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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6/01 18:26:21
Name 글곰
Subject [일반] 알고 있어요. 나는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쓴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어려서부터 꿈은 자주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과학자였죠. 로켓을 타고 별나라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만화가였습니다. 다행히도 제 그림 솜씨가 너무나 부족한 나머지 이 꿈은 금방 포기했습니다. 세 번째는 게임 제작자였습니다. 원래 나이어린 게이머들은 게임 만드는 것도 게임을 하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중학교 막바지 무렵에 제 꿈은 다시 바뀌었습니다. 글쟁이로. 작가로. 소설가로.

  발단이야 언제나 그렇듯 단순하고도 하찮았습니다. 만화가 재미있으니까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게임이 재미있으니까 게임 제작자가 되고 싶었던 것처럼, 소설이 재미있으니까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읽는 책처럼 재미있는 소설들을 쓰고 싶었어요. 오. 그 때는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대판 싸운 후 인문계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공부하는 대신 하루에 음란형 무협지와 싸구려 판타지를 너덧 권씩 읽어대던 그 시절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글솜씨가 생각한 만큼 좋지 않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저는 진로를 살짝 틀었습니다. 작가를 자칭했다가는 한 달 안에 굶어죽을 테니 따로 직업을 구하자고 생각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문과에 진학했습니다. 수능시험에는 자신이 있기도 했고, 나름 명문대지만 국문과가 있는 학부는 커트라인이 꽤 낮았던 덕분에 무리 없이 들어갔습니다. 학교에서는 국문과 수업을 들었고 집에서는 주로 게임을 했습니다. 습작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했고 대체로 흰 바탕에 글씨로 구성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군대에 다녀왔고 수험 공부를 했고 예정대로 합격했습니다. 직장을 얻은 후 다시 습작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다니던 시절보다 조금 더 정교한 형태의 쓰레기를 만드는 일은,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데다 결과물마저 절망적이었기에 역설적으로 꽤나 즐거웠습니다.

  아마도 편하고 여유가 많을 거라 생각해서 선택했던 직업은 의외로 힘들고 고되었습니다. 바쁨을 핑계 삼아 다시 습작과는 멀어졌고, 그러다 여차저차 하여 간신히 여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미 나이는 삼십대에 접어든 지 오래였지만 다시 한 번 힘을 내 보기로 했습니다. 꿈을 위해서요. 그 때 웹을 통한 장르소설이 범람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신문에 소설이 연재되던 것처럼 작가들은 사이트에 연재를 했고 독자들은 그걸 돈을 주고 사 보았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바라던 이상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어요. 정말 감동스러웠습니다. 좋은 세상이 왔다는 사실에 미치도록 행복했습니다. 저는 그 드넓은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풍덩!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죠.

  제가 쓰고 싶은 글과 사람들이 원하는 글은 좀 달랐습니다. 아니요. 엄청나게 많이 달랐습니다. 저는 제가 쓰고 싶은 글의 카테고리 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잘 나가는 글은 제가 읽을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케케묵은 글쟁이 지망생이 적응할 수가 없는 형식과 부류의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나는 이런 글을 쓰지 않을 테야! 오만하고도 거만하게, 충실하기 그지없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아.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아니요. 이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냥 모른 척 무시했던 거죠. 이십대에는 차마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삼십대에 이르니 결국 자명한 사실의 무게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지금도 알고 있어요. 나는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쓴다는 걸. 시대는 변했고 저는 새로운 시대의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세기조차도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할 쓰레기를 만드는 게 일이었지만 21세기에는 아예 그런 쓰레기조차도 만들어낼 수 없었습니다. 아, 진심으로 말씀드리건대 그건 무척이나 힘들고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나 스스로 자신의 꿈을 이룰 능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은요. 전래동화에 나오는 지나가던 선비처럼 마음씨 좋은 모 전자책 출판사 분과 어쩌다 인연이 닿은 덕분에, 저는 감히 유료 연재를 시도해볼 수 있었고 그로써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안 팔리는구나. (갑자기 정말로 궁금해집니다. 대체 뭘 보고 계약해 주셨을까요?)

  물론 제게도 재능의 한 토막이라 할 만한 게 조금쯤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일반인들보다야 어느 정도쯤은 낫겠죠. 하지만 예컨대, 100점 만점에서 작가 타이틀을 달기 위해 필요한 점수가 80이라고 한다면, 저의 재능은 기껏해야 3,40점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작가의 의미가 글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면 저는 작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남들이 기꺼이 돈 주고 살 만큼 가치 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거든요. 겸손도 아니고 자기비하적인 고백도 아닙니다. 그냥 사실이 그랬어요. 그렇기에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요. 직업이 있어서 저는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형편없는 글이지만 딱히 상관없었습니다.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글을 써서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직장에서는 제 노동에 따른 급여를 지급해 주었습니다. 자본주의 만세.

  그래요. 어느덧 마흔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온 나이가 되었습니다. 꿈보다는 현실을 말할 나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나의 무능으로 인해 나의 꿈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여전히 저를 아프게 합니다. 가끔씩 샤워기 아래에 서서 남몰래 눈물 반 방울 정도는 짜낼 수 있을 정도로요. 사실 저는 글을 팔아서 먹고 살고 싶었습니다. 거의 로또 1등 당첨만큼이나 간절히 그렇게 바라왔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주고 제 글을 살 만큼 제 글이 훌륭하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의 여러 잘 팔리는 작가들은 제게 알려줍니다. 너로선 역부족이라고요.

  더 쓰다가는 자기비하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 같아서 그만둬야겠습니다. 다만 그래요. 난 그런 걸 안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는 그나마 기분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걸 못 쓴다는 진실을 절감하고 있는 요즘은 항상 마음이 우중충합니다. 정말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가 글을 쓰는 걸로 보아, 적어도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그것만은 사실이네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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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프의대모험
18/06/01 18:36
수정 아이콘
낭만이 있다는거는 능력의 유무와 별개로 항상 부러워요. 저는 그런게 있어본적도 없는거같거든요.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가장 채우기 껄끄러웠던 항목이 자신의 장점이나 특기를 쓰라는건데 없는걸 만들어서 쓰려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더군요.
Thursday
18/06/01 18:44
수정 아이콘
글곰님만큼 멋진 글을 쓰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서글프기 그지없네요.
순문학을 준비하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등단하는 와중에 지속된 '실패'를 맛보고 자존심으로 버티던 저로서는 이해를 넘어 공감가고 또 가슴 아픈 이야깁니다.
Lord Be Goja
18/06/01 18:59
수정 아이콘
얼마전에 태공망은 70살이 되도록 출사하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아 그후에 성공했고 요즘에는 해리 번스타인님은 96세에 드디어 첫 출판에 성공한 책인 인비지블 월이 대박을 냈죠.사실 계속 성장하는 중인데 글곰님만 모를수도 있어요.
F.Nietzsche
18/06/01 19:01
수정 아이콘
저는 흑백사진을 찍습니다. 해외 공모전에서 다수 당선되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제 사진에 반응이 없습니다. 당연히 사려고 하지도 않죠.
잘 팔리는 것과 좋은 것은 다릅니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역시 다릅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걸 하는게 더 즐거운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사악군
18/06/01 19:21
수정 아이콘
스타를 보기만하다 간만에 한겜했더니...눈만 높아지고 겜실력은 아주 처참..

뭐가 잘 쓴글인지 알아는 보겠는데..쓰는 건 너무 어렵죠..
노스윈드
18/06/01 19:27
수정 아이콘
제갈량전 재밌게보고있습니다~
마스터충달
18/06/01 19:37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계속 쓰다 보면 무조건 나아질 겁니다. (물론 적절한 피드백과 계획이 있어야 하지만요) 제가 글곰님만큼 잘 쓰는 수준은 아니라, 그 정도까지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단 하루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쓰면 무조건 늘었어요. 실력은 무조건 성장합니다. 타고난 재능? 그건 실력이 아니라 성향 같은 겁니다. 그냥 그 성향이 요즘 먹히는 거 뿐이에요. (김승옥 : 정말? 크크크) 다른 분야는 모르겠는데, 글쓰기에서는 노력이 언젠가 재능을 이깁니다. 스포츠처럼 유통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죠. 혹시 압니까? 매일매일 쓰다보면 종심 즈음에 쩌는 걸루다가 한 권 뽑을지도 모르잖아요.

본인 점수가 30점이라고 쓰셨죠? 부정하진 않을게요. 사실 글 쓰다보면 자기가 제일 잘 아니까요. '내 수준은 얼마구나.' 각 금방 나오죠. 근데 왜 30점에 머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글곰님이 30점이면 전 20점 정도일까요? 하지만 저는 20점이어도 걱정 안 합니다. 20점에 머물지 않을 거라고 믿으니까요. 뭐 빠지게 쓰다보면 30점, 40점... 그러다 80점 넘길겁니다.

글빨이 딸리면 뭐 어떻습니까? 글쓰는 게 좋으면 그걸로 족하죠. 돈도 버시잖아요. 그럼 그냥 계속 쓰면 됩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더는 늘어날 실력이 없는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까? 정복할 봉우리가 아직도 많으니까요.

글이 팔리는 건 실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사실 이거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거장들도 그러잖아요. 그냥 쓰라고. 팔릴 거라 생각하지 말고. 실력이 좋다고 글이 팔리는 것도 아니고, 실력이 나쁘다고 안팔리는 것도 아니죠. 사실 퀄리티와 흥행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여기는 게 대표적인 콘텐츠의 함정이죠. 차리리 팔리고 싶으면 1편 쓸 거 2편 쓰고, 2편 쓸 거 4편 쓰세요. 로또 당첨 확률 2배로 늘리고 싶으면 2개 사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깐 안 팔린다고 맘쓰지 말고, 실력이 나아진다 믿으면서, 계속 쓰세요. 졸라 쓰세요. (그리고 피잘에 올려주세요.) 그러다 보면 혹시 또 모릅니다. 터지는 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bemanner
18/06/01 19:41
수정 아이콘
드래곤나이트가 엄청 재밌고 문장도 쉽게 술술 읽히던데 이거는 정식 연재 예정 없나요..
18/06/01 19:43
수정 아이콘
불행은 기대에서 온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글짓기 능력으로 피지알 사람들 줄세우면 대부분 글곰님보다 뒤에 서겠지만, 그 중에 글곰님만큼 자신의 글짓기 능력때문에 공허해하는 사람 역시 거의 없을 겁니다.


여하튼, 이곳에서 재능을 낭비해 주시는데 대해 독자의 한 사람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
18/06/01 20:21
수정 아이콘
장르작가로 먹고 사실 재능은 차고 넘치시는 것 같은데요.
필력이 모자란 게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겠죠. 조금 더 내려놓으시면 너무 쉽게 가능하실 일인데.
스덕선생
18/06/01 20:25
수정 아이콘
저도 중학생때까지 문학도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적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 한 친구가 신춘문예에 합격(세계일보였을 겁니다)했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본다음
노트 3개쯤 분량의 자필 판타지 소설집을 싹 갖다버렸습니다. 그리고 목표를 사서로 바꿨고요.

결국 지금은 소설가도, 사서도 아닌 그냥 건설지원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그때 느꼈던 충격이 오랜만에 다시 생각나네요.
짱짱걸제시카
18/06/01 20:48
수정 아이콘
알쓸신잡 컨셉으로 웹툰 글 한번 써보심이..
한걸음
18/06/01 20:57
수정 아이콘
저는 대학원생이지만 연구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와닿는 글이네요.
충동가입
18/06/01 21:08
수정 아이콘
출사 잘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래곤나이트도 잘 보고 있습니다. 드래곤나이트와 출사를 쓰시는 분이 새시대에 어울리는 글을 쓰기 역부족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안타깝습니다.

몸매가 출중한 모델은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죠.

항상 응원합니다.
vanillabean
18/06/01 21:13
수정 아이콘
딘 쿤츠의 작법책에서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쓰고 싶은 걸 쓰기 위해선 살아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쓰고 싶지 않지만 팔리는 글도 쓰라고 했던 부분이었어요. 다른 일보단 글로 먹고 살면서 계속 글을 써야 본인이 원하는 작가가 될 수 있다고요. 저도 그걸 믿고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간에 계속 글을 씁니다. 물론 롤만 안 한다면... 두 배 더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
18/06/01 22:09
수정 아이콘
저는 쓰고 싶은 걸 맘껏 써보는 것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직업이 있다면 더더욱요. 잘 팔리는 글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되구요. 좋은 글은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백 수천명이 읽고 빨리 휘발되어버리는 글이 있는 반면에 수명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글도 있으니까요. 혹시 아나요 후세에 더 인정 받을지도요. 그리고 트렌드가 어떻든 좋은 글은 반드시 누군가가 찾아보게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글곰님 글을 보며 부러움을 많이 느낍니다. 댓글은 잘 안 달지만 잘 읽고 있습니다.
9년째도피중
18/06/01 22:30
수정 아이콘
음.... 제 경우도 어영부영 하다보니 40을 넘겨버렸는데, 여전히 못하니까 안하는 것인지, 안하니까 못하는 것인지 갈피를 못잡고 있답니다.
여전히 "나는 백퍼센트를 발휘하지 못했어"라면서 주변 환경 탓을 하며 자괴감을 죽이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요. 하핫;;;
그래도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가끔씩 돈도 버니 좋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패배자의 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합니다만.... 100점 만점에 5,60점 짜리 재능도 가끔 쓸데는 있지 않나 생각해요. 일단 평균값보다 높은 재능은 항상 요구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무엇보다 늙어가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매너리즘입니다. 덕택에 게임과 넷질 시간이 대부분인 일상을 "시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어물쩍 넘기고 살고 있군요. 허허허. 뭐 어떻습니까.
아마데
18/06/01 22:39
수정 아이콘
와...글곰님 글 읽을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처럼 재밌게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이런 글을 읽으니 기분이 묘하네요. 그렇게 느끼심에도 불구하고 피쟐에 계속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강미나
18/06/01 22:44
수정 아이콘
글쓰는데 있어 중요한 건 실력보다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실력이 는다 한들 이미 검증된 기존 명작들을 넘기는 힘들거든요.
더구나 그걸 가장 잘 아는 건 글을 쓰는 나 자신이고요. 그런 좌절 속에서 길을 지탱하게 하는 건 이런 명작은 아니어도 좋으니까
부족한 글이라도 내 이야기를 써서 읽히게 하고 싶다는 의지겠죠. 제겐 그렇게까지 읽히고 싶은 글이 없었고, 그래서 좋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읽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게 시간이고, 세상엔 이미 좋은 책이 너무나도 많거든요.

그 단계까지 가면 또 다른 고충이 있겠지만, 일단 제겐 '그럼에도' 써서 읽히고 싶은 글이 있다는 것부터가 부럽습니다.
eternity..
18/06/02 01:22
수정 아이콘
저도 중학교때까지는 꿈이 소설가였습니다.
나름 글쓰는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교내 글짓기대회라던가 기타 문예관련 콘테스트에도 참여했었고요. (상복은 저랑 인연이 없더군요;;;)

2월달... 수업진도도 거의 끝나고 학교에서 틀어주는 비디오로 소일할때, 국어 쌤께서 글짓기대회 입상작을 하나 읽어주셨습니다..

아름답다!! 진짜 아름답다!!! 글 잘쓰는 사람은 같은 표현을 해도 일반 범인과는 확연히 다르구나!!!!

누군지도 모르는 대상에게 질투심과 경외심을 느끼며 그렇게 소설가의 꿈은 고이 접어두었습니다.

제 주변에서 글 쓰시는 분들께 여쭤보니 글 쓸때 가장 힘든게 두가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1. 쓰고 싶은 주제로 글을 썼는데 맨 처음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글이 완성되었을때

2. 나보다 훨씬 잘 쓰는 사람의 글을 읽었을때 느끼는 질투심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나서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이기에 완벽한 완성품을 내 놓는것은 힘들고,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 완벽이라는 부분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보면 그 비슷한 자질을 갖출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글곰님의 고민도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제 경험상 고뇌라는 터널을 거치면 미약하게나마 성장하더군요.

대신 출구를 못 찾아서 이 미궁속에 빠지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글곰님의 이 고민이 좀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전되었으면 합니다. (술김에 댓글달다보니 횡설수설한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윌로우
18/06/02 05:21
수정 아이콘
좀 빈정 상하는 제목이지만 ... 뭐 어쩌면 다 비슷하겠죠.
페스티
18/06/02 07:56
수정 아이콘
저는 글곰님 글을 좋아합니다.
18/06/02 11:03
수정 아이콘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18/06/02 12:59
수정 아이콘
요새 든 생각인데요.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더라고요.
근데 하나의 작품을 따라 쓰면 표절이 되고, 두어 개를 짬뽕하면 짜깁기가 되지만, 한 스물마흔삼십개를 짬뽕해서 베끼면 꽤 괜찮은 확률로 사전조사가 충실하고 메타포가 풍부하며 오마주가 다채로운 글이 된다는...

만약에 제가 창작에 손을 댄다면 저 방식을 한 번 써보려고요.
강미나
18/06/02 15:44
수정 아이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한 번 읽어보세요. 재미있을겁니다. 흐흐.
18/06/02 23:27
수정 아이콘
댓글로 격려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씀이 필요해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제가 그래요. 안 그런 척하면서 아주 소심합니다. 아쉽게도 이 글에 결론 같은 건 없습니다. 시련을 견뎌내고 재탄생의 고통을 거쳐 마침내 하늘로 비상하는 그런 이야기라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네요. 다만 자꾸 꾸역꾸역 뭔가를 쓰기는 쓸 것 같습니다. 원래 사람마다 자기만족으로 하는 일이 한둘쯤 있잖아요. 어쩌다 보니 제게는 그게 글 쓰기인 모양입니다.

원래 글재주가 없다 보니 더 이상은 뭐라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는 어디선가 인용하는 게 좋은 선택이겠죠.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세요.
18/06/13 15:31
수정 아이콘
그걸 확인해보고자 하신 용기에 일단 경의를 표합니다. 발을 떼셨으니 더 걸어나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전 참으로 소인배라 아직도 시도해보지 않고 안 쓰는 거라 정신승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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