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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1/03/13 17:59:23 |
Name |
물맛이좋아요 |
Subject |
[일반] [TEXT] 치킨 배달을 시켰습니다. (수정됨) |
아직은 저녁에 많이 쌀쌀하던 지난 달의 일입니다.
저녁에 치킨 배달을 시켰습니다.
호기심에 처음보는 브랜드의 치킨을 시켰어요.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 배달앱에 배달원이 출발했다고 뜨는데 [자전거]로 배달한다네요?
갑자기 막 긴장이 됩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이름에 '산'이 들어갑니다.
언덕이 많은 동네죠.
그 중에서 제가 사는 집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저도 집 앞 언덕을 자전거로 한 번 올라와 봤는데 무릎이 뽀각 하고 부서질 것 같더군요.
그 이후로는 저도 그냥 내려서 자전거를 밀면서 걸어올라옵니다.
수도권에서 자전거 힐클라임 코스로 유명한 남산이 평균 경사도가 7이 조금 안됩니다.
북악산 팔각정까지 올라가는 도로가 평균 경사도 8~9정도에요
그런데 저희집까지 올라오는 길이 큰 길로 돌아왔을 때 집 앞 오르막길의 경사도가 18정도이고 질러서 오는 짧은 오르막길은 경사도가 30이 넘습니다.
경사도가 24이 넘어가면 패달을 힘주어 밟았을 때, 자전거 앞바퀴가 들립니다.
경사도가 30이 넘어가면 자전거가 뒤로 넘어갈 수도 있어요.
아니 여기를 배달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온다고?
높은 언덕만 보면 군침이 싹 도는 진짜배기 자덕인가?
아니면 이 동네 지리를 잘 모르는 초보 배달원인가?
앱을 켰더니 도착 예정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야심한 밤이지만 집 대문 밖으로 나와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앞쪽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올라왔다가 땀 대신 침을 흘릴 것 같은 경사도 18짜리 오르막길
오른쪽으로는 걸어서 올라와도 더위먹은 강아지처럼 혀를 빼물고 헉헉거리는 경사도 30짜리 오르막길
과연 배달원은 어느 코스를 택할 것인가?
저도 모르게 꾹 잡은 손에서 땀이 막 날 것 같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직 자전거를 탄 배달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요. 배달이 늦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예정시간에 늦은 건 배달원의 잘못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그 곳에서 오르막과 그리고 자신과 싸우고 있을 배달원을 응원합니다.
도착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났을 때
드디어 경사로 아래에 자전거를 탄 배달원이 보입니다.
다행히 큰 길로 돌아온 것인지 경사도 18짜리 경사가 덜 급한 언덕으로 오고있네요.
치킨이 들이있는 커다란 배달 가방을 매고 기여이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봐 그냥 내려서 걸어.. 그냥 걸어..
차라리 내려서 걸어오는 것이 나을텐데..
그리고 걸어서 올라오는게 더 빠를텐데..
결국 배달원이 언덕 위에 있는 저희 집 앞에 도착했네요.
땀을 줄줄 흘리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네요
아직 어려보이는 여성분이 미니벨로 타고 오셨습니다..
아니 저걸 타고 여기를 올라와..?
마스크까지 끼고..?
"오르막은 그냥 걸어오시지.."
"아.."
늦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손으로 구슬땀을 훔치더니 들고 있던 치킨을 제게 건내고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배달원은 급히 떠나갔습니다.
배달원님 참 고생했네요.
근데 치킨은 식어서 맛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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