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베를린에서 한반도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은 무척 적절하고, 또 중요합니다.
먼저 그 내용을 순서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제목은 제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1. 북한에 대한 경고
-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대단히 잘못된 선택.
-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를 바란다.
-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다.
2. 대한민국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1) 오로지 평화
- 대한민국은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인위적인 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자연스레 될 일이다.
(2)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3) 항구적인 평화체제
- 정전협정을 종전협정, 그리고 평화협정으로. 평화를 제도화해야 한다.
(4) 한반도의 새로운 경제지도
(5) 비정치적 교류 선행.
3. 대한민국은 북한에게 다음을 제안한다
(1) 인도주의적 문제의 해결 (이산가족 문제)
(2)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할 것
(3) 군사분계선에서의 모든 종류의 적대행위 중단
(4) 평화와 대화를 위한 접촉 (지금처럼 당국간에 아무런 대화채널이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
저는 상기 일련의 항목이 매우 중요하고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먼저 국제적인 상황을 봅시다.
지금 한반도 상황은 사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있고, 이를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미중간의 패권경쟁이라는 맥락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간의 이해관계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어서 충돌하기 보다는 변경의 휘발점(Flashpoints)으로 인해 양 강대국이 오히려 자국의 실질적인 이익과는 무관하게 빨려들어갈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사실ㅜ요즘 연구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도 그러한 양상을 보였는데,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물론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이들을 전쟁으로 몰고간 '불꽃'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였습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그리고 (독일의 지원을 받는) 오스트리아의 제국주의자들의 야심이 오히려 독일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을 끌어당긴 것이죠.
한반도 문제가 그러한 양상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이 상황을 오판하고 자기 유리한대로만 해석해서 긴장을 계속 극한으로 몰고가게 되면 미국과 중국이 자기나라의 실질적인 이익과는 무관하게 직접적으로 충동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독일과 러시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한반도의 긴장이 '국제전'의 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이게 1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북한과의 평화적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북한이 예뻐서가 아니라, 강대국간의 충돌을 막기 위한 방파제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미국과의 대결을 추구하는 중국의 매파와 중국과의 대결을 추구하는 미국의 매파들에게 빌미를 주어선 안 됩니다. 사실 미국과 중국에는 매파 못지 않게 양국간의 협력을 중시하는 협력파도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는 역설적이게도 굉장히 서로 얽혀있어서, 여기서 이득보는 세력이 상당히 많습니다. 당장 시진핑 주석의 딸을 포함한 중국 공산당 간부의 많은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고, 많은 미국의 경제인들이 중국과의 무역과 투자에서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미국과 중국간의 직접적인 충돌은 필연이 아닙니다.
둘째로 북한의 붕괴는 대한민국의 이익에 합치 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독재국가 중 하나이며,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붕괴한다면 북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어쩌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피해가 됩니다. 2천만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하는 것의 사회경제 및 정치적 문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비극입니다. 대한민국은 2천만명의 난민을 관리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붕괴가 초래할 수 있는 물리적 문제, 가령 북한의 군벌간의 경쟁이라든지, 또는 김씨일가 충성파들이 벌이는 테러활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안보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차라리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는 무력집단을 상대하는 것이 낫습니다. 수뇌부가 없는 산발적인 단체를 상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북한 인민이 대한민국에 호의적일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수가 대한민국을 승리한 점령군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인민군이 아니더라도, 일반 시민 중에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계층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가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 북한에 안정된 정부가 존재해야 협상이든 뭐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협상의 목적은 당연 평화적 체제익요.
셋째로, 대한민국 정부가 처음으로 '평화협정'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데, 드디어 대한민국이 제정신 차리고 "낭만적인 통일관"에서 졸업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헌법이 북한을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통일을 추구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는 국제정치적으로도 우리 국내정치적 능력상 실질적으로도 도저히 할 수 없는 환타지, 즉 망상입니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맺어야 할 바람직한 관계는 2국2체제, 즉 여느 나라와 같은 평화적 외교입니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는 '평화협정' 없는 정책은, 햇볕정책이든 뭐든 다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것으로 인식되고, 실제로 DJ의 햇볕정책은 말로 내뱉을 수는 없어도 사실상 흡수통일정책의 일종이었는데, 북한은 당연히 이를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흡수통일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 망하는 지름길이에요. 어떻게 이룩한 경제이고, 어떻게 이룩한 번영인데, 이를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려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북한과의 평화협정은 북한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일단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이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를 내걸었습니다. 비핵화가 없는 평화협정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화협정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경제적 돌파구'입니다.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은 아시다시피 지금 정체상태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은 망합니다. 대한민국이 계속 성장하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새로운 기회를 발굴해내야 합니다.
사실 통일은 필요 없습니다. 북한은 길만 내주면 됩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북한에 김씨일가가 다스리든, 또는 유사 독재자나 군벌이 다스리든, 사실 중요치 않습니다. 경제적 활동만 보장할 수 있다면 말이죠. 우리에게는 대륙으로 향하는 길이 필요합니다. 대륙이 우리에게 들어오고, 또 우리가 대륙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러시아와 가스사업을 추진하고, 중국의 단둥, 하얼빈, 다롄과 연결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제인들이 북한에 투자를 할 수 있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통일의 모습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북한의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feedback이 된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리고 체육인, 학술인, 그리고 경제인들의 활동이 많아질수록 점차 일반인들 간의 교류도 촉진될 것입니다.
그때쯤 되면 사실상 통일이라고 봐야죠.
아무튼 제가 보기에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연설"은 무척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연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