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놀이터에서 무작정 그 아이를 기다렸다. 지금 나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놀이터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그 아이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으레 그렇듯 개구멍으로 통칭되는 뒷길도 두엇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반드시 놀이터 앞으로 지나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릴없이 그네를 앞뒤로 움직이면서.
그 아이의 학교는 나와 같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의 방과 후 일정을 알지 못했다. 하교 후 그 아이가 학원에 다니는지, 친구와 어울려 노는지, 아니면 집으로 바로 돌아가는지 나는 몰랐다. 다만 그 아이가 나보다 먼저 귀가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지레짐작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네에 앉아 무작정 기다렸다.
추운 초겨울이었다. 쇠사슬로 된 그네 줄이 시려워 종종 손에다 입김을 불어넣었고 바람이 차가워 간혹 몸을 떨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조금씩 녹여 갔다. 아파트 단지 입구로 시선을 향한 채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네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두 시간쯤 흐르고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져 올 무렵 나는 그네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 아이의 집 앞으로 걸어갔다. 아파트 입구에 서서 그 아이의 집을 올려다보았다. 그 아이가 집에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뒷길을 통해 집으로 갔을 수도 있고 아직까지 학원에서 공부중일 수도 있었다. 나는 무엇이 정답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 아이의 집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주머니에 집어넣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렇게 한동안 서 있다가 나는 몸을 돌렸다. 천천히 터벅거리며 귀가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많은 것을 바란 건 아니었다. 단지 그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을 뿐이었다. 보았더라면 그뿐이었을 것이다.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내 얼굴을 감추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지나간 후에야 다시 고개를 들어 그 아이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을 것이다. 아직 어렸던 때였다. 순수함이라 할 만한 것도 조금쯤은 남아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정도만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에게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조금 앓았다. 다른 이유로 좀 더 오랫동안 앓아야 했다. 앓음의 끝에서 나는 불현듯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지나치게 많은 세월이 흐른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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