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다른건 몰라도 최소한 그 이름은 거의 대부분 들어봤을 인물, 영국의 제독 호레이쇼 넬슨은 당대부터 전쟁영웅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자, 지금까지도 영국인들에게 찬사를 받는 유명 인사 입니다.
넬슨은 생에 최후의 전투였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 해군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는 와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드라마틱한 최후로 사후에는 완전히 반인반신의 경지에 올랐지만, 애초에 그는 살아 생전부터 명성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야심찬 이집트 원정을 사실상 시작부터 무용지물로 만들어리며 제 2차 대 프랑스 연합군을 촉발시키게 만든 계기인 아부키르만 해전, 또 나중엔 북방 발트해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거둔 코펜하겐 해전 등이 트라팔가르 이전 넬슨의 주요 전투였습니다.
영국의 주적이었던 나라가 바로 프랑스고, 그 프랑스에 있는 나폴레옹의 궁전에는 (전쟁 사이의 잠깐 평화 협상 시기 떄문이기도 했지만) 두 명의 영국인의 흉상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피트로 대표되는 영국의 주전론자들 대신 화친을 모색하려 한 제임스 폭스였고, 또 하나는 바로 넬슨이었습니다. 적국의 궁전에도 흉상이 있을 정도였으니, 당대에 넬슨이 어느정도의 유명인사였는지는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넬슨은 워낙 교전 중에 저돌적으로 기함을 함대의 선두에 앞장 서서 싸우는 경우가 많아 부상이 잦았습니다. 때문에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부상으로 오른팔도 절단 해야 했고, 두 눈 중에 한 눈도 시력이 손상된 애꾸눈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파편에 맞아 이마 쪽이 크게 찢어지는 부상 등도 있었고. 여러모로 영웅화 되기에 적절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찍부터 '국가 영웅' 으로서 영웅화된 넬슨의 개인적인 면모는 어땠을까?
굳이 따지자면 넬슨도 초창기에 알고 있는 빽으로 제법 쉽게 승진 한다던가, 잠깐 해군에 들어왔던 영국 왕세자를 보고 "이쪽 빽이 유망해보인다" 고 판단해서 친하게 지낸다던가, 자기가 전공 세운 대가로 형에게 한자리 주라고 정부에 꾸준히 요구한다던가 하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흠결이라고 할만한 부분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시절 기준으로는 이 정도야 크게 흠결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당시의 영국 해군의 부사관 인재 선발은 이렇게 아는 사람 소개 받고 들어와서 수습 기간을 가지는 식이 대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에...
성격적인 면모로 보면, 넬슨은 확실히 담대하고 영웅적인 면모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해상생활을 한 해군 장졸들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굶주리기 마련이고, 육지에 닿게 되면 매춘부들과 방탕한 생활을 하곤 했지만 금욕적인 성격의 넬슨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여기에 거의 엮이지 않았습니다.
부하들에 대한 리더쉽은 확실해서, 넬슨이 공격 계획을 지시할때는 눈물까지 흘린 사람도 있었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 작전이 매우 중요하다 - 그런데 윗선은 아무리 요청을 해도 지원을 쥐꼬리만큼 해준다' 는 상황이 되자 아예 자기 재산을 털어서 작전에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겁이 없었습니다. 포탄이 바로 눈 앞에서 터져 나가도 심드렁하게 옆의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을 정도 입니다.
다만... 반대로 이런 전투와는 상관 없는 면모에서 보자면, 넬슨은 문학이라던지 이런것에 대해선 거의 관심도 없었고,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영국 작가들 몇명 빼면 문학 작품도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해군 전투에 관련된 부분이라던지, 배에 관한 것, 항해일지, 포격 이런 부분에 관한 정보는 꾸준히 습득하며 공부했지만 그 외에 학문과는 별로 거리가 멀었고, 그림 같은 예술 작품은 무관심하고 조예도 없었습니다.
또, 말 자체는 장황하게 잘했지만 자기 할말 하면 간혹 다른 사람들을 엄청나게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명예욕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본인조차도 자기가 그런 부분에 허영심이 좀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을 정도고, 임무를 맡으러 멀리 나와도 자기가 영국에서 어떤 이미지로 비칠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 명예에 대한 갈망이 앞에서 설명한 겁 없는 면모와 더해져 여러모로 저돌적인 작전, 전투 스타일을 만들기도 했구요.
여기에 넬슨은 심기증(心氣症), 즉 겉으로보면 딱히 별로 아픈 곳은 없는데 이상하게 아파서 죽으려고 하는 증상이 아주 심했는데 오랫동안 전투를 못하고 무기력하게 있을때 이런 증상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장기간의 항구봉쇄 작전 지휘 같은걸 맡기면 몇개월만 맡겨도 "나 죽어간다" 고 집에 보내달라고 하거나 좀 쉬게 해달라고 하는 괴벽을 자주 부렸습니다. 시실 당대의 해상전의 상황상 '해상 결전' 은 경험 많은 제독들도 그리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 넬슨은 상대적으로 다른 동시대 영국 제독들에 비해서도 이런 경험이 많은 편입니다. 여러모로 넬슨이 종종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고 영광을 좆는 성향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보는게 맞겠죠.
여하간에 종합해보면 넬슨은 10대 초반부터 배를 타기 시작해서, 청춘을 전부 배 위에서 보내고 한번 큰 작전을 맡으면 지중해의 주요 거점 등에서 6~7년 가량을 예사로 보내는, 인생 대부분을 배 위와 군대에서 보내고 그로 인한 명성으로 존중 받는 것에 본인이 자부심을 느끼고 그 외에는 딱히 큰 취미도 없던, 천상 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천상 군인' 넬슨에게도 부인이 있었습니다. 부인의 이름은 바로 페니.
하지만 넬슨과 페니 사이의 관계에는 딱히 무슨 로맨스라거나 그런건 끼어들게 없었습니다. 페니는 본래가 미망인이었기에 사회적인 보호자가 필요했고, 넬슨은 넬슨대로 식민지에서의 사업으로 한몫 벌었다고 여겨지는 페니 집안과 결혼하는게 사정상 나았기에 결혼했을 뿐입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넬슨은 거의 대부분을 임무 때문에 바다에 나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오랫동안 붙어 있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페니는 불임이라서 넬슨의 자식을 낳을 수도 없었습니다. 애라도 낳았으면 뭔가 서로 정이라도 붙었을지 모르겠지만...
때문에 부부 사이는 '냉랭' 하다고 까진 할게 없다고 해도 알콩달콩한 것 과는 거리가 멀었고, 말 그대로 그냥 적당히 집안에서 맺어주면 그런갑다 하고 사는 어르신들 세대의 결혼처럼 '좋을것도 나쁠것도 없고 그냥 사는' 관계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에 남편 얼굴 보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페니는 주로 시아버지인 에드워드 넬슨 씨를 옆에서 돌봐주면서 깊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페니의 다른 사진.
페니는 종종 아름다웠다는 기록도 있지만, 어쨌든 눈에 확 띄는 엄청난 미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란스러운 성격도 아니었고, 사교계에 나서는 일도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양이 풍부한 편도 아니었고, 세련된 여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시아버지 좀 모시고, 남편하고 같이 살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가끔 가벼운 다과회나 좀 열고,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넬슨은 해상에 나와 임무를 하며 오랫동안 집에 못가는 동안 페니와 편지를 통해 의사 소통을 했지만, 사이가 저렇다보니 남아 있는 편지도 거의 살풍경 한게 대부분입니다.
그냥 뭐 이런저런 임무에 관한 최근의 동향 좀 보고하면서 "군인이라면 의무에 마땅히 충실해야 하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목숨을 바칠 각오도 하고 있소." "이런 일을 하는건 자랑스러운 의미라오." 뭐 이런 식의.... 가끔 "조만간에 돌아가면 거기서 쉬고 싶으니 XX 부근의 집을 한 채 알아봐서 매입해보도록 하시오." 같은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고, 여하간 서로 정이라고는 들게 없는 편지 왕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부근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넬슨은, 여기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엠마 해밀턴.
엠마는 본래가 별로 신분이 높은 여인은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돈 많은 상류층 남자들의 정부 역할 - 그것도 파티 같은데서 야시시하거나, 혹은 아예 안 입거나 하고 나와서 흥을 돋구는 그런 역할을 하면서 살았던 여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도 낳은 적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 되는 입장에서야 천한 사생아일 뿐이라 별로 자기 자식이라고 인정도 안했지만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한때는 그렌빌이라는 남자의 정부로 있었던 엠마였지만, 이 그렌빌은 뭔가 '돈 많이 많거나 상류층에 끈이 있거나' 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지금의 처지를 좀 더 낫게 해보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자 옆에 있는 엠마가 성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적당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윌리엄 해밀턴 경.
그렌빌에게는 윌리엄 해밀턴이라는 삼촌이 있었는데, 이때 나이가 55세 가량이었습니다. 얼마전에 부인과 사별한 그는 조카에게 종종 "적적하고 외롭다" 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마침 해밀턴 경에게 빌린 돈도 어느정도 있었던 그렌빌은 그걸 해결할 겸 자신의 정부인 엠마를 해밀턴 경에게 그대로 넘겨줬습니다. 물론 엠마는 처음에는 그런 사정은 모르고 해밀턴 경에게 갔지만 나중에 알고 분통을 터뜨렸구요.
결과적으로 보면 돈 많은 부자에게 팔려온 셈이지만은 윌리엄 해밀턴 경과 엠마는 그럭저럭 죽이 잘 맞았고, 몇년 뒤에는 아예 결혼식을 치뤘습니다. 비록 실제로는 거의 사실혼 같은 관계라고 해도, 정부와 실제 부인은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는 법이니 여러 남자의 정부로 전전하던 엠마는 인생 역전을 이뤄낸 셈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엠마는 '엠마 해밀턴' '레이디 해밀턴' 이 되었고, 이때가 엠마는 26살, 윌리엄 해밀턴 경은 60세 였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부자였던 윌리엄 해밀턴 경의 직업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외교관이었습니다. 해밀턴 경은 영국 정부 소속으로서 나폴리 왕국의 대사로 부임해 있었고, 때문에 자연히 엠마 역시 나폴리에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해밀턴 경은 고고학자이자 나폴리를 비롯한 옛 이탈리아의 유물 등에 심취해 있는 문화인이었습니다. 고전 유물과 예술에 대한 그런 윌리엄 해밀턴 경의 영향, 여러모로 자유분방한 나폴리의 분위기에 더해져 엠마는 과감하고 도발적인 행위 예술로 이름을 떨쳤던, 그야말로 '남국의 관능적인 여인'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 임무를 받고 나온 넬슨은 지중해 함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지중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중요한 거점인 나폴리 왕국에서 활동하는 윌리엄 해밀턴 경과는 당연히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고, 실제로 해밀턴 경과 넬슨은 사이가 매우 돈독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경애하는 관계였습니다. 이 정도로 둘이 가까우니, 해밀턴 경의 젊은 아내인 엠마에 대해서도 넬슨은 당연히 알 수 있었구요.
아무튼 그렇게 서로 알고 지내는 처음의 몇년은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79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수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난데없이 '이집트' 로 원정을 떠나는 일이 발생합니다. 당연히 넬슨은 그 뒤를 좆았고, 비록 이집트 상륙 자체를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부대를 상륙시키고 남아 있던 프랑스 해군을 이집트 앞바다에서 전멸 시키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양측의 교환비가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그야말로 완승이었지만, 이런 승리를 거두는 동안 넬슨 역시 머리 쪽에 큰 부상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엄청난 전공을 거두고 영웅이 되서 넬슨이 나폴리로 돌아오자 윌리엄 해밀턴 경은 기꺼이 쇠약해진 넬슨을 기꺼이 자기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넬슨을 간호하는 일은 엠마가 맡았습니다.
아파서 누워 있는데.... 그런 자기를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힘껏 간호해주고.... 그런 여자는 별 재미도 없는 자기 부인하고는 전혀 다른 인종이고....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 보내고....
그러다보니 결국 뻔한 일이었습니다. 이 두 명은 그대로 눈이 맞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부터가 정말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넬슨과 윌리엄 해밀턴 경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경애하는 아주 돈독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경애하는 인물의 앞에서, 그런 사람의 부인을 빼앗아 바람을 핀다?
그러나 실제로는 넬슨이나 엠마나 두 사람의 관계는 아무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당사자인 윌리엄 해밀턴 경이 넬슨과 엠마의 관계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윌리엄 해밀턴 경은 자기 '부인' 인 엠마가 넬슨과 뭔 짓을 해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걸로 엠마와 소원해진다거나 혹은 존중하는 넬슨과의 관계가 멀어진다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되려 넬슨과 엠마가 대놓고 공공연한 관계를 이어가도 여전히 같이 집에서 살았고, 단지 정말로 자기가 사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을때 옆에서 방해한다던가, 그게 아니면 낚시하고 있는데 옆에서 방해한다거나 하면 짜증을 내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저 재미 보려고 데리고 있는 정부를 갈아치우거나 혹은 남에게 넘겨 주는 일 정도는 당대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당장 지금 윌리엄 해밀턴 경이 그렌빌에게 엠마를 받은 것도 그랬고, 유명한 사례를 보자면 그 '나폴레옹' 이,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바라스의 정부인 조세핀을 넘겨 받아 결혼한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봤듯이 엠마는 이제 그냥 정부가 아니라 '해밀턴 부인' 이었고, 설사 정부를 남에게 넘겨 준다고 한들 '자기가 정부를 넘겨준 남자와 넘겨줬던 정부, 그 두명을 자기 집에서 살게 하면서 3명이서 같이 산다' 는 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 입니다. 이를테면 나폴레옹이 자기에게 조세핀을 넘겨준 바라스와 3명이서 사이좋게 튈르리 궁에서 같이 자고 일어나고 한다는 소리나 진배가 없죠.
아무튼 그렇게 기괴한 관계를 이어가던 3명은 고국인 영국, 런던에 정말 수년만에 귀환 합니다. 대중들은 오랜 세월 밖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넬슨을 소리 높여 찬양했고, 이때 넬슨은 가히 국가 영웅으로서 만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던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목하던 대중들의 눈에 넬슨의 옆에 있던 엠마와 해밀턴 경 역시 보인 것입니다.
이 무렵 넬슨은 이미 엠마에게 완전히 마음이 기운 뒤라, 오랫동안 얼굴도 보지 못했던 페니와 관계를 이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넬슨이 정말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집에 있던 페니에게 연락을 보내 조용하게 관계를 끊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수 없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페니가 넬슨을 만나러 런던으로 왔고 넬슨과 페니, 엠마(+해밀턴 경)이 전부 한데 엮여버린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되어버린 것입니다.
페니와 그 페니에게 오랫동안 간병 등의 도움을 받은 넬슨의 아버지, 에드워드 넬슨은 한 편을 이루었지만 정작 넬슨은 페니를 제대로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술 더 떠, 이때 엠마는 넬슨의 아이를 임신까지 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 치정 싸움은 곧바로 매체를 타고 모든 영국인들이 알게 되는 사건으로 커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온갖 소동에 넬슨은 사건의 당사자이면서 완전히 질려버렸고, 수년을 바다에서 떠돌다 겨우 영국 땅을 밞은지 고작 8주만에 다시 도망치듯 임무로 떠났고, 이때 맡아 성공시킨 임무가 바로 넬슨의 신화를 한층 더 해준 '코펜하겐 해전' 이었습니다.
코펜하겐 전투. 치열한 전투 도중, 정신줄을 놓은 상관이 맥락 없는 후퇴 명령을 내려 전군을 위험에 처하게 하자, 넬슨은 "난 애꾸눈이라서, 가끔 장님이 될 권리가 있지" 라며, 보이지 않는 한쪽 눈에 망원경을 가져다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그대로 작전을 이어가도록" 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일단 이런 전투와는 별개로 일단 임무에 나서면 여러가지 절차 문제도 있기 때문에 장기간 엠마를 볼 수 없었고, 이 떄문에 엠마는 짜증을 내면서 넬슨의 부아를 돋구기 위함인지 "요즘 왕세자가 나를 자기 정부 명단에 집어넣으려고 추파를 던지는 것 같다." 는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자 혹시라도 엠마가 자기를 버릴까 안절부절한 넬슨은,
"말도 안된다. 윌리엄 경 같은 분이 당신이 그 따위 악당(왕세자) 놈의 창녀가 되기를 바란단 말이오? 위험을 감수하지 마시오."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삽시다... 기회가 오는대로 당신을 바로 아내로 맞이하겠소."
"아, 제발... 나는 벌거벗은 창녀 50명과 함께하는 방에 밀어넣어진대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겠소. 믿어주시오."
"그녀(페니)는 대단히 어리석소..."
"당신이 그녀와 닮지 않았다는것이 천만 다행이오."
이렇게 좀 심할 정도로 매달리는 편지를 자주 보내는 한편, 페니에게는 가히 냉-담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끝났소. 그러니 이혼에 동의해주시오." 하는 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어쨌든 모든 임무가 끝나고, 나일강 전투의 영웅이었던 넬슨은 난장판이 되서 떠난 전투에서 또다시 영웅이 되어 귀환했고, 이제는 세상 만사 뭐라고 하든 신경 끄고 엠마와의 오붓한 생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넬슨은 웸블던 외곽 지역의 머튼 플레이스Merton Place라는 곳을 구매하고는, 여기에 자기와 엠마를 위한 오붓하고 조용한 지상락원을 만들었습니다. 이런저런 것을 꾸미는 일은 그런거 잘 할 줄 모르는 넬슨 대신 엠마가 맡아서 아름답게 꾸몄는데, 넬슨과 엠마는 물론 하인들은 두었지만 건물 안에 하인들이 쓰는 가구나, 하인들이 잠을 자는 곳은 아예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들을 위한 아주 사적이고 오붓한 공간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인들조차 들이지 않을 정도의 사적인 공간에, 늙은 해밀턴 경도 같이 살았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정부를 예사로 두고 바람을 피우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대의 분위기가 이혼을 마음대로 했다고 생각하는것은 위험합니다. 오히려 여럿 정부를 거의 공인 해 두고 만나고 했으니 만큼, 남편으로서 아내가 마음에 안 든다면 조용하게 다른 여자를 만나 회포를 풀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고, 때문에 별다른 이유 없이 이혼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페니가 넬슨의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게 좀 큰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만은...
그런데 '국가 영웅이, 멀쩡한 아내를 내다버리고, 어디서 데려온 정부와 함께, 그것도 그 정부의 본래 남편과 같이 3명이서 조용한 곳에 건물 하나 사들이고 같이 산다' 는 것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가지고 소근소근 해댔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별 신경도 안 썼습니다.
넬슨으로 말하자면, 넬슨이 워낙 국가의 유명한 공인이다보니 이 머튼 플레이스로 넬슨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자연히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꼭 그렇지 않아도 지역 사회에 살면서 이웃을 초대해 차를 대접하는 일도 많구요.
그런데 이 경우, 넬슨은 엠마가 '이 사람은 아니다' 라고 허락하지 않으면, 아예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즉 넬슨이 누구를 만나서 접견하고 어쩌고 하는건 순전히 엠마의 의지에 달린 문제였고, 심지어 이것은 넬슨의 가족들조차 마찬가지라 넬슨 형제라도 엠마가 원하지 않으면 넬슨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딱히 넬슨 본인이 사람을 가린 것은 아닙니다. 넬슨은 정부에서 사람이 와도 그냥 서로 잘 대화했고, 머튼 플레이스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다 근처의 농사꾼을 만나도 태평스럽게 이야기를 잘 나누는 편이었습니다. 본인은 별로 가리지 않지만, 엠마가 원하니 그러겠다는 겁니다.
넬슨의 아버지, 에드먼드 넬슨.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넬슨의 아버지였습니다. 넬슨의 아버지인 에드먼드는 페니에게 돌봄을 받는 몸이기 떄문에 이 문제로 넬슨과 크게 싸웠고, 그때문에 서로 얼굴조차 거의 안보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몸져누운 에드먼드가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넬슨은 아버지와 다시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드먼드는 사망 합니다.
그런데 넬슨은 이때 장례식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확실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추측하기로는, 에드먼드 넬슨이 죽은 날(4 월 26일)이 엠마의 생일(4 월 26 일)이었기 때문에, 엠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아버지의 장례식을 참가하지 않은것인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장례 비용을 대주긴 합니다.
그야말로 본래 부인도, 형제도, 부모도, 세간의 시선도, 죄다 개의치 않고 신경도 안 쓰고 넬슨은 엠마와의 관계를 이어나갔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넬슨이야말로 천재적 영웅' 이라고 추켜세우는 매우 우호적인 평전의 저자들조차도,
'그는 온전히 엠마의 소유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적인 영역에서였고, 의무를 수행해야 할때는 거기에 모든걸 던졌다' 라는 식으로, 사적인 영역에서 넬슨은 완전히 엠마에게 지배 되었다는 식으로 묘사할 정도입니다.
트라팔가르 해전
이윽고 프랑스와의 짦은 평화가 끝나고 전쟁이 재개되자, 넬슨은 다시 해상에 나가게 됩니다. 어쨌거나 공적인 일을 하면서는 천상 군인인 사람 사적인 일이 어쨌든지 간에 임무를 맡자 거기에 집중하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다만, 이번에 바다로 나가면서는 배 안에 부인인 엠마와, 그런 엠마와의 사이에서 나온 딸 호레이샤 넬슨의 초상화를 가져다 놓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해상에서의 결전이라는게 애초에 그렇게 자주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보니, 임무를 맡긴 했어도 당장 전투를 치열하게 한다기보다는 주로 지루하게 프랑스의 항구를 봉쇄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이 늘어지자 넬슨은 머튼에서의 한적한 생활을 종종 그리워 하기도 하고, (빈말로라도 정숙하다고는 볼 수 없는)엠마가 걱정되어 측근을 시켜 엠마의 동태를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혹은 몇달 이상 계속 해상에서 지내다가 잠깐 정박하여 조금 휴가를 받을때도 있었는데, 이럴떄는 엠마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럴떄마다 엠마는 해밀턴 경과 같이 왔고, 3명이서 서로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질떄는 넬슨은 바다로, 엠마는 해밀턴경과 함께 돌아가곤 했습니다. 늙은 해밀턴 경은 죽을때까지 엠마-넬슨과 같이 살았고, 마지막에 숨을 거둘떄도 엠마의 팔에 안겨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쨌건 결국 마지막에 최후의 결전이 벌어져, 넬슨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트라팔가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완승을 거두었지만 이때 기함을 이끌고 선두에 나섰던 넬슨은 적의 총격에 척추가 당해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넬슨은, 그 전투의 와중에, 심지어 자기가 이제 죽어가는 와중인데도,
''아직 엠마와 제대로된 결혼 절차를 마무리 한게 아닌데, 지금 내가 이렇게 죽으면 엠마와 딸은 적법한 상속자로서 대우를 못 받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 생각에 주위 사람들에게 계속 엠마를 좀 돌봐주라고 부탁하고, 죽기 직전까지도 계속 이를 우려했습니다. 실은 아예 전투가 펼쳐지기 전날에 주위 사람들을 불러 약식으로 엠마에게 상속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사람들을 증인으로 삼았지만, 이는 법적 효력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넬슨이 죽고 난뒤 그 남은 유산은 가족들이 전부 챙겼고, 넬슨이 그토록 추앙 받고 영웅시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엠마는 지원금,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해 빚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여러모로 '영웅적이다' 라는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는 넬슨의 사적인 삶이었는데, 후대의 영국 사람들은 보통 이를 두 가지 방식으로 다루곤 했습니다.
하나는 넬슨이 요망한 여자에게 홀렸다 - 넬슨이 나폴리에서 반군을 학살했다는 혐의까지 더해(다만 이 혐의에 대해서는 과장되었다며 부정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넬슨이 이집트에서의 전투에서 머리가 다쳐서 판단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악랄한 여자에게 걸려 당한것이다' 라며 엠마를 사악한 여자로 모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엠마와 넬슨의 관계를 무슨 '세기의 로맨스다' 라는 식으로 다루는 식입니다. (제가 쓴게 아니라) 넬슨에게 우호적인 평전의 내용 중 하나를 '그대로' 인용하면, "넬슨은 사회적인 압력에 굴복해서 마지못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는 '결단력' 을 보여주었다. 페니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것은 그저 사회의 인습에 굴복하는 나약한 일이었을 뿐... 그는 그러지 않았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자기 아내를 버릴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