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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6 17:21
그래서 제가 택한게 도피입니다. 둠하세요 둠 히히 악마들 찢고 죽인다!! 아 체인쏘!! 훌륭한 대화 수단이지!!! 또한 케장 만화가 괜히 히트치며 서브컬쳐 전반에 훌륭한 밈이 되는게 아닙져 카오스도 이런 카오스가 없습디다 어쨋든 제탓은 아닌듯함 그래서 오히려 편안함
18/08/06 19:26
사실 판타지는 판타지 일뿐,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다만 누군가가 이런 식의 장치들을 가지고 또 괴상한 음모를 꾸밀 생각을 해보면, 언제나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대비해둬야겠습니다. 1편에서도 다뤘듯이, 악마를 잡는다고 사람 사이에서 설치는 사람들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18/08/06 18:15
흥미로운 얘기 잘 읽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요렇게 될래나요. 1) 인간은 악을 필요로 한다 2) 현대 사회는 악의 존재가 모호하다 3) 이로인해 인간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낸다. ex) PC에 대한 과도한 집착, 이슬람 공격 등등. 과거에 악이란, '내 집단의 안녕을 위협하여, 나의 생존과 번식을 방해하는 존재'였을 텐데요. 이게 과연 nature에 의한 것인가 nurture에 의한 것인가.. 집단을 이루는 양태는 인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동물군에서 발견되는 만큼, nature의 영향이 큰 것도 맞지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적을 몰살하고 재화를 강탈하는 행위가 찬양받기도 했던 십자군 전쟁 때나, 수십명을 죽인 테러범에게조차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재판과 인도적 형집행을 보장하는 현대에나, 인간의 nature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거든요. 수백, 수천년은 유전자풀이 의미있게 변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죠. 그렇다면 '악'을 규정하고 징벌하는 인간의 행동 양식에 있어서 보다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nature가 아니라 nurture다.. 문화와 교육이 훨씬 중요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옛날 보다는 지금이 낫죠. :)
18/08/06 19:37
뭐 사람이야 진화를 논하려면, 다른 유인원이 청동기에 진입해서 문자를 만들어야 그때야 좀 선각자로서 토론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시 말해, 요즘 진화심리학 같은 분야에서 '그것은 유인원에 불과했던 사람을 탓해야한다.' 식의 결론이 자주 나오니까요. 말씀하신 표현대로라면 nature 우선주의이지요. 따라서 nurture라는 후천적 요소도 중요한데, 저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culture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혼자 기르는 수준의 문제야 정말 유인원들 문제이지만, 지금은 온갖 문화산업 선전매체들이 의도를 가지고 퍼지니까요.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디즈니의 공주 이야기를 재미있게 봐주고, 정장을 일할 때 입어도, 그게 감사해줄 일은 결코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 과정에서 무언가 다른 대안이 죽었으면 죽었지요. 그래서 저는 옛날보다 더 피곤한 것이 현대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세상을 줘놓고서는 공정하지도 않은, 그런 복마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비관적인 것이고요. 매체가 '소비'되는 사회에서, '소비'는 순전히 개인의 일인것처럼 포장되지만, 소비자 혼자 VS. 혼자가 결코 아닌 제공자 & 사회의 힘겨루기죠. 저는 나름대로 저 혼자서 도달한 결론들의 빵부스러기를 흘려놓습니다만, 조금이나마 희망이 보였다면 저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거에요.
18/08/06 21:31
설령 악에 대한 니즈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더라도, 니즈의 크기 및 대응 방법은 문화와 교육에 의존한다는 얘기입니다.
현대의 인간이 고대, 중세의 인간 만큼 악을 필요로하지도, 그 악에 대해 격렬하게 대응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이 미혹에서 벗어날수록 강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악에 대한 니즈에 대해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요. 물론, 기대치를 헤븐에 두면 현실은 헬로 보이겠지만요.
18/08/09 10:39
소설 '1984'가 역사를 이해한 존재들의 역사왜곡을 다루듯이, 문화와 교육이 이해된 세상에서 얼마나 인간의 미혹이 억제될 수 있을까 회의적으로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probe님과는 다르게 잡은 것은 확실합니다.
18/08/07 15:33
그런데 보다 '인간적인'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우기위해서는
'비'인간을 우리와 구분하여 성 밖으로 몰아내거나 싸잡아서 철조망 안에 넣었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 거죠. 관용이라는 것은 애초에 현대가 주는 축복이자 불편함입니다.
18/08/09 10:40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정답이 있었고, 몰아낼 악마도 정해져있었으니까요. 그게 없어진 세상에서 과연 우리가 하하호호하면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그게 항상 의문이라서 그렇습니다.
18/08/07 18:19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의 바탕에는 적에 대한 무지가 있습니다. 그 무지 위에 적을 악으로 규정할 수 있지요. 적/악에 대해 알아갈 수록 싸워서 소멸시켜야 할 이유는 점점 적어집니다. 가깝게는 주말에 본 신과함께2를 돌이켜 보면, 고려 장수들에게 죽어간 여진족 어른들은 죽어야 하는 악의 존재였을까요? 여진족의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그 악의 정의는 점점 옅어져 갑니다.
그냥 악하기 위해 존재하는 바보같은 괴물은 이제 세상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몇몇 개인이 그렇게 보이지만, 집단이 개인을 정의하기 어렵고 개인이 집단을 정의하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지금의 우리에겐 말이지요.
18/08/09 10:52
제 글을 잘 요약해주셨네요 :D. 다만 제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무지'가 아니라 '무지'를 이용하는 과두정 엘리트들과 민중들입니다. 20세기라는 '증오의 세기'에 TV, 라디오, 포스터로 수 많은 증오의 선전물이 나왔지만 그런 증오로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자가 전쟁을 이끈 독일과 일본은 붕괴했고,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수 많은 인종차별/인종배제 (독일어 사용 금지, 독일어 이름 철자개명 강제, 일본계 미국인 수용소 운용)를 진행했음에도 전략 수립에 있어서 과도한 증오가 개입되지 않도록 잘 조절했지요. 예를 들어, 확실한 일본 파괴가 예정되있던 일본상륙 작전 대신 차기정권선거라는 정치논리에 따라서 신무기 핵폭탄 투하 작전으로 선회하는 방식으로요. 소설 '1984'에서도 '이중사고'를 통해서 당의 선전에는 열광하지만 동시에 '이중적'으로 기술적, 정치적 현안을 (자기모순적이며 모호한 당의 집단통제체제를 거스르지 않는 현명한 방안으로) 처리하는 당 엘리트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요.
그런데요, 현대에는 이런 엘리트와 민중 사이의 경계까지 박살나고 있지요. 가짜뉴스, 그러니까 전문적인 언론인이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비전문가나 차이가 없고, 정치인의 카리스마를 만들어야할 소명인식, 현실인식, 정치현안에 대한 관료적 이해가 역시나 민중과 상관이 없습니다. 선진국, 특히 대한민국 또한 피해갈 수 없는 고학력사회에서는 이미 이런 인식이 팽배하지요. 실제정치권이 인터넷의 의견을 높게 사지 않았다면 이미 한국의 수 많은 정치적 논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식의 행위는 독일 중앙당의 파펜이 히틀러를 용인한 것처럼, 일개 방구석 극단주의인사들에게 현실정치의 권위를 나눠주는 행위가 되가고 있고요. 아무도 '무지'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PGR21을 보시는 것 같이 서로 할말이 한마디씩은 있는 세상입니다. KNIC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보같은 괴물은 이제 세상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괴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못하고 오히려 더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에 담긴 글을 한번 적어봤습니다.
18/08/09 18:33
많은 생각을 담은 대댓글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데 정리가 안되어 쓸 수는 럾고, 대댓글에 감사하다는 말씀이라도 드리려고 댓글 적습니다.
18/08/08 14:26
마비노기에서는 인간들은 이미 낙원에 도달해 있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고 있다고 했죠.
싸울 적이 없어지면 억지로라도 적을 만들어서 계속 투쟁해가는 이유는, 천국에 도달해 봤자 그 천국에서 사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혹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 투쟁하는 자신, 혹은 투쟁하는 누군가를 보면서 천국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자위하는 것만이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원동력이라고 한다면, 적과 투쟁하는 과정, 혹은 억지로 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지금 이 자리가 지옥이 될 수도, 혹은 되고 있다는 것은 별 상관이 없는 얘기겠죠.
18/08/09 12:42
과학과 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인식이라는 것이 현실이 전혀 필요없어도 존재하는 허깨비일수는 있겠지만, 현실을 거부하는 망상은 결국 자기자신과 다른 현실 속의 존재를 긁어먹게 되는 법이겠지요. 사람은 육체의 허기짐을 벗어나면 정신적으로는 이미 그 어떤 당위성도 지니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현실과 합의하지 못하면 죽거나 아프거나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타협하고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살갗이 터치는 이런 현실적 투쟁 가운데에서 우리가 나서야할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현대가 고립을 불러일으킨다는 비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투쟁의 역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수 많은 광신도들이 증명했듯이, 먹고사는 현실세계를 거부하면 결국 그 추하다는 현실에게 꼭두각시처럼 추하게 조종당하다가 죽거든요. 옴진리교에, 공산주의에, 존스타운에 염불과 기호는 많아도, 사람에 대한 이해와 현상에 대한 해결책이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18/08/09 00:45
개인에게는 비극이지만 인류단위에서는 매번 코딱지만큼이지만 전진하는 면이 있었다고 믿어야죠 뭐
아프리카 반투족의 의미가 '인간'인 것부터가 이미 옛날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인식 수준이 적나라하개 드러나는 단어 - 분명 모든 언어는 필요해서 만들어졌을 테니까요 - 라 보는 입장에서는 외국인(피부색, 언어, 생김새, 생활방식 등등이 다른)을 같은 사람 취급해주는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한나 아렌트를 나쁜 지지배라고 툴툴거려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인간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논문을 쓰는 사람과, 그러한 논문이 금서가 되지 않고 현대 윤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수많은 사회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고 수용한 것을 보고 있자면 인류의 성숙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다만 한 인간의 조건이 완성되는 순간은 인생의 끝에서 이뤄지는데, 인간은 그 이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 결국 후대로 이어지도록 끊임없는 교육과 수양이 필요하겠죠 시지프스가 그렇듯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게 끝날 일은 요원하겠지만
18/08/09 12:36
이미 몇번이나 증명되었듯이 인간의 자멸방지의 본능이라는 것을 무시하면 안되지요, 크크.
아마 인류는 계속해서 길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석유의 종언이 현대문명의 종언이라는 피크 오일은, 계속되는 기술발달로 퇴장했지요. 멜서스 트랩도 그렇고요.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역시도 지나간 역사입니다. 그 전의 수천년 어치의 초법적인 폭력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네요. 다만 언제가 과정이 문제가 아닐까요. 시지프스의 과정... 으흐.
18/08/15 19:03
인간에게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혹은 세상은 대부분 회색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능력이 있었다면 그도 아니면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줏대라도 있었다면 선악이라는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세상과 타인, 나아가 자기 자신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요. 괴물을 다룬 매체는 결국 인간이 괴물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려줍니다. 여기에서 굳이 인간은 악하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필요는 없겠지요. 저는 괴물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멋지고, 아름답고, 나름 귀여운 친구들이잖아요. 사람이 내면에 괴물을 품고 있다면, 이왕이면 먹이도 주고 똥도 치워주면서 잘 길러보는 편이 좋겠죠. 진화하면 더 멋있어질지 모르잖아요! 괴물도 사람도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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