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aura입니다.
언제나 자게에 글을 쓰는 것은 설렘반 걱정반이네요.
이번에도 역시 단편입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 -
누구나 추억하나 쯤은 가지고 있다.(당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것이 가슴 저미는 사랑이든, 비보처럼 슬픈 애사이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내게 가장 선명히 남아있는 추억은 단언컨대 '그 녀석'에 관한 것이다.
분명 꽤 오랜 전 일임에도, 단지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일순간 가슴 속에서 감정의 파도가 철썩거렸다.
충격, 놀라움, 신선함, 질투, 걱정, 시기, 고마움...... 아쉬움.
여러 감정의 색이 내 마음 속 물감통에 처박혀 무슨 색이라 단언할 수 없는 착잡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인정하긴 싫지만, 녀석은 내게 큰 충격을 줬었고,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녀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지금보다 활력넘치고 앳됐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였다.
중학교 졸업 당시 1지망했던 학교에서 떨어져 울적한 기분으로 했던 첫 등교는 아직도 선명하다.
주위에는 온통 낯선 얼굴들 뿐이라 나는 잔뜩 기가 죽어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보게되어서,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설렘으로, 반 아이들은 모두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시장통같은 조잘거림 속에서 나는 보게 되었다. 따분하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하품하고 있는 '그 녀석'을.
주변에 아는 얼굴이 없어 잔뜩 침울해져있던 나는 녀석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얘도 1지망하던 학교에서 떨어져서 아직 친구가 없나보다. 그런 생각과 함께 홀린 듯이 녀석의 옆 자리에 앉았다.
녀석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노말'했다.
평범한 얼굴에 과묵한 인상이었는데, 한 번 보고서는 그 얼굴을 외우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듯한 인상이었다.
그나마 특이점이라면,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큰 편이었다.
체형은 마른 편이어서 서 있으면 제법 멀끔한 인상을 줬던 것 같다.
아직 채 다 자라지 못해 왜소했던 나였기 때문에 멀끔하단 인상은 나만의 주관일 수 있다.
처음 녀석은 과묵한 인상만큼이나 말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굳이 나와 대화할 이유나 목정성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말을 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녀석과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것은 봄비답지 않게 장대비가 쏟아지던 3월 말의 어느 날 이었다.
종례 무렵 먹구름이 울먹울먹 천둥번개와 비를 쏟아냈다.
들고다니기가 불편한 장우산을 한사코 챙겨주시던 어머니 덕에 나는 차갑고 무거운 봄비에도 걱정이 없었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날씨를 확인하고 부랴부랴 달려온 어머니들의 마중을 받았다.
바닥 청소 담당으로써 깔끔히 대걸레질을 완수한 나는, 다른 아이들이 그 어머니와 짝을 지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서야 하교 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빗소리에 콧노래 감춰 부르던 와중에 문 앞에서 가방을 머리에 이고 뛸가 말까
망설이는 녀석을 보게 되었다.
나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녀석을 멈춰세웠다.
"야!"
내 외침에 녀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돌았다.
사나운 봄비가 걱정과 두려움을 감춰준 덕분인지, 나는 녀석에게 자연스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이 날씨에 비 맞고 가려고?"
"응."
뭐가 문제냐는 듯 녀석은 눈을 꿈뻑거렸다.
어머니는 못 오셔? 라고 반문할 뻔했으나, 찝찝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말을 바꿨다.
"집 어느 쪽인데? 이 날씨에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
"음. ○○아파트."
"나도 그 아파트 사는데? 103동."
"나는 105동."
공교롭게도 녀석과 나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몰랐으면 모를까, 뻔히 집 근처에 사는 걸 알면서 녀석을 외면할 순 없었다.
"같이 쓰고 가자. 보다시피 우산이 꽤 크거든."
나는 내 키의 반이 넘는 장우산을 펼쳐들었다.
말했다시피 우산이 정말 커서 두 명 정도는 너끈히 쓰고갈만한 크기였다.
녀석은 잠시 쭈뼛거리다가 마침내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
나보다 녀석의 키가 훨씬 큰 탓에 높이를 맞추느라 낑낑댔던 기억이 난다.
집에 가는 길은 재밌게 떠들어댔던 것 같다.
거의 내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녀석은 맞장구를 쳐주었을 뿐이지만.
차가운 봄비, 그리고 우산 속에서 훈훈함을 피웠던 이 날을 기점으로 녀석과 급속도로 친해졌던 것 같다.
친해지는 만큼, 알아가는 것도 많아졌다.
녀석은 생각보다 사려깊다. 무거운 짐은 기꺼이 나눠 들었고, 맛있는 반찬은 나눠먹었다.
타인에게 무관심해 보이고, 무기력해보이기까지 한 까닭은 단순히 귀찮아서였다.
본인이 흥미가 동하지 않는 일에는 좀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말은 한 번 할 때에도 진중하고 무거워서 좀처럼 허언을 하지 않았다.
4월 중순 쯤 완연한 초록 봄 무렵.
내가 녀석에게 크게 놀라고야 만 것은 녀석의 이런 성격들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진짜 예쁘다. 사람 맞음?"
"진심 미쳤다. 미쳤어."
"당연히 남자친구 있겠지? 와씨. 대박."
"이름이 뭐라고? 주은호?"
지나갈 때마다 남녀를 불문하고 무수한 감탄을 자아내던 학교의 아이돌.
여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그녀. 나 역시 그녀에게 감탄했던 범부 중 하나였다.
우리학교 학생이라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되고 보고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사람이 주은호였다.
주은호는 중성적인 이름과는 다르게 무척 여성스럽고, 예쁜 아이였다.
안타깝게도 반이 달라 자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따금씩 복도에서 마주 칠때면, 싱그러운 향과 햇살같은 미모로 걸음을 붙잡아 두었다.
외모도 외모였지만, 성격도 평판이 굉장히 좋았다.
주은호와 가장 친한 측근의 표현에 따르면,
은호의 성격은 '교과서와 같이 반듯하고 착한 성격.'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우리학교에서 남자라면 누구나 주은호를 마음에 품었고,
여자들은 그녀를 동경했다. 그야말로 워너비 중에 워너비랄까.
"은호 당연히 남자친구 있겠지?"
"글쎄."
그 날은 녀석과 함께 복도에서 은호를 스친 날이었다.
어쩐지 은호를 마음에 담아둔 티가 나는 것이 부끄러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녀석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이 녀석은 정말 목석이라도 되는 걸까.
치기 어린 10대의 소년이 저런 소녀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다니. 나로서는 녀석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긴, 없어봐야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그치?"
나는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은호를 볼 때면 가슴이 쿵쾅거리다가도, 거울에 비친 내 꼬라지를 보자면 차갑게 식는다.
그녀와 비교하자니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마, 남자친구 없을거야."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녀석을 바라봤다.
"여자애들이랑 얘기하는 거 들은 적 있거든."
"그걸 어떻게 믿어?"
"일단은 본인이 말했던 거니까."
이런 얘기는 언제 듣고 다닌거람. 남 얘기를 주워 듣고 다닐 녀석이 아니어서 조금 놀랐다.
"에휴.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데 뭐. 우리학교에서 누가 주은호를 만날 수나 있겠어."
"글쎄..."
내 말에 녀석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내 녀석의 미간이 펴졌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불가능하지만도 않지. 나는 오히려 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녀석이 허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때 나는 우습게도 '네가 감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가지지 못한 면모를 반짝거리고 있는 녀석에게 시기와 두려움을 피우고 있었다.
2에 계속.
- - -
기네요. 나눠서 써야겠습니다.
추후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