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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23 00:10:48
Name 후추통
Subject [일반] 칠종칠금(9)-전후처리
옹개와 주포, 고정이 일으킨 반촉 반란은 시작단계에서 이미 성공하기 힘들었습니다. 옹개와 주포가 친오적 성향을 띠고 오의 후원을 얻었지만, 오 역시 이곳에 직접적 지원이 불가능 했던 것이, 오 내부에서도 촉과의 동맹론이 육손을 비롯한 오 내의 주요 호족들에게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었습니다. (반유비파들의 거두인 여몽이 사망한 이후, 주유-노숙-육손으로 구성된 친유비파(정확히는 용유파-유비를 이용한다)가 전적으로 등장하고 있었죠. 육손이 오의 사성(四姓) 중 한명이고, 손권 역시도 오 내에서 많은 세력을 가진 육손을 자파로 끌어들이기 위해 손책의 딸을 육손과 결혼시킬 정도로 육손의 발언권은 여몽 생전에도 여몽에 못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강릉과 유수구 방면으로 남진해온 위의 침공은 친촉파가 우세를 점하기 충분했습니다.

오가 남중 지방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건, 명분상 촉과의 동맹관계도 있었지만 손책때부터 지속적으로 반오 활동을 벌이던 산월의 존재는 오가 다른 지역에 신경 쓰기엔 역부족이었죠. 오의 국가 체제가 호족 분권적인, 군주이자 황제인 손권마저 대 호족중 한명이라는 위치도 한몫했지만, 지속적인 산월의 반오 궐기는 오가 외부로 힘을 투사하기 힘들었습니다.

남중 내의 대성, 이수들의 지지가 없었다는 점은 옹개의 큰 약점이었습니다. 옹개는 오에서 임명한 영창태수의 직위에 얽매인 나머지 영창군의 최대 대성인 여개의 반발을 샀고, 영창군을 공격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을 옮기면서 전서와 전중 지방의 중립적 대성, 이수들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영역관계와 이해침해에 민감한 중립파 대성, 이수들이 촉으로 붙어버리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거기다 촉에서 보낸 내항도독 이회의 경우는 자신의 숙부이자 촉-남중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찬습을 등에 업었고, 마충은 장가군의 대성, 이수들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에 맞는 통치와 함께 남중의 인심장악을 시도함으로서 반촉 세력들마저 친촉파로 점점 돌아서게 됩니다. 특히 장가군에서 승상을 자처하며 반란을 일으킨 주포는 장가군의 이수들이 촉군에게 군량 제공과 보급로 개척, 길 안내 같은 간접적 지원 뿐만 아니라, 촉군에 가담하여 주포군과 직접 교전하는 직접적 지원까지 제공함으로서 주포가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상호간에 협력적 관계로 상호간을 지원해야했던 옹개-주포와 고정간의 협력이 전혀 없이 상호간에 지원이 일체 없었다는 점도 실패원인이었습니다. 제 추측이긴 하지만 옹개는 오의 인준을 등에 업은 뒤에 고정이 명분이 약하다는 것을 보고 그의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고정은 고정대로 남중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세력을 거느렸지만 자신에 비해 세력이 보잘 것 없는 옹개와 주포가 오의 지원을 받는 것을 경멸했을지도 모릅니다. 상호간에 적대감이 있었지만 촉의 남정에 대해서 서로가 협력해야 함에도 옹개는 옹개대로 영창 공격을 위해서 고정의 영역권을 무시하고 진군했고, 고정은 고정대로 옹개의 이동에 대해서 부하들의 반감을 관리하지 않다가 결국 서로간의 전투에 의해 힘이 붕괴되고 때마침 남진해온 제갈량의 촉 본진에 의해 방어진이 붕괴되고 옹개는 고정의 병사에게 살해당하고, 고정은 고정대로 제갈량에 붙잡혀 처형당하는 어이없는 말로를 맞고 말았으니까요. 한마디로 남중의 반란 세력은 서로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투닥거리다가 촉군에게 몽땅 박살난 셈이었죠.

맹획이 제갈량에게 항복하고 남중 반란이 진압된 이후, 제갈량은 직접 남중에 대한 전후처리에 들어갑니다. 제갈량은 남중을 제후국처럼 종주국 관계가 아닌, 촉의 군현으로 편입시킬 생각이었습니다. 북벌을 위해서는 전투병력의 원활한 충원이 필요했고, 후방에서 보급관계를 책임져야 할 지역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제갈량 입장에서는 북벌전이 단기전으로 끝날 전쟁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장기간의 전쟁에 따른 물자 충당이 백성들에 대한 강제 징발에 이를 경우, 민심이반과 함께 국내의 전체적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백성과 나라에 심각한 타격을 줄 방법을 피해야 했습니다.

제갈량은 먼저 옹개, 주포, 고정을 따라 반란에 가담했던 각 지역의 반란의 잔여 세력에 대한 정리작업에 나섭니다. 반란을 일으킨 주도세력인 옹개와 주포, 고정은 이미 일족과 함께 처형당한 상황. 물론 그의 추종세력들 역시도 모조리 죽이는 것이 통례긴 하죠. 옹개의 세력을 이어받아 제갈량에게 항복한 맹획은 예외로 치더라도 고정이 가진 세력은 엄청났죠. 하지만 제갈량은 이 인원들을 전부 처형시키지 않습니다.

전 제갈량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맨 처음으로 말하는 것이, 한비자와 상앙보다 더 강력한 법가적 통치를 하는 법가의 화신이다, 라고 평가합니다. 제갈량 전에도 그는 원수라 해도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주었고, 가까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죄를 범하면 반드시 벌주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이 정확하고 명명백백하면 행정이나 군사 면에 있어서 이를 지배하기가 상당히 쉽고, 이러한 지배를 받아들이는 아랫사람들은 이에 납득하기 마련입니다. 제갈량이 남은 반란군을 처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단순히 불쌍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법률적 측면에서 보면 몽땅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야 하죠.

제갈량은 이들을 처형하지 않고, 반란군 잔여세력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전부 성도 인근으로 사민시킵니다. 그 수가 무려 1만 가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이 1만 가에 달하는 반란 잔여 세력 중에서 젊고 전투력이 높은 이들은 병사로 차출하여 오부군이라는 부대를 편성하여 북벌군 주력으로 훈련시키고, 늙거나 전투력이 약한 이들은 둔전병으로 투입시켜 이곳에서 나는 생산물로 북벌군의 보급을 충당했습니다. 이 둔전에서 나는 군량과 보급품의 양이 어느정도인지는 어느 사료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만, 제갈량이 보급문제에서 곤란을 겪은 것은 운송로의 문제였지 보급이 적어서는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촉의 백성들이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지 않았고, 이후 촉의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후주전에 유선이 등애에게 바친 촉 전체의 사민부가 민호가 28만임에도 불구하고 병력이 10만 2천명에 미곡이 40여만 섬, 금은이 4천근, 4가지 품목의 비단이 각기 20만필해서 총 80여만 필에 달한다는 점은, 촉의 경제력이 어마어마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촉의 경제적 발전을 만든 사람은 다름아닌 제갈량이었죠. 만일 백성들이 수차례의 북벌에 대한 보급물자를 부담했어야 했다면, 제한적 지역의 생산에만 의존해야 하는 촉이 단기간에 경제력 고갈로 자멸하는게 지당하지만, 위의 전면적 침공에도 장기간 버티면서 오히려 촉의 멸망 전까지 위에 대해서 공격적 위치였다는 점은 촉의 탄탄한 경제력을 반증하고 있죠.)
제갈량은 기존 익주군(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익주군=익주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익주의 치소가 있는 익주의 중심 지역은 광한군과 촉군이고, 익주군은 유언이 남중에 설치한 군이기 때문에 글자만 똑같지 실제로는 서로 다른 지역입니다.)을 폐지합니다. 익주는 성도의 다른 이름이었거든요. 따라서 이러한 지역명적 혼동을 방지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익주군이라는 명칭을 없애고 건녕군으로 이름을 고친 뒤에 그 중심지역을 전지 지역에서 미현으로 옮긴 후, 이 건녕군 미현에 오부군을 관리하는 오부도위를 임명해 보냄으로서 건녕군이 남중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오부군이 북벌군의 주력인 만큼, 오부를 통솔하는 오부도위는 촉의 주력군 중 하나를 이끄는 사람이었습니다. 1차 북벌 당시 마속, 장휴, 이성이 가정의 패배로 처벌당하는 와중에, 그 전에 오부군을 관리하던 황습이 오부군의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왕평이 오부군을 지휘하게 됩니다.

제갈량은 또한 이 지역을 기존의 건녕, 영창, 주제의 3군의 영역을 재조정해서 운남군과 흥고군을 신설하여 5개 군으로 늘리고, 그 전에 분리되어 있던 월수군과 장가군을 남중으로 편입시켜 총 7개군으로 남중을 재편합니다. 그리고 이곳의 책임자로서 건녕군에는 이회를, 운남군에는 여개를, 영창군에는 영창군승 왕항을 승진시켜 보내고, 기존에 장가군을 잘 통치한 마충은 그대로 장가군으로 보내서 각 지역을 다스리도록 합니다. 이러한 행정지역의 통합, 세분화는 아마도 각 지역의 대성, 이수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조정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이전에도 이 지역을 군현화하려는 시도가 한나라때도 있었는데, 각 지역의 대성, 이수들이 극렬히 반발했던 것과 달리 제갈량의 행정구역 개편 이후 일부 불만분자들이 일으킨 반란이 일어나면 이 지역의 관리들이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갈량이 대성, 이수들을 각 지역의 토관으로 임용하고, 촉 조정에서는 이곳에 연관이 있거나 인망이 높은 마충, 이회, 장억 등을 파견해서 이들을 감찰관으로 삼았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제갈량은 이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항복한 맹획 같은 인물들을 이 지역에서 분리시켜 촉 정권에 흡수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유비의 방식이었는데, 유비가 촉을 장악한 단계에서 유장의 유신, 촉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초 등의 세력가들을 유비의 통치체제 안으로 흡수 시킨 방식이었습니다. 제갈량이 유비의 이러한 방식을 그대로 써먹은 것을 보면, 유비의 이러한 흡수정책이 매우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맹획은 어사중승, 맹획의 일가로 추정되는 맹염은 보국장군, 이회의 숙부이자 남중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찬습은 영군장군으로 임명하여 조정 내로 흡수합니다.(여기서 참 재밌는 인물이 찬습인데, 찬습은 유장 시절에 건녕현령을 지내다가 파면당한 이후 제갈량에 의해 영군장군 직에 임명되기 전까지 어떠한 관직도 지내지 않았지만, 이회가 찬습의 조카라는 것 때문에 이에 연루되어 사직당할 위기에 처하자 당시 건녕군 태수인 동화가 이회의 사직을 거부하고 오히려 익주로 파견을 보냈습니다. 제갈량과 함께 유비의 촉 점유 이후 법령 정비와 통치체제를 확립하는데 강력한 법령체제를 구축한 동화가 찬습을 고려해 이회를 파면시키지 않은 것을 보면, 찬습의 세력이 어느정도 인지를 알만 합니다.)

이러한 제갈량의 깔끔한 전후처리는 이후 촉 멸망까지 이 지역이 촉의 군현으로 통합되어 이렇다 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촉의 남종 복속은 이후 촉과 위의 국경지대 일대에 살던 강족과 저족 뿐만이 아니라, 익주 외곽에서 나름의 영역을 가지고 살던 이민족들이 촉에 복종하고 매해 세공을 바치게 됩니다. 또한 후방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제갈량과 촉이 북의 위 쪽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게 됩니다.

이제 진짜로 두 편안에 칠종칠금이 완결될거 같습니다. 마지막 편은 아무래도 피지알러 여러분이 삼겹살 구워먹을 정도의 불판이 될 지도 모를 글이 올라올지도 모르겠군요. 잘 달궈지면 저도 거기다 고기나 구워 먹어볼까 합니다. 후후후...

뱀발1. 제가 조비보다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싫어하는 ‘인간’은 황호가 아닙니다. 왜냐면 전 황호나 잠혼, 위충현 같이 나라 말아먹은 환관들은 인간으로 안보거든요. 아니, 인간 취급 하는 것이 불쾌하거든요.
뱀발2. 최근 안철수 교수님과 문재인 이사장님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와서 좋습니다. 상호간에 대한 글이 활발해질수록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고 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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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라고
12/09/23 01:07
수정 아이콘
오우 올라왔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
혹시 이때 관련해서 상세한 지도는 없나요? 검색을 조금 해보아도 위촉오 분열때의 지도한장만 딱 나오고
그마저도 곳곳의 지역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있는게 별로 없는것 같아요.
사실 위촉오 시대에 행정구역 제도자체를 잘 몰라서... 보면 자사와 태수간의 위치도 좀 궁금합니다.
마등은 서량태수고 나머지 서주자사 도겸 등 태수와 자사가 각각 어떤 행정구와 맞물리는지 잘 모르겠어요.
유비가 평원의 현령이었는데(맞나?) 현은 서주 연주 기주등의 주 바로 밑의 행정구인지 아니면 주 밑에 태수직이 임명되는
구역이 있는건지 모르겠어요.
글 정말 잘 읽고있습니다. 또한 이때 당시의 지리나 행정구역에 잘 아실것 같은데 조금만 설명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후추통
12/09/23 01:24
수정 아이콘
주목>주자사>태수>현령>현승 순으로 되있습니다. 물론 태수는 각 군의 최고책임자고 주자사는 각 주의 최고행정책임자지만, 정확히 말하면 군 지휘권한 없이 각 지역 태수, 현령을 감찰하는 업무만 있습니다. 칠종칠금 1편에 주목에 대한 설명과 설치 이유가 있으니 참고하시구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gb_shap&logNo=55210369

한반도 쪽이 좀 걸리긴 하지만 후한의 각주 행정구역은 저 지도가 맞습니다.
나그네라고
12/09/23 01:3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근데 아직도 조금 어려운게 있어요.
1. 서량(더 기억이 안나네요 비슷한 부류가)등의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지역은 행정상 어떻게 처리가 되죠?
2. 조조가 위공으로 불리는 것이나 장비가 연땅에서 나왔다고 하는것 등등은 예전 춘추전국시대때부터 이어져오던 지방을 부르던 방식이
그대로 이어진 것인가요?
3. 우리나라도 도(특별시)-시(구,군)-읍,면(동)-리 등으로 정식으로 나누지만, 호남지방 영남지방 관동지방 등이있죠
이런거에 대응하는게 혹시 서량 등인가요? 위땅의 누구다, 연땅의 장사다 이런건 우리나라로 치면 "난 삼한의 누구다" 뭐 이런정도...

행정지역 나누는게 은근히 복잡하네요. 법적인거 하나로만 딱 정해져 있으면 좋은데 시대가 가면서 현시대에 법적으로 전해진것과
과거것이 마구 섞여가지고... 삼국지 읽으면서 요부분을 자세히 알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했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군사의 수에 관련해서도 잘 아시나요? 세력이 크고작고로만 나오는데 구체(대략)적인 군사의 수만 알아도 더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는게 군사 수로만 판가름나진 않지만, 어릴때부터 "백만대군" 등등의 표현을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요.
유치한 마음이지만 궁금합니다.
12/09/23 19:02
수정 아이콘
1. 서쪽의 양주는 행정구역상 시기에 따라 9군~16군까지 나뉘었고 삼국시대엔 10군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임등에는 무위, 서평군 등이 나오죠. 보통 군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지도에 다 표기하지 않는 편입니다.
2. 전한때는 봉건제와 군현제가 합쳐진 군국제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각 국은 전국시대때의 국을 기준으로 왕을 임명했죠. 후한때는 군현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국이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3. 굳이 비교하자면 백제땅의 누구다, 고구려땅의 누구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추통
12/09/23 01:55
수정 아이콘
1. 아래 지도중 양주라고 표기된 지역중에 서쪽, 그러니까 주천, 무위, 서평, 금성군이 포함된 지역이 서량입니다. 일반적으로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행정기관이 없다고 할수 없습니다. 각 세세한 현까지 기재할 경우 지도는 한마디로 걸레가 되기 십상이거든요;;;
2. 이건 군현제와 군국제의 차이인데... 일반적으로 전한의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군국제, 즉 각 군에는 조정의 태수를 보내고 봉국을 설정하여 종친이나 공신을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각 국은 전국시대 국가에 비해서 임명이 되지요. 이건 따로 글을 올려야 되겠군요; 설명하려면 진짜 한도 끝도 없는지라..
3. 뭐..관중,관서,관동이나 형양 등등...끝이 없습니다;;

사실 행정지역은 고대부터 쭉 내려오기가 불가능 한 것이, 국가가 교체 되고 새로 성립되면서 환경의 변화나 정치적 이유등으로 행정구역이 조정되게 되죠. 지금의 마창진 통합처럼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혁명적으로 확 변하진 않습니다. 세세한 부분에서 통합 또는 분리가 되도 대형 행정구역을 한꺼번에 통합하거나 그러면 혼란이 오기 마련이니까요.

병력수는 연의처럼 이릉대전에 출진한 촉군의 수가 75만이다 그러는데...실질적으로는 이것을 아 어디에 몇만 몇천이 딱 나갔다..라고 할수가 없습니다. 당시에 병호가 설정되어 있는데...병호는 병사의 수가 아닌 그 병사가 거느린 일가 식솔을 다 합치는 경우가 많고, 중국 기록은 대부분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갔다, 패해서 전멸하고 갔다..라는 기록이 많거든요.

동양 고대~중세 전쟁사가 정말 사람 박터지는게 당시의 전투기록이 세세하게 기록되는 전투가 별로 없습니다.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제압했다. 언제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격파하고 돌아왔다..라고 상당히 짧고 간결하게 기록되는게 많거든요.

저도 칠종칠금의 원본인 졸업논문 쓸때 전투기록등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가지 사료(연의는 제외했습니다.)를 다 찾아봐도 정말 성질 날 정도로 전투에 대한 기록이 없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눈시BB님이 대단하신 거죠 -0-;;
Je ne sais quoi
12/09/23 08:2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12/09/23 09:0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잠혼은 황호랑 라이벌 매치 붙여줄라고 심영 아닌 심영이 된 슬픈 전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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