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과는 다른 사이클의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 주말에 쉬는일은 흔치 않다. 업무가 생기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톱니바퀴를 굴린다. 누구는 조금 일찍, 누구는 조금 늦게까지 열심히 돌아간다. 주말인 오늘도 우리의 날은 알맞게 맞물려 일을 마무리 지었다. 할당량을 채운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 홀로 남아 컴퓨터를 두드렸다. 내가 늦은게 아니라 남들에 비해 늦게 돌아가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밤 10시 즈음 클라이언트의 컨펌이 떨어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평소에는 동료들과 왁자지껄하게 돌아오는 길이었을테지만 홀로 돌아가는 늦지않은 밤이 유난히 깊게 느껴진다. 집으로 오는길에 지나치는 편의점은 3곳. 내일은 출근없는 주말이라 무난하게 치킨이나 먹을까 싶다가 엊그제도 회식메뉴가 치킨이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저께는 피자도 먹었었다. 두둑해진 배를 생각하며 오늘만이라도 참아보자는 굳은 결심으로 집으로 직행한다.
원래 집에와서 바로 씻지않는다. 잠깐 침대에 누워서 게임 아이템 정리좀 하고 이벤트도 확인하고 게시판 글도 둘러본다. 오늘은 롤챔스 결승이 있었구나, 어디서는 또 싸우고 헐뜯는구나 하다가 문득 냉장고의 맥주가 생각난다. 아까 편의점을 굳은 심지로 지나온게 후회된다. 안주 없는데 하면서 맥주 하나에 슬라이스 체다치즈 한조각을 가지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꼭 컴퓨터 앞에 앉는다고 뭘 하는건 아니다. 아까 폰으로 봤던 게시판들 다시 훑어보는 정도이다.
한참 글을 둘러보다 문득 면도날이 떨어진게 생각난다. 저번에 샀던 질레트는 날은 좋은데 피부와 맞지않아 얼굴이 다 상했다. 나이들어 탄력이 떨어진 탓이겠거니 하기엔 자상아닌 자상이 심각할 정도였다. 조금 업그레이드된 날을 사볼까 하고 여기저기 둘러본다. 두개가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나온 이중 보호막(?) 날과 기존 쓰던것에서 조금 업그레이드 된 날. 이중 프로텍터 어쩌구 하는 날이 조금 더 비싸다. 비싸봤자 삼천원 차이인데 10분을 고민하다 조금 더 비싼것을 사보기로한다. 나름의 모험에 나름의 큰 돈을 지출했다.
결제까지 마치고나니 문득 통장 잔고가 궁금해졌다. 컴퓨터앞에서 고개 푹 숙이고 괜히 많이 깔아놓기만한 각종 뱅킹 어플을 켜본다. 뒤적거리다 잠깐 머리속으로 계산하고 나니 흐뭇해지면서 묘한 감정이 실려온다. 어디서 자랑할 만한 그런 양은 아니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해주는것, 내가 인정받고 그만큼 충분한 구성원이 되었다는것에 대한 안도감일것이리라.
제 자랑하려고 쓰는 글은 아닙니다. 글재주도 없는 사람이 무엇하려 글을 쓰겠냐만 그냥 오늘은 조금 묻고 싶습니다. 모두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쌓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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