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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5/10 21:01:05
Name sungsik
Subject [일반] [역사] 명분만 중시하는 어리석은 신하인가, 꺾일 줄 모르는 올곧은 충신인가...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정온이란 인물은 참 흥미롭습니다.
그나마 그에대해 알려진 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척화파로
후금과의 화친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성격은 젊었을 적 임진왜란 때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대표적인 게 아버지를 따라 의병을 모집하여 활동했던 것이죠.

이때의 인연 때문인지 대북파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정인홍에게 배움을 받아,
선조 41년 유영경과 정인홍이 충돌을 했을 때 정인홍을 지지하고 유영경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보면 대북파와 인연이 닿아보이는 인물이나,
광해군 3년, 사헌관의 정언(正言)으로 광해군의 경운궁 이어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여 광해군에게 찍혀버리죠.
이때 광해군 경운궁 이어는 승정원,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의 거의 모든 관원이 다 반대를 했으나,
정온은 이를 개인적인 상소로 올려 아주 강경하게 반대합니다.

이 일 때문에 정온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던 광해군은 이딴 인물을 대간으로 뽑았다고 분노하지요.


하지만 정온이란 인물이 정인홍의 제자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덕망이 있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헌부가 자신의 일을 했는데 왕이 기분 나쁘다고 함부로 벌주려고 하는 것에 대한 대항인지,
각 관아가 모두 이 일에 반기를 들게 됩니다.

대간이 간언을 하는 건 당연한 것인데, 간언을 했다고 벌을 주는 것은 불가하다면서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가 모두 반대하지만 결국 광해군의 뜻을 꺽지 못하고 외직으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관직 자체를 완전히 삭탈당하진 않았고,
정온 역시 이때까진 광해군 그 자체에게 악한 감정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온 자체가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말 그대로 원칙주의자로서,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는 그런 성격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광해군의 영창대군의 옥사 때는 정인홍과 의논하고, 이게 곽재우에게까지 연결되어
영창대군을 벌주자는 의논을 반대하는 여론을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결과적으로 영창대군이 죽었을 때에도
영창대군이 죽은 건 광해군의 뜻이 아니고 정항이 죽인 것이며,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영창대군을 다시 대군의 신분으로 복위시키고
장례도 그에 맞게 치루어 명예를 회복하게 해줌이 옳다며, 이렇게 해야 광해군의 진심을 온 백성이 알 수 있다는 상소를 올립니다.
또한 폐모에 대한 논의가 나오려하자 이를 강력히 반대합니다.


이 상소는 궁궐내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모두가 정온을 벌주자고 하였고,
광해군은 그의 말이 흉악하고 참혹하긴 하나 벌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듯 하다가
열흘 뒤 국문을 허락하고 옥에 가둡니다.

이때 광해군은 친국까지 하였고 정온은 죽을 위기에까지 처하나 여러 대신들의 힘으로 죽음은 면하고 제주도로 유배가게 됩니다.
그것도 위리안치로.. 죽는 것 이외에 거의 최고의 형벌이었죠.


태생적으로 광해군에 대한 미움이 있을 수 없는 인물이었으나,
그의 올곧은 성격은 광해군에게 미움을 샀고 그의 충심까지 흔들리게 만듭니다.

이렇게 정온의 인생은 제주도에 안치되어 끝나는 것 같았으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약 10년뒤 커다란 일이 발생하죠.
바로 인조반정입니다.


정인홍의 제자로서 대북파로 남아있었다면 인조반정 이후 오히려 죽을 목숨이었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관직엔 절대 다시 나갈 수 없을 신세였겠지만,
인조는 그의 기개를 인정하고 폐모론을 반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관직에 다시 진출할 수 있게 됩니다.

풀려난 후 정인홍의 제사에 바치는 음식까지 보냈기에 반정세력 입장에선 그를 좋게 볼리가 없었고,
인조를 폐주인 광해군에 비유하며 간언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조정에선 그를 중용하긴 커녕 목을 베야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마당이었지만,
인조는 역적이라도 사제지간의 우애를 중시하는 건 필요하고, 그만한 인물을 구할 수 없다면서 정온을 강력히 옹호해줍니다.


옳다 생각하는 것에대한 간언을 잘하지만 왕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의심할 바 없었던 그가
비록 반정으로 왕이 됐다고 하나 인조가 자신을 이렇게 봐주니 인조에 대한 그의 충심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가지요.
광해군과 난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요.
인조도 이상하리만치 정온을 중용하면서, 그가 간언을 하고 상소를 올려도 수긍하고 따르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줍니다.

한 번은 백성들이 힘들어할 수 있으니 모든 도가 양전을 마치고 함께 세금을 걷게 하자는 정온의 의견을 인조가 따르기 힘들어하니,
이에 빡친 정온은 '언론의 책임을 가진 자는 그 말이 쓰여지지 않으면 떠나야한다.' 고 하며 그냥 하직 인사도 없이 사직해 버립니다.

엄청나게 무례한 행위였지만 인조는
“경이 하직 인사도 하지 않고 돌아간 것은 혹 지나친 것 같다. 봄에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올라오라. ”
는 말고 함께 봄이 오기도 전에 다시 관직을 내립니다.

이러다보니 현대에 그렇게 욕을 먹는 인조이지만,
당시 정온의 눈에는 인조는 충분히 믿고 따를만한 임금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병자호란이 발발합니다.
인조와 대신들은 남한 산성에 갇히고 성 내에선 화친하자는 자와 그러지 말자는 쪽으로 나뉩니다.
정온이 어떤 쪽일지는 말 안 해도 당연했죠.

그는 사신 보내는 일 등을 반대하며 오랑캐와의 화친을 절대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강화도도 함락되고 성 안의 식량은 떨어지고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항복하는 쪽이 힘을 얻게 됩니다.
문제는 항복 조차도 쉽지 않은 게, 후금 쪽에서는 일단 성안에서 화친을 배척하는 신하를 본보기로 보내라고 합니다.

이에 정온은 자신이 가겠다고 자신을 묶어 보내라 하죠.
보내면 죽을 목숨일 걸 아는 인조는 보내지도 못하고 안 보내지도 못하고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며칠 뒤 항복이 확정되고 인조는 성 밖으로 나가는 걸 결정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분노한 정온은 글을 하나 읊습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대포 소리 천둥과 같은데
외로운 성 깨뜨리니 군사들 기세 흉흉하네
늙은 신하만은 담소하며 듣고서
모사에다 견주어 조용하다고 하네

외부에는 충성을 다하는 군사가 끊겼고
조정에는 나라를 파는 간흉이 많도다
늙은 신하 무엇을 일삼으랴
허리에는 서릿발 같은 칼을 찼도다

군주의 치욕 극에 달했는데
신하의 죽음 어찌 더디나
이익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려면
지금이 바로 그 때로다
대가(大駕)를 따라가 항복하는 것
나는 실로 부끄럽게 여긴다
한 자루의 칼이 인을 이루나니
죽음 보기를 고향에 돌아가듯


그리고 차고 있던 칼을 빼내 자신의 배를 찌르죠.

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있어 죽음에 이르지는 않습니다만,
60대의 노인이 피가 낭자할 정도로 배를 칼로 찔렀으니 살아만 있을 뿐 여간 중상이 아니었을 겁니다.

전쟁이 끝나고 국정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도,
결국 몸 상태 때문에 정온은 관직에 다시 오르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간 후에도 단도로 거짓 찔러 임금을 속였다고 자신을 벌주라고 상소를 올리는 걸 보면..
진짜 어지간하다는 생각까지 들지요.


이 상소를 마지막으로 1년도 되지 않아 정온은 사망하게되고,
병자호란의 치욕 속에서 그마나 조정 대신들의 마지막 자존심을 살려준 인물로 기록되게 됩니다.
물론, 현대에는.. 상황파악 못하고 명분만 앞세운 척화파로 이름을 알리게 되지만요 흐흐

짧게 쓰려고 했는데 꽤나 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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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3/05/10 21:07
수정 아이콘
대단한 사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13/05/10 21:40
수정 아이콘
의기야 존경할만하겠지만 그렇다고해서 그에게 동감할수는 없네요
13/05/10 21:45
수정 아이콘
역사에 대한 판단은 개인이 하는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좀 이상한 건 일본에 대항한 인물은 무조건 충신이자 의사로 묘사되는 반면,
후금에 대항했던 인물은 공감가지 않는 현실에 무지한 인물로 비춰지더라구요.
안심입니까
13/05/10 21:53
수정 아이콘
인조를 포함한 후금에 대한 주전파, 강경파들을 '쥐뿔도 없으면서 남한테 시비걸다 털린 놈들'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더군요. 뭐 저도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13/05/10 22:03
수정 아이콘
근데 그렇게 따지면 일제에 대항한 독립군도 마찬가지거든요.

뭣도 없는 독립군이 괜히 일본군한테 대항했다가
그에 대한 보복 조치로 경신참변이 일어나 민간인이 학살당하기도 했죠.
제레인트
13/05/10 23:34
수정 아이콘
나라를 유지시킨 적이냐 아니면 완전히 집어삼킨 적이냐의 차이죠. 외교로 피할수 있는 상대를 괜히 건드린 친명파이고 그것과 독립운동은 다르고요.

독립군도 뭣도 없는 거라 가만히 힘의 논리에 순응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국가-애국이 필요가 없지요. 그냥 힘센놈에게 붙어 살면 되지요.

그리고 글쓴분의 논리에서 더 나아가면 친일파/독재정권 옹호+독립운동/민주화 운동 부정이 될 수 있죠.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은 뭐 눈에 보이는 희망이 있어서 했나요;

폰이라 좀 두서가 없네요
13/05/10 23:41
수정 아이콘
대체 어디를 어떻게 봐서 제가 힘의 논리에 순응해야한다고 보시는 건지...

전 오히려 독립군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대항한 한심한 세력이 아니듯,
위에 나온 인물 역시 무조건적으로 무지해 아무것도 없이 후금에 대항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님의 논리면, 지금 위에 나온 인물을 현실감각 없기만한 사람으로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는 거겠죠.
제레인트
13/05/10 23:52
수정 아이콘
저 인물이 곧고 강직한 인물인걸 부정하는 건 아닌데, 주전파였다는건 현실감각이 없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 상황에서 화친을 반대하고 주전-항전을 해서 이길 가능성도 없고, 끝까지 버텨서 얻을 수 있는게 있는것도 아니고. 피할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글쓴 분의 전체주장이 힘의 논리에 순응해야 한다고 쓴게 아니라 후금주전파와 독립군을 같은 관점으로 본 댓글만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거였습니다.
13/05/10 22:11
수정 아이콘
상대의 의도가 달라서가 아닐까요. 후금은 조선을 멸망시킬 의도는 없었지만 일본은 멸망시켜 식민지화할 목적이 분명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으니.
13/05/10 23:00
수정 아이콘
후금이랑 일제랑 스탠스가 다르니까요. 당시 정온같은 주전파들은 후금에는 절대 사대할 수 없다면서 명나라에는 또 재조지은을 지켜 끝까지 사대해야 한다고 하지않았나요?? 크게 보면 사대하는 대상이 바뀌는 것 뿐인데요(사대정책이 나쁘다는 뜻이 절대아닙니다).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 자체 , 민족 그 자체를 말살하려 시도했는데 당시 후금이랑은 많이 다르죠
13/05/10 23:44
수정 아이콘
그럼 반대로 말하면, 일본이 조선 민족을 말살하려는 계획은 없고,
불평등 조약을 세우고 수탈하는 선에서 멈췄으면 그걸 용인하고 일본의 힘의 논리에 조선은 순응했어야 하는 게 옳다는 거였군요.
13/05/10 23:49
수정 아이콘
음 뭐랄까...불평등 조약을 세우고 수탈하는 선에서 멈출건데 그걸 강요하기위해서 일본이 도성을 포위하고 나올때까지 기다리면서 굶겨죽일 기세로 나온다면 저는 거기서 끝까지 안된다고 할복하는 사람은 현실감각이 없다고 할 겁니다. 그것도 다른 데는 상관없는데 일본만은 안된다고 하는 거라면 더더욱이요. 그리고 중국에 있던 나라와 우리의 관계는 수탈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요??
13/05/11 00:10
수정 아이콘
위 인물의 행동은 왕이 치욕을 당하는 데,
왕의 치욕을 부끄러워하며 행동으로 보이는 신하가 없다면,
왕에게 충신이 없음을 보여주는 일이기에 정온이 총대를 맨 것이라 봐야죠.
유교시대에 충신이 없음은 국가의 수치중의 수치였습니다.

같은 척화파였던 김상헌은 죽으려는 시도는 하는데, 죽는 척만하고 그냥 후금의 항복에 순응해버리죠.
솔직히 전 김상헌과 정온을 비교하면, 정온이 훨씬 나아보입니다. 적어도 그의 뜻은 진심이었던 것이니까요.

그리고 조명관계는 수탈이라 보기 어렵고 오히려 조선이 이득에 가까웠지만, 조청관계는 엄청난 수탈이었습니다.
애당초 병자호란 자체가 후금이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에요.

인조정권이 광해군과 같은 그것을 안 한 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상황이 달라 할 수가 없었던 거죠.
우리입장에서 보니 조선이 뭔가를 잘못해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우리 시각이 아닌 제 3자의 시각에서 병자호란은 필수불가결한 사건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조폭이 돈이 없어 힘없는 상인들을 삥뜯으니, 나중에 상인이 뭘 잘못해서 삥뜯겼다고 욕먹는 거랑 똑같은 상황인 거죠.
광해군 때는 조폭이 막 성장하고 돈도 좀 있어서 비위만 좀 맞추면 괜찮은 상황이었지만,
인조 때는 조폭이 힘만 남았는데 돈이 없어 굶어가는 상황인 것입니다.

당연히 정말정말 운이 좋게 전쟁이 없었다 하더라도 막대한 수탈이 일어났을 겁니다.
여기서 인조가 욕먹어야할 건 후금에 대한 정책 노선이 아닌 전쟁이 일어난 직전과 직후의 대응인 거고요.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왕이 수치를 당하는 걸 눈으로 볼 수 없어
저런 행동을 보인 강직한 인물도 존재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었고요.
13/05/11 00:21
수정 아이콘
저도 김상헌 같은 인물 보다는 정온이 훨씬 낫다고 봐요. 그리고 조명간의 관계와 조청간의 관계가 상당히 다르다는건 동의하지만 정온이라는 인물이 소위 '수탈' 이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격렬하게 반대했을거라는 생각보다는 당시 사대부들에게 박혀있던 명나라에 의한 사대의식 때문에 그리 행동한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만약에 명나라가 후금과 똑같은 요구를 했다면 과연 할복까지 하면서 저리 행동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물론 sungsik 님이 마지막 줄에 쓰신것처럼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었던 건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나이트해머
13/05/11 01:49
수정 아이콘
일단 명은 임란~재란 기간 중에 10 만 이상을 동원했고 추가로 고려천자 만력제가 수십만 석 이상, 난중잡록에 따르면 100 만 석에 달하는 식량 지원을 해 준 전적이 있어 구성원 개개인에 대해서라면 모를까 국가 자체에 대해서는 사대부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그닥 나쁘게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나 반대로 지속적으로 깡패짓을 해 온 후금에 있어서는 전혀 호감을 가질 수 없는 게 일반 민심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보아야 합니다. 거기다 병자호란 직전까지 화친을 청하는 사신단이 올라가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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