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앤드류 위긴스의 패스를 받은 워리어스의 커리가 두 번째 삼점슛을 성공시킵니다. 이로써 스테픈 커리는 레이 알렌이 가지고 있던 2,973개의 삼점슛 기록을 갱신하며 역대 최다 삼점슛을 성공시킨 선수가 됩니다. 이 경기는 NBA의 메카인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종전 기록 보유자인 레이 알렌이 방문한 가운데, 커리에게 기록이 깨지기 전엔 역대 2위 기록 보유자였던 레지 밀러가 해설을 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커리는 기록 갱신 후 두 레전드들의 축하를 받는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커리의 남은 커리어와 현재 유지하고 있는 기량, 그리고 여태까지의 추이를 봤을 때 3,000개는 물론 4,000개까지 넘어 얼마나 더 많은 슛을 성공시킬지 기대가 됩니다.
기존 기록 보유자(좌 레이 알렌, 우 레지 밀러)들의 축하를 받는 스테픈 커리
스테픈 커리는 이견의 여지가 없이 역대 최고의 삼점슈터 입니다. 삼점슛에 한정해서는 특별한 비교의 대상을 찾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오늘 깨버린 통산 최다 삼점슛 기록을 포함하여 역대 삼점슛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을 갱신 중입니다. 정규 시즌 한 시즌에 400개의 삼점슛(15-16시즌 402개)을 성공시킨 유일한 선수이자, 이 기록의 Top5 중 3, 4, 5위로 커리 자신이 기록(18-19시즌 354개, 20-21시즌 337개, 16-17시즌 324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브루클린 넷츠의 제임스 하든이 18-19시즌 378개를 기록하여 2위에 올라 있지만, 이 또한 시도 수 대비 성공확률을 포함하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커리가 약 시즌 당 약 800여개의 삼점슛을 시도한 반면, 제임스 하든은 해당 시즌에 1,028개의 슛을 시도했습니다.
당연히 플레이오프(470개)와 NBA 파이널(121개)에서도 최다 삼점슛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점슛을 최소 1개 이상 성공시킨 연속 경기 수 기록(157경기)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151경기로 본인의 기록을 다시 갱신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입니다. 한 경기에서 10개 이상의 삼점슛을 기록한 경기 수는 2위 팀 동료 클레이 탐슨(5경기)에 비해도 압도적으로 많은 22경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로 치면 '인생경기' 급의 경기가 커리에겐 한 시즌에도 몇 번을 볼 수 있는 경기인 것입니다. 한 경기 최다 삼점슛 성공 기록은 팀 동료 클레이 탐슨(14개)에 이어서 2위(13개)를 기록하고 있지만, 클레이 탐슨이 14개를 성공시킨 경기에서 본인의 기록을 갱신할 수 있도록 탐슨을 열심히 도우면서 탐슨에 의해 결국 기록이 깨졌을 때 같이 기뻐했던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커리 자체가 '대인배'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수 많은 기록을 보유한 '가진 자의 여유' 정도일 수도 있겠습니다.
탐슨이 자신의 기록을 깨자 열렬히 축하해주는 커리
현대 농구는 그다지 멀지 않는 과거인 90년대, 2000년대의 농구와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패러다임이 격변했습니다. 삼점슛은 NBA기준 7.24m라는, 일반인들이 서면 공을 던져 림에 맞추기도 쉽지 않은 비거리 때문에 그 동안 '보조 공격 수단'을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으로 농구는 골대에 가깝게 진입할수록 슛의 확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상대 골대에 자리잡기 쉽고 골대에 가까이에서 슛을 시도할 수 있는 키와 덩치가 큰 빅맨 선수들이 큰 각광을 받았습니다. 빅맨들에게 안정적으로 공을 투입하는 것을 기반으로 공격을 풀어가야 하기 때문에 경기의 템포는 자연스레 느린 지공 위주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삼점슛을 안정적으로 잘 성공시키만 한다면(약 40%의 확률), 이점슛을 무려 60%로 성공시키는 것과 같은 기대값을 가진다는 점은 전술의 관점에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효율성과 매력 입니다. 따라서 각 팀들의 삼점슛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던 중에 2009년 드래프트룰 통해 전무후무한 한 명의 슈터가 등장하니 그게 바로 스테픈 커리입니다. 그 동안 삼점슛은 언제까지나 인사이드 공격이 너무 빡빡할 때 완벽한 오픈 기회를 만들어 시도해야 하는 보조 공격의 수단이었습니다. 이런 패러다임이 지배적일 때, 커리도 만약 본인의 타고난 슈팅력에만 만족했다면 리그 최고의 '캐치 앤 슈터(Catch And Shooter)' 정도에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커리의 목표와 야망은 '최고의 슈터'를 넘어서 '최고의 선수'였고, 한 경기에서 더 많이 삼점슛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작합니다.
팀이 만들어준 기회에서 패스를 받아서 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인이 직접 기회를 창출하여 풀업(Pull up) 삼점슛을 던지기 위해 커리어 초반 불안하다고 지적받은 볼 핸들링을 최고 수준으로 개선합니다. 몸으로 부딪히는 수비수들을 떨쳐내기 위해 근육을 증량합니다. 지구력을 바탕으로 일일히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수 많은 '공 없는 움직임'을 가져가며 귀신처럼 자신만 쫓아다니는 집요한 대인마크를 떨쳐냅니다. 골밑 마무리에 필수적인 요건 중 하나인 운동 능력이 부족한 치명적인 약점에도 삼점슛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 양 손을 사용한 다양한 레이업 스킬들을 갖춰나갑니다. 만약 모든 방법이 다 막힌다면? 상대 수비의 손이 닿지 않는 더 먼 거리에서 슛을 던집니다. 이러한 본인의 엄청난 노력과 클레이 탐슨, 드레이먼드 그린이라는 영혼의 파트너들, 스티브 커 감독 지휘아래 커리는 골든 스테이트의 시스템 농구에 완벽하게 녹아들며 비로소 폭발적인 삼점슛으로 리그를 지배합니다. '보조 공격'인 삼점슛, 그리고 그것을 주무기로 하는 에이스가 이끄는 팀이 리그 최강이 될 수 있음을 직접 증명해낸 것입니다.
커리와 골든 스테이트가 보여준 '가능성'은 긴가민가하고 있던 다른 팀들에게 거대한 변화의 바람으로 작용합니다. 최근 몇 시즌 동안 팀, 선수를 가리지 않고 삼점슛의 시도가 극적으로 늘어납니다. 박스 스코어를 봤을 때 양 팀의 이점슛 시도보다 삼점슛 시도가 많은 경기는 이제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경기입니다. 과거엔 없어도 그만이라는 정통 포인트 가드나 정통 빅맨 선수들의 삼점슛 옵션이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찬스가 열렸을 때 삼점슛을 던질 수 있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집니다. 리그 엘리트 슈터들은 커리처럼 비거리를 늘려, 과거엔 감독들에 의해 봉인된 미친 짓, 무리수에 가까웠던 'Deep Three'라 불리는 장거리 삼점슛이 보편화 됩니다. 데미안 릴라드같은 선수들은 경기장 중앙 가운데 로고에서 기습적으로 던지는 'Logo Shot'을 성공시켜, 경기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데 이용합니다.
수비수 폴 조지가 Bad shot이라 비꼰 릴라드의 로고샷. 이제는 누가 봐도 Good shot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삼점슛은 비단 득점의 효율성 뿐만 아니라 경기 양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삼점슛의 비거리가 길어진다는 것은 수비의 입장에서 더욱 커버해야 하는 공간이 넓어지게 됩니다. 이른바 '스페이싱(Spacing)'의 개념이 중요해졌습니다. 슛이 좋은 선수들을 여럿 배치하여 수비가 삼점슛을 봉쇄하기 위해 외곽 먼 위치까지 나와 안쪽 공간을 비우는 순간 역으로 안쪽 돌파를 노리기 시작합니다. 무조건 안정적인 이점 레이업으로 마무리했던 속공 상황에서는 오히려 오픈 삼점슛의 기회로 이용하기 위해 경기장 안의 모든 선수들이 속공에 가담하여 달리기 시작합니다. 경기 자체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을 뗄 수 없이 빨라지고 화끈한 화력전 양상이 됩니다. 피닉스 선즈의 포인트 가드 크리스 폴의 말처럼 과거엔 다득점의 상징이었던 '100점'을 넘기지 못한 팀은 이젠 NBA 팀의 기준에 맞지 않는 팀이 된 것입니다. 농구라는 스포츠가 완전히 탈바꿈하여 현대 농구로 한 단계 진화된 순간입니다.
표정과 멘트의 조화가 만들어낸 희대의 명짤, '폴청천'
골든 스테이트의 스티브 커 감독은 '과거의 학생들은 마이클 조던처럼 혀를 내밀고 페이더웨이를 던졌다면, 요즘의 학생들은 스테픈 커리처럼 마우스 피스를 물고 삼점슛을 던진다'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을 보고 코비 브라이언트가 성장했고, 코비 브라이언트를 보며 케빈 듀란트, 더마 드로잔, 카와이 레너드, 폴 조지, 데빈 부커 등 미드레인지 장인들이 탄생하여 각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커리를 보고 자라난 세대들은 프로에 데뷔하는 순간부터 기본적으로 삼점슛을 위한 여러가지 스킬셋들을 장착하고 올지도 모릅니다. '보조 공격수'라는 이미지 때문에 삼점슈터가 되기 꺼려했던 역대급 재능들이, 삼점슛을 커리보다 더 자주, 더 창의적으로 던지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보다 더 삼점슛 일변도의 농구 경기가 계속된다면, 이 트렌드를 파훼하는 또 다른 해법이 등장하여 농구는 한 단계 더 진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단순히 스테픈 커리 개인의 삼점슛이라는 농구의 여러가지 기록 중 하나의 누적 기록이 갱신된 날이 아니라, 삼점슛이라는 바람이 불어온 현대 농구의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상징하는 날로 기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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