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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4 21:49
뭐랄까, 영향력은 상호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 생전, 예수 사망 이후의 예수 운동 초기, 바울의 편지가 쓰여지던 시절의 기독교, 복음서가 쓰여진 이후의 기독교,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기독교가 과연 같은 종교인지에 대해서 좀 회의적인지라...
18/04/04 21:52
확실히 그렇죠... 개인적으로도 초기 기독교와 국교회 이후의 기독교는 성격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의 기독교는 초기 기독교의 순수함(?)이라고 할지 이런 특성을 잃고, 정말 제국의 이념과 사명을 수호하는 조직으로 변한 것 같아서... 어떤 종교든지 간에 절대 권력을 얻게 되면 다소 변모하는 거 같습니다.
18/04/04 22:05
로마의 멸망의 기준이 뭐지요?
1. 476년 서로마의 멸망 2. 1449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보통은 전자로 많이 이야기 하지만, 사실 동로마도 로마제국의 후예로, 서로마 멸망이후 1000년은 더 지속됩니다. 게르만족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만 한것아니고, 게르만족 문화도 기독교로 편입이 되죠. 유명한 중세 시대 재판은 3가지였는데, 불의 재판, 물의 재판, 결투 재판 인데, (불의 재판, 물의 재판은 무죄 판결이 나온다는것 자체가 기적이고..) 이 중 결투재판은 게르만족의 문화가 기독교에 편입된 것이죠. 그리고 이 서유럽의 결투문화가 근대까지 유지되었죠. (둘중에 누가 옳은지 모르니 결투를 하면 신께서 심판을 해준다는... 이유지요) 영화 킹덤오브 헤븐 초반부에 고드프리 일행과 있는 주인공을 영주 아들이 쫓아오는데, 그때 게르만족 기사가 "결투로 누가 옳은지 판결하자" 라고 이야기 하는데, 바로 구호기사가 "저 친구가 법에 대해서 잘 알지.."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결투 재판을 잘 모르면, 그냥 시비조로 보이지만, 사실 중세 당시의 소송법에.. 결투 재판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정말 바른 말이지요. (물론 영화상에서는 시비거는것도 맞습니다만)
18/04/04 23:34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에서는 프랑크인들이 가져온 두려운 것 가운데 '법'이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책에서는 '프랑스인'에 한정된 표현이 아니라, 이슬람권에서 십자군을 묶어서 호칭한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마치 다양한 유럽 십자군들에게 '사라센인'으로 이슬람 세계가 하나의 종으로 합쳐진 것처럼요). 이슬람 세계 역시 샤리아로 대표되는 모든 무슬림들의 율법이 있었음에도, '모호한 권력'이라는 요소는 계속해서 이슬람 세계를 좀 먹고 있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유목적이고 부족적이던 베두인족에서 시작했던 이슬람 제국은 압바스 칼리프 이후로는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추진력있는 개혁이 없었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였습니다. 도리어 말리크 샤의 투르크인들의 셀주크 제국이야말로 투르크와 페르시아 문화 사이의 익숙함을 통해서 (지나치게 단순화시키자면 중앙 아시아의 페르시아계 타지크들의 도움을 통해 페르시아의 샤들에게 조공을 바치던 투르크 칸들의 어깨너머의 학습효과 같은 것이랄까요... 마치 여진족이 청 제국이 된 것처럼... 유목민의 유연한 흡수력이요. ) 훌륭한 통치력으로 바그다드의 이름뿐인 압바스의 칼리프 잔당들을 분열시키고 무시하면서 이슬람 세계의 권위를 찬탈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알력다툼은 유럽의 십자군에 대응해서 이슬람 세계의 대응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렸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요. 책에서 십자군 치하에서 살게된 무슬림 지식인의 증언하기를 "기사들이 판결을 내리면 왕이라도 뒤집거나 무효로 만들 수 없었다" 라면서 '성문화된', '만인의' 법이라 개념의 이슬람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파괴적인 힘에 경악하고 있습니다. 저자 아민 말루프는 덧붙입니다. '그러나 침략받은 무슬림들의 적개심은, 침략자로서 문물을 접하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다시 가져간 유럽인들과는 달리, 무슬림들이 적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하였고, 결국 근대로부터 이슬람 세계가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라고요. 로마법이 대단한 것인지, 기독교의 법이 대단한 것인지, 둘이 만나서 혼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혼종을 만나야했던 '모호한 전제주의(Despotism) 세계'에서 살던 어떤 기록이 생각나서 한 번 답글을 남겨보았습니다.
18/04/04 22:54
사실 기독교에서는 카톨릭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목사나 신학교수들도 많죠
다만 카톨릭이 너무 커져서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요 대형교회 주일 설교중에도 카톨릭은 이단이라고 설교하는 교회들도 있구요 그게 맞다 아니다는 개인의 판단의 자유지만요 종교에 관심이 적거나 기독교에 관심이 적은 분들은 비슷하다고 보실수도 있지만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카톨릭을 이단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많죠 물론 이유도 나름 있구요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깊이있게 보면 핵심이 다른게 기독교와 카톨릭이죠 카롤릭이 워낙에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놓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죠 사실 기독교 자체도 이제는 대형세속화되면서 초대형공인된 교회들도 순수한 교인이 보기에는 이단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분석하는 신학자중에서 일부는 카톨릭을 적그리스도로 의심하기도 합니다
18/04/04 23:13
뭐 그쪽은 우리나라 종북타령마냥 자기 맘에 안들면 이단이라는 동네니 그러려니 합니다만
어디 기준의 시점에서 카톨릭이 이단인지에 대해 좀 궁금하긴 하네요. 보수적인 기독교 인이라면 콥트교같은건가요?
18/04/04 23:26
개신교 관점의 이단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저분이 말씀하시는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개신교 근본주의같습니다
그리고 콥트교는 동방교회 중 하나인데 그리스, 러시아를 필두로 하는 정교회와는 좀 다릅니다
18/04/04 23:22
기독교는 크리스트교의 음차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모든 교파를 지칭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등이 있습니다 오리엔탈 정교회는 삼위일체가 공인 되기 이전에 칼케돈공의회 때(451년) 갈라진 종파입니다 또 카톨릭과 개신교만 따진다면 카톨릭이 먼저이고 님이 말씀하시는 기독교, 개신교가 종교개혁(16세기)으로 나중에 나온 것이죠 또 카톨릭 인구는 12억3천만, 개신교 인구는 5억6천만입니다 개신교 인구는 한번도 카톨릭 인구를 넘어본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카톨릭의 이단성을 따지기 보다는 카톨릭의 정통성이 먼저일거 같습니다
18/04/05 10:55
원조논란인가요? 큭큭큭
가톨릭에서는 개신교를 '열교' (갈라진 교회)라고 인식하죠. 관점 차이겠지요. 가톨릭 정통교리에서는 '어이구 저 사제도 없이(목사는 사제가 아님) 신도들끼리 예배 보고 있구먼 끌끌' 이런 인식도 있구요. 애초에 그네들은 정교회 등의 사제계승종교와 서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개신교와는 애초에 정통성 논란을 벌이지도 않습니다.
18/04/05 00:05
기독교가 로마, 중세시대때 행정기관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요?
일단 사제들이 글을 아는 식자층이라는 것, 교인명단으로 주민수를 알 수 있다는 것, 출산미사와 장례식을 주관함으로써 출생신고와 사망신고 역할을 한다는 것 정도만 아는 대요.
18/04/05 00:14
역사학을 다루는 많은 교양서들이 그리스의 역사학에 근접했던 철학자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세계의 사상이 곧 그리스 세계에 대한 침략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간파해서 페르시아 세계와 그리스 세계를 동일한 수준의 다른 가치의 세계로 분할하여, 다원적인 분석을 남겼던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런 찬사에는 '신의 징벌의 도구'로서의 타민족 밖에 상상하지 못하는 히브리인들의 구약성경적인 논리의 단순함과 이를 받아들인 '말기'의 로마인들의 '게르만을 통한 로마인의 징벌'이라는 논리를 재생산을 한심해하며, 동시에 중세 시대의 '퇴화'를 비난하려는 역사관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가톨릭 교회는 '현실혐오주의적인' 퇴화의 암흑기의 장본인일까요?
저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시대 그리스트교 교단이 싸워야했던 '미신'들은 로마의 붕괴에 따라서 '신비주의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 교단'이었습니다. 단순히 주술적인 신비주의 (Mysticism)수준에서, 밀교주의 (Esotericism) 수준을 못 벗어난 '비인격적'이고, '비체계적인' 집단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최후까지 초기 기독교와 경쟁했던 미트라 교단과 신 플라톤주의 교단이 있었는데요. 신 플라톤주의 교단은 주술적 신비주의 답게 특정한 방법 (주술)을 따르면 이데아에서 (네 플라톤의 그 이데아 맞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의 사상이 그리스인들의 민족종교 교단이 되려고 시도한 것이 신 플라톤주의 교단이였습니다.) 현실로의 진리의 넘쳐흐름을 받아 신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소수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 그들을 보조하는 몇몇 평신도의 착취 이상으로 교단 조직을 가지지 못하는 비체계성(밀교주의)과 체계성의 발전을 막는 진리에 대한 순수한 숭배를 소중히 여기는 점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고대에서 로마와 독자적인 문명의 세계를 가지고 있던 페르시아 전통의 조로아스터교의 로마화 지부인 미트라 신앙이 주술주의와 밀교주의를 어느정도 배척하나 싶었지만 결국 승리한 것인 원시 기독교였지요. (참 아쉽습니다. 너무 옛날이다보니 기록이 워낙 남질 못해서 정확한 패배원인은 막연한 상상의 영역에 남아있습니다.) 율리아누스 황제와 같이 반기독교적이고 기존 로마 신앙에 호의적인 황제들이 있었음에도 로마 교단이 몰락한 것에는 이런 뒤떨어짐이 한 몪 했습니다. 도리어 계속해서 이런 신비주의적인 특성과 밀교주의적인 특성은 가톨릭 내부로 침입하기도 했지만 원시 기독교에서 굳혀진 대응논리에 따라서 반 가톨릭적인 형태를 띄어야 신도를 끌 수 있었고, 로마시대부터 싸움하던 오리엔트의 이신론적인 사상들은 유럽 내부로 들어와서는 혼교주의적인 (Syncretism) 게르만 신앙 및 슬라브 신앙의 잔재들과 반목하거나 연합하면서 나름대로의 소규모 신도들을 가지고 싸우면서 역사의 이런저런 등장을 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크인들의 알비 지방의 알비주의 (알비파)라던가, 슬라브인들의 폴란드의 야쿱 프랑크의 프랑크주의, 또는 불가리아의 보고밀의 보고밀파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발덴파 (Waldensian)이나 제세례파 (Anabaptist)같은 경우에는 운 좋게 시쳇말로 '존버'... 버티기를 통해 종교개혁의 일부가 되었지만, 미국 메사추세스 청교도 식민지에서 도덕불요론 논쟁 (Antinomian Controversy)을 꺼냈다가 인근 네덜란드령 식민지로 추방당한 앤 허친슨의 경우처럼 상당히 근대까지 이런 기독교 내부의 집단 단속은 계속되었습니다. 저도 카발라를 좋아하고, 소설 '데미안'에서 아브락사스가 나오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주술주의와 밀교주의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지만, 이들이 무작정 '교단에게 탄압받던 양심있는 약자'나 '시대를 앞서나간 현대주의적인 사고의 선지자들'의 집단이 아니라 도리어 '비이성적인 광신도 집단'이자 '제도권 바깥의 절박한 사람들'... 아니 무엇보다 '이단인 이유가 있는 이단'이었다는 것도 생각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면도 있고요. Avicenna, 아비세나라는 이름으로 페르시아의 대학자 이븐 시나의 저작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수도원들의 필사본 서재들이었으니, 르네상스도 해석의 문제였지, 망국 비잔티움의 서류들로만 해석하려고 한다면 유럽이 가지고 있던 서류, 크게봐서 토양은 갑자기 붕뜨게 된다고 봅니다. 저는 '근대화'에 관심이 있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학자는 아니고요. 이런 저런 인문학 교양서적이나 가끔 읽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근대성'을 유럽이 세계에 끼친 '영향' (뭐 저는 가끔 반농담으로 '해악'이라고 합니다)이라고 생각한다면, 중세 유럽사회에, 로마 말기 매력적인 기독교에, 기독교 그 자체에, 근대성의 조각이 분명, 확대 재생산되었을 어떤 씨앗이 존재했었어야하는 것이거든요. 제가 막 길게 다른 이야기를 적었습니다만, 결론은 감사합니다. 기독교와 유럽이라는 어떤 흥미로운 시각을 다루는 글을 PGR에서 보게되서 기쁩니다. 기독교 안에 있던 유럽, 유럽이 되었을 어떤 미약했던 씨앗. 만일 그것을 추적한다면 다시 한국에 '불완정하게 전송당한' 근대성과 근현대 한국까지 추적할 수 있는 어떤 뜻의 길이 보일까요? 저는 제가 죽기전에 논문급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미약한 오솔길이 보였으면 합니다. aurelius님께서도 뜻을 두신 길을 이런 조각들 안에서 찾으실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18/04/05 01:27
글도 멋지지만, 이 댓글도 멋지네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공부하기로는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창기 기독교는 타 종교(혹은 컬트)와 대놓고 적대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가령, 언급하신 미트라교에 대해서도 기독교 초창기엔 꽤 호의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미트라교의 유적지나 물품들을 소폭 수정하여 재활용 했다는 얘기가 있다는 걸 보면요. (물론 중세 이후에 기독교인들이 미트라교 유적지나 유품들을 다 부순 걸 보면 이러한 기조가 오래가진 않은 듯하지만요.) 처음 것은 기독교의 로마화, 나중 것은 기독교의 게르만화(혹은 롬바르드화?)라고 봐야 할까요 :) 아무튼 재미있는 역사입니다. 뜻하신 바를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18/04/05 02:39
아마 이슬람교가 확대과정에서 곳곳에 흩어져있던 유대교 랍비들의 도움을 받았고, 조선 초기 유학자들의 정치 조언자에 스님들이 있었던 것처럼, 서로 이상향을 위해서 같이 협조하다가 결국 힘을 먼저 거머쥔 쪽이 밀어내고 더러운 혼합주의의 잔재를 씻어내는 쪽으로 불쌍하게 갔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망상해봅니다. 당장 조로아스터교라고 하면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 까지는 같이 기독교와 안 묶여도, 히타이트의 먼 친척인 인도-아리아 내지는 인도-유럽-머시기 계통의 인종이 가지고 온 원시 유일신교의 같은 자식이었으니 겹치는 점도 많았을 것입니다. 족보의 더 먼 친척으로는 이집트 파라오 아크나톤의 1대 밖에 못간 일신론 실험과 비슷한 친척 관계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서로 주고 받고 참고하기도 편했을 것 같네요. 제가 어디서 주워 듣기로는 신앙고백(Creed)이 미트라교가 먼저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런게 사료로 남았을 것 같진 않아서요 그냥 후대의 망상같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기독교 뿐만이 아니라, 종교의 교리라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따지자면 아마 무한한 누더기골렘이(마침 블리자드말로는 Abomination이군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일신론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신학적 논쟁은 시아 이슬람의 이스마('Ismah)입니다. 영어로는 직역해서 보호(Protect) 또는 의역해서 무결성(infallibility)이라고 옮기더라고요. 찾아보니 네이버에서는 한국어로 완전무결성이라고 번역했네요. 신에게 합치된 이맘(종교지도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짐에도 그 자유의지로 모두 선한 행위만을 행하며 결코 악한 일은 하나도 행하지 않는다, 뭐 그런 개념입니다. 살짝 양명학 느낌도 나지요. 똑바로 알면 악행은 못한다라니. 그런데 못하는 것이냐, 안하는 것이냐, 정해진 것이냐, 깨닫는 것이냐... 엄청 복잡한 논쟁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이지만 이 개념이 사실 '조로아스터산 개념'은 아니냐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오리엔트의 보편적인 일신론 유행, 이 때부터 시작된 페르시아의 신학 전통과, 조로아스터 선과 악이 영적전쟁을 벌이는 이원론적 신학, 수피즘의 비난하는 자들(Malamatiyya)의 반세속적인 밀교주의, 열 두 이맘파(Twelver Shia)의 투쟁적이고 계층화된 신학...은 얽히고 섥힌 울타래일 것입니다. 전통이라고 아직까지 불리고 있는 것들은 다 따지고 보면 가장 최근의 찬탈자들이니까요. 근대성을 왜 아시아가 못 받아들였냐보다 더 알기 쉬운 것이 바로 옆에 있던 중동이 왜 못 받아들였냐를 알기 쉽지 않을까 생각해본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는 처다볼 수록 시커멓고 거대한 심연이 펼쳐져있는 느낌입니다. 아시아는 그나마 극동이나마 여태까지 사회제도의 전통으로 자본주의를 '이렇게 나마' 가공해서 힘들게나마 소화시키고 있는데, 지중해의 반대편을 보는 순간 맹렬한 증오와 경멸과 혐오의 반-유럽, 반-외세, 반-근대성의 서사시가 펼쳐지니... 그런데 유럽이 뭐고 서양이 뭔지 답하지도 못하는 제가 어느 것이 반-근대성이고 어느 것이 반-유럽인지 논할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지금도 구미의 영향에 보다 가까운 한국에서는 중동세계를 그냥 '미친 사람들'로 취급하고 싶어하죠. 사실 그게 쉬운 이해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알제리의 정신과의사였던 프란츠 파농이라는 사람이 "정신분석학적으로 미친 북아프리카 원주민놈"을 "프랑스가 만들어낸 '북아프리카 증후군'의 누명을 쓴 평범한 알제리 사람"으로 바꾸려고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걸 읽은 다음부터는 파농처럼 함부로 '그들은 미친 사람들이다.'라는 식의 표현은 안 해보고 죽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8/04/05 03:18
역시나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저는 종교 교리의 기원에도 관심이 있지만, 길가메시부터 이어지는 영웅담에 특히 관심이 많은데, 하신 말씀과 유사한 점이 많네요. 처음 시작이야 어찌 되었건 당대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누더기라는 점에서요. 길가메시 이야기도 실은 당시 여러 지역에서 전해지던 전승을 합치고 각색한 거라더군요. 아마 기독교에 영향을 미친 선대 종교들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봅니다. 가령 조로아스터교에 영향을 준 종교는 지금도 약간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점점 더 밝혀지겠지요. 저는 영화 <13번째 전사>를 참 좋아하는데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Lo there do I see my father; Lo there do I see my mother and my sisters and my brothers; Lo there do I see the line of my people, back to the beginning. Lo, they do call me, they bid me take my place among them, in the halls of Valhalla, where the brave may live forever. 죽은 사람을 보고, 혹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하는 송사인데, 품으신 소망을 들으니 이 송사가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Farce님께선 인류의 선조들의 얼굴을 낱낱이 보게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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