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질병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 낸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검증된 지식을 얻는 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객관적인 이야기의 근거로 삼거나 맹신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 질병 그 자체보다 질병으로 인한 생활상의 불편을 풀어놓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작년 11월 경 병원에 입원한 뒤 며칠 후 퇴원한 이후 제 질병 목록에는 이미 보유(?) 중이던 허리 디스크, 목 디스크, 지방간, 고혈압, 고지혈증에 당뇨병과 중증근무력증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약 10개월 정도를 맞은 지금, 다행스럽게도 좋은 소식이 좀 더 많습니다.
좋은 소식 1 - 당뇨 증세는 입원 후 7개월째를 기점으로 이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설탕이 들어간 걸 전혀 안 먹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과자를 회사에서는 다과 개념으로 조금 먹어도 지금까지도 제 손으로는 사지 않고 있고(대신 견과류 같은 걸 삽니다) 책상 위에는 물이나 탄산수 같은 칼로리 없는 음료수가 놓여 있습니다.
좋은 소식 2 - 식생활을 개선하니 혈압 수치가 긍정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고지혈증 쪽도 서서히 나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속도는 아주 빠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먹고 사는 일 때문이죠 뭐. 중요한 건 더뎌도 제 계획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 3 - 적당한 운동 때문에 디스크 증세도 완화되고 있습니다. 별 것 아니지만 팔굽혀펴기 5개도 못하던 사람이 한 번에 50개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중증근무력증'입니다. (경증, 중증이 아니라 '중증근무력증' 자체가 병 이름입니다.)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이었지만 기억을 좀 더 더듬어 보니 이런 증세가 나타난지는 한 수 년 정도 되었던 듯 합니다. 당시 담당하던 프로젝트 런칭을 앞두고 회사에서 자거나 새벽에 택시타고 들어가는 걸 밥먹듯이 하던 시절이었고, 그 때 언제부터인가 제 오른쪽 눈꺼풀은 조금씩 찌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첫 번째 증세입니다.
그 다음으로 나타난 증세는 왼쪽 손에 비해 오른쪽 손의 힘이 차츰 없어지는 현상입니다. 주먹을 쥐어 보면 왼쪽 손은 말끔하게 꽉 쥐어지는데 오른쪽 손은 무슨 막이나 유체에 둘러싸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힘이 없어지는 것도 없어지는 것이지만 마우스질을 할 때 손에 힘이 잘 안 들어가거나 손속이 느려지기까지 하니 점점 불편해지더군요.
그 다음으로는 오른쪽 턱 쪽이 얼얼하듯이 마비가 되거나, 느낌이 둔해지거나 하고, 말을 할 때 말이 어눌하게 들린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을 어떻게든 빨리 하겠다고 급하게 말을 하면, 언어 전달은 더 떨어지고 발음도 더 안 좋아지더군요(들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더 문제가 되는 건 이런 증세만 있으면 그나마 견딜 만 하겠는데 생활이나 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해서 두통이 심해지거나 하면 그것까지 겹쳐 아주 죽을 맛입니다. 얼마 전에 머리가 터져서 여기저기에서 피가 줄줄 새나오고 기억했던 것들도 하나하나 날아가는 느낌이라고 글을 썼는데, 지금도 아직 그런 두통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느낌은... 그냥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적어도 지금까지. 저는 인터넷에서 자기 경험담을 올리며 심각하다고 하는 다른 중중근무력증 환자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증세가 아주아주 약한 편인 듯 합니다.
점심 이후부터 눈꺼풀이 자주 감기지만 아직 시력이 떨어지거나 복시가 나타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고, 여전히 지금 쓴 글 정도의 글이나 문서는 힘 닿는 대로 계속 쓸 수 있고, 업무에 필요한 만큼 게임을 하거나 보는 것에도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가끔씩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증상이 - 이것 때문인지, 아니면 먹고 사느라 바빠서 피로와 겹쳤는지는 모르겠지만 - 새로 일어나서, 이게 중증근무력증 현상인지 아닌지에 대해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들었음에도 가끔씩 겁이 나곤 합니다.
그래서 주위 환경이 녹록치 않지만 아직은 일하고 글을 쓸 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받을 때마다. 억울해서 뭐라 말하기가 어려울 때가 간혹 있습니다. 증세가 '그나마 가벼운 편인데도' 말이죠. 이런 증상에 대해 호소하거나 이야기해 보면 주위에서 들리는 말은 대강 이렇습니다. (실제로 들은 말을 쓰면 벌점을 먹을 수 있으므로 표현을 순화했습니다)
"잠을 안 자서 그래. 거 잠 좀 자면서 일 하지."
"거 밤에 딴 짓 하는 거 아냐?"
"너 꾀병 부리는 거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듣겠는데."
"왜 눈을 그렇게 불편한 사람처럼 떠?"
"그냥 좀 정신적으로 지쳐서 그런 거 아냐?"
처음엔 저도 뭔가 열정이 식거나 아니면 잠을 못 자거나 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과로와 스트레스로 실신한 적도 있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그게 아니었다는 게 문제죠.
제가 주로 받는 오해의 패턴은 이렇습니다.
오해 1 - 일단 인상이 사나워져서 오해를 받습니다. 가뜩이나 인상 험악하다고 어머니까지 디스하실 정도인 저의 얼굴에 한쪽 눈까지 찌그러졌으니 그 효과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_-
오해 2 -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오해를 받습니다. 제가 말주변이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중증근무력증을 얻은 이후 발음이 어눌해지는 문제 등으로 부정적인 일들이 다소 있었습니다. 특히 브리핑이나 인터뷰에서 제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이 증세로 버벅거리면 정말 그 날은 죽고 싶을만큼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제 자신이 위축되기도 하고요.
오해 3 - 가장 많이 당하는 오해인데, 이걸 번아웃 같은 정신적 문제로 보거나 운동으로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경우를 참으로 많이 보게 됩니다. 정신적인 문제는 제 병의 증세를 악화시킬 수는 있어도 개선시킬 수는 없는데, 정신적인 문제라고 단정짓고 다가오면서 말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참 큰 스트레스를 줍니다. 반면 운동의 경우는 그나마 낫습니다. 기본 근력을 강화시키니 어느 정도 증상 완화에 효험은 있으니까요. 그런데 운동도 중증근무력증 증세 자체를 막지는 못합니다.
오해 4 - '꾀병 부린다'는 오해는 그냥 뭐라고 하기가 참...
어쨌거나 제가 듣기로 이 병이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라 증세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병이라 앞으로 이 메스티논인지 뭔지도 계속 먹어야 하고, 여러 가지로 불편함이 많을 듯 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지금은 그저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밖에 답이 없는 듯 합니다. 장애등급 신청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하기에 그것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만 아직 증세가 가벼워 장애등급이 나올지는 모르겠군요. 어쨌든 제가 더 일해야 어머니도 부양하고 빚도 갚고 집도 유지하고 할 수 있을 텐데. 건강하게 일하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곳만 즐비하고. 여튼 세상살이가 참 쉽지 않군요.
오늘 밤은 좀 잘 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점심 이후부터 기운이 빠질 테니까요.
(잘 못 자면요? 아침부터 죽을 맛입니다.)
- The xian -
추가: 제 증세에 대해 '복시가 나타나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고'라고 했는데 이 내용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눈꺼풀이 한쪽만 쉽게 닫히는 것이 중증근무력증의 증세인 줄 모르다가 나중에 알게 된 것처럼, 이미 진행되었을 수도 있는데 제가 복시인 줄도 모르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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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 같지가 않네요.
어머니께서 중증근무력증 판정을 받으시고는 근 20년 동안 몸의 이상 증상이 이거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신 걸 잊을 수가 없네요. 난 그것도 모르고 운동을 안 해서 그렇다 어쩌다.. 어후ㅜ
그래도 증세가 예전 정말 안 좋았을 때랑 비교하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The xian님도 힘내세요.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남일 같지 않네요.
12월부터 한쪽눈 쌍커풀이 생기고 과도한 피곤증상, 시력저하(미세한 복시)로 검사를 받았었습니다.
혹시나해서 pgr검색해봤는데 시안님 글을 보게되어 문의해볼까 했었는데 아직 진행중이신가 보네요.
저는 일단 의증까지만 진단을 받았고 메스티논 며칠 먹으니 눈을 깜빡일때 저절로 감기는 증상등 안구형 중증근무력증 증상은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아직 쌍꺼풀은 그대로이긴한데 피곤증상은 가벼운 운동을 시작하니 조금 나아졌고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던 부정맥 약을 줄이면서 경과를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