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2/09/25 00:47:29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칠종칠금(끝)-그때 그 사람들
제갈량이 옹개 등의 반란을 진압하고 남중을 촉으로 편입하여 군현제를 통해 이곳을 통치하기 시작한 이후, 기존처럼 큰 반란을 일으키진 않았습니다. 주로 소소한 소요 정도였고, 소수 이족의 반란이 일어나 여개가 살해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장억의 엄격한 통치로 기반을 굳히고 마충의 인심 장악 등으로 남중은 상당히 안정화 됩니다. 특히 제갈량이 이 지방에 파견한 감찰관들은 남중인들을 자극하지 않아 제갈량이 북진할 때 후고의 염려를 끊어버리게 됩니다.

이회 덕앙

연의에서는 유비의 입촉을 극력 반대하다가, 유비가 면죽을 점령한 이후 유비에게 항복한 뒤, 장로의 압박 때문에 이도저도 못한 처지에 빠진 마초를 제갈량 대신 설득해 항복시킨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사와 민담에서는 이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이회는 건녕군 유원현 사람으로서, 건녕군 독우직을 맡았습니다. 당시 건녕현령이던 고모부 찬습이 법령 위반한 일에 휘말려 이회는 독우직에서 파면당할 처지에 몰립니다. 당시 건녕태수인 동화는 찬습이 건녕지역의 호족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그의 죄를 불문에 부쳤습니다. 동화는 유비의 촉 점령 후 장군중랑장으로서 제갈량과 함께 촉의 법령 제정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엄격한 법 집행에 대해서 제갈량 역시 찬양한 점을 들어 본다면, 찬습의 법령 위반을 불문에 부치고, 사직을 반려한 것을 보면 찬습이 그 지역 일대에서 어마어마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추정해 볼수 있습니다.

동화는 이회를 유장에게 천거하여 파견을 보냈는데, 유비의 입촉을 알아차리고 바로 면죽으로 달려가 유비에게 항복합니다. 유비는 이회를 중용하여 마초에게 보냈는데, 이회에 의해 설득당한 마초는 유비에게 항복합니다. 이후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자 이회는 익주의 공조서좌주부로서 유비를 보좌합니다. 후에 도망자가 이회가 모반한다고 모함하자 담당관리가 이회를 잡아가두자, 유비는 직접 이회의 무고함을 밝혀주고 별가종사로 승진시킵니다.

장무 원년에 내강 도독으로 남중으로 떠났던 등방이 사망하자 유비는 이회를 내강도독에 사지절, 교지자사로 삼아 평이로 보냅니다. 유비가 죽고 제갈량이 남중 반란 진압에 나서자, 이회도 건녕을 목표로 진격을 시작합니다만, 옹개를 따르던 이들은 서로 연합하여 곤명에서 이회를 포위합니다. 하지만 이회는 당황하지 않고 병력이 적었지만 적의 군중에 거짓 소문을 퍼뜨려 포위가 느슨해지고 연합관계가 약해지자 바로 적을 격파하고 잔당들을 반강까지 추격해서 완전히 전멸시킨 뒤에 동으로는 마충, 서로는 제갈량과 조우하여 남중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제갈량은 이회를 한흥정후 안한장군으로 승진시키고 건녕태수를 겸임시킵니다. 이후 남중 소수 이족이 촉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자 직접 토벌군을 이끌고 가서 이들을 격파하고 유력자들을 성도로 이주시켰으며, 그 지방에서 나는 물산으로 공물을 충당케 했습니다. 이후 이회는 한중으로 이주해 제갈량을 지원했으며, 231년에 죽고 아들인 이유가 그의 관작을 승계했으며, 조카인 이구는 우림우부독으로 제갈첨을 보좌하다가 면죽에서 전사합니다.

이러한 남중에서의 활약에서 민담에서 이회는 어마어마한 사람을 며느리로 맞이하는데, 바로 관우의 딸로 알려진 관은병입니다. 관우의 딸은 손권이 인질로 잡으려고 혼인을 권하다가 관우가 “호랑이의 자식을 어찌 개의 자식과 결혼시키겠느냐!”고 말했을 정도로 관우는 딸을 귀여워했었나 봅니다. 어쨌든, 관은병은 제갈량에게 학문을, 제갈량의 부인인 황부인에게 바느질과 길쌈, 부덕을 배웠습니다. 이후 제갈량은 이회의 아들인 이울에게 관은병을 시집보냅니다. 남중반란이 일어나자, 제갈량은 남중에 대해 잘 알고 인심을 얻고 있는 이회와 그 아들을 보내고 싶었지만, 관은병을 잘 보살펴 달라고 한 유비의 유언과 자신이 딸처럼 아끼는 은병이 남중으로 가게 되는 것에 대해서 죽은 관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망설이자, 은병은 남중을 평정하고 지킬사람은 자신의 남편과 시아버지 뿐이며 자신이 남중에 가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후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남중으로 온 은병은 남중의 백성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이들에게 베짜는 법과 글을 가르쳤고, 남중인들은 그녀를 관씨댁 아가씨라 부르면서 친하게 지내면서 존경했다고 합니다.

장억 백기
장억은 파군 남충 사람입니다. 장억은 스물이 안되서 현의 공조직에 임용이 됩니다. 유비가 촉을 평정할 당시 산적들이 장억이 공조로 있는 현을 공격해서 현령은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장억은 목숨을 걸고 현령의 부인과 가족을 보호했습니다. 이를 들은 유비는 그를 종사로 삼았고, 이천석의 녹봉을 받는 공록과 요주는 장억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227년에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했을 때, 광한의 산적인 장모가 군자금 강탈하고 백성들과 관리들을 약탈했는데, 장억은 그들을 불러들여 주연을 연 뒤에 부하들과 함께 도적의 수괴들을 죽여 산적들을 토벌합니다. 그리고 이 산적들의 잔당들을 열흘만에 완전히 토벌합니다.

장억은 상당히 검소하게 살았던 모양입니다. 이후 장억이 중병에 걸리자 광한태수인 하지라는 이가 돈후하다는 평을 듣자, 수레를 타고 하지에게 가서 자신의 병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와 장억의 관계는 소원한 편이었는데, 하지는 자신의 재산을 써서 장억을 치료해주었습니다.

이후 마충의 아래에서 강족의 반란을 진압했는데, 모든 작전을 입안한 사람은 바로 장억이었습니다. 장억은 월수태수로 재직하면서 촉에 불온한 행동을 벌이던 촉마족의 위랑을 잡은 뒤에 설득하여 풀어주자, 위랑 아래의 촉마족은 촉에 항복했고, 인근의 주요 부족들 역시 항복했습니다.

또한 소기의 군장 동봉과 외거가 재차 반란을 일으키려 하자, 동봉을 잡아다 죽이고 동봉의 아내는 풀어주어 동봉의 장인인 모우의 이수를 항복시켰습니다. 도망간 외거는 부하 두사람을 보내 장억을 암살하려 했지만, 장억은 오히려 이들을 설득해서 외거를 죽이게 만들었고, 촉의 태수를 살해한 이구승은 장억이 현상금을 내걸자 체포되어 처형당했습니다.

장억은 식견이 상당히 높았는데, 대장군 비의가 귀순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보고 비의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장억 : 잠팽과 내흡은 군대의 지휘권을 쥐고 있다가 살해당했소. 그런데 비의 대장군 역시 이들의 위치가 다를바가 없으니 당연히 이를 경계로 삼아야 하는데, 경계하는 것이 적어 걱정이외다.

이후 비의는 위에서 항복한 곽순이라는 자에게 연회장에서 칼에 찔려 죽게됩니다.

장억이 남중을 통치한지 15년 동안 그곳을 잘 다스렸는데, 성도로 돌아가게 되자 남중인들은 장억의 수레를 붙들고 가지 말 것을 요청했으며, 모우 지방을 지날 때 군장과 사람들이 아이들을 업고 나와서 그를 영접했다고 합니다.

이후 장억은 강유를 따라 출진했는데, 강유가 적도성에서 포위당하자 장억은 직접 이 포위망을 공격하여 포위를 풀어 강유를 구출하고 뒤를 맡으면서 위의 장수 서질을 죽이고 위군과 싸우다가 전사했지만, 장억을 상대한 위군은 장억에 의해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후 남중 월수군 백성들은 장억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땅을 치면서 슬피 울었고, 묘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마충 덕신

연의에서는 축융에게 붙잡힌 쩌리1로 나옵니다만......사실 이 사람, 나중에 나본씨를 저승에서 봤다면 싸닥션을 올려치고 조인트를 까도 될 정도로 남중에 대한 영향력은 제갈량 이상 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호독으로, 이후 성명을 마충으로 바꿉니다. 부모가 일찍 죽었는지 그는 어릴때부터 외가에서 성장했습니다. 마충은 건안 말에 효렴으로 천거되어 한창현령이 됩니다.

유비가 이릉전에서 패하고 도망치자, 파서태수로 있던 염지는 병사 5천을 뽑아 마충에게 맡기면서 유비를 구원하도록 합니다. 유비는 이후 백제성에서 마충과 대면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후 상서령으로 있던 유파를 보고 마충에 대해서 높게 평하는 말을 남깁니다.

유비 : 내가 황권을 잃었지만, 호독을 또 얻었다!(마충이 개명하기 전의 일입니다.)

이후 건흥 원년(223년)에 제갈량이 승상부를 열었고, 마충은 문하독에 임명되어 승상부에 소속됩니다. 이후 225년 제갈량은 마충을 장가태수로 삼아서 승상을 자처하던 주포를 상대하도록 합니다. 이후 마충은 장가군의 남중인들을 잘 다독여 주포의 세력을 말려죽이고 주포를 붙잡아 사형시킵니다. 230년에 유선에 의해서 승상참군이 되고 장완의 부관으로 승상부의 일을 보좌하며, 또한 익주 치중종사를 겸임합니다. 231년에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아가자 군내의 사무를 관리하기도 하며, 장억과 함께 문산군의 강족의 반란을 진압하기도 합니다.

건흥 11년(233년)에 내강도독이던 장익의 엄격한 법 집행에 넌더리를 낸 유주가 반란을 일으키자 장익 대신 내강도독으로 임명되어 유주의 반란을 진압하고, 평이에 있던 내강도독부를 다시 미현으로 수복시킵니다. 또한 월수군 역시도 안정시킵니다.

마충은 사람이 관대했으며 농담을 잘하고 크게 웃으며 노기를 얼굴에 나타내지 않은 온후한 사람이었지만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결단력이 뛰어나고 위엄과 은혜를 갖췄다고 합니다. 따라서 남중인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했다 합니다. 이후 마충이 249년에 사망하자, 남중인들은 장례를 치르는 곳까지 와서 통곡했으며, 묘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마충의 후임으로 남중에 온 사람은 염우라는 자인데, 그는 마충의 업적에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개 계평

여개는 영창군 불위현 사람입니다. 무언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죠? 그렇습니다. 일부 사서에 따르면 여개는 여불위의 후예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는 영창군의 대성이었는데, 대성들이 진의 폭정을 피해 남중으로 이주한 사람과 전한 때 이곳의 경영을 위해 이주한 한인들의 후예들이란 점을 반증합니다. 어쨌든 여개는 오관연공조로서 영창군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옹개가 촉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고정 역시도 반란을 일으키자 영창은 촉과 통하는 모든 통로가 끊겨버립니다. 하지만 여개는 영창군승인 왕항과 함께 주요 지역의 방비를 굳혀 고정과 옹개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옹개는 여개에 편지를 보내 자신에게 항복할 것을 종용합니다만, 여개는 그에 대해 답장을 보냈습니다만...그 글이 상당히 길지만 단 한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여개 : 자신있으면 쳐들어 와서 점령해봐.

제갈량이 남정해 반란을 진압하자 여개는 이에 호응했고, 제갈량은 유선에게 상소를 올립니다.

제갈량 : 여개와 왕항은 먼 곳에 있으면서 조정에 오래동안 충성했습니다. 반란군이 영창을 공격했지만, 여개의 힘으로 막아냈으며, 영창의 풍습이 온후하고 정직하니 이것은 여개의 공입니다.

조정은 여개를 운남태수 양천정후의 직위를 받았으며, 왕항 역시 영창태수에 후를 겸직하게 됩니다. 이후 여개는 소수 이족들의 반란에 휘말려 사망하게 됩니다.

촉이 멸망당하기 직전에 촉 조정은 위군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짜냅니다. 황실이 오로 망명하는 것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주장된 것이 남중으로 후퇴하는 것이었는데, 이때 남중으로 후퇴하는 방안을 극력 반대한 사람이 초주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비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이 초주라는 사람입니다. 연의에서는 초주가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함은 하늘의 뜻이다라고 말하다가 황권에게 칼맞을 뻔했는데, 실제로 초주는 199년 정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유장이 항복한 214년에는 아직 열여섯살 정도밖에 안되는 나이였습니다. 따라서 저것 역시 나본씨의 창!작!입니다만...

연의에서 초주가 위에 항복함을 말하자, 북지왕 유심은 대노하여 말합니다.

유심 : 나라가 멸망할 것 같으면 응당 부자와 군신이 성을 나와 적과 싸우다 죽어 선제를 뵙는 것이 정당할 것입니다. 초주같이 썩은 선비는 선제와 무후께서 살아계실 적에는 저 더러운 입을 놀리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더러운 혓바닥을 놀려 나라의 사직을 폐하려 합니다.

정사에서의 초주는 상당히 좋게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인재보는 눈이 대단했던 유비 생전에는 그는 관직에 일체 오르지 못했습니다. 정사에서는 초주를 주군에서 초빙했다고 하지만, 당시 허명이 높았던 허정도 유비가 전혀 임용하려 하지 않다가 법정의 조언을 받아들여 임용했다는 점을 본다면, 실제로는 초주는 오히려 그 능력이 일천한 편이라고 보는게 옳을 것 같습니다. 이후 제갈량이 촉의 전권을 행사할 때도, 그는 권학종사라는 직위 정도에 임명되었고, 장완이 대장군직을 수행할때도 전학종사로 전임했을뿐더러, 유선의 아들이 태자로 세워짐에도 불구하고 중산대부로 직이 올라가지만 여전히 태자를 보좌하고 있을 정도로 그다지 출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담이긴 하지만,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을 지을 때 고려 중신인 이지백이 초주에 대해서 한 말이 있습니다.

이지백 : 어리고 몽매한 놈이 천리 강산을 경솔히 하니, 촉의 문무백관이 초주를 원망하였다.

연의가 원-명 교체기에 나왔다는 것을 판단한다면, 초주와 동시대인들도 후세인들도 초주를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거기다가 항상 촉 말엽에 강유의 무리한 원정으로 국가 재정이 쇠퇴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로 진의 동오 공격때 익주자사였던 왕준이 군사를 이끌면서 원정군 20만 대군의 보급 물자를 감당했다는 점은, 초주가 말하는 국가 재정의 탕진도 근거가 없어집니다. 잘 아시겠지만, 재정이 파탄이 났을 경우 단기간에 그 재정파탄을 복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초주전은 상당히 좋게 쓰여져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진수 때문입니다. 진수는 바로 초주의 직계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의 촉서는 초주의 기록을 바탕으로 씌여졌습니다. 진수의 기록을 전적으로 믿을수 없는 기록이 몇 개 있는데, 그것은 고귀향공 조모에 대한 기록과 초주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두 기록들은 각각 사마씨와 초주에 유리하게 적혀 있는데, 조모의 기록은 그가 처한 위치를 감안하면 그렇다 치더라도, 초주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믿지 못하죠. 저도 논문을 쓸 당시 초주에 대한 기록은 이를 빡빡 갈아가면서 자치통감을 봤거든요.(아오 책값.....이사하면서 자치통감 다 잃어버렸어요)

마지막으로 촉의 멸망 이후 남중의 상황은 상당히 촉 아래 있던 때와는 다르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265년에 서진은 남중 4군을 분리하여 이곳을 영주로 삼고, 영주자사를 보내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284년에 영주자사 직을 없애고 남이교위가 영주를 통치하기 시작하는데, 교위가 군 지휘관을 의미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서진에 상당히 반항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군정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었거든요.

10편에 이르는 칠종칠금의 본편은 일단 끝이 났습니다. 보잘 것 없는 필력 때문에 보시기 어지러웠다면 피지알러 여러분들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단 추석이 지난 뒤에 에필로그를 한편 더 올림으로 칠종칠금을 완전히 끝낼 생각입니다.

제가 예고했듯, 칠종칠금의 에필로그는 상당히 뜨거운 불판이 될거라 예상합니다. 예고를 하자면 제갈량 공명, 희대의 먼치킨이라는 글에 올라온 덧글 중에 Love&Hate님의 제갈량의 북벌이 식상했다~는 데 대한 저 나름대로의 추측을 섞은 글입니다. 사실 이 글은 덧글을 읽던 중에 올리려다가 아무래도 아아아아주 뜨거운 불판이 될거 같아서 아낀 것이거든요.

이르지만, 피지알러 여러분 추석 잘 보내십시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2/09/25 01:53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꺄르르뭥미
12/09/25 08:4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Je ne sais quoi
12/09/25 08:5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2/09/25 08:57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에필로그 기대할게요~^^
담배피는씨
12/09/25 09:3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벌써 끝나다니요~
이렇게된 이상 기산으로 간다!!!
12/09/25 10:05
수정 아이콘
그 동안 잘 읽었습니다.
에필로그 기대되네요 흐흐
물량테란
12/09/25 10:2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연재 더 하실꺼죠? 흐흐..
눈시BBbr
12/09/25 10:42
수정 아이콘
주연급만 봐도 재밌고, 더 파서 조연급 보면 더 재밌고, 더 파면 더 재밌고... 역시 이런 게 삼국진가 보네요 '-'
에필로그 기대하겠습니다 ^^
12/09/25 21:42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그 동안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9771 [일반] 상지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근혜에게 한방 먹이다. [12] 후추통7676 12/10/19 7676 1
39756 [일반] 호족들의 나라(외전)-꿀물!! [9] 후추통5241 12/10/18 5241 0
39750 [일반] 리먼브라더스 인수에 관한 폭로가 나왔습니다. [18] 후추통7692 12/10/18 7692 0
39747 [일반] 박정희 정권 2회나 북한정권에 유신체제 사전통보 [35] 후추통6387 12/10/18 6387 0
39736 [일반] 호족들의 나라 ④ 원술, 파멸의 발걸음 [14] 후추통7334 12/10/17 7334 0
39718 [일반] 제갈량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33] 후추통10517 12/10/16 10517 0
39714 [일반] 정수장학회 매각 시도에 대한 기사 & 메리 리 BBK 사건 기자회견 [69] 후추통6340 12/10/16 6340 1
39706 [일반] 호족들의 나라 ③ 비호의 비행과 추락 [12] 후추통4943 12/10/15 4943 2
39695 [일반] 이진숙-최필립 간 MBC 민영화 녹취록이 공개됐습니다. [35] 후추통7033 12/10/15 7033 0
39626 [일반] 호족들의 나라 ② 강동의 맹호 [8] 후추통5469 12/10/11 5469 0
39622 [일반] 제가 올리는 정치관련 글에 변명하자면... [117] 후추통6480 12/10/11 6480 6
39605 [일반]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의 강원랜드 기부금 강요의혹 [110] 후추통6675 12/10/10 6675 0
39600 [일반] 호족들의 나라 ① 후한의 헬게이트, 황건적의 난 [10] 후추통6411 12/10/10 6411 3
39552 [일반] 호족들의 나라(序) [8] 후추통5584 12/10/08 5584 1
39540 [일반] 핏줄의 전쟁(1)시작 [4] 후추통4916 12/10/07 4916 0
39490 [일반] 정부 "장준하 의문사 조사권한 없다" 결론 [45] 후추통5116 12/10/04 5116 0
39485 [일반] 한족단일민족주의? 중국의 위선. [25] 후추통4989 12/10/04 4989 0
39461 [일반] 연의의 가려진 세력, 이민족 [44] 후추통7600 12/10/02 7600 1
39438 [일반] 칠종칠금(에필로그)-제갈량의 북벌전략(타올라라~ 활활~) [31] 후추통5955 12/10/01 5955 2
39381 [일반] 참으로 대단하신 검찰 [13] 후추통7910 12/09/26 7910 0
39342 [일반] 칠종칠금(끝)-그때 그 사람들 [10] 후추통5092 12/09/25 5092 0
39297 [일반] 칠종칠금(9)-전후처리 [8] 후추통5364 12/09/23 5364 3
39268 [일반] 쌍용차 문제...그냥 넘기기엔 불가능하겠네요. [30] 후추통5045 12/09/21 5045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