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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31 09:32
축하드립니다. 대학원을 선택했다는 것은 동 분야에 적어도 5-10년 정도는 공부하고, 20년 정도는 일한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특히 자연과학은 마라톤같아서 뭔가 성과를 얻으려면 오래오래 걸립니다. 즉, 순간의 천재성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끝까지 견디는 끈기가 더 중요할 겁니다. 힘든 상황이 있어도 잘 극복하고 끝까지 버티기를. 적성이 꼭 맞다하니 잘 하실 겁니다. 이쪽 분야는 본인이 즐겁지 않으면 못하거든요.
18/08/31 09:44
우선,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이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발견하신 것도 축하드립니다.
사실 적성에 맞는 학문과 분야를 일찍 발견하고, 그것에 인생을 투자할 결정을 하는 것은 굉장히 큰 행운에 가깝습니다. 저처럼 돌고돌아 학부 때, 석사 때, 박사 때,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완전 다른 사람도 있으니까요. 본문에 6년을 언급하셨으니, 아마 박사까지 하시게 될 것으로 추측합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석-박 6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실험이 잘 진행되고, 페이퍼가 쭉쭉 나오기만 한다면, 그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 가겠지만, 실험이 막히고, 매일 같이 f word를 반복하고, 페이퍼는 연이어 계속 리젝에 리뷰어 요구는 끔찍하기만 한 사이클에 들어간다면 매일매일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학문에 들어가시게 된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 드리는 까닭은, 학문의 길에 사실 운만 따르는 것도 아니고 불운만 따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경로를 통과하든, 나중에 학위를 받게 되시면, 운과 불운이 절묘하게 날줄과 씨줄처럼 교차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조언을 요청하시지는 않았지만, 주제 넘게 조언 드리자면, 실험 한 세트 한 세트에 절대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페이퍼 한 편 한 편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과학도 중요하고 학문도 중요합니다만, 글쓴분의 인생이 제일 중요한 것이고, 글쓴분의 행복이 제일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과학이든 학문이든 오는 것이겠죠. 화학자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God damn it" 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화학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초 과학은 계획했던 실험이 제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같이 지도하는 박사과정생은 2년을 끌던 실험이 계속 망하다가, 작년 말에야 겨우 데이타다운 데이타가 나왔는데, 그 이후에는 일사천리처럼 일이 쭉쭉 진행되어 이제 대망의 결승점이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중간에 그 실험을 그만 두게 하고 싶을 때가 많았음에도, 그리고 그도 매우 하기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매달린 끝에 좋은 데이타를 얻었는데, 통계를 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2-3% 정도의 확률이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내뱉었을 f word나 GDI 같은 표현은 아마 수천 번은 나왔을 것입니다. 말씀의 뉘앙스를 보니, 아마 유기합성랩으로 가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유기합성을 배우기는 했지만, 합성에는 젬병인 사람으로서, 합성하시는 모든 화학자를 존경합니다. 특히, 전합성하시는 분들, 천연물 합성하시는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아시겠지만, 그런 분야는 졸업때까지, 페이퍼 한 편 제대로 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전합성은 말 그대로 전합성이 되어야 JACS 한 편 쓰고 졸업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스트레스 많이 받으실텐데, 지도 교수님과 합성 전략에 대해 조금 더 삽질을 덜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많이 하시면 좋습니다. 문헌 조사는 당연하고, 요즘 유행하는 머신러닝 기법이 최근 합성 분야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으니, 조금씩 익혀 두시면, 졸업시점에 꽤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꼭 좋은 연구 주제 잘 찾게 되시기를 바라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랩 사람들과 지도 교수님과 매우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랩을 넘어, 많은 사람들과 꼭 되도록 자주 교류하시고, 다른 분야에도 조금씩 관심을 두셔서, 학문의 과정에서 serendipity의 즐거움도 꼭 느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화학 말고도 재밌는 학문이 많이 있고, 다른 학문의 도구가 꽤 쏠쏠하게 혹은 아주 치명적일 정도로 중요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구요. 랩에만, 혹은 과에만 갖혀 계신다면 그런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 다른 학문들, 다른 강의들에서 이런 기회를 많이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모쪼록, 장도에 오르셨는데,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바라고, 멋진 젊은 과학자 한 명이 탄생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18/08/31 09:52
조언 감사합니다. 교수님이신거 같은데 유경험자의 조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네 유기화학 랩이 맞고요, 전합성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 학교 교수분들은 딱히 전합성에 연연하는거 같지는 않네요. 천연물 전합성 같은거 하는 사람들은 진짜 유기화학의 모든 분야를 알아야 하는 괴물들 정도로 묘사가 되더군요 크크
다행인 건, 아무리 힘들고 후회해도 이보다 나은 길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히려 다른 분야를 못해서 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나 할까요?
18/08/31 11:16
제가 주제넘게 조언 드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합성은 무엇보다도 인내심의 싸움이지만, 그래도 스마트한 인내심이면 시간과 자원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합성 관련해서, 제가 몇몇 연구자와 코웤을 해 봤는데, 확실히 계산과학으로 먼저 여기저기 가지를 쳐 두면 도움이 많이 되는 것을 자주 발견했습니다. 스스로 그런 툴을 익히실 수 있으면 좋고요, 여유가 안 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익혀 두시면, 나중에 코웤하실 때 꽤 쏠쏠하게 도움될 겁니다. 유기합성 관련해서, 특히 MD나 DFT 같은 계산과학, 양자계산화학, MC 같은 툴들을 혹시 대학원 과목에서 접하실 기회가 있으면 꼭 접해 두시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합성 트렌드도 계산이 같이 병행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고 (이미 그렇게 가고 있고요), 그런 트렌드를 놓치면 다시 진입하기가 매우 장벽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보다 나은 길이 없다'라고 하셨는데, 적절한 확신은 큰 의지가 됩니다만, 너무 대마불사, 배수의진, one-way only 식으로만 붙드시는 것도 피하셔야 합니다. A가 아니니 B 밖에 없다는 식의 선택은 간혹 위험할 수 있습니다. C나 D가 있을 수도 있고, C나 D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B라는 길로 가기 위해, C나 D가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사실, 학문의 분위기는 계속 바뀌고, 그리고 그 바뀌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이 시대는 그래서 연구자에게 점점 더 높은 flexibility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로서 자신만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필요하다면 어떤 분야와도 협업이 가능하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면, 다른 길로 옮겨 탈 수 있는 신속성과 신축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6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인생에서도 그렇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도 매우 긴 시간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놀랍지 않은 시간이죠. 바이오테크에서 롹스타가 된 CRISPR 기술이 세상에 나온지 채 6년도 안 되었는데, 이제 크리스퍼를 빼 놓고는, 바이오테크 기술을 논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죠. 아마데님이 졸업하실 때쯤 유기 합성, 특히 아마데 님이 연구하셨던 분야가 어떤 분위기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아마데님이 합성하신 물질 자체가 어떤 조명을 받게 될지도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에 하나 합성 하신 물질이 조명을 덜 받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익히신 스킬과 지식은 매우 중요한 것이니, 물질 자체에 집중하시기보다, 그 물질을 얻기까지의 경험을 잘 갈고 닦으시길 조언 드립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셨겠지만, 박사급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학문이 박사 학위 취득으로만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님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충분히 박사 과정을 즐기시되, 너무 분야에만 매몰되지 않기를 권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18/08/31 10:27
현재 박사과정 대학원생 입장으로, 여러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박사까지 화학하시다가, 지금은 어떤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현재 메인 연구주제 하다가, 서브로 맡은 일이 흥미가 생겨서 이후에 서브 쪽이나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이 들어서 여쭤봅니다.
18/08/31 11:06
저는 이런 테크트리를 탔습니다. 학부 화공 주전공/물리 복수전공 -석사 화공 (고분자 물리) -박사 화공 (콜로이드)/재료 (계산과학)부전공 - 주니어 태양전지 - 현재 포토닉스/플라즈모닉스/계산과학 이런 식입니다. 화학은 제대로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석사 때 고분자 합성/박막 제조 등에서 약간만 맛을 봤을 뿐, 제대로 합성하시는 분들과 비교하면 완전 어린애 수준일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박사 후, 태양전지, 옵틱스, 포토닉스를 서브로 하다가, 아예 그쪽으로 갈아탄 격인데, 서브로 하던 일이 너무 재밌고, 파면 팔 수록 보물을 발견하는 것 같아서, 들여다 본 케이스입니다. 공도리도리님도 서브로 하시는 것이 충분히 재밌다면, 계속 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길고, 아마 연구자들은 본인이 공부한 것 한 개만 가지고는 평생 버티기 힘든 시대가 되었으니, 여러 학문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시면 생각지도 못한 때와 장소에서 그런 공부가 큰 도움이 되더라구요. 저는 학부 때 수학과 물리를 주전공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덕을 박사때, 그리고 지금 매우 크게 도움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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