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가는 길에, 집 근처 백화점을 들렀다. 어느 옷가게에서 세일을 하고 있는데, 유독 세일 마지막 날임을 강조하며 "LAST DAY!"라고 붙어있는 문구가 눈에 밟힌다.
왜 눈에 밟히냐면, 저거... 벌써 같은 곳에 일주일 넘게 붙어있다.
처음 저 문구를 봤을때는, "정말 마지막 날인가?" 싶어 옷이 당장 필요한것이 아닌데도 진지하게 살까 말까 고민해봤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계속 붙어있는 저 문구를 보니, 뭔가 묘하게 사지 않은게 다행스러우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대체 마지막이라는 말이 뭐길래 나를 그토록 다급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우리에게 "자주 없는 기회"라는 전제가 주는 여운은 엄청난 것 같다. 평소라면 중요하지 않은 것도, 더이상 기회가 없을수 있다면 어째서인지 놓치고 싶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진짜 필요한지 아닌지는 뒷전이고, 만에 하나 아쉬움이 남을까봐,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것들을 희생하기도 한다.
물론 과거미화와 추억보정이 끝난 미래에는, "그때 놓치지 않길 잘했어"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세일품목을 사지 않고 나중에 "안사길 잘했어" 하는 경우도, 만만찮게 있다. 어디까지나 세일을 한 품목이라도 우리에게 지출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고, 실제로 경제학에서도 이런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신이 100달러짜리 물건을 세일로 50달러에 샀다면, 당신은 50달러를 절약한게 아닙니다...50달러를 쓴거죠."]
시간을 직접적으로 돈에 비유하는건 적절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우리가 시간을 소비하는 것도 사실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퇴근 후 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혹은 주말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결정할 때, 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고 있기 보다는, 당장 남은 시간을 채울수 있는 일들중, 가장 자주 오지 않는 기회들 위주로 채우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정작 나에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지는 사실 이미 뒷전이 돼어버린지 오래였다.
평일 저녁약속을 잡게 되는 것도, 딱히 그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다기보단, 그냥 딱히 할일이 없는데 그 사람들이 때마침 물어봤기 때문이고; 주말에 밖에서 돌아다닐 일정을 만드는 것도, 딱히 집에 틀어박혀있는게 싫어서가 아니라, 뭔가 주말은 혼자 보내면 안될것 같다는 막연한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약속이 있구나? 다음에 연락할께~"]
하루하루를 돌아보면 늘 정신없는 날들이였고, 그런 하루들의 반복 속에서 나에게 진정 관심을 주는 사람들의 연락은 늘 나중에 해야지, 나중에 해야지로만 미뤄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다음날이 오면, 또 어떤 약속 제안이 오고, 그걸 딱히 뿌리치기도 쉽지가 않다. 오늘은 몇달만에 찾아온 친구가 갑자기 밥을 먹자고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것 같은게 응하지 않기도 어렵다. 내일은 아마도 동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자며 무언가를 제안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든다.
["요새 많이 바쁜가봐? 며칠째 약속이 있네?"]
생각해보면 어느새부터 늘 약속에 쫓기며 살고 있다. 딱히 중요한 일들이 아니라, 그날그날 아쉬운 일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일에 쓸 시간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세일품목을 이것저것 필요없는것 까지 사들이다보니 정작 생필품을 살 돈이 부족해진 듯한 기분이다. 생필품은 뭐... 나중에 사면 되지. 딱히 지금이 행사기간도 아니고~ 라는 느낌이다.
그렇게, 명절이란 어느새 행사기간과도 같은, 그런 의미가 되었다.
생필품을 챙겨두기 위한 행사기간과도 같은 것, 늘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잘해주는 행사기간 같은 것. 명절이 다가오는 지금, 가족들에게 전화 한번 드려야지 싶으면서도, "왜 굳이 새해라서만 전화를 드려야 하지?" 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평소에 그렇게 시간을 비우겠다고 한 약속들은 왜 늘 수포로 돌아갔을까.
사람은 정말이지 늘 있어주는 것들의 중요함을 쉽게 까먹는것 같다.
명절이 다가오는 지금, 올해는 이일 저일에 무차별하게 쓰는 시간들을 조금 줄이고,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 그러면 오히려 그런 순간 하나하나가 명절 같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