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죽이는 게임이 하나 있었고 나는 사촌 동생과 그 게임을 해 보려고 했는데 그 게임의 세부사항이 기억나지 않아서 곤란했다. 사촌 동생은 초롱초롱 샛별같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나는 불현듯 이 게임이 매우 재미가 없는 것이고 해봤자 소용 없다는 식의 설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게임의 디테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게임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왕을 죽여야 하는 게임인데 디테일을 모르면 게임의 성격이 위험해지거나 우스꽝스러워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인다고 해봤자 뭘 실제로 죽이는 것은 아니고 단지 게임일 뿐이었으나 어쨌든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디테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동생에게 아 이 게임은 너무 재미가 없으니까 하지 말자고 단도로 찌르듯 단도직입적으로 푹 하고 말하는데 그 순간 동생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어쩐지 서글퍼졌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으나 뭐라고 변명할 말 조차 없었다. 동생은 조용히 있었고 입술을 옴짝 거릴 때마다 나는 뜨끔했는데 그 애가 "불행하다"고 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작 왕을 죽이는 게임을 하려다가 실패해서 실망하다니, 정말 너무한 동심이구만 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생각 속에는 너무 한심한 나에 대한 자책도 섞여 있었음이 사실이다.
그런 자책이 섞여 있었음이 사실일지언정 이 글은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는 또 곤란하다. 왕을 죽이는 게임의 디테일이 기억나지 않듯이 사실 그런 게임이 뭔지도 모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쩐지 서럽다. 일종의 정신병적 글쓰기를 원하고 있는 내 눈은 샛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가운데, 이제는 시간을 죽이는 게임은 그만해야 할 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한다. 갑자기 사뭇 슬픈 심정이다. 순간적으로 내 자신이 실망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한 것을 보며 놀란다.
아직도 글을 이어나가고 있다니? 규칙을 모르고 하는 게임이 가능할까? 제정신인 상태에서 비정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촌 동생과 왕을 죽이는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글의 정상성이 소멸 될 수는 없다는 절망을 한다. 그리고 실망함과 동시에 안도하기도 하면서, 이 지경이라면 영원히 계속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통이 비어있음에서 오는 허무함이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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