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11/28 17:22:29
Name Fig.1
Subject [일반] [역사] 최초가 아니면 최초를 사면 되지 / BIC의 역사
nWgrk98.png
- BIC 볼펜, 다들 한번 쯤은 써본 적이 있을 거예요. 저렴하고 괜찮은 성능으로 어디에서나 구비해놓고 쓰기 편한 볼펜이죠. 해외버젼 모나미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렇게 저렴하고 친숙한 물건이 볼펜의 최초의 브랜드라고 한다면 조금은 달라보이지 않나요? 정확히 말하면 BIC이 볼펜 최초의 브랜드를 인수한 거긴 하지만요. 하지만 아쉽게도 BIC는 2021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라이터는 2022년 재진입)

- BIC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볼펜의 탄생에서 부터 봐야 하는데요. 최초의 상업용 볼펜은 라슬로 비로Bíró László József 가 발명합니다. 그럼 비로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보죠.



Fig.1 볼펜의 탄생
hBZWmkh.png
[Figure.1 라즐로 비로]

1899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라슬로 비로는 우여곡절인 많은 생을 보냈습니다. 라슬로 비로는 1차 세계대전 후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는데, 최면술에 빠져 대학을 중퇴합니다. 이후 보험 영업사원, 도서 출판업, 석유 회사 직원으로도 일을 했죠. 한 번은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기 위해 운전을 배우는데, 기어를 바꿀 때마다 클러치를 작동시키느라 애를 먹었고 결국(?) 자동 기어를 개발합니다. 이 자동 기어로 제너럴 모터스와 5년간 매달 100달러씩 지급받는 계약을 맺었죠. 하지만 비로의 자동 기어를 단 자동차는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비로는 주간 신문지의 기자로 일합니다. 어느 날 신문사의 인쇄실에 갔다가 신문에 사용되는 잉크가 빠르게 마르고 얼룩이 번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로는 이때부터 인쇄기 롤러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펜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죠. 문제는 원통형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인데, 실제로 펜은 어떤 방향으로도 굴러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길에서 구슬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다가 물웅덩이를 지나간 구슬이 젖은 자국을 남기면서 지나가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죠.

bC9dFiH.png
[Figure.2 존 라우드의 볼펜 특허]

사실 공을 쓰는 아이디어는 비로만 떠올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볼펜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가죽 가공업자인 존 라우드John Loud 인데요. 그는 가죽에 만년필로 글씨가 잘 써지지 않자 1888년 금속 공을 넣은 펜의 특허를 냅니다. 존 라우드의 펜은 가죽 위에서 글을 적을 수 있었지만, 넓은 펜촉의 폭 때문에 글씨를 쓸 때 잉크가 새는 문제가 있어 상용화되지는 못했죠.

비로는 존 라우드 볼펜의 문제를 개량하여 1931년 부다페스트 국제 박람회에서 최초로 자신의 볼펜을 선보이고 1938년 파리에서 특허를 냅니다.



Fig.2 비로의 회사, 세 명의 회사가 되다

비로는 볼펜을 생산하기 위한 자금을 얻기 위해 여러 투자자를 만납니다. 당시 비로의 시범용 제품은 하자가 많았는데요. 그는 투자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테이블 밑에서 펜을 시험해 보고 글씨가 나오는 펜이 있으면 보여주고, 없으면 샘플을 가져오지 못했다며 둘러대곤 했죠. 이윽고 비로는 길렘르모 빅Guillermo Vig 이라는 은행가를 만나 발칸 지역에서 연간 4만 자루가량의 판매 거래에 합의합니다.

X0RcPtS.jpg
[Figure.3 현재 66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에터펜 ⓒwww.penpartsstore.com]

1942년 비로는 루이스 랑Luis Lang 과 비로 SRL을 설립해 드디어 에터펜Eterpen 을 생산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잉크가 말썽이었습니다. 잉크가 굳어 글씨를 쓸 수 없게 되는 현상이 계속해서 나타난 것이죠. 고객들은 반품하러 왔고, 얼마 되지 않아 자본금은 동나버립니다.

이윽고 비로의 펜에 감명받은 헨리 조지 마틴Henry George Martin 이 투자자를 모아 회사 지분의 51%를 사들입니다. 마틴은 미국의 에버샤프와 에버하드 파버와 새로 동업 계약을 맺고, 1944년에는 영국의 항공기 설계자 프레더릭 마일스Frederick George Miles 와 동업하여 마일스-마틴 펜 회사를 세웠습니다. 이로써 발명가 비로, 비즈니스맨 마틴, 공학자 마일스 세 명의 회사가 된 것이죠.

wWuVYjZ.png
[Figure.4 비로 볼펜 광고 ⓒtelegraph.co.uk]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으로 마일스는 영국 공군에게 볼펜을 공급하는 허가를 받아 제품을 개발합니다. 펜촉으로 잉크를 끌어오기 위해 중력만이 아닌 모세관 현상도 활용하고, 볼과 펜의 틈을 최대한 미세하게 만듭니다. 이 개량된 디자인으로 1945년 영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비로라는 이름의 볼펜을 출시하죠. 비로 볼펜은 ‘잉크를 다시 넣지 않아도 글쓰기 분량에 따라 6개월 이상 쓸 수 있다’는 광고와 함께 판매되었고,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Fig.3 볼펜 회의론자가 BIC을 설립한 이유
HbHxCgE.png>
[Figure.5 마르셀 비슈 ⓒchateaudeferrand.com]

1944년 마르셀 비슈Marcel Bich 와 에두아르 부파르Édouard Buffard 는 펜 홀더와 필통 등을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비슈는 초창기 볼펜의 신뢰할 수 없는 품질을 보고 볼펜에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946년 손수레를 보다가 손수레의 바퀴가 물건 운반을 더 쉽게 해주는 것처럼 공이 글씨를 더 유동적으로 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깨닫고 볼펜의 가능성을 이해합니다.

마르셀 비슈는 라즐로 비로의 볼펜 특허를 2백만 달러에 구입하고, 스위스 시계 제조 도구를 이용해 펜 끝 부분에 스테인리스 스틸 볼을 생산하는 제조 공정을 고안해 1950년 빅 크리스탈 볼펜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비슈는 1953년 소시에테 빅Société Bic 을 설립합니다.



Fig.4 BIC vs 마일스-마틴
마르셀 비슈가 빅 크리스탈 볼펜을 출시하자 마일스-마틴의 회사(당시 회사 이름은 비로-스완)는 1952년 마르셀 비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재판에서 진 마르셀 비슈는 마틴과 로열티 협상을 맺어 모든 펜의 6%, 모든 리필심의 10%를 비로-스완 측에 주기로 합의하죠.

마르셀 비슈는 로열티를 계속 주는 한편 마일스-마틴 회사의 지분을 계속해서 사들입니다. 그리고 결국 1957년 Bic이 비로-스완 사를 인수하죠. 1964년에는 헨리 마틴의 아들과 마르셀 비슈의 딸이 결혼하면서 두 회사는 더더욱 한 몸이 됩니다.



Fig.5 레이놀즈가 말아놓은 인식, BIC이 바로 잡다

1970년까지 Bic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페인에 이어 남미와 북미,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전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합니다. BIC이 진출 시 가장 고전을 했던 시장은 북미였는데요. 이는 미국 내에서 볼펜은 품질이 안 좋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죠.

y35qztT.png
[Figure.6 레이놀즈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인데 누구가 레이놀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reynolds-pens.com]

여기에는 다시 빅이 인수하기 전 비로의 회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1940년대 초 미국의 사업가 밀턴 레이놀즈Milton Reynolds 가 비로 볼펜의 소문을 듣고 그 펜의 미국 판권을 사려고 했거든요. 하지만 레이놀즈는 판권을 얻지 못하자 1945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춰 비로 볼펜을 역설계해 직접 제조한 레이놀즈 인터내셔널 펜을 출시합니다. 이는 미국에서 최초로 판매된 볼펜이었죠. 레이놀즈 펜은 출시날 오픈런에만 5,000명이 몰리고, 첫 날 1만 자루, 석 달 안에 100만 자루가 넘게 팔렸죠.

하지만 레이놀즈 인터내셔널 펜은 서둘러 제작되느랴 문제가 많았습니다. 잉크는 종이 위에 엉키고,햇빛에 색이 바래고, 종이에 스며들곤 했죠. 게다가 잉크가 중간에 나오지 않고, 따뜻해지면 잉크가 세기도 했습니다. 레이놀즈는 광고에서 2년 이내 고장나면 환불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처음 여덟 달 동안만 10만 4643자루를 교환해주었죠. 이 때문에 미국에서의 볼펜의 평판은 좋지 않았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Figure.8 볼펜을 총으로 쏴버리는 BIC의 광고]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에 진출한 BIC은 1960년대 초 “First Time, Every Time”이라는 슬로건으로 공격적인 TV 광고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BIC 특유의 저렴한 가격과 믿을만한 성능을 강조하는 광고로 BIC 펜으로 드릴을 뚫고, 총을 쏘고, 폭발을 일으킨 뒤에도 펜이 잘 써지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었죠. 이 광고 덕분인지 1967년 BIC은 미국 최대의 펜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합니다.



Fig.6 볼펜만 잘 만드는 게 아닙니다

hG0wIvh.png
[Figure.8 최초의 멀티펜 ⓒspeedymarquee.com]

1970년에는 4-Colour 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멀티펜을 출시해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죠.

hwqX0ED.png
[Figure.9 BIC의 라이터ⓒcorporate.bic.com]


뿐만 아니라 볼펜 외의 문구류로의 확장, 스포츠, 라이터, 면도기 시장으로 사업 다각화를 이루어 냅니다. 1958년에는 만년필 최초의 브랜드인 워터맨 펜 컴퍼니를 인수하기도 하고, 1973년에 시작한 라이터는 1회용 라이터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1975년 여성 제모용이라는 블루오션 시장을 노리면서 시작한 면도기는 80년대에 시장의 22.4%를 차지합니다.

WwstWrU.png
[Figure.10 70주년 Bic 볼펜 크리스탈 Re'New]

BIC 제품의 특징은 한마디로 가성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에게 신뢰받는 고품질의 안전하고 저렴한 필수품을 만든다는 BIC은 미션에 근거한 것이죠. 이런 BIC도 2021년 70주년을 맞이하여 고급 제품을 출시하는데요. 메탈로 되어있는 볼펜으로 고급에 걸맞는 가격 18,000원이죠.

BIC의 제품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에는 크리스털 펜이 뉴욕 현대미술관의 영구 소장품으로, 2006년에는 크리스털 펜, 포켓 라이터, 면도기 가 파리 퐁피두 센터 상설 컬렉션으로 선정되었습니다.



BIC 브랜드의 역사를 요약하자면,
1. 볼펜은 신문지 기사로 일하던 라슬로 비로가 신문사 인쇄실과 구슬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듭니다.
2. 비로는 1942년 볼펜을 출시하지만, 품질이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후 사업가 헨리 조지 마틴과 공학자 프레더릭 마일스와 동업하여 1945년 영국에서 개량된 비로 볼펜을 출시하죠.
3. 한편 비로 마르셀 비슈는 라즐로 비로의 볼펜 특허를 2백만 달러에 구입하고, 디자인은 개선해 1950년 빅 크리스탈 볼펜을 생산하고 BIC을 설립합니다.
4. 마르셀 비슈가 빅 크리스탈 볼펜을 출시하자 마일스-마틴의 회사는 마르셀 비슈를 상대로 소송을 겁니다. 마르셀 비슈는 재판에서 져 로열티를 주지만, 결국 마일스-마틴 회사의 지분을 사들여 인수합니다.
5. 미국에서는 품질이 좋지 않은 레이놀즈 인터내셔널 볼펜 때문에 볼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BIC은 공격적인 TV 마케팅을 벌여 미국 최대의 펜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합니다.
6. 1970년대 이후 BIC은 가성비 좋은 제품을 통해 라이터, 면도기 시장에서도 성공합니다.



Reference.
- 제임스 워드. (2015). 문구의 모험. 어크로스
- BIC 홈페이지. URL : https://corporate.bic.com/en-US/group/our-story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23/11/28 19:23
수정 아이콘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3/11/29 09:0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3/11/28 23:41
수정 아이콘
BiC만 쓰는데 이런 역사가..
23/11/29 09:09
수정 아이콘
요새 BIC 오프라인에서는 구하기 은근 어렵던데 어디서 구매하시나요?
23/11/29 15:10
수정 아이콘
다이소에서 2년전에 사놓은거 쓰고 있어요. 저는 필기를 많이 안해서.. 그런데 그해에 바로 철수했나 보군요 ㅠ
몬테레이
23/12/02 13:17
수정 아이콘
문구점에 가면 늘 고르는 볼펜인데, 철수했다 하니 볼펜을 살 게 없더군요. 비슷한 스타일의 볼펜이 없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363 [정치] 메가시티의 좌초, 엑스포 유치 실패. 동남권의 다음은 무엇인가 [58] 사람되고싶다13591 23/11/30 13591 0
100362 [일반] 나의 보드게임 제작 일지 - 마지막 [10] bongfka6421 23/11/30 6421 12
100361 [정치] 부산이 위험한 진짜 이유 5가지 [43] Dizziness16691 23/11/29 16691 0
100360 [정치] 4년 만에 울산 시장 선거개입 사건의 1심 선고가 나왔습니다 [140] 아이스베어14997 23/11/30 14997 0
100359 [일반] 영화 괴물을 보고 왔습니다 [9] Goodspeed7502 23/11/30 7502 4
100357 [일반] 어그로, 신고, 벌점- 내 눈에는 살아남은 댓글/게시글만 보이는 것인가? [90] kien10579 23/11/29 10579 18
100356 [정치] 이번 뿌리 사태 관련 정치권 발언들 외 [55] TAEYEON12637 23/11/29 12637 0
100355 [정치] 尹대통령, 엑스포 유치 불발에 "예측 빗나간듯…전부 저의 부족" [182] 덴드로븀19851 23/11/29 19851 0
100354 [일반] 게임계 그 사건이 불러온 스노우볼 [173] 겨울삼각형21541 23/11/29 21541 38
100351 [일반] 찰리 멍거 향년 99세 별세, 주식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24] 김유라8578 23/11/29 8578 5
100349 [정치] 2030 엑스포 개최지 1차 투표에서 사우디로 결정. 사우디 119, 한국 29, 로마 17 [226] 매번같은20004 23/11/29 20004 0
100348 [정치]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가 국힘의 "혁신 노력"을 공개적으로 칭찬했네요. [39] 홍철12609 23/11/29 12609 0
100347 [일반] I'm still fighting it. [9] aDayInTheLife8106 23/11/28 8106 9
100346 [일반] 나는 솔로, 주호민, 이기적 유전자, 서울의 봄, 그리고 내로남불의 효용에 관하여... [38] ipa12629 23/11/28 12629 36
100345 [일반] [역사] 최초가 아니면 최초를 사면 되지 / BIC의 역사 [6] Fig.19805 23/11/28 9805 17
100344 [정치] 성남시 백현동에 세워진 이완용 생가 터 비석 [96] Croove13961 23/11/28 13961 0
100343 [일반] 구미호 ipa 리뉴얼 소식을 이제야 접했습니다...흑흑흑 [22] Pygmalion7769 23/11/27 7769 1
100342 [일반] 주호민 사건 녹취록 공개 후, 재판부의 발언 [152] 닭강정17904 23/11/28 17904 1
100341 [정치] 2030 엑스포 발표 d-1 부산의 득표 수는? [85] 사브리자나16342 23/11/27 16342 0
100340 [일반] 강간 피해자는 강간범에게 양육비를 줘야할까? [68] 칭찬합시다.13554 23/11/27 13554 1
100339 [정치] 청년 10명 중 8명 미혼…"군대는 누가" 30년 뒤 인구 반토막 [277] 덴드로븀18953 23/11/27 18953 0
100337 [일반] 황정민 이라는 배우는 참 [46] 욕망의진화15455 23/11/27 15455 3
100336 [정치] 한국의 상속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87] 49K골드14226 23/11/27 14226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