들을 보면 당시 다른 국가에 대한 고찰자체가 없어요.

중국간의 관계에서 거의 모든걸 추론한다는것이 문제에요. 거기에 허술한 인구수 논리뿐... 인구수 많은국가가
적은국가에게 떡실신당한 예가 역사에 산적해있음에도

다 좋아요. 추측이야 할수 있죠. 문제는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조상의 실력에 상당히 못미치는, 불초 후손인 겁니다.'
이런 발언은 너무 오버로 보입니다.
13/04/15 15:28
수정 아이콘
'님의 댓글만 말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에서 제 댓글도 포함하고 있는 걸 잘 알겠습니다.

자 제 글 어디에 '중국 옆에 있으니, 그걸 받아들인 우리나라가 문화, 경제, 군사적으로 강대국이었다'는 말이 있는지 지적을 좀 해주세요.

상상력인지 과대망상인지가 정말 풍부하시네요.

답변이 왜 없으신지? 또 도망가고 싶으신가요?
13/04/15 15:45
수정 아이콘
4thrace님 댓글보면 이상합니다.

저는 여기에 댓글 단다음, 다른 분께 다른 답변 드리고 오면,
4thrace님의 추가된 댓글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 안에서 답변은 왜 없으신지, 도망가는건지?

이런걸 묻고 계시네요???????

정작 님은 제 논지에 대해 하나도 반박못하고, 왜 소중화로 느꼈냐 그거에 기분나빠하면서
'도망갔냐?' 이러고 있죠.

당연히 님에게 가장 심하게 느꼈죠. 우리조상이 한거라고는 중국과 사대관계 맺으면서 중국문물 받아들인게 대다수인데..(물론 이걸 무시하는건 아닙니다만.)

님은, 막연한 동양우위론과 인구수론을 바탕으로 ', 사실은 우리 조상의 실력에 상당히 못미치는, 불초 후손인 겁니다.' 이런 얘기나 하고 계시니 ;;
13/04/15 15:46
수정 아이콘
자 제 글 어디에 '중국 옆에 있으니, 그걸 받아들인 우리나라가 문화, 경제, 군사적으로 강대국이었다'는 말이 있는지 지적을 좀 해주세요.

이 답변을 왜 안해주세요?

난독증 있으세요?
13/04/15 15:51
수정 아이콘
난독증은 님이 있는거 같은대요...

여기 댓글들에 저런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는건대요;

뭐 님은 인구수론에 치우쳐져 있으니 그 부분에 억울해하시는거 같은데..

난독은 님인거 같습니다. 우리조상에 부끄럽다 운운은 솔직히 명백한 헛소리 같구요.
13/04/15 15:53
수정 아이콘
계집애가 아니면 이쯤에서 사과가 나올거라 생각했는데 어쩔수 없는거죠.

좋은 하루 되세요.
13/04/15 15:55
수정 아이콘
자신의 발언이 반박당하자 움찔하면서

막말을 계속 던지며 생시비를 건건 님쪽이면서 사과를 원하네요

적반하장이라는 단어가 이때를 위해 있는거죠.

즐거운 하루 되십쇼 ~
13/04/15 11:13
수정 아이콘
조선이 가난한건 수취체제에 문제가 있어서였죠.
정부는 세금을 적게거두는 방향으로 갔는데
이는 정부 재정의 부실로 나타났고
아예 급여를 받지 못하는 향리, 아전들은 부가세를 걷어 백성들을 수탈했죠.
정부는 적게 걷어서 재정이 망하고 아전들은 수탈하고...
정부는 결국 재정을 메우기 위해서 총액제를 실시해서 지방마다 할당을 줬는데
이것때문에 엄청난 수탈이 일어나게 되었죠.

화폐경제가 미발달한 것은 금본위제 혹은 은본위제를 실시하지 않아서라고 봅니다.
화폐를 실질적인 가치가 있는 금이나 은으로 교환하게 했다면 화폐를 가치있게 여겼겠죠.

결론적으로 조선의 수취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역의 하나인 요역(토목공사 노동력)을 폐지하고 군역은 양반까지 포함하는 호포론을 실시하며
공납은 대동법으로 100% 대체시키고
토지세의 세율은 1결당 4두에서 20두로 크게 올려서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갔다면
재정문제도 해결되며 공납, 요역을 폐지하고 국가가 국가재정으로 그걸 구입하는 쪽으로 갔다면 백성이나 정부나 둘 다 윈윈하는 체제를 만들 수 있었을겁니다.
관리들에게도 적절한 급여를 줘서 수취를 덜 하게 할 수 있구요.

이런게 엉망이 되었기에 조선은 19세기에 들어서 망한거나 다름없게 되었죠.

성리학적 사고만 가지고 세금을 국가재정이 부실해질 정도로 덜 걷고 관리들에게 적은 급여만 줬던게 큰 문제라고 봅니다.
기술 천시와 외국과의 매우 제한된 교역도 문제였다고 보구요.
일본에 나가사키를 통해 네덜란드와 교역하며 문물을 받아들이고 세계정세를 어느 정도 파악한데 반하여
조선은 일본이나 여진(뒷날 만주족, 청)의 정세에 너무 어두웠고 제대로된 판단도 못해서 큰 피해를 보기도 했죠.

성리학적 교조주의로 똘똘 뭉친 사림, 노론이 계속 정국을 주도한게 조선이 힘들어진 원인이 아닐까 싶네요.
13/04/15 15:31
수정 아이콘
조선 역시 수취체제 개선에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기득권층의 반대로 실패했다고 봐야죠.
13/04/15 16:00
수정 아이콘
윤휴의 호포론을 밀고갔어야했는데 영조가 소변통론으로 그친게 아쉽네요.
나이트해머
13/04/15 15:55
수정 아이콘
'엄청난 수탈'을 다 처서 수취율이 20%입니다. 20%.
일본처럼 대놓고 5공 5민을 때리고 4공 6민이 혁신적인 수준의 민생정치라는 말을 듣던 동네도 있던 시대입니다.

금, 은본위제는 말이 쉽지 중국 옆에 있는한 어떤 국가도 실현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신대륙 은도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빨려들어갔는데도 은이 없다고 난리치던 중국이 바로 옆에 존재하는 최대 무역국인 시점에서 금, 은본위는 일본처럼 은광이 펑펑 터지는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토지세의 수취율 증가는 진작에 이루어졌습니다. 조선후기의 주요 조세개혁 방향이 토지세중심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19세기의 상황변화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기술천시요? 항상 조선이 기술을 천시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살펴보면 조선시대는 그 이전보다 기술발전이 현격하던 시대입니다.

사림이니 노론이니 하면서 책임을 특정세력에게 전가하는 것은 현재 부정되고 있습니다. 이런게 식민사관이죠.
swordfish
13/04/15 12:46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면 작은 정부가 재화와 용역의 양을 줄이고 이러다 보니 한정된 재화만 가지고도 충분히 다른 물건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컸다고 봅니다.
거기에 조선에 빈약한 구리가 그나마 최저 금속화폐 동화 마저도 이런 재화와 용역 가격에 비해 엄청난 가치를 가지게 되었구요.
이러면 돈을 쓸수가 없죠. 어자피 돈을 가져도 가치가 너무 높아 살 물건이 없는데요.
마지막으로 화폐에 대한 민중의 신뢰성이 낮은 것도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13/04/15 13:20
수정 아이콘
좌의정 윤승훈의 의견이 가장 합리적인 듯 보입니다.

금본위제라고 하는 것은 국가가 화폐적 가치에 대한 보상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이라는 것의 가치가 확정가치가 아니라, 어느 시대에서 시장 유동적 가치라고 보면, 금에 대한 화폐의 교환 비율이 시장이 발달되어 있지 않은 당시에도 확정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현물시장이 발달되있고 국제적으로 통합되어 있으니, 시장기반이란 조건이 있기에 오늘날은 비교적 시간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지만, 큰 신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소금과 인삼을 국가가 독점해서 화폐에 대한 국가신용을 높였다면, 충분히 금본위제나 은본위제가 아니었더라도 화폐유통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특히 인삼은 국제 교역물품이라, 국가의 재정을 충실히 해 화폐에 대한 신용을 확보하는데는 더 바람직했을 듯 합니다.

금본위제가 아닌 오늘날도, 국가 화폐의 가치= 국가의 경제적 재정건전성 + 신인도(경제가 어느정도 발달되서, 세금을 어느정도 걷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지 ) 로 결정되니, 당시 정부가 국가의 재정신뢰를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금과 인삼의 독점화 정도가 제일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나이트해머
13/04/15 15:56
수정 아이콘
인삼은 조정에서 직접 수출입 물량을 조절하였으며 소금의 전매는 수많은 반란을 불러오는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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