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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8/22 11:55:20
Name 평범을지향
Subject [일반] 윤리의 본질(종교에 관한 오래된 생각)







뜬금없긴 하지만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 굴러다니던 생각들을 미약하게나마 정리하려고 여기다 쓰겠습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윤리란 사회문화적으로 올바르게 생활하도록 하는 규범들을 뜻합니다. 적어도 동양에서는 말이죠. 서양에서는 수십세기에 걸친 기독교 교리의 영향으로 종교적 관점의 도덕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종교적 관점의 도덕이란 기본적으로 우리의 도덕관념 안에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신의 규칙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죠. 가끔씩 도덕규범들이 사회문화적으로 다르게 표현되는 점이 있어도 그 깊은 내면에는 우리들을 하나로 묶고 무언가 더 큰 가치를 향해 쫒아가게 만드는 객관적인 규범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관련해서는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교수와 같은 기독교변증론자들의 흥미로운 토론영상이 있습니다. 기독교변증론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만약 신이 없다는 생각 하에서 어떻게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도덕 토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만약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도덕규범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들을 허무주의에 빠뜨리지 않고 건설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들수 있나 하는 점이고, 둘째, '아무것도 없음'에서 그 무엇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사실로 전제하여 우리의 기원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저 2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글쎄요. 이 주제에 관해서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저는 글재주가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언제나 이런 종교변증론자들의 주장들과 일부 극단적인 종교인들의 생각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품어온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불편함이 있었거든요. 오늘은 그것에 관해서 조금 풀어서 얘기해볼려고 합니다.





먼저, 저에 관련해서 조금 얘기를 해볼까합니다. 저는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어느 특정 종교의 지지자도 아니고 정확히 말해서 '신'의 존재에 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얘기해야겠죠. 우리가 어떤 단어에 대해 논리적인 접근을 펼치려면 먼저 그 단어의 정의가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어야합니다.  하지만 '신'이라는 관념은 모호합니다. 세상에는 종교가 수천가지가 넘게 있고 각 종교에서 묘사하는 신들의 모습은 제각각 다릅니다. 우리는 그 중 어떤 것을 '신'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로 채택해야할지 모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지도자들이 합심해서 이게 '신'이야 라고 발표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개념에 대해 논리적인 접근을 펼칠 수 없습니다. 종교인들은 그것이 바로 '신'이란 개념이 논리의 영역이 아닌 믿음과 체험의 영역이기 때문이라 얘기하지만 그래서 저는 이 '신'에 관련한 오래됀 논쟁들과 토론들이 다 무의미하게만 느껴집니다. 논리로 접근할 수 없다면 그것에 관해 천번만번 토론해봤자 출구가 없는 터널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하지만 '신'이라는 관념을 지금의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창조한 '크리에이터' 느낌으로 살펴보자면 저는 그럴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우주는 끝도없이 광활하며 과학이 밝혀내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은 존재하거든요. 뭔가 고차원에 존재하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어쨌든간 저는 사람들 머릿속에 존재하는 '신'이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에 관해서 언제나 저의 입장은 같습니다. 우리들은 모릅니다. 어쩌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게 존재해 7일동안 지구를 빚었고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배정받아 영원토록 지옥불에 고통받거나 행복하게 살 수 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쨋거나 남은 인생 중에 뭔가 엄청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실질적인 신의 존재에 대해서 모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은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저는 '측정 할 수 없다면 일단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라'  라는 어느 과학자의 말을 항상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러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죠. 하지만 신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물리적인 현신의 관점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이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훨씬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거든요. 논리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고요. 그래서 우리가 '신'의 존재를 믿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윤리와 도덕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오랫동안 이곳저곳 매체에서 접하며 굴러다니던 생각들을 이곳 pgr에서 정리해보기로 했죠.





19세기 서양 문학가들의 소설을 접하다 보면 뚜렷하게 나타나는 몇가지 특징 들 중 하나가 종교 vs 과학의 대결구도입니다. 서양권 문화는 오랫동안 확고하게 자리잡은 일신교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일부 사실들이 완파되고 꺠져나갔죠. 당시에 서양 지성인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종교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무언가 다른것을 병적으로 가져오고 싶어하거나 극단적인 허무주의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동양에서는 이러한 충격을 훨씬 더 부드럽게 대처할 수 있었다봅니다. 동양에서의 윤리와 도덕은 뭐랄까, 서양의 그것보다 조금 더 실리적으로 발달된 측면이 분명 있거든요. 하지만 그동안 서양권의 도덕체계는 엄밀히 말해서 신의 존재에 기반된 시스템이었죠. 따라서 그 시스템 근간 자체가 흔들리면서 아주 극단적인 주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과 '악'의 개념은 어차피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시 우리 입맛대로 뭐든 바꿀 수 있다는 주장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일부 독재자들에 의해 잘못 받아들여지고 변형되어 세계적 대규모재앙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게 그 당시 문학가들의 소설을 읽고 이후 일어나는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 무언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아무튼 여기서 당대 가장 명망있던 작가들의 고민은 단 하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의 존재에 기반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도덕규범들이 없다면 우리들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근본적으로 잘못되거나 옳은 것이 없다. 여기가 당대 문학가들의 우려와 현대 기독교 변증론자들의 주장이 겹치는 부분입니다. 신의 존재를 빌리지 않고서 우리 모두를 인류애로 이끌 수 있는, 더 좋은 세상과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냐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 이라는 행위를 '선'과 '악'의 개념으로 살펴보죠. 일반적으로 나쁜 살인이란 나의 생명보존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에서 행하는 것을 제외한 살인을 뜻합니다. 호랑이가 굶주림을 해결하려고 토끼를 잡아먹는 것은 좋은 살인이죠. 생태계 순환에도 도움이 되고 재미삼아 죽이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죠. 반면 사람이 엽총을 들고 필요하지도 않는 토끼를 사냥하는 맛에 죽이는 것은 나쁜 살인입니다. 굳이 해야 될 필요도 없었고 필수욕구를 넘어선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죠. 문제는 불가피한 상황과 아닌 상황을 가릴 수 있는 정확한 '선'이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은 선과 선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래서 안전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곰을 생각해보죠. 어느날 늑대가 우연히 어미곰의 새끼를 지나치다가 분노한 어미곰의 습격을 받고 갈갈히 찢겨나갔습니다. 늑대는 모자 곰을 공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죠. 이럴 떄 어미곰이 과잉반응했으므로 나쁜 살인에 해당이 되는 걸까요? 그렇게 간단히 풀어갈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곰 모자가 처해진 상황과 환경 시기를 모두 따져보고 판단해야겠죠. 요지는 살인은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좋은 살인과 나쁜 살인을 붙이는 건 인간이 임의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우리는 '좋다' '나쁘다'를 가지고 선을 만드는데 능숙한 종속입니다. 수요와 공급곡선처럼 현재 좋은 점이 나쁜 점 보다 많다고 판단되면 좋은 살인이고 반대면 나쁜 살인이죠. 하루아침에 그 기준이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도덕이란 게 원래 그렇게 탄생되었을까요? 살인은 그저 단순히 현상일 뿐인가요?





조금 더 극단적인 상황을 살펴보죠. 살인은 일반적인 인식으로 나쁜 일입니다. 하지만 고대에서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요? 살인이 명예로운 일로 인정받는 특수한 상황이 존재합니다. 바로 전시 상황이죠. 인간사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고대에서는 사람의 머리통을 얼마나 많이 베었는가로 가장 용맹스럽고 뛰어난 사람으로 응대했습니다. 중세 시대에 게이는 절도나 강간보다 더 큰 범죄행위였습니다. 게이인 걸 들키면 사지가 찢겨죽었죠.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배웠습니다. 이들에게 현대적인 도덕관념을 가져다 들이대도 통용될 수 있을까요 또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이 안 좋은 행위로 인식되는 것은 우리의 보편적인 일상에서 살인은 사회결속을 해치는 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전시 상황은 특정 상황이고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거든요, 하지만 조금 더 극단적인 가정들을 해봅시다. 사람들이 모두 혐오하고 분노하는 것들. 소아성애자들을 가지고 얘기해볼게요. 이 정도면 충분히 극단적인 예시가 될 것 같네요. 소아성애자를 싫어하게 되는 요인들은 명확히 있습니다. 첫째, 생물학적 요인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성관계 능력 출산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매력을 느껴야 될 요인이 없으며 어린 나이에 성관계는 자궁의 파괴와 기형을 유도합니다. 건강한 출산을 할 수 없게 만들죠. 또 어린이들은 정신적인 성숙이 발달이 덜 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린나이의 성관계 고통은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겨주기도 하죠. 모든 문화권에서 어린이들을 돌보고 아끼는 건 공통된 특징입니다. 어쩌면 종교를 대신할 인본주의의 기반일 수도 있죠. 하지만 만약에 이런 혐오요소들을 모두 없애버린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분명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간통의 도덕적 죗값이 변하기 시작한 건 분명히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성들이 생리주기와 피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만들었죠. 만약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해서 소아성애자들도 건강한 성인 여자 남자의 몸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정신적인 성숙도 빠르게 변한다면 그때는 도덕적으로 허락이 될까요? 어쩌면 어리석은 질문일 수 도 있겠네요. 그렇게 되면 소아성애자는 좀 더 긍정적인 단어로 바뀌고 우리가 알고있던 모든 환경들이 변화되있을테니까요.





저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죠. 저는 근본적으로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진리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 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죠. 자, 그럼 이런 질문을 저한테 던질 수 있겠죠. 그럼 너는 사람들이 종교를 상실하면 합리와 이성만이 남아 온전한 사회체제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합리적이라 생각할 뿐이죠. 그리고 합리란 단어의 이면에는 분명히 사람이 생각하는 가치에는 어느정도 우열관계가 성립한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생각보다 더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딸의 생일날 직장에서 일거리를 더 준다면 일을 마다하고 딸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아버지도 있을거고 일거리를 잡고 남은 일을 다 처리하려는 아버지도 있을테죠. 각자 동기는 다를테죠. 한 분은 가정의 안위를 더 중요시 생각하는것일 테고 다른 한 분은 직정에서의 인정욕구나 아니면 책임감이 더 강한 사람일 수도 있고요. 어쩌면 지금 일을 더 해서 돈을 버는 게 딸의 행복을 위해 더 큰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일 수도 있고, 또 처해지는 상황 시기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어려운 시기라 보통 떄라면 딸의 생일상을 차리러 먼저 갈테지만 일부러 야근까지 하며 회사일을 도와주는 아버지도 있을 테고, 서로 동기요인과 가치체계의 상이함, 상황의 다변성 같은 복잡한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일면만 가지고서 판단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요인이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개체이기 떄문이죠. 하지만 이렇게 상이한 개체가 자기 멋대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면서 행동하면 사회가 형성되고 결속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회성이 아주 높은 동물입니다. 고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뭉쳐야만 했죠. 그리고 이러한 독립적인 개체들을 결속시킬 끈이 본능적으로 필요합니다. 인간의 문명규모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한낱 인간의 권위로는 통제하기 어려워졌죠. 무언가 더 거대하고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존재가 필요했을 겁니다. 신이라는 아이디어의 탄생 이면에는 분명 이러한 요인이 작용되었을 테죠.






그리고 이러한 주장과 사상은 굉장히 신중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우려하는 점을 저도 100% 공감합니다. 이러한 사상들은 자칫 잘못 악용되면 심각한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선례를 봐왔죠. 세계대전이나 히틀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인종대학살은 분명 이런 사상들이 잘못 이용된 영향이 있습니다. 20세기 정치체제는 신앙이 정권에서 분리되면서 극도로 치우친 사상들이 조명받던 과도기였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인류에 대한 어떤 초월적인 도덕기반이 존재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는 점과 설령 존재하지 않는다더라도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가르쳐야된다는 점에 100% 동감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변증론자들의 주장과 일부 극렬한 종교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과 함꼐 거부감이 남아있습니다. 혹시 이들이 종교의 권위를 내새워 내로남불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첫번쨰, 왜 굳이 꼭 그 해답이 '종교' 여야만 할까요? 인류를 유지시켜줄 수 있는 각자 독립적인 개체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감정에는 '연민'과 '공감'이 있습니다. 서로가 다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류에 속해있다는 것을, 우리모두는 나와 똑같은 감정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종교'만의 역할이 아닐 수 있습니다. 종교가 그 해답 중 하나가 될 수 있지만 과연 유일한 해답이어야만 될까요? 또 오직 그 해답이 종교일 수 밖에 없다해도 왜 그 종교가 '기독교'여야만 하는지를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같은 역겨운 위선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주장은 신이라는 윤리적 토대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나타내는것일뿐 신 그 자체가 존재한다는 논리적인 주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가 신을 외면하면서 일어난 극심한 재앙들에 대해선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종교'라는 미명 하에 펼쳐진 수많은 고통과 학대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제 속을 메스껍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극단주의 사상들은 '논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보다 더 '종교'의 속성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변증론자들이 펼치는 두번쨰 논거는 더욱 이해가 안 갑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가 나타나지는 않는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과학의 부실함을 메꿔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은 어디서 시작됐나 하는 문제이죠. 태초부터 신은 있었다 라는 말을 쓸거면 태초부터 빅뱅은 있었다 라는 말로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 있다 라는 말을 주장하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소위 '신'이라는 개념에는 전혀 적용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신은 시간과 공간과 논리를 넘어선 그 무언가거든요. 논리가 되지않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마치 논리적인 것처럼 얘기합니다. 저는 '내로남불'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종교에 대한 저의 거부감은 단순히 진상 교인들을 접하는 걸 넘어선 더 근본적인 교리체계에 관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믿음'과 '신뢰'의 영역에 깊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신뢰를 배신하는 것만큼 더 큰 악질적인 행동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종교는 이미 많은 역사에 걸쳐 배신을 반복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종교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종교단체에 관해서는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창시하더라도 빠른 시일안에 부패할 것을 확신합니다. 왜냐면 논리에 바탕이 되지않은 믿음과 신뢰는 부패한다해도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추지 못할 것이고 이런 전적인 신뢰에 기반한 파워는 마땅한 교육제도도 받지 못하는 의지할 곳 없는 하층민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거고 이들을 배신하는 것 만큼 보기힘든 일이 세상에 몇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에 우리들은 인정해야만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원래 있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사람들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생각하면 무언가 가치가 떨어져보이고 실망스러워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의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사회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골똘히 의미를 계속해서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지속성이야말로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부분이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절대적인 도덕규범이 없다는 것은 허무주의가 아닌 건설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더 많은 요지가 생겼다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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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의 빛
18/08/22 11:59
수정 아이콘
종교랑 윤리는..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닉네임
18/08/22 13:13
수정 아이콘
저의 생각이랑 거의 완벽히 일치하네요. 도덕과 윤리란 "개미 같은 사회적 동물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않게 하는 무언가"와 완벽하게 같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을 예로 들어보면 집단 구성원 간의 살인을 허용하는 집단 A와 허용하지 않는 집단 B가 있을 때, 집단 B가 훨씬 더 안정성 있고, 생존확률이 높으니 A는 없어지고 B만 남겠죠. 그 뒤에 살인하면 지옥간다 어쩌구 하는건 이유 같다가 붙이는 거고요.
윤리가 먼저 있고 종교는 그 뒤에 이유만 붙이고, 윤리를 강화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요즘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윤리나 도덕적 기준이 기술발전을 못따라가는데 (본문의 소아성애의 경우) 그럴수록 종교는 뒤쳐지겠죠.

본문의 마지막 문단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입니다. 저 또한 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신을 믿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원래 있던 의미를 발견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거든요. 시험공부하는데 노베이스로 하는거랑, 각종 기출문제 다 갖고 있는 것의 차이랄까. 방황하는 시간 같은게 없어지고, 나에게 의지하는게 아니라 거대한 존재에게 의지하니까 삶의 효율성이 높아지죠. 몇몇 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왜 이제까지 종교는 없어지지 않았는지 대충은 알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그 효율성과 편리함때문에 교회 한 번 가볼까도 고민은 합니다. 가더라도 독실한 신자는 죽어도 못 될 거 같긴 하지만.
18/08/2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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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적 관점에서
종교/윤리를 지닌 인간무리와 그렇지 않은 인간무리들이 있었는데 전자가 살아남았다 라는 설명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종교/윤리 등에 절대적인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규범이 전혀 없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지속하지 못해서 도태됐다는 것이죠
이웃을 살인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마을이 있었다면 그 마을은 지금 흔적도 없을 테니까요
종교역시 마찬가지로 부족사회의 전쟁 혹은 중세의 전쟁에서도 종교가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싸움은 종교를 가진 쪽이 이길 확률이 매우 높아서, 또는 전쟁에 좀더 유리한 교리를 가진 종교가 그렇지 않은 종교와의 싸움에 이겨옴으로 해서
현재의 몇몇 종교들이 살아남았다 라는 해석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18/08/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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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유명한 서양쪽 사상가들과 과학자들도 대부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신앙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죠.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가 그래서 상당히 특별했던 거고요. 종교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가 만들어낸 중요한 사상체계이고, 더불어 인간의 생사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18/08/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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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명령이 있다고 한들 내가 싫으면 싫은 거지, 그게 누구 맘대로 객관적인 기준이 되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그냥 말장난이죠. 애초에 말로 돈 버는 사람들을 신뢰하면 안 됩니다???
-안군-
18/08/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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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종교 자체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입맛대로(?) 바뀌어 온 경향이 있죠. 기독교를 예를 들면, 고대 시대에는 돼지를 먹지 못하게 했고, 일부다처가 당연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로마시대만 해도 교회 안에서 여자들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려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포스트모던 시대로 오면서, 절대적 가치라는건 구시대적이고 배척되어야 하는 사상이 되어버렸죠.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뿐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절대적인 존재"인 "신"은 당연스럽게 배재되고 있고, 실제로 근래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무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비율이 50%를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현대는 '사회적 합의'의 힘이 '절대적 도덕률'의 힘보다 더 강해졌다고 봅니다.
metaljet
18/08/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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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강좌와 개론서 수준의 얕은 인문학적 지식으로 아는 척 말씀을 드리자면
애초에 윤리학(또는 윤리철학)이라는 학문의 기원이 인격신이나 종교, 혹은 절대선이나 도덕률과 같은 소위 <선의 이데아>가 실종된 세계에서 윤리규범의 의미를 찾기 위한 철학자들의 고민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즉 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 근대와 현대 윤리학의 발전과정이라고 보셔도 될것 같습니다. 공리주의나 다원주의 같은 것도 그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고요 절대적 규범에 대한 대안으로서 의미가 있죠.
사악군
18/08/2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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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화권에서 어린아이를 아낀다는건 사실이 아니죠..아주 현대적인 문화입니다.
평범을지향
18/08/2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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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어디까지나 기준을 어떻게 두는 정도인지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을테죠. 전 세대에 걸쳐 아동학대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어왔고 아이의 인권존중이 최근에서야 많이 부각되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어린아이를 아끼고 보살피는 관습과 규범들이 전 세계,세대에 걸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인류문화의 특징이라는 점은 꽤나 자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혹시 보편적으로 아동학대가 장려되는 문화권 예외가 있다면 알려주셔도 될까요?
사악군
18/08/22 22:56
수정 아이콘
학대하지 않으면 아끼는 건가요? 그정도 기준이라면 공통적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정도 기준이라면 노인을 아끼는 것도 동물을 아끼는 것도 공통적일 겁니다. 본문에서는 종교의 자리를 대체할 절대적인 윤리의 기준 공리처럼 말씀하셨는데 허들이 너무 낮은데요.
평범을지향
18/08/2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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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명확히 힘이 약하고 자기의사결정권이 떨어지는 개체들에 대해 함부로 힘을 행사하지 않는 것(학대)만으로도 아낀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단순히 학대가 아니라 여러 문화권에서 아이들을 꽤 의미있게 보살피려는 규범과 행위들이 존재해왔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는 종교의 자리를 대체할 절대적인 윤리의 기준공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정확히 반대로 절대적인 윤리의 기준공리라는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서로 독립적인 인간 개체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인류의 공통된 분모가 존재하고 이를 기존의 종교가 하던 역할을 대신해 사람중심의 사회의 건설적인 토대가 될 가능성을 열어둔 것 뿐입니다. 말씀하신 글의 요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겠네요.
평범을지향
18/08/22 23:22
수정 아이콘
그리고 아이를 아끼는 것과 노인을 아끼는 것, 동물을 아끼는 것은 절대 같은 수준의 공통적 특징이 아닙니다. 노인을 아끼는 문화와 사회는 그렇게 인류사에 있어 공통된 특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과 다른 종의 동물을 아끼는 점은 근본전제부터 동의하기가 힘들 것 같고요
사악군
18/08/2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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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그게 그거같은데요. '인간 개체들을 하나로 묶을 인류의 공통분모'는 절대적 기준공리와 어떻게 다릅니까?

측은지심이라 하죠. (남의) 아기를 아끼는 마음과 작은 강아지를 아끼는 마음, 병아리를 귀엽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생각하세요? 야생사자조차 여유가 있을 땐 새끼가젤을 아끼고 보호해주는듯한 사례도 관찰됩니다. 배고프기전까지는요.

기근으로 아이를 잡아먹었다는 기록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영국의 아동노동사례는 유명하며 일부지역의 아동매매는 지금도 현실입니다.
평범을지향
18/08/2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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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왜냐면 서로 독립적인 개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는 유동적일 수 있거든요. 그 자체로 윤리적인 기준이나 공리를 나타내고 있지도 않고요. 절대적 기준이란 말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 딱딱한 정의가 못마땅하게 느껴지는거고요.


점점 더 무슨 주장을 펼치시는지 헷갈리네요. 측은지심, 다른말로 연민의 감정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연민의 감정은 서로가 공감하는데 그 근본을 둡니다. 그리고 공감은 내가 남들과 공통된 분모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죠. 우리가 다른 이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점은 그도 자신과 같은 감정과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느끼기 떄문이죠. 그 점에 있어 같은 종의 인류를 아끼는 마음과 다른 동물을 아끼는 마음의 뿌리는 같습니다. 서로가 생명으로 태어났기에 겪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숙명 같은 것들 그 아픔의 굴레에 공감하는 것이죠. 자신과 공통분모가 더 많으면 많을수록 연민의 감정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연민은 공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시 한 번, 정확히 글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이를 아끼는 것과 다른 동물을 아끼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으신건가요? 하지만 감정의 동기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해도 인류사에서 둘이 같은 수준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보기 힘들 것 같아보이지 않나요?

기근으로 아이를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말은 더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힘듭니다. 당연히 인류사에 있어 아이들을 학대하고 핍박하고 심하게는 죽이기까지 하는 사실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점이 당시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장려되는 규범이나 분위기였습니까?
사악군
18/08/2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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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변할 수 있는 가치가 '인류'의 공통분모가 될 순 없죠. 고작 지역적 일시적 공통분모일뿐.
평범을지향
18/08/2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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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떄 변할 수 있는 가치도 '인류'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죠. 애초에 전제가 인류의 영구적 공통분모를 뜻하는 것도 아닐텐데요. 기술이 엄청나게 혁신을 거듭하여 인류라는 종속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지 않은 이상, 앞으로 수세기 동안에도 인류의 공통부분은 남아있을 겁니다.
18/08/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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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유지된 가장 큰 이유가 도덕에 항거불능의 권위를 주는 유일한 장치라서란 입장에서 단언하건데 마지막 문단에 대한 답은 No라고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평범을지향
18/08/2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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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에 항거불능의 권위를 준다는 말이 역설적으로 굉장히 위험하게 느껴지네요.
18/08/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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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냥 절대적 권위라 읽으면 됩니다
뭐 전 그런 권위가 없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디스토피아로 갈 수밖에 없다고 믿는 쪽이기도 하니 타협점을 이끌어내긴 어렵겠군요.
18/08/2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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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음 몆가지 반론을 적어보자면, 우선 전 기독교인이라는걸 밝히고 말하겠습니다.

첫째로 윤리의 기준을 글쓴님 말대로 어떤한 종교적인 것을 제외하고 연민이나 사랑 등 우리가 새로 정의하고 택한 감정으로 삼으면 더 좋은 사회가 펼쳐지지 않을까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진정한 종교는 모두 연민과 공감, 사랑 등을 그 중심 속성에 담고있습니다. 다만 이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여기느냐에 차이이지요, 즉 우리가 어떤식으로 종교적인 것들을 윤리 체계에서 제하려 하고 정의하려 해도 우리가 합의할것은 이미 그 종교 안에 있는 요소일 것입니다.

또 종교의 악행에 대해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종교적 요소를 죽도록 싫어하고 사람의 철저하게 사람을 위한 사상 위에 세워진 소비에트 치하에서 더 많은 학살, 학대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많은 악독들이 종교 자체때문에 일어났을지 사람때문인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둘째, 윤리의 상대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고대의 선악과 현대의 선악의 판단기준은 분명 다릅니다. 결국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시대상황마다, 합의마다 다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그 근간이 되는 짜임새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정말 예외 몆가지를 제외하고(그런 예외들은보통 동시대인들에게도 비난받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점보다 같은 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이던지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가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남의 아내를 함부로 넘봐서는 안됩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윤리에는 사실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통점이 왜 나타나는지를 기독교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속성을 일부 주었기 때문이라고
(사실 인간 말고도 모든 것에 어느정도는요)말합니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모든 윤리는 인간의 합의에 기반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도 똑같이 불의한 장면을 보면 그 학대의 대상이 심지어 작은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분노하게 되는데 이는 배워서 알게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동정,연민(심지어 유전적 동질성이 전혀 없는 동물에게까지 강하게 느끼는),공감등 이런 옳음에 관련한 감정 대해서 그냥 인간이니까 있는거지, 혹은 그건 진화적 선택의 결과야, 어떤 방식으로건 설명할 수 있지만 적어도 제게는 신이 인간에게 심지어 동물에게도 이런 습성, 특히 인간에게 무엇이 옳지 않은지 강하게 느끼게하는 성질을 주셨다는 설명이 가장 잘 와닿습니다.

종의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는 설명은 자기 목숨까지 내놓는 사람들과 무엇보다 제 안에 때때로 정말 강하게 명령하는 '이건 정말로 정말로 하고싶지 않고 나한테 손해만 끼치는 일이야 그래도 넌 이걸 해야만 해 왜냐하면 이게 옳은 길이니까'의 감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윤리적 기반으로서의 종교, 특히 그 기초가 사회적 요구에 잘 들어맞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란 관점 그러니까 우리가 필요한 것이기때문에 당연히 만든것이라는 것은 꼭 사실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너무나 '우연히'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애초에 우주의 기초도 그렇습니다. 몆가지 상수들의 값이 정말 약간만 달랐어도 생명체는 존재할수도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진화적 과정으로 시간을 두고 맞춰온 것들도 아닌데요. 그리고 사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보는 거구요..

으 생각하면 더 적고싶은 말이 있었는데 몸이 좀 아파서 쉬어야할거같습니다. 더운데 좋은 밤 되세요.
평범을지향
18/08/2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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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도 말했다시피 corax님의 반박은 논리적인 반박이 아닙니다. 그냥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진정한 종교는 연민과 공감, 사랑등을 중심 속성에 담고 있다고 하는데 위에 제가 말했다시피 무엇이 진정한 종교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누구에게도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corax님이 기독교도라고 하셨으니 최대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종교적인 것들을 윤리체계에서 제하려 해도 우리가 합의할 것은 종교 안에 있는 요소라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말해서 연민과 공감, 사랑 등의 감정들은 종교 안에만 있는 요소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요소들이고 종교가 그것 들 중 일부 개념을 수용한 것이지요. 종교의 악행에 관해서 공정하게 바라볼 것이라고 얘기해주셨는데 저는 신앙의 흔들림으로 몇몇 극단주의자와 독재자들이 위험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름에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소비에트 치하의 수많은 학살은 극단적인 종교주의에 대한 혐오도 포함되었으며 그보다 먼저 잘못된 독재자의 사상이 일으킨 재앙이었죠. 하지만 언제나 극단은 위험하고 끔찍한 일을 초래합니다. 저는 종교가 우리 사회를 결속시켜주고 유지시켜주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바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언제나 동의합니다. 다만 극단적인 종교론자들이 표하는 관점은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바 있는 20세기 극단적인 사상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것이죠.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소비에트 연방을 지배하던 공산주의 사상은 '논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상들은 위에 말했다시피 맹목적인 어떤 사이버종교에 가까운 것이고 이데올로기와 종교는 근본적으로 비슷한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행위는 사람이 저질렀을지 모르나 그 행위를 조장하는 어떠한 불결한 요인들이 극단적인 사상들에 깃들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아무리 중립적으로 보려해도 극단에 어느정도 치우쳐져 있는 측면이 있고요.


둘쨰, 윤리의 상대성에 대해 지적해주었는데 윤리는 사회문화적으로 다르게 표현되는 측면이 있으나 그 근간이 되는 짜임새는 같다고 생각하시지요. 뭐,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감합니다. 도덕규범이란 게 큰 틀에서 보면 아예 서로 반대되게 조성된 것은 없으니까요. 문제는 그 공통점을 신의 존재에 기대어 설명하려고 하냐, 아니면 사회합의론자들처럼 모든 정상적인 인간은 두 팔이 있고 꼬리가 없으며 두 다리가 있고 직립보행을 한다는 이러한 생물학적인 요인부터 시작해서 인류 전체의 공통분모를 가지고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테죠. 그리고 이 부분에 있어서 신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것을 이해해주세요.


죄책감과 양심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corax님이 죄책감과 양심이 아주 변덕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좋을텐데요.
우리의 옳다는 감정을 유발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간단한 거짓들을 뒤섞여 주는 것 만으로도 뒤바뀔 수 있는지 인지심리학자들이 수십년간 연구한 좋은 자료들과 다큐멘터리들이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를 유지시키고 결속시키고 싶어하는 아주 강한 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종의 생존을 위해서 인간의 희생과 헌신의 동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바꿀 수 있을테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종교가 꼭 사회적 기반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에 대해서 의의를 표하셨는데 저는 사회적 기반의 룰로서 종교가 쓰이기 시작한 어떤 시점이 분명히 있었고 그보다 앞서 인간의 사회적인 본성이 종교를 탄생시키는 데 있어 큰 요인 중 하나일 거라 얘기했지. 오로지 사회적 기반을 위해서 종교가 만들어졌다고는 전혀 생각치 않습니다. 수많은 다른 요인이 존재할테죠. 예를 들어 인간의 호기심, 창의성 같은 것도 동기 중 하나가 될 수 있는것이고. corax님 말처럼 진짜 '신'이 존재해서 종교를 우리에게 전해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아예 없다고 단정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주상수 같은 아주 절묘한 값들도 '신'의 존재에 대한 어떤 믿음의 기반이 되기도 하겠죠. 이 점에 대해서 자세한 입장은 윗 글에서도 충분히 밝힌 것 같네요 . 좋은 밤 보내세여
18/08/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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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논리'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글쓴님의 논리의 정의는 '증명가능한', '경험적인' 그래서 '정의가능한'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글쓴 님 말대로라면 측정불가 즉 비경험적인 일들은 증명이 불가능하므로 합의가 불가능하고 결국 정의가 불가능할테니까요.

그렇다면 위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학살을 나쁘게 보시는 것은 확실한것 같은데 그 행위가 '나쁜'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물어본다면 아마 위 글을 바탕으로 본다면 님은 모든 생명에서 기초한 연민과 공감의 결여 혹은 그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라고 답하실 것 같습니다.그리고 그 설명을 기초생물학, 사회학적 합의를 사용해서 하실 것 같구요.

그러면 우리가 그런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따라야 할 이유는 무었인가요? 그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혹은 그것이 우리가 원하고 합의할 수 있는 전제이기 때문에요? 만약 후자라면 독일 제3공화국도 그들이 원하고 합의한 것들에 기반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는걸 알죠. 결국 님의 말대로라면 나치치하는 공감과 연민에 반대되는 일이라는걸 우리가 알기 때문이죠.

그럼 결국 다시 묻게되는겁니다. 우리는 왜 우리 안에 공감과 연민을 느끼고 그에 따르는 윤리 규범을 만드냐는 것입니다. 사실 공감과 연민을 느끼면 거기에 따라 윤리 규범이 정립되어서 우리가 그를 비난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증명 가능하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가 제대로 잘못 되었음을 느끼기때문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가치있다고 느낍니다. 님도 그럴겁니다. 그럼 왜 생명이 가치있는 걸까요? 그 가치를 '논리적'으로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닐겁니다. 사실 글쓴님의 판단에도 논리적이지 않은 기초지점이 있는 겁니다.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근거로 죄책감, 동정 등의 모순성을 말해주셨습니다. 네 사실은 종교인들도 자신들의 정의나 옳고 그름의 판단이 상황에 따라 잘못될 때가 있고 모순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험이 죄책감등이 종의 보전을 위해 생긴 감정이자 굴레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해도 우리가 그것을 따라야 할 이유는 위에 말했던 것 처럼 우리가 그렇게 하고싶다는 것 외에 어떠한 논리적인 근거도 제공하지 못합니다. 즉 '나는 동정심이란 것이 없어 그렇게 태어났거든, 난 그냥 법에 걸려서 처벌받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대로 살인이던 뭐던 할거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너가 그걸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리 대부분이 그걸 싫어한다 이말 밖에는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시겠지만 그런 가치, 죄책감과 동정 모두 사실 진화론적으로 생긴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고 사실 더 엄밀하게 보면 우리는 원자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든 사람이 풍부하게 느끼는 갈망들 아름다움들 위에 말했듯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동정(그 상대가 다 죽어가는 노인이라 인류에게 아무 기여도 안되는 사람이라 해도),무엇보다 개인의 마음에 일생에 걸쳐 느끼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경험들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다만 '인생은 원래 허무한거야 다만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그걸 잊을 수 있을 따름이지. 어린 시절 느꼈던 갈망들 신비한 감정들 다 환상일 뿐이야' 이렇게 말할 뿐이죠. 하지만 이도 엄밀하게 증명가능한 논리적인 판단이 아닌 선언에 불과합니다. 그 기반이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받아들이겠다'이고 이 명제를 증명가능해서가 아니라 이 명제가 제일 믿을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며 사실 그 근거는 증명불가능하니까요. 우리가 이것이 증명 가능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사실 이성이 꽤나 쓸모가 있고
특정한 문제들에서 매우 믿을만하다고 느끼는 것 뿐이지 위 명제를 증명한 것은 아닙니다. 차갑고 황량한 명제는 내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난 그걸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어떤 비장한 느낌을 줄 뿐이지 그것이 사실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설명은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비논리적이지만 우리의 경험을 잘 설명한다는 면에서 이치에 부합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어떤 것이 틀린 것인지 느끼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셨다는 겁니다. 그것이 진화를 통해서건 신과의 어떠한 연결고리를 통해서건요. 그래서 우리는 비도덕적인 장면을 보면 그렇게나 불쾌한 것이며, 또한 윤리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마음속에 가끔씩 지나가는 갈망,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느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의 논지와는 별개이지만 기독교는 과학에도 위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사적으로 보아도 정직한 신앙은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일때가 많았습니다. 이성도 신의 속성중 일부가 부여된 것이라고 보니까요.

어떤 설명을 택하는 것은 결국 어떠한 논리적 기반이 아니라 세계관입니다. 그것은 세계관에 대한 선택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선택이라고 혹은 선택받음 이라고 하거나 경험주의 혹은 직관이라고 하거나 주체적인 판단 혹은 이끌림 이라고 하거나 신앙이라고 혹은 논리실증주의라고 불렸습니다. 다만 적어도 이 모든 것들의 근간이 논리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제가 기독교인인 이유는 어린 시절에 느껴지던 신비한 느낌과 보호들, 지금은 5년 10년에 한번 느낄까 말까한 느낌들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기억들과 이 세계를 기독교 신앙이 가장 잘 설명함으로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며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가 믿을만 하다고, 내 삶을 걸만 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씨의 강연을 듣고 싫으셨다면 저같은 사람 따위의 말이 만족스럽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다만 기독교 신앙이 결코 합리화나 위선은 아니며 지적인 최선의 정직성 위에 서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혹시라도 시간이 되신다면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 란 책이 위의 입장을 훨씬 더 자세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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