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욕이 심한거 아니냐는 글을 싸지른 이후에 처음 글을 쓰는군요. 그 당시에 너무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부끄러운 글을 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만에 멘붕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침착해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왔고, 여러가지 합리화도 해오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도 슬프긴 합니다. 새 대통령 당선자를 너무나 싫어하기 때문에요.
여튼 이 글을 빌어 (대체로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그 당시 글로 불쾌감을 느꼈을 분들에게 사과하고, 특히 흥분해서 저격하는 모양새가 되었던 마바라님께 특히 사과합니다. 당시 열흘 정도 선게에 들어오질 않고 나중에 다시 봤을 때 제 글도 참 억지춘향이었고, 마바라님의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니었음에도 개인적으로 곡해한 면이 많았습니다.
안철수 현상이 이번 선거 내내 화두였고, 결국 그냥 사그러드는 바람이 되었습니다. 이 바람의 잠재력이 현재 얼마일지 앞으로 얼마나 다시 커질지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안철수로 단일화가 되었으면 하는 가정은 이제 다같이 접어두었으면 합니다. 현재의 선거로 드러난 딱 그만큼만 분석하는 것이 이번에 민주당에게나 안철수에게나 더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여러 가지 분석도 내놓으시고, 다들 일리있는 의견이었습니다. 연령대 인구의 이동이라든가, 민주당의 역량, 박정희의 향수 뭐 딱 이런 선에서 평가하고 앞으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저의 정치 성향은 성향 분석이니 뭐니 이런 걸 할 때 극좌에 가까운 걸로 나오더군요. 직업은 극보수성향의 집단이고, 개인적으로 리버럴리스트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애너키스트적인 사고 방식도 꽤 가진 걸 생각하면 극좌에 가까운 게 맞는 걸 수도 있고, 성향 분석이나 뭐 이런게 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고, 우리 나라 현실이 대단히 우편향일 수도 있겠습니다.
여하간, 제가 안철수의 등장 때부터 꾸준히 안철수 지지자가 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우리 나라 정치 지형이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으로 구성되려면 우선 건강한 보수 세력이 자리잡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도 가능할 뿐더러 실제적으로도 여러 세력에게 동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좌파 역시 합리적 보수의 우산 아래서 잘 클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우리 나라 현실에서는요. 안철수는 그런 건강한 보수 세력의 상징으로써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지요.
전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를 지지하지만, 이번에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정말 바라지 않았습니다. 설사 당선되더라도 건강한 보수가 세력을 제대로 형성하기도 전에 무너져내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철저한 반박근혜였던 저는 문재인을 지지하였고 어쨌건 결과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제 마음의 준비는 박근혜가 되더라도 박정희 신화를 이 마지막 5년에서 종결지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것이 신화의 파괴가 될지, 더 강력한 신화로 남는 단순한 마지막이 될지는 모르지만. 뭐 전 새 대통령되실 분이 적어도 중도층에서 신화를 파괴시키고, 궁극적으로 건강한 보수세력이 꿈틀거릴 토대를 마련하다 못해 큰 판을 벌여주실 자질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때 타이밍의 귀재 안철수가 적절히 등장하고 세를 규합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총선은 오히려 다행일 정도로 상당히 뒤이기도 하구요.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하루 동안 큰 멘붕을 했던 이유가 이번 선거 결과로 여실히 드러난 인구의 이동인데, 다음 선거의 50대는 과연 어느 정도로 보수화가 될 것인가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새 대통령이 잘 해서 넘어가는 거면, 그것 나름대로 더 보수화가 가속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는 또 어떻게 될지 여러가지로 5년 뒤가 궁금합니다.
이게 일본의 정치구도로 가는 시발점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건강한 보수를 탄생시킬 새로운 기회가 될지, 지금 대선 결과보다 앞으로의 5년이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문재인이 되었더라도 풀어야할 숙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단순히 당선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죠. 어떻게든 대한민국에 꼬여진 정치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박근혜 대통령 하에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지 몰라도 가장 확실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50대 초반 대 40대 후반으로 모아진 현 대결구도를 유지시키면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느냐. 그 저력을 가진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보호하고, 가공하고, 다시 키워낼 것인가, 아님 다시 새로운 대안을 등장시킬 수 있을 것이냐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가 단일화되었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은 무의미할 뿐만 하니라 소모적이며 퇴행적이죠.
앞으로 5년 동안, 새 대통령은 어떤 정치를 펼칠지, 새누리당은 어떤 식으로 나올지, 그에 대응하여 민주당은 어떤 쇄신을 이뤄낼지, 안철수는 어떤 구상을 현실정치에서 펼쳐보일지 무거운 마음이지만 기대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